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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한만수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 대한민국 충청북도 영동

직업:소설가

최근작
2023년 5월 <문예창작의 정석>

금강 1

12년의 여정을 끝내며…… 금강은 꼭 쓰고 싶은 소설이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했을 때 심중에는 현대사를 아우를 대하장편소설이 화석으로 간직되어 있었다. 기회라는 것은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고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상의 제목은 <백성>이었다. 나는 백성을 쓰고 싶었다. 쓰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대서사소설을 써야 한다는 사명감 이전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의무감은 의무감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전업 작가로 90년대 초부터 2000년까지 10년 동안 많은 원고를 썼다. 오로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손가락에 진물이 나도록 키보드를 두들겼다. 이 책에 나오는 면 소재지인 ‘학산’은 내 고향이다. 나는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당연히 집을 나오면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고, 술잔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지인들이다. 그런데도 한 달에 하루 이틀만 밖에 나올 뿐 집 안에 틀어 박혀서 무조건 글만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한다고 방송이며 신문에서 연일 떠들어대고 있었다. 문득 10년이라는 세월을 까먹어 버리고, 내 생애에서 뚝 떨어져 나가 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초심으로 돌아가서 가제 <백성>을 집필하기로 했다. 하지만 생계형 작가에서 하루 아침에 생업을 뒤로 하고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백성>의 집필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하여, 우선 아웃사이더로 지난 10년간의 글쓰기를 해 온 나로서는 중앙문단에서 인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천문학사에서 2002년 신인상을 받은 장편소설 <하루>는 <백성>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도 농촌이고, 주제도 농민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따라서 <하루>는 이 책 <금강>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장편소설 <하루>는 원고지 1천2백 매 분량으로 쓴 농촌의 하루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 책 <금강>의 배경이 될 <하루>는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은 누군가 나를 위해 그때까지 이 소설의 거리를 남겨 두었다는 점이다. 막상 <금강>을 집필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장애물은 너무나 많았다. 50년대의 생활상이나 물가 등을 고증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과연 어느 출판사가 15권 분량의 장대한 분량의 원고를 활자화하여 서점에 내놓겠느냐는 의구심이 들었다. 더불어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원고를 집필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원고가 있다 하더라도 출간이 되지 않으면 작가 혼자의 글밖에 되지 않는다. 곧 독자를 잃어버린 종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종자가 꽃을 피우게 하는 역할은 출판사의 몫이고, 그 꽃을 감상하는 것은 독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고를 써도 출간을 할 출판사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집필을 미룰 수가 없었다. 그만큼 앞에서 말한 가제 <백성>은 내가 소설가가 되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쓰고 싶은 현대사를 주제로 한 소설은 무슨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심오한 철학이 담길 작품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여, 1950년대 중반부터 밀레니엄 시대의 2000년까지 우리 민족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모산’ 마을은 실제로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은 아니지만 사실적인 지명이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얼굴에 검댕이 묻었는지, 커다란 점이 있는지 흉터가 있는지 거울을 볼 때에만 확인할 수 있다. 거울은 얼굴 표면만 보여주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보여주고 미래까지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5,000년 역사 중에 가장 격동적인 세월이라고 해도 될 만큼 숨 막히던 지난 반세기의 우리 민족은 거울을 볼 틈이 없었다. 거울을 볼 시간에 일을 해야 하고, 거울을 볼 시간에 정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민주화를 꽃피우기 위하여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렇게 반세기를 살아왔으니 이제 거울을 볼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꼭짓점은 선(善)에 있다고 본다. 예술가가 아름다운 까닭도 그들이 지향하는 세계가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착함’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도 그렇다. 무언중에 선을 지향하는 소설을 쓰게 마련이다. 고전소설 <춘항전>이며 <홍길동전>의 주제가 권선징악(勸善懲惡)인 까닭도 그러한 연유일 것이다. <금강>에 등장하는 모산 동네 사람들은 반세기를 살아온 우리의 거울이다. 이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제1권의 ‘모산 사람들의 귀에는’이라는 부분부터, 이 소설의 대단원 막을 내리는 제 15권의 ‘흐뭇하게 웃었다’라는 부분까지 작가의 개입은 철저히 차단하고 모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카메라로 추적만 했다. 이 소설 <금강>이 현대사의 거울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바로 그 점에 있다. 