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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경주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76년, 대한민국 전라남도 광주 (게자리)

직업:시인 극작가

기타: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데뷔작
2003년 꽃 피는 공중전화

최근작
2020년 12월 <나는 광주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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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와 수증기

5년 만의 시집이다. 시를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에게 감사드린다.

기담

내게 시를 쓰는 일은 피부에 살았던 기억이 전혀 없는 설계도를 새겨 넣고, 그 설계 안으로 들어가보는 일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가난한 파충류는 곧 몸에서 열을 뱉어내고 그것을 먹기 시작한다) 그러나 시를 쓰건 쓰지 않건 시를 생각하는 행위에는, 언어를 열고 보면 그 속에 존재하는 멀미와 미로 때문에라도 언어 속의 가로등과 진피가 재구성되어야 한다. 그것은 실험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원초적인 주저함에 가까워서 우리는 조금씩 열렬한 불순물에 가까워질 뿐이다. 너무 선명한 고해가 피로해서 나는 도처에 어지럽혀져 있다. 여기선 그 혈액을 흔들어보기로 한다. 바람은 한 번도 목장을 갖지 못했고, 목장은 한 번도 바람을 가두지 못했다. 이 시집은 세계를 활공하는 두두에게 바친다. ('시인의 말'에서)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헌책방에서 우연히 첫 시집을 발견한 적이 있다. 가격표 아래 2천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누가 볼까 봐 가방에 넣었다. 그날 나는 자신의 시집을 훔친 시인이 되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시집을 훔쳐본 경험은 시를 쓰는 동안 머쓱한 궁리를 물리치는 힘이 되고 있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사이 첫 시집은 절판되었고 더 이상 어디에서도 첫 시집을 구할 수 없었다. 내가 몰래 훔쳐온 그 시집 한 권만이 남아 있었다. 복간이 된 첫 시집을 받아보며 나는 이 시집을 또 어디선가 훔칠 것인가 상상해본다. 그대가 제때 버려주었으니 내가 지금껏 구석을 모른다고는 할 수 없으나 슬하에 구석이 이만큼 다정도 하다 데리러 갈게……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2012년 가을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고백하건대 시는 내게 현기증 같은 것이었다. 현기증은 내 몸으로 찾아온 낯선 몸의 시간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 사이를 오가며 서러워서 길바닥에 자주 넘어졌다. 그사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무수한 책들은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았고 나는 여러 번 아버지가 되지 못했으며 눈이 외롭던, 기르던 강아지는 병으로 두 눈을 잃었다. 한 놈은 직접 내 손으로 버리기도 했다. 아들이 시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수술 전 자궁의 3분의 1만이라도 남겨달라며 의사를 붙잡고 울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비근한 삶에 그래도 무겁다고 해야 할, 첫 시집을 이제 잠든 당신의 머리맡에 조용히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초대받은 적도 없고 초대할 생각도 없는 나의 창(窓). 사람들아 이것은 기형(奇形)에 관한 얘기다.

나무 위의 고래

<모노동화>는 우리 내부에서 사라진 동화를 찾아가는 작가들의 개성이 담긴 모노드라마다. 인간의 내면에서 발굴해 나가는 섬세하고 매혹적인 이 이야기들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이야기의 비밀을 찾아가는 항해가 되리라 믿는다. 여기에 <모노동화>의 책임 디자이너 유지원은 우리의 항해를 돕는 특별한 별자리를 곳곳에 띄워 줄 것이다.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

“네가 그렇게 구체적으로 아픈데 어떻게 시를 쓸 수 있겠니?” 누가 내게 그 말을 해주었던가? 그에게 내가 한 말이던가? 이야기와 행간 사이에 눈을 담아보고 싶었으나 당신에게 가서 모호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다면 다행이다. 무대에 올려본 적이 없는 텍스트다. 공연을 염두에 두고 작업할 때 ‘그런 말 말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고 이후 다듬어지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이 이야기의 시작에 관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그는 사람들 틈에 끼어 건널목을 기어가다가 신호등이 바뀌는 바람에 미처 길을 다 건너지 못했다. 겁을 먹은 채 중앙선 위에 배를 깔고 있던 그의 검은 지느러미는 위태로워 보였다. 다음 신호등이 바뀔 때까지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목격한 조수 간만의 차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대학 시절, 신촌의 홍익문고 앞에서 자주 마주치던 그분께 이 책을 바친다.

