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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에세이
국내저자 >

이름:박후기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최근작
2023년 2월 <[큰글자책] 그림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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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씨책] 엄마라는 공장 여자라는 감옥

엄마와 여자에 관해서 아는 게 없지만, 쓴다. 엄마인 여자, 여자인 엄마에 대해서. 어쩌랴. 내 생명이 비롯된 곳이기도 하고 내가 생명을 얻은 곳이기도 한 것을.

[큰글씨책] 옆집에 사는 앨리스

<옆집에 사는 앨리스>의 주인공들은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열아홉 살 청춘들이다. 70년대와 크게 다를 바 없던 80년대 초, 미군기지 훈련장이 있는 숲속의 집을 배경으로 십 대들의 사랑과 절망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고도 가슴 저리게 펼쳐진다. 알게 모르게 기지촌에 운명의 끈이 연결돼 있는 부모들. 부모로부터 가난과 함께 비극적 현실을 물려받았지만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애쓰는 성장기 주인공들의 안간힘이 귀에 익은 음악을 배경으로 ‘시처럼 음악처럼’ 소설을 이끌고 간다. - 소설 곳곳에 배경으로 삽입된 노래들 소설 <옆집에 사는 앨리스>는 70~80년대 국내에 널리 알려진 영국 록그룹 스모키(Smokie)의 노래 ‘Living Next Door to Alice’에서 제목을 빌려 왔다. 역시 기지촌 이야기가 주된 소재로 쓰인, 2006년 출간된 박후기 시집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에 같은 제목의 시가 실려 있기도 하다. 지금 40-50대의 청춘을 함께 지나온 노래들이다. 작가는 기지촌 밖에서 들여다보는 게 아닌, 기지촌 안에서 살아가는 성장기 아이들의 정서를 음악을 통해 대변하고 있다. 작품을 읽다 보면 라디오나 오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팝송을 들으며 메마른 감성의 목을 축이던 80년대 청소년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주로 70~80년대에 유행했던 팝송과 가요를 작품에 활용하며 소설의 배경이 되는 80년대 초의 정서를 환기시키고 있다. 소설 삽입곡 ·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 - Since The Last Goodbye · 스모키 - Living Next Door to Alice · 비틀스 - Because · 딥 퍼플 - Highway Star · 이글스 - Desparado · 이엘오 - Midnight Blue · 로이 부캐넌 The Messiah Will Come Again · 이글스 Lyin' Eyes · 게리 무어 - Parisienne Walkways · 블루 드래곤 - 내 단 하나의 소원

[큰글씨책] 토끼가 죽던 날

토끼는 죽거나 사라진다. 인간은 죽거나 살아진다. 기억 속의 토끼들을 위하여. 빨간 눈의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형들과 누나, 한때 사람이었던 불쌍한 토끼들을 위하여. 여백을 갖고 싶었습니다. 빡빡한 글과 팍팍한 생의 틈바구니에서 단지 분량과 물량을 채우는 일에 생을 소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지난여름 나는 내 삶의 가장 큰 여백으로 남아 있는 유년기의 기억을 소설로 옮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한 결심은 아마도 북극의 그린란드를 떠올리는 것과도 같아서 쓸모없어 보이지만 언젠가는 꼭 한번 마주하고 싶다는 충동을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나는 안개처럼 흐릿한 기억 속에 여백으로 남아 있는 일곱 살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유년기의 엄마와 아버지는 언제나 내게 여백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여백이 있다면, 그것은 엄마와 아버지가 만들어준 여백일 것입니다. 유년기의 토끼와 아버지가 현실에서 지워진 이후, 나는 여백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되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언제나 너무 멀리 떠나왔다는 사실만 깨달을 뿐이었습니다. 그물도 여백이 있어야 합니다. 물의 흐름을 막을 정도로 촘촘한 그물은 부유물 외에 아무것도 건질 수가 없습니다. 독자의 상상을 방해하고 여백을 허용하지 않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토끼가 죽던 날」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을 작정하고 건져 올린, 성긴 그물에 묻은 물고기 비늘 같은 소설입니다. 커다란 물고기처럼 요란하게 퍼덕이진 않지만 어느 한순간 비늘처럼 반짝이며 눈과 가슴에 울림을 주는, 그런 소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백뿐인 소설을 출간해주신 가쎄출판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큰글자책] 그림약국