따라서 모산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상도에도 있고, 전라도, 경기도, 강원도 제주도 어느 곳을 가든 모산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 <금강>이 우리 민족의 자화상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 하나 이 소설이 특별한 점은 이 소설을 집필하는 데 있어서 전체적인 아웃라인은 있었지만 세부적인 구성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작가의 힘이 개입된 부분은 1권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정도이다. 그 캐릭터들도 <금강>에서만 볼 수 있는 별나거나 특수한 캐릭터가 아니고, 우리나라 산골의 어느 동네에 가거나 쉽게 볼 수 있는 지극히 전형적이고 평범한 캐릭터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엄격한 의미로 본다면 그 캐릭터마저 작가의 창조물이라고 볼 수 없다. 그저 현실에서 차용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책 1권에서 옥천댁과 박태수는 순간적인 이끌림에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 부분도 작가인 내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장치가 아니다. 더 나아가서 ‘승우’와 ‘인숙’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측도 하지 않았지만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철용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영등포 문래동에 있는 철공소에 취직을 해서 팔을 잃어버리게 되는 사연도, 흑산도로 끌려가는 들례가 민초예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여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는 역사도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지난 12년 동안 <금강>의 자료를 구하고, 현대사를 뒤적이고, 원고지 칸을 채워가면서 전혀 지루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은 나는 작가인 동시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해서 모니터 앞에서 혼자 웃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이를 갈며 분노했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논리적으로 반문할지 모른다. 원고지 100매도 안 되는 단편을 쓰는 데도 플롯이 없으면 불가능한데, 원고지 1만 8천 매가 넘는 분량을 쓰면서 어떻게 손이 가는 대로 쓸 수가 있느냐.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 그 증거로 상규가 월남에 가게 되고, 그 상규가 나중에 고엽제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나, 시훈이 독일에서 탄을 캤던 경험을 살려서 사북에 광부로 가게 된다는 스토리나, 이동하나 고현수가 강남에 땅을 사두어 졸부가 되는 것도 구성에 따른 포석이 아니냐고? 그분들을 위해서 의도하지 않은, 즉 구성하지 않은 스토리가 짜 맞춘 것처럼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답해 줄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집필하기 전에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그중 하나가 당연히 소설적 재미이다. 두 번째는 그 시대의 물가와 문화이다. 세 번째는 정치적 현실이다. 그 세 가지를 철저하게 지켜 나가면서 각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철저하게 몰두하게 되면 저절로 짜 맞춘 것처럼 구성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세세한 점에 대해서는 <금강>에 나오는 등장인물 누구든지 샘플로 찾아내서 생애를 추적해보면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로서 이 책 <금강>을 여타 소설과 소설작법적인 측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는 많다. 그 중에서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는 점을 특별히 앞세우고 싶다. 모산 마을 전체,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 그 자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인 까닭이다. 그리고 정치적이나, 사회사적으로 어느 한쪽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하게 제삼자 입장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 책의 원고는 지난 12년 동안 굴곡의 세월을 보냈다. 1권은 “놉”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의 빛을 보기도 했고, 출판사를 찾지 못해 몇 번이나 중도에 집필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금강>의 생명줄을 놓지 않은 것은 소설가라면 반드시 써야 할 주제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강>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낀 점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말이다. 그 길에서 내 손을 잡고 동행을 해 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더불어 <금강>의 결실을 맺게 해 주신 글누림출판사의 이태곤 편집장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또한 <금강>의 날개를 달아 주신 글누림출판사 최종숙 대표에게도 두 손을 꼭 잡고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금강 10

12년의 여정을 끝내며…… 금강은 꼭 쓰고 싶은 소설이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했을 때 심중에는 현대사를 아우를 대하장편소설이 화석으로 간직되어 있었다. 기회라는 것은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고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상의 제목은 <백성>이었다. 나는 백성을 쓰고 싶었다. 쓰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대서사소설을 써야 한다는 사명감 이전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의무감은 의무감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전업 작가로 90년대 초부터 2000년까지 10년 동안 많은 원고를 썼다. 오로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손가락에 진물이 나도록 키보드를 두들겼다. 이 책에 나오는 면 소재지인 ‘학산’은 내 고향이다. 