내가 너의 시를 노래할게

이 소설에는 성장통이라는 서사 안에 아홉 편의 매력적인 슬램이 실려 있고, 각 이야기의 속살엔 스무 살 전후의 로맨스와 꿈과 상실이 자리한다. 저마다의 이야기는 모닥불이나 장작불처럼 타올랐다가 애드벌룬처럼 아주 먼 곳까지 날아가기도 한다. 잘 구성된 성장통의 이야기엔 널빤지 세 개로 만든 배를 타고 바다까지 가 보는 무모한 열정이 보이고, 책상 위에 모닥불 하나를 피워 놓고 긴 편지를 쓰고 있는 작고 여린 마음의 결들이 용기를 내고 있다. 이 슬램 소설은 당신이 건너 온 제국과, 당신이 간신히 견디고 있는 근황에 안부를 묻고 있다. 슬램은 이 소설의 비행 동력이다!

노빈손의 판타스틱 우주원정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달의 뒷면과 수많은 가설, 그리고 점점 더 깊어지는 과학적 상상력과 미스터리한 이야기들은 우리의 호기심을 무한하게 증폭시킨다.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이 텍스트는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와 『기담』에 실린 몇 편의 시에서 이야기의 가능성을 토대로 출발한 희곡이다. 그 안에는 우리의 세계(언어)가 여전히 기형과 불구의 세계를 담고 있고 그것에 우리 삶의 구체성이 관계하고 있다는 작가의 세계관이 담겨 있다. 우리 모두는 원형(모체)으로부터 분리된 후 하나의 기형을 앓고 있다는 연속성에서 이 이야기는 가능성을 가지고 움직인다. 첫 시집과 두번째 시집에서 주목했던 ‘세계의 불구성’이란 관점은 그런 점에서 이생이 불구의 연속임을 인식하고 거기서 발견되는 인간의 삶에 대한 연민과 비애를 ‘늑대의 울음소리와 야성’을 통해 극적 형상화를 시도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한 작품이 갖는 온도를 따라가면 작품에 등장하는 ‘유괴’ ‘불구의 다양한 이미지들-기억, 언어’의 양상들은 시극의 형식을 가지고 움직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극은 문학의 장르 안에서 레제드라마로서 여전히 유효하다. 공연을 전제로 하는 대본으로서의 기능성뿐만 아니라 희곡으로서의 중요성 또한 크다. 엘리엇의 『캣츠』 『대성당의 살인』, 로르카의 『피의 결혼식』 외 고대 비극의 여러 작품은 여전히 중요한 시극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시극은 시어가 가지는 함축성이나 리듬 못지않게 서사 속에서 침묵의 질을 주요하게 다룬다. 즉 말해지는 것보다 말하여지지 못하는 것에 주목한다. 시는 언어보다 언어 너머의 세계에서 그 본래성을 찾아왔으며 시극은 언어로 공간을 만들지만 그 공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시적 언어로 공간을 비우는 작업에 그 고유성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극의 장소는 언제나 세계가 아직 만나지 못한 새로운 공간이 태어나는 곳이다. 수많은 극시인들은 새로운 공화국에 자신의 시를 산란해왔다. 유럽이나 일본의 경우 문학 교육에 있어 희곡의 중요성은 그 뿌리가 깊다. 문학의 자장 안에서 인간을 성찰하고 인간의 표현을 이해하는 데 희곡이라는 장르는 대중과 함께 존재감을 깊게 잉태해온 것이다. 그런 연유로 우리 문학 교육에서 희곡이나 시극에 대한 이해와 감상의 부재, 공연 정보의 분말로만 이루어진 연극 잡지의 획일화는 시극이 대중으로부터 멀어진 결과를 초래해온 것도 사실이다. 희곡(시극)을 가까이 경험할 수 있는 지면의 부족이 아쉽다. 연극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는 2006년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서 초연 이후 다섯 차례 이상 공연된 레퍼토리로서 꾸준히 관객을 만나왔다. 2008년에는 시인이자 일본문학 번역가 한성례 선생님의 도움으로 일본 잡지 『공작예술』에 특집으로 소개되었으며 현재 일본에서의 공연을 계획중이다. 여기 실린 일본어 번역본은 그러한 연계성을 염두에 두고 특별히 작업한 결과이다. 독자가 이 텍스트를 통해 시와 극의 멀어진 거리를 회복하고 희곡에 대한 애정을 가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작가로선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일 것이다.

