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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역사
국내저자 > 사진/그림

이름:박시백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4년, 대한민국 제주도

직업:만화가

기타: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최근작
2024년 3월 <박시백의 고려사 1~5 세트 - 전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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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 안의 작은 행복

이 책에 모아 놓은 만화들은 거의가 1998년에서 2003년 사이에 그린 것으로, 말하자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이전 작품들이다. 이 기간은 대략 김대중 정부 시절과 겹친다. 정권 교체로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드높았고, 남북 간에도 평화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에 부응하기라도하듯 역사적인 남북 정상 회담이 열리면서 여러 합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때 생각으론, 지금쯤이면 통일은 안 되더라도 기차를 타고 평양도 가고, 만주와 시베리아 벌판을 지나 유럽도 갈 수 있으려니 했다. 일장춘몽이 되고 말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시기는 외환 위기로 인해 IMF(국제 통화 기금)로부터 금융 지원을 받게 되면서 내정 간섭까지 받아야 했던 속칭 ‘IMF 시대’다. 기업들이 줄도산하고 해고가 넘쳐 났다. 명예퇴직ㆍ정리 해고ㆍ파산ㆍ노숙자 같은 말들이 내일이면 자신의 현실이 될 수도 있었던 시대! 고도성장이란 기치 아 래 앞만 보며 달려온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맞닥뜨린 낯선 환경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런 일들은 어느 때고 있었다. 아무리 호황기였다 해도 해고와 파산, 그에 따른 절망과 좌절 같은 일들은 누군가에게는 일어나는 일이었고 오늘날 또한 그렇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우리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 시절은 조금 달랐다. 다수의 우리가 그러한 위험에 직면했고 먼저 그런 일을 당한 이웃들에게 애틋한 동질감을 가졌더랬다. 모두가 주위의 아픔을 제 일처럼 여기고 주변의 약자나 실패한 사람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냈던 때였다. 참으로 일찍이 없던 시대였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들과 함께 그런 정서를 담아 그렸던 만화들에 대해 말했더니 출판사에서 이내 모음집을 내자고 했다. 주섬주섬 챙겨 보니 여기저기에 그린 만화의 양이 제법 많아서 두 권으로 엮게 되었다. 첫 번째 책 《사노라면-그 시절, IMF의 추억》은 ‘한겨레 신문’에 ‘박시백의 그림세상’이라는 이름으로 실렸던 작품들을 담았다. 시사적인 내용과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위주다. 두 번째 책 《둥지 안의 작은 행복-삶을 이끄는 누군가 있다는 것》은 <출판 저널>ㆍ<주간 경기>ㆍ<홀트>ㆍ<우리 교육> 등 여러 곳에 연재했던 작품들인데, 실렸던 매체들의 성격상 시사보다는 사람사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두 가족을 중심으로 학교 이야기, 10대들 이야기 등 우리네 사는 모습을 담았다. 훑어보니 당시 사람들처럼 나 역시도 그 시절엔 지금보다 세상과 사람들에게 좀 더 따스했던 모양이다. 울분과 안타까움, 불안과 작은 희망 그리고 젊음이 느껴지면서 30대의 한복판을 추억하게 한다. IMF 시대를 살아 낸 독자들에게 추억의 한 페이지를 여는 매개가 되기를 소망한다.

박시백의 고려사 3

고려 초기의 호족 중심 권력 구조는 어느덧 문벌 귀족이 주도하는 형국으로 바뀌어 있었다. 무신란은 이 구도를 단박에 무너뜨렸다. 문벌 귀족은 사실상 해체되었고, 힘 있는 무신과 그 측근 들이 주도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급 장교는 물론 병졸, 유력자의 눈에 띈 가노, 부랑아 등이 초고속으로 출세해 권력과 부를 얻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만적의 구호처럼 장상의 씨가 따로 없는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 ‘작가 후기’에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10권은 분량도 많았지만 《실록》의 기록이 너무도 부실하여 애를 먹었다. 사건들은 모호하고 인물들도 뚜렷이 다가오지를 않았다. 그럼에도 눈에 확 들어오는 사람은 역시 이이와 이순신이었다. 이이에 대해서 필자가 그동안 가졌던 인상은 ‘똑똑하고 참한 선비’였다. 그런데 《실록》을 보면서 ‘시대정신을 바로 읽은 열정적인 개혁정치가’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문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는 조광조와 이황을 한 몸에 담은 듯한 인물. 누구보다도 시대의 병을 바로 진단했고 가장 뛰어난 처방을 내렸지만 제대로 쓰이지 못했다. 비록 자신의 철학을 현실에 구현하지는 못했지만 표지 모델로 부족함이 없는 사람인데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순전히 이순신이라는 존재 때문이다. 실로 하늘이 내린 인물. 그가 아니었다면 조선은 그때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거나 남북으로 분단되었으리라. 원칙적이고 기본을 중시하는 태도, 피아의 역량과 지형지물을 정확히 판단한 데 따른 창의적인 전략전술, 필사즉생의 정신, 선비보다도 더 선비다운 풍모와 자기 절제, 나라와 백성, 대의를 철저히 앞세우는 모습에서 ‘성웅’이란 표현이 전혀 과하지 않은 인물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인물을 조상으로 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2