나는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당연히 집을 나오면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고, 술잔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지인들이다. 그런데도 한 달에 하루 이틀만 밖에 나올 뿐 집 안에 틀어 박혀서 무조건 글만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한다고 방송이며 신문에서 연일 떠들어대고 있었다. 문득 10년이라는 세월을 까먹어 버리고, 내 생애에서 뚝 떨어져 나가 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초심으로 돌아가서 가제 <백성>을 집필하기로 했다. 하지만 생계형 작가에서 하루 아침에 생업을 뒤로 하고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백성>의 집필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하여, 우선 아웃사이더로 지난 10년간의 글쓰기를 해 온 나로서는 중앙문단에서 인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천문학사에서 2002년 신인상을 받은 장편소설 <하루>는 <백성>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도 농촌이고, 주제도 농민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따라서 <하루>는 이 책 <금강>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장편소설 <하루>는 원고지 1천2백 매 분량으로 쓴 농촌의 하루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 책 <금강>의 배경이 될 <하루>는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은 누군가 나를 위해 그때까지 이 소설의 거리를 남겨 두었다는 점이다. 막상 <금강>을 집필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장애물은 너무나 많았다. 50년대의 생활상이나 물가 등을 고증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과연 어느 출판사가 15권 분량의 장대한 분량의 원고를 활자화하여 서점에 내놓겠느냐는 의구심이 들었다. 더불어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원고를 집필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원고가 있다 하더라도 출간이 되지 않으면 작가 혼자의 글밖에 되지 않는다. 곧 독자를 잃어버린 종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종자가 꽃을 피우게 하는 역할은 출판사의 몫이고, 그 꽃을 감상하는 것은 독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고를 써도 출간을 할 출판사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집필을 미룰 수가 없었다. 그만큼 앞에서 말한 가제 <백성>은 내가 소설가가 되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쓰고 싶은 현대사를 주제로 한 소설은 무슨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심오한 철학이 담길 작품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여, 1950년대 중반부터 밀레니엄 시대의 2000년까지 우리 민족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모산’ 마을은 실제로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은 아니지만 사실적인 지명이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얼굴에 검댕이 묻었는지, 커다란 점이 있는지 흉터가 있는지 거울을 볼 때에만 확인할 수 있다. 거울은 얼굴 표면만 보여주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보여주고 미래까지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5,000년 역사 중에 가장 격동적인 세월이라고 해도 될 만큼 숨 막히던 지난 반세기의 우리 민족은 거울을 볼 틈이 없었다. 거울을 볼 시간에 일을 해야 하고, 거울을 볼 시간에 정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민주화를 꽃피우기 위하여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렇게 반세기를 살아왔으니 이제 거울을 볼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꼭짓점은 선(善)에 있다고 본다. 예술가가 아름다운 까닭도 그들이 지향하는 세계가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착함’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도 그렇다. 무언중에 선을 지향하는 소설을 쓰게 마련이다. 고전소설 <춘항전>이며 <홍길동전>의 주제가 권선징악(勸善懲惡)인 까닭도 그러한 연유일 것이다. <금강>에 등장하는 모산 동네 사람들은 반세기를 살아온 우리의 거울이다. 이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제1권의 ‘모산 사람들의 귀에는’이라는 부분부터, 이 소설의 대단원 막을 내리는 제 15권의 ‘흐뭇하게 웃었다’라는 부분까지 작가의 개입은 철저히 차단하고 모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카메라로 추적만 했다. 이 소설 <금강>이 현대사의 거울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바로 그 점에 있다. 따라서 모산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상도에도 있고, 전라도, 경기도, 강원도 제주도 어느 곳을 가든 모산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 <금강>이 우리 민족의 자화상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 하나 이 소설이 특별한 점은 이 소설을 집필하는 데 있어서 전체적인 아웃라인은 있었지만 세부적인 구성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작가의 힘이 개입된 부분은 1권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정도이다. 그 캐릭터들도 <금강>에서만 볼 수 있는 별나거나 특수한 캐릭터가 아니고, 우리나라 산골의 어느 동네에 가거나 쉽게 볼 수 있는 지극히 전형적이고 평범한 캐릭터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엄격한 의미로 본다면 그 캐릭터마저 작가의 창조물이라고 볼 수 없다. 그저 현실에서 차용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책 1권에서 옥천댁과 박태수는 순간적인 이끌림에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 부분도 작가인 내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장치가 아니다. 