밀어

오래전 ‘우울증은 비밀에 대한 고통이다’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우울증은 몸이 의도하는 것과 저항하는 것과의 관계라는 사실을. 그럴 경우 몸은 뭉클하다. 대개의 경우 환자가 지적하는 통증의 부위는 은유의 화려함에 결정된다는 디알로그는 심층적이다. 몸에 관한 글을 써내려가면서, 몸을 관통하지 못하는 언어는 어디로든 데려갈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낀다. 몸에게 닿으려는 언어는 비밀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시가 단어 하나 속에서 숨이 차오르는 숨 쉬기이듯이, 시는 육체를 밀월하는 어떤 부위를 나 아닌 누군가의 몽정이라고 부르려는 호명에 가까운 것이다. 밀어密語란 보이지 않는 언어로 떠나보는 여행이다. 네 몸의 어떤 부분으로 떠나는 밀월이다. 시인은 몽롱한 번개 같은 언어를 데리고 ‘살 속의 연’처럼 흘러가보고 싶다. 혹은 속삭이는 번개처럼, 내 몸속으로 들어가 네 몸을 잊어보고 싶었다. 이 책은 어떤 이에게는 불필요해 보이는 느낌이 될 수도 있겠으나 어떤 이에게는 뭉클한 몸처럼 그리운 허구 같은 것이 되었으면 한다. 그건 우리들의 언어에 또 다른 생채기를 남길 것이다. 찰과상처럼.

분홍주의보

사랑이 스며오는 무렵…… 몸의 기상예보 『분홍주의보』는 사랑을 시작하면서 몸에 생기는 변화들을 말한다. 물론 그건 이 세상에는 없는 기상예보다. 폭설주의보, 파랑주의보, 대설주의보, 호우주의보, 황사주의보처럼 세상이 알려주는 기상예보가 아니라 자신의 몸에서 천천히 발견되어지는 사랑의 징후다. 달리 말하면 그건 ‘천천히 사랑이 밀려오는 어떤 무렵……’에 해당하는 감정이다. 독자들은 이『분홍주의보』를 펼쳐보면서 이 세상에는 없는 몸의 기상예보를 만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엠마 마젠타의 책 『분홍주의보』A gorgeous sense of hope는 짧지만 시적인 서늘함이 가득 스며있는 고백에 관한 이야기다. 태어나서 한번도 말을 해보지 못한 한 벙어리 소녀가 사랑을 처음 느끼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성장통을 겪어가며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이 독특한 이야기는 한 편의 긴 서사시같기도 하고 조금은 농밀하고 특별한 동화 같기도 하다. 저자 역시 이 책의 장르를 따로 구별하지 않았던 탓도 장르보다는 책의 시적 정서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이 이야기만의 독특한 질감을 신뢰한 것 같다. 때문에 그 질감을 최대한 살리고자 노력했으나 지금에 와서는 능력의 부족이라고만 생각한다. 원작의 내용과 이미지를 가능한 충실하게 반영하고자 했으나 독자와의 질감을 살리는 쪽에서 과감한 각색도 이루어졌음을 밝혀둔다. 원작과 달라진 부분은 첫째로 시적인 문장을 옮기는 과정 중에 발현된 순전히 시인인 나의 불온한 기질 탓이고, 둘째는 이 책을 원문의 질감을 살리되 우리의 현실에 맞게 각색으로 가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처음의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주신 대표님의 배려도 한몫 했다. 이러한 덧붙임을 굳이 이 책의 말미에 밝혀두는 이유는 이 책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스미는 고백’이 내게는 더없이 매혹으로 다가왔다고 밝혀두고 싶다. 이 세상에 말로 설명하기 곤란한 것들은 여전히 고백의 형태로 떠돈다는……. 책을 옮기면서 성장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 보았다. 우리에게 성장이란 어쩌면 고백에 관한 자신의 다양한 물음들이 아닐까 한다. 직접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엠마 마젠타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앞으로 그의 시와 글과 그림이 세상에 많이 알려지기를 바란다. 몹시도 자신에게만 들려주고 싶은 고백이 밀려오는 어떤 시기가 있었다. 그 무렵나는 분홍의 고백이 밀려오는 나의 감정에게 ‘분홍주의보’라는 제목의 시를 한 편 쓴 적이 있다. 분홍주의보라는 제목을 이 책에게 바친 것은 그러한 나의 오마주가 한몫 했다. ‘애야 사람에게 꿈이 필요한 건 이 세상의 말보다 더 중요한 말들을 그 곳에서 하기 위해서란다’