이 만화를 그리며 염두에 둔 나름의 원칙이 있다면 아래와 같다. 첫째, 정시차를 위주로 하면서 주요 사건과 해당 사건에 관련된 핵심인물들의 생각과 처신을 내용의 중심으로 그린다. 둘째, <실록>의 기록을 위주로 하면서 학계의 최근 연구 성과를 적극 차용하고 필자 스스로도 적극적으로 해석에 개입한다. 셋째, 성인 독자들을 주된 대상으로 삼되, 청소년들과 역사에 관심이 남다른 어린이가 보아도 무방하게 그린다. ('머리말' 중에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3

애초 이 책은 지난해 말에 나올 수 있었으나 완성된 원고를 다시 수정하느라 늦어지고 말았다. 계속 고민하고 여러 번에 걸쳐 수정하게 만든 주제는 효종의 북벌이다. 학교에서 국사를 배웠던 이들에게 효종이 북벌을 추진했다는 것은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것처럼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필자는 이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고 만 것이다. 어차피 역사 연구는 끝없이 새로운 연구 성과나 해석이 나오면서 더욱 풍부해지고 진실에 접근하게 되는 이치이기에 나름의 근거가 있고 추론이 일리 있다면 과거와 전혀 다른 해석이 내려진대도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다. 그런데도 망설여진 것은 아이들 때문이다. 간혹 내 책을 몇 번씩 읽는다는(고맙게도!)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곤 하는데, 그들에게 혹 혼란을 안겨주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민 끝에 더러 톤을 완화했지만 애초의 판단을 유지하기로 했다. 남다른 해석으로 튀어보려고 한 것이 아니기에 내가 느끼고 판단한 대로 밀고나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다만 우려한 부분에 대해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들의 도움이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현종 11년 동지사로 간 복선군을 청 황제 강희제가 가까이 불러 이렇게 말했다. “너희 나라가 백성이 빈궁하여 다 굶어죽기에 이르렀다는데 바로 신하가 강한 소치라 한다. 돌아가 너희 임금에게 전해라.” 이는 당시 청이 조선 정세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하겠는데 실제로도 중국이 군강신약의 나라라 한다면 조선은 군약신강의 나라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이다. 태종과 정도전으로 대변되는 군권과 신권의 대립은 개국 이래 계속되어왔다. 군권이 강한 때도 있었고 신권이 강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군약신강은 과거 한명회나 김안로 당시의 군약신강과는 사뭇 다르다. 당시에는 특정한 개인이 요직을 두루 장악해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지만, 이때의 송시열은 산림에 앉아서도 자신의 이론과 판단으로 조정의 흐름을 좌우했다. 성리학 질서가 지배하는 참으로 조선다운 군약신강이라 하겠다. 대동법을 위해 일생을 바친 김육의 정치철학은 사뭇 감동적이다. 그는 일관되게 소수의 특권층이 아닌 다수의 백성을 위한 정치가 행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호가 싫어한다고, 관리들이 싫어한다고 백성에게 이익이 되는 법을 행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라는 그의 일갈이 오늘의 위정자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 박시백 (지은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4