더 나아가서 ‘승우’와 ‘인숙’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측도 하지 않았지만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철용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영등포 문래동에 있는 철공소에 취직을 해서 팔을 잃어버리게 되는 사연도, 흑산도로 끌려가는 들례가 민초예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여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는 역사도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지난 12년 동안 <금강>의 자료를 구하고, 현대사를 뒤적이고, 원고지 칸을 채워가면서 전혀 지루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은 나는 작가인 동시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해서 모니터 앞에서 혼자 웃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이를 갈며 분노했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논리적으로 반문할지 모른다. 원고지 100매도 안 되는 단편을 쓰는 데도 플롯이 없으면 불가능한데, 원고지 1만 8천 매가 넘는 분량을 쓰면서 어떻게 손이 가는 대로 쓸 수가 있느냐.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 그 증거로 상규가 월남에 가게 되고, 그 상규가 나중에 고엽제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나, 시훈이 독일에서 탄을 캤던 경험을 살려서 사북에 광부로 가게 된다는 스토리나, 이동하나 고현수가 강남에 땅을 사두어 졸부가 되는 것도 구성에 따른 포석이 아니냐고? 그분들을 위해서 의도하지 않은, 즉 구성하지 않은 스토리가 짜 맞춘 것처럼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답해 줄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집필하기 전에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그중 하나가 당연히 소설적 재미이다. 두 번째는 그 시대의 물가와 문화이다. 세 번째는 정치적 현실이다. 그 세 가지를 철저하게 지켜 나가면서 각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철저하게 몰두하게 되면 저절로 짜 맞춘 것처럼 구성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세세한 점에 대해서는 <금강>에 나오는 등장인물 누구든지 샘플로 찾아내서 생애를 추적해보면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로서 이 책 <금강>을 여타 소설과 소설작법적인 측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는 많다. 그 중에서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는 점을 특별히 앞세우고 싶다. 모산 마을 전체,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 그 자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인 까닭이다. 그리고 정치적이나, 사회사적으로 어느 한쪽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하게 제삼자 입장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 책의 원고는 지난 12년 동안 굴곡의 세월을 보냈다. 1권은 “놉”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의 빛을 보기도 했고, 출판사를 찾지 못해 몇 번이나 중도에 집필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금강>의 생명줄을 놓지 않은 것은 소설가라면 반드시 써야 할 주제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강>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낀 점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말이다. 그 길에서 내 손을 잡고 동행을 해 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더불어 <금강>의 결실을 맺게 해 주신 글누림출판사의 이태곤 편집장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또한 <금강>의 날개를 달아 주신 글누림출판사 최종숙 대표에게도 두 손을 꼭 잡고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금강 11

12년의 여정을 끝내며…… 금강은 꼭 쓰고 싶은 소설이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했을 때 심중에는 현대사를 아우를 대하장편소설이 화석으로 간직되어 있었다. 기회라는 것은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고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상의 제목은 <백성>이었다. 나는 백성을 쓰고 싶었다. 쓰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대서사소설을 써야 한다는 사명감 이전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의무감은 의무감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전업 작가로 90년대 초부터 2000년까지 10년 동안 많은 원고를 썼다. 오로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손가락에 진물이 나도록 키보드를 두들겼다. 이 책에 나오는 면 소재지인 ‘학산’은 내 고향이다. 나는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당연히 집을 나오면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고, 술잔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지인들이다. 그런데도 한 달에 하루 이틀만 밖에 나올 뿐 집 안에 틀어 박혀서 무조건 글만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한다고 방송이며 신문에서 연일 떠들어대고 있었다. 문득 10년이라는 세월을 까먹어 버리고, 내 생애에서 뚝 떨어져 나가 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초심으로 돌아가서 가제 <백성>을 집필하기로 했다. 하지만 생계형 작가에서 하루 아침에 생업을 뒤로 하고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백성>의 집필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하여, 우선 아웃사이더로 지난 10년간의 글쓰기를 해 온 나로서는 중앙문단에서 인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천문학사에서 2002년 신인상을 받은 장편소설 <하루>는 <백성>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도 농촌이고, 주제도 농민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따라서 <하루>는 이 책 <금강>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장편소설 <하루>는 원고지 1천2백 매 분량으로 쓴 농촌의 하루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 책 <금강>의 배경이 될 <하루>는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은 누군가 나를 위해 그때까지 이 소설의 거리를 남겨 두었다는 점이다. 