블랙박스

서로의 이야기 속으로 사라지는 사람들 『블랙박스』는 기내(機內劇)으로 계획된 첫 번째 작업이다. 이 이야기는 시시껄렁한 인간들의 이야기다. 가령 알고 보니 누가 가발을 쓴다거나, 누가 안 본 사이에 성형수술을 했다거나, 빨대는 씹어서는 안 된다거나, 고속도로 휴게소 대경산업의 애플 손지압 마사지기는 훌륭하다는 일상의 지혜 같은. 루머 속에서 우리는 참 잘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사라져가도록 미하일과 카파는 지상에서는 알아볼 수 없는 구름 속을 헤맨다. 당신이 이 이야기를 해독하는 동안 카파와 미하일을 한참 동안, 멍하니, 자주 서로를 응시할 것이다. 서로의 죽음에서 훔쳐온 시간을 바라보듯, 서로의 말 속에 피어 있는 곰팡이와 창문을 닦아내듯, 평생 자신의 얼굴을 찾아다닌 사람들이 죽는 순간에야 그 얼굴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감동적이고 좀 어이없는 일이기도 하다는 듯이, 그것이 마치 지금 우리가 나누는 우정의 본질인 양, 카파는 전 생에 걸쳐 자신의 일이 경이와 평정의 균형을 구축하는 것처럼 보이길 원하는 눈으로, 미하일은 자신의 눈을 어떤 특정한 음악을 듣는 상태에 두겠다는 것처럼, 다른 시간에서 건너오는 공간의 생리를 맞이하듯, 지금 자신들의 주관성을 절대적으로 존중하겠다는 듯이. 이야기를 품은 기내로 미하일과 카파와 손목에 있는 시계의 동그란 선실 창에 천천히 금이 가는 동안, 당신의 몸 안으로 구름이 다 들어가길 바란다. 비행기가 곧 떨어질 거라는 기내 방송을 들으면, 당신도 벗었던 신발부터 제일 먼저 신게 되는 존재다. 우습지만 그게 무슨 쓸모가 있다고 믿고 싶은 게 삶일지 모른다. 마치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을 감아보는 사람처럼 당신이 조금은 미소 지었으면 한다.

시차의 눈을 달랜다

너의 수증기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내가 모르는 마을 속에서 언제나 네가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일 거야 미안, 여기서 '시차(時差)의 사회'라고만 부를게 2009년 겨울, 나는 공항

아마도 그건 아물거야

이 책은 셰인 코이잔이 어린 시절 학원폭력으로 입은 상처를 시를 쓰며 달랬던 흔적이다. 또한 포에트리 슬램, 즉 입체 시 낭독을 통해 세상을 흔든 목소리이다. 매력적인 ‘랩북’이라 불러도 좋고 ‘업타운 시집(uptown poem)’이라고 불러도 좋은 이 작은 책이 폭력과 상실로 가득한 우리 사회에 뜨거운 진실과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자고 있어, 곁이니까