그림의 어원은 그리움이라고 한다. 그리운 마음을 그려서 드러내 보이는 것이 그림이라고 한다면, 그림의 질료는 단연코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병이 찾아오듯, 영원히 기쁨으로 충만할 것만 같았던 사랑도 어느 순간 아픔으로 변할 때가 있다. 누군가를 생각할 때 기쁨보다 슬픔이 먼저 찾아온다면, 당신의 사랑은 어딘가 아픈 것이 분명하다. 언어가 달라질 때, 사랑은 어긋나기 시작한다. 서로 눈빛만 쳐다봐도 알 수 있었던 마음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변명과 설명이 늘어간다. 언어만 난무하는 고통과 상실의 시대, 아픈 사랑의 치유를 위한 처방전을 쓰고 그린다. 백 마디 말과 백 줄의 문장보다 한 장의 그림이 더 가슴에 와 닿을 때가 있다. 사랑은 언어와 문자 이전에 오는 것, 문자 이전에 인간은 어떻게 소통했는가를 생각한다. 말이 없다고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며, 보고 듣지 못한다고 해서 마음속 사랑의 느낌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 귀는 이 우주가 내는 소리의 극히 일부분만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듣기 쉽지 않은 작은 몸짓의 속삭임, 그것은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사랑의 결핍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랑의 결핍을 보충해 주는 방법은 사랑밖에 없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겠는가. 사랑하고 싶다면, 먼저 귀를 기울이자. 사랑하고 있다면, 사랑하는 이가 말하는 마음의 언어를 듣고 또 배우자.

[큰글자책]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 너라는 그리움을 찾아서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현실을 찾아 나서는 것, 나는 그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돌아와야 하겠지만 언제나 떠난다는 설렘만이 전부인 양, 나는 떠났다. 떠나는 순간부터 현실과 멀어진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으나 나는 바로잡지 않기로 한다. 잘못 든 길이 현실이 되어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떠난다는 설렘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것과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서로 다르듯, 내가 머무는 곳과 내가 머물고 싶은 곳은 달랐다. 이탈리아 어디에나 사람은 살았지만, 어디에도 당신은 없었다. 그러므로 어딜 가더라도 짧은 인사만 했을 뿐, 어느 누구에게도 그립다는 고백은 할 수가 없었다. 그리움은 내가 어딘가에 남겨 두고 온 감정이기에, 텅 빈 공항이나 깊고 어두운 골목 안 혼자 남겨진 시간 속에서도 차마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마다 잠시 당신이 찰칵, 하며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누군가 그리워질 때, 이제 그만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나에게 타일렀다. 그것은 시간과 돈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나의 바람대로 정말 떠나는 삶을 유지하고 싶다면 다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정든 집이든 그리운 당신이든 간에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그리움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별의 지옥이 지구라고 누군가 말했다지만, 다시 그리움의 시절로 복귀하라고 한다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탈리아를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다시 당신의 이름을 호명하며 그리움을 불러낼 것이다. 내 귀는 아마도, 날 사랑한다는 당신의 거짓말조차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2014년, 봄의 지옥에서 박후기 쓰다.

격렬비열도

날은 저물어가고, 시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어요. 시는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나는 언제나 밤새도록 시를 기다리지요. 이울어가는 달이 나를 가만두지 않네요. 시여, 조금만 서둘러주세요. 새벽이 오면 달도 나도 사라지고 없을 테니까. 마음이 열리면 그 어떤 밀봉도 소용없다는 걸 아실 거예요. 나는 수줍게, 당신 앞에서 열리기 위해 또 한 권의 시집을 엮는답니다. 마음 놓고 잠든 적 없는, 나의 그 모든 절망들이여, 이젠 안녕히.