김지미, 남정임, 윤여정, 이미숙, 전인화, 정선경, 김혜수. 영화나 드라마에서 장희빈을 연기했던 여배우들의 이름이다. 6~7년에 한 번씩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진 덕에 숙종과 장희빈, 인현왕후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친숙하다. 이 책에서도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이야기는 비중 있게 다루었는데, 절정에 해당하는 장희빈 사사 장면 같은 것이 없어서 좀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실록》에 없는 이야기이니 양해하시길. 역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장희빈 못지않게 환국을 숙종 시대의 상징으로 떠올릴 것이다. 막장까지 치달은 당쟁을 활용하며 숙종은 환국을 통해 왕권강화라는 목표를 이루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왕권강화였는지……. 허목, 송시열, 김석주, 김만기, 김만중, 김수항, 윤증, 남구만, 박세채, 권상하, 박세당, 이이명, 김창집, 이여……. 조선 후기로 올수록 전해지는 초상화가 많다. 위에 열거한 이들의 캐릭터들은 초상화를 기본으로 하면서 필자의 느낌을 살짝 더해 만들어졌다. 그려놓고 보니 확실히 필자가 생각만으로 만들어낸 캐릭터들보다 현실적이면서도 훨씬 개성 있다. 더구나 김석주, 김만기 같은 이들은 더 만화적이기까지 하니 캐릭터를 만듦에 더욱 신경을 써야겠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윤휴(청남, 64), 허목(청남, 88), 허적(탁남, 71), 권대운(탁남, 88), 송시열(노론, 83), 김수항(노론, 61), 권상하(노론, 81), 윤증(소론, 86), 박세채(소론, 65), 남구만(소론, 83). 숙종 시기 한 당파의 영수였던 이들의 소속 당파와 세상을 떴을 때의 나이이다. 동시대인들의 수명을 고려한다면 하나같이 대단히 장수했다. 더구나 윤휴, 허적, 송시열의 경우는 자연사한 게 아니라 사사되었지 않은가? 치열하고 살벌했던 당쟁의 한복판에서 늘 긴장하며 살았을 텐데 이렇듯 장수했다니! 의학계에서 연구해봄직한 소재가 아닐까 하는 싱거운 생각마저 든다. 한 권의 원고를 끝냈을 때의 해방감은 언제나 짜릿하다. 그런데 후기를 쓰는 일이 남아 있어 그 해방감은 반감되고 만다. 어쩌다 술술 써지기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 필자로서는 대개 쥐어짜내야 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역사서의 후기에 장수의 비결 운운하는 글이나 끼워 넣었다고 타박해도 도리 없다. (작가 후기) - 박시백 (지은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5

중대한 정치적 사안을 다룬 신문들의 기사를 보면, 같은 사안을 다룬 기사가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판이하다. 각 신문사의 경향이나 기자들의 입장이 그만큼 다르기 때문이다. 사료(史料)들도 사람이 작성한 것이기에 해당 사관의 정치적 성향이나 개인적인 기질, 혹은 신분이나 그가 속한 정치적 집단의 이해 등이 어떻게든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순결하게 객관적인 사료란 있을 수 없고, 사료를 근거로 작성된 역사 안내서들은 안내자의 해석을 동반하게 된다. 필자의 작업도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사료를 필자의 눈으로 요약, 정리하는 과정이다 보니 때로는 기존의 해석과는 많이 다른 필자만의 해석을 내보이게 된다. 이에 대해 비전문가가 너무 앞서나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 어린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간혹 있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 필자의 목적은 사실 여러 학자나 저술가들의 해석을 참고삼아 최대한 《실록》을 제대로 알리는 데 있다. 다만 《실록》을 쭉 읽어나가다 보면 앞서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이나 해석과는 다른 느낌, 정황, 기록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런 단서들은 마치 아우성치듯 내게 분석과 상상, 판단을 요구한다. 필자만의 해석이란 말하자면 그에 대한 답변인 것이다.

이번 편에서는 사도세자의 비극과 관련하여 기존의 여러 해석에다 또 하나의 해석을 더했다. 사족 삼아 덧붙인다면, 비극의 가장 큰 원인은 사실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은 영조의 장수에 있다 할 것이다. 비극이 있던 그때 이미 영조는 역대 임금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상태였다. 본문에서는 세자가 더 참으며 2인자답게 처신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표했지만, 세자의 비극 이후로도 영조는 14년을 더 살았다. 아무래도 그렇게까지 참아내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15권은 평소보다 두 달쯤 더 걸렸다. 영조의 재위 기간이 워낙 길어서 《실록》을 공부하는 데 한 달 정도 시간이 더 필요했고, 분량도 다소 늘어난 데다, 필자의 게으름도 한몫 거들었다. 6개월이면 새 책이 나올 것으로 알고 기다려주시는 열혈 독자님들께는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다음 편은 관심도 높고 논란도 많은 정조 편. 이 자리에 다시금 죄송 운운하는 글을 남기는 일이 없도록 열심히 할 참이다. - 작가 후기 중에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8