아버지는 수사관이었다. 평생 강력계 형사계 정보과를 오가며 형사생활을 마감하셨다. 아버지는 의심이 특기인 사람이었다. 물론 가족이 의심의 대상이 되면 조금 곤란한 일이 생기기도 했다. 십대엔 아버지를 피해 열심히 숨어 지냈고, 이십대엔 아버지를 내 안에서 숨기느라 바빴다. 서른 중반을 훌쩍 넘어서니 어느덧 아버지는 병으로 세상의 언어를 모두 잃어버린 채 누워 지내신다. 아버지는 이제 끔벅거리기나 중얼거리는 게 일이다. 우리 가족은 그 중얼거림을 알아듣기 위해 아버지의 입술에 귀를 가까이 대어보는 일로 하루를 보낸 지 꽤 되었다. 모두들 번번이 피로할 테지만 게을리하지 않는다. 나 역시 가끔 아버지의 중얼거림을 알아들으려 노력하는 사내가 되어가고 있다. 고백하자면 가끔 내 가계에서 웃자란 뜻 모를 중얼거림들이 시가 되었다고 믿을 때도 있다. 그래도 어린 시절 아버지가 처음으로 대중목욕탕에서 가르쳐주었던 휘파람이나 처음으로 사주었던 야끼만두 맛 같은 것이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다가 어린 나를 혼자 두고 갑자기 범인을 잡으러 가신 ‘우두커니’같은 경험은 측은해서 기억해둘 만하다고 믿고 산다. 얼마 전 나도 아비가 되었다. 아버지란 말은 좀 벅차니 피하고 싶다. 나는 아들에게 이제 겨우 아빠빠, 같은 발음들을 듣고 산다. 요즘은 일이 별로 없어 집에서 노는 일이 많은데 운이 좋으면 하루에 열 번도 듣는다. 아들을 볼 때 가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옆모습에도 아버지의 모습이 담겨 있고, 앞모습에도 담겨 있고, 자고 있는 뒤통수에도 가끔 묻어 있다. 문득 그건 어떤 우두커니가 된다. 그런 우두커니가 내 작은 세간이 되어 몇 날 쓸쓸하기도 했으나 아버지가 되어가는 일에 맥없이‘ 얼’이 빠질 순 없을 것 같아 배 속에 담긴 아이를 상상하며 지난여름 해인사 암자로 들어가 몇 자 적어본다는 것이 그만 이 책의 저자가 되어버렸다. 아직 나는 혼자 외롭게 걸어가고 있을 때에도 주변의 인기척을 믿는 편이다. 글쟁이로서“ 당신의 책을 읽고 있으면 당신이 근처에 있는 듯한 인기척이 느껴져요”라는 고백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그럼 여기 내려놓는 내 농밀한 고백도 꽃무릇처럼 쑥스러워지고 그리하여 조금 더 요염해져도 좋으련만.

패스포트

배낭여행자라는 말이 좋아서 무작정 길을 떠돌곤 하던 시절이 있었다. 흰 운동화와 기타 한 대만 있으면 세상 어느 곳에서도 기꺼이 겁먹은 이방인이 되어줄 수 있는 자세가 유일하게 인생에서 배우고 싶은 품세였다. 어쩐지 나는 이번 생과 제대로 된 외교를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그게 여행이었는지 시였는지 사랑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시는 불륜과도 같이 삶에 불쑥 침입했고 나는 아직까지 그 질서에 처벌당하지 않은 채 복된 가혹으로 장수할 모양이다. 유목의 땅인 고비에선 걷거나 지프를 탔고 유형의 땅인 시베리아에선 기차를 타거나 걸었다. 목이 마르면 고비에선 더 걸어야 했고 시베리아에선 추워서 길을 잃기도 했다. 내게 유목은 인간이 지상을 떠돌고 있는 방식이 아니라, 바람을 떠다니는 삶의 방식들이었고 유형은 인간의 시간으로 견디고 있는 빛의 태내처럼 아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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