그림약국

그림의 어원은 그리움이라고 한다. 그리운 마음을 그려서 드러내 보이는 것이 그림이라고 한다면, 그림의 질료는 단연코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병이 찾아오듯, 영원히 기쁨으로 충만할 것만 같았던 사랑도 어느 순간 아픔으로 변할 때가 있다. 누군가를 생각할 때 기쁨보다 슬픔이 먼저 찾아온다면, 당신의 사랑은 어딘가 아픈 것이 분명하다. 언어가 달라질 때, 사랑은 어긋나기 시작한다. 서로 눈빛만 쳐다봐도 알 수 있었던 마음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변명과 설명이 늘어간다. 언어만 난무하는 고통과 상실의 시대, 아픈 사랑의 치유를 위한 처방전을 쓰고 그린다. 백 마디 말과 백 줄의 문장보다 한 장의 그림이 더 가슴에 와 닿을 때가 있다. 사랑은 언어와 문자 이전에 오는 것, 문자 이전에 인간은 어떻게 소통했는가를 생각한다. 말이 없다고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며, 보고 듣지 못한다고 해서 마음속 사랑의 느낌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 귀는 이 우주가 내는 소리의 극히 일부분만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듣기 쉽지 않은 작은 몸짓의 속삭임, 그것은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사랑의 결핍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랑의 결핍을 보충해 주는 방법은 사랑밖에 없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겠는가. 사랑하고 싶다면, 먼저 귀를 기울이자. 사랑하고 있다면, 사랑하는 이가 말하는 마음의 언어를 듣고 또 배우자.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너라는 그리움을 찾아서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현실을 찾아 나서는 것, 나는 그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돌아와야 하겠지만 언제나 떠난다는 설렘만이 전부인 양, 나는 떠났다. 떠나는 순간부터 현실과 멀어진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으나 나는 바로잡지 않기로 한다. 잘못 든 길이 현실이 되어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떠난다는 설렘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것과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서로 다르듯, 내가 머무는 곳과 내가 머물고 싶은 곳은 달랐다. 이탈리아 어디에나 사람은 살았지만, 어디에도 당신은 없었다. 그러므로 어딜 가더라도 짧은 인사만 했을 뿐, 어느 누구에게도 그립다는 고백은 할 수가 없었다. 그리움은 내가 어딘가에 남겨 두고 온 감정이기에, 텅 빈 공항이나 깊고 어두운 골목 안 혼자 남겨진 시간 속에서도 차마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마다 잠시 당신이 찰칵, 하며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누군가 그리워질 때, 이제 그만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나에게 타일렀다. 그것은 시간과 돈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나의 바람대로 정말 떠나는 삶을 유지하고 싶다면 다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정든 집이든 그리운 당신이든 간에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그리움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별의 지옥이 지구라고 누군가 말했다지만, 다시 그리움의 시절로 복귀하라고 한다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탈리아를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다시 당신의 이름을 호명하며 그리움을 불러낼 것이다. 내 귀는 아마도, 날 사랑한다는 당신의 거짓말조차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2014년, 봄의 지옥에서 박후기 쓰다.

엄마라는 공장 여자라는 감옥

엄마와 여자에 관해서 아는 게 없지만, 쓴다. 엄마인 여자, 여자인 엄마에 대해서. 어쩌랴. 내 생명이 비롯된 곳이기도 하고 내가 생명을 얻은 곳이기도 한 것을.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조각칼을 좋아했다. 서랍 속에 누워 잠자는 다섯 개의 손가락, 을 하나씩 꺼내 얼룩진 책상의 낯이며 밥그릇을 머리에 이고 절룩거리던 상다리, 서걱거리는 나무의 이마에 시를 새겨넣엇다. 흉터가 남았다. 얼굴에 난 흉터는 잘 지워지지 않는다. 첫 시집을 엮는다.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흉터를 왜 그토록 갖고 싶었던 것일까. 종이 위에 나를 새겨넣는다. 흉터로 남겠지만, 부끄러워하진 않겠다. 그런데, 겨우 이응 하나 새긴 기분이라니...

토끼가 죽던 날

토끼는 죽거나 사라진다. 인간은 죽거나 살아진다. 기억 속의 토끼들을 위하여. 빨간 눈의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형들과 누나, 한때 사람이었던 불쌍한 토끼들을 위하여. 여백을 갖고 싶었습니다. 빡빡한 글과 팍팍한 생의 틈바구니에서 단지 분량과 물량을 채우는 일에 생을 소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지난여름 나는 내 삶의 가장 큰 여백으로 남아 있는 유년기의 기억을 소설로 옮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한 결심은 아마도 북극의 그린란드를 떠올리는 것과도 같아서 쓸모없어 보이지만 언젠가는 꼭 한번 마주하고 싶다는 충동을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나는 안개처럼 흐릿한 기억 속에 여백으로 남아 있는 일곱 살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유년기의 엄마와 아버지는 언제나 내게 여백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여백이 있다면, 그것은 엄마와 아버지가 만들어준 여백일 것입니다. 유년기의 토끼와 아버지가 현실에서 지워진 이후, 나는 여백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되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언제나 너무 멀리 떠나왔다는 사실만 깨달을 뿐이었습니다. 그물도 여백이 있어야 합니다. 물의 흐름을 막을 정도로 촘촘한 그물은 부유물 외에 아무것도 건질 수가 없습니다. 독자의 상상을 방해하고 여백을 허용하지 않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토끼가 죽던 날」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을 작정하고 건져 올린, 성긴 그물에 묻은 물고기 비늘 같은 소설입니다. 커다란 물고기처럼 요란하게 퍼덕이진 않지만 어느 한순간 비늘처럼 반짝이며 눈과 가슴에 울림을 주는, 그런 소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백뿐인 소설을 출간해주신 가쎄출판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2015년 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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