예상했던 대로 헌종·철종 편은 《실록》의 기록이 부실해 내용을 엮어내기가 어려웠다. 이전까지는 적당한 분량의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처음 잡은 콘티에서 많이 덜어내야 했지만, 이번 18권은 덧붙일 게 없을까를 고민해야 했다. 그렇다고 마지막 장의 〈사대부의 조선 500년〉이 그런 고민의 산물은 아니라는 사실. ㅋ ㅋ 이제 조선이 본격적으로 쇠망의 길을 걸어가게 될 터인데, 그에 앞서 조선이 어떻게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큰 흐름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흐름 속에서 시대와 정치, 인물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조광조로 대표되는 사림의 등장과 그 정점에 있는 이황 같은 이들도 마찬가지다. 역사적 평가는 한 번 내려지면 쉬이 바뀌지 않는다. 조광조, 이황, 사림에 대한 평가는 후대 사림이 내린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뀐 오늘까지도 당시의 평가는 큰 수정 없이 이어지고 있다. 사림의 조선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 것이었나? 사림의 조선은 성공적이었나? 삼정의 문란은 세도정치와 결합되면서 더욱 심화되었지만, 사실상 오래전부터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조선 사회를 바로 세울 수 없을 만큼 근본적인 문제였다. 서세동점의 물결에 대한 적절한 대응만큼이나 내부적으로 이 문제를 바로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리하여 민생을 편안케 하고 국가 재정을 넉넉히 해야 외생적 변수에 대한 대응책도 나올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 문제와 관련해 정조는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근본적인 수술을 시도하지 않았다. 다만 관리하고 단속하는 데 부지런했을 뿐이다. 과연 이 문제를 제쳐놓고 조선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 개혁이 가능했을까? 그래서 필자는 정조의 개혁과 관련한 많은 해석들이 판타지에 가깝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흐름 속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부실하기 이를 데 없는 기록에서 그나마 헌종이 안동 김씨에게 제대로 맞서보려 했다는 것과 철종이 꽤 안목과 자질을 갖춘 인물이었음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수확이었다. 남은 두 권은 고종 편으로, 1910년 국권피탈 때까지를 다룰 생각이다. 《고종실록》, 《순종실록》이 일제의 감독 아래 이루어진 것이긴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인 만큼 조선왕조가 망하는 날까지 다루는 게 옳다는 생각에서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7

브레이크가 파열된 채 내리막길을 달리는 자동차처럼 자기 세력도 없이 오직 피바람만으로 절대권력을 향해 질주했던 연산, 그렇게 세운 권력을 자기 향락에만 사용했기에 사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평가조차 받지 못하는 연산. 무덤도 여느 오아릉과는 달리 초라한 왕자의 무덤이다. 이후론 연산 같은 왕이 나오지 않았다.

사노라면

이 책에 모아 놓은 만화들은 거의가 1998년에서 2003년 사이에 그린 것으로, 말하자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이전 작품들이다. 이 기간은 대략 김대중 정부 시절과 겹친다. 정권 교체로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드높았고, 남북 간에도 평화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역사적인 남북 정상 회담이 열리면서 여러 합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때 생각으론, 지금쯤이면 통일은 안 되더라도 기차를 타고 평양도 가고, 만주와 시베리아 벌판을 지나 유럽도 갈 수 있으려니 했다. 일장춘몽이 되고 말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시기는 외환 위기로 인해 IMF(국제 통화 기금)로부터 금융 지원을 받게 되면서 내정 간섭까지 받아야 했던 속칭 ‘IMF 시대’다. 기업들이 줄도산하고 해고가 넘쳐 났다. 명예퇴직ㆍ정리 해고ㆍ파산ㆍ노숙자 같은 말들이 내일이면 자신의 현실이 될 수도 있었던 시대! 고도성장이란 기치 아래 앞만 보며 달려온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맞닥뜨린 낯선 환경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런 일들은 어느 때고 있었다. 아무리 호황기였다 해도 해고와 파산, 그에 따른 절망과 좌절 같은 일들은 누군가에게는 일어나는 일이었고 오늘날 또한 그렇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우리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 시절은 조금 달랐다. 다수의 우리가 그러한 위험에 직면했고 먼저 그런 일을 당한 이웃들에게 애틋한 동질감을 가졌더랬다. 모두가 주위의 아픔을 제 일처럼 여기고 주변의 약자나 실패한 사람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냈던 때였다. 참으로 일찍이 없던 시대였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들과 함께 그런 정서를 담아 그렸던 만화들에 대해 말했더니 출판사에서 이내 모음집을 내자고 했다. 주섬주섬 챙겨 보니 여기저기에 그린 만화의 양이 제법 많아서 두 권으로 엮게 되었다. 첫 번째 책 《사노라면-그 시절, IMF의 추억》은 ‘한겨레 신문’에 ‘박시백의 그림세상’이라는 이름으로 실렸던 작품들을 담았다. 시사적인 내용과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위주다. 두 번째 책 《둥지 안의 작은 행복-삶을 이끄는 누군가 있다는 것》은 <출판 저널>ㆍ<주간 경기>ㆍ<홀트>ㆍ<우리 교육> 등 여러 곳에 연재했던 작품들인데, 실렸던 매체들의 성격상 시사보다는 사람사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두 가족을 중심으로 학교 이야기, 10대들 이야기 등 우리네 사는 모습을 담았다. 훑어보니 당시 사람들처럼 나 역시도 그 시절엔 지금보다 세상과 사람들에게 좀 더 따스했던 모양이다. 울분과 안타까움, 불안과 작은 희망 그리고 젊음이 느껴지면서 30대의 한복판을 추억하게 한다. IMF 시대를 살아 낸 독자들에게 추억의 한 페이지를 여는 매개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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