막상 <금강>을 집필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장애물은 너무나 많았다. 50년대의 생활상이나 물가 등을 고증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과연 어느 출판사가 15권 분량의 장대한 분량의 원고를 활자화하여 서점에 내놓겠느냐는 의구심이 들었다. 더불어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원고를 집필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원고가 있다 하더라도 출간이 되지 않으면 작가 혼자의 글밖에 되지 않는다. 곧 독자를 잃어버린 종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종자가 꽃을 피우게 하는 역할은 출판사의 몫이고, 그 꽃을 감상하는 것은 독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고를 써도 출간을 할 출판사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집필을 미룰 수가 없었다. 그만큼 앞에서 말한 가제 <백성>은 내가 소설가가 되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쓰고 싶은 현대사를 주제로 한 소설은 무슨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심오한 철학이 담길 작품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여, 1950년대 중반부터 밀레니엄 시대의 2000년까지 우리 민족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모산’ 마을은 실제로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은 아니지만 사실적인 지명이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얼굴에 검댕이 묻었는지, 커다란 점이 있는지 흉터가 있는지 거울을 볼 때에만 확인할 수 있다. 거울은 얼굴 표면만 보여주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보여주고 미래까지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5,000년 역사 중에 가장 격동적인 세월이라고 해도 될 만큼 숨 막히던 지난 반세기의 우리 민족은 거울을 볼 틈이 없었다. 거울을 볼 시간에 일을 해야 하고, 거울을 볼 시간에 정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민주화를 꽃피우기 위하여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렇게 반세기를 살아왔으니 이제 거울을 볼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꼭짓점은 선(善)에 있다고 본다. 예술가가 아름다운 까닭도 그들이 지향하는 세계가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착함’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도 그렇다. 무언중에 선을 지향하는 소설을 쓰게 마련이다. 고전소설 <춘항전>이며 <홍길동전>의 주제가 권선징악(勸善懲惡)인 까닭도 그러한 연유일 것이다. <금강>에 등장하는 모산 동네 사람들은 반세기를 살아온 우리의 거울이다. 이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제1권의 ‘모산 사람들의 귀에는’이라는 부분부터, 이 소설의 대단원 막을 내리는 제 15권의 ‘흐뭇하게 웃었다’라는 부분까지 작가의 개입은 철저히 차단하고 모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카메라로 추적만 했다. 이 소설 <금강>이 현대사의 거울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바로 그 점에 있다. 따라서 모산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상도에도 있고, 전라도, 경기도, 강원도 제주도 어느 곳을 가든 모산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 <금강>이 우리 민족의 자화상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 하나 이 소설이 특별한 점은 이 소설을 집필하는 데 있어서 전체적인 아웃라인은 있었지만 세부적인 구성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작가의 힘이 개입된 부분은 1권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정도이다. 그 캐릭터들도 <금강>에서만 볼 수 있는 별나거나 특수한 캐릭터가 아니고, 우리나라 산골의 어느 동네에 가거나 쉽게 볼 수 있는 지극히 전형적이고 평범한 캐릭터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엄격한 의미로 본다면 그 캐릭터마저 작가의 창조물이라고 볼 수 없다. 그저 현실에서 차용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책 1권에서 옥천댁과 박태수는 순간적인 이끌림에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 부분도 작가인 내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장치가 아니다. 더 나아가서 ‘승우’와 ‘인숙’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측도 하지 않았지만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철용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영등포 문래동에 있는 철공소에 취직을 해서 팔을 잃어버리게 되는 사연도, 흑산도로 끌려가는 들례가 민초예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여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는 역사도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지난 12년 동안 <금강>의 자료를 구하고, 현대사를 뒤적이고, 원고지 칸을 채워가면서 전혀 지루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은 나는 작가인 동시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해서 모니터 앞에서 혼자 웃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이를 갈며 분노했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논리적으로 반문할지 모른다. 원고지 100매도 안 되는 단편을 쓰는 데도 플롯이 없으면 불가능한데, 원고지 1만 8천 매가 넘는 분량을 쓰면서 어떻게 손이 가는 대로 쓸 수가 있느냐.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 그 증거로 상규가 월남에 가게 되고, 그 상규가 나중에 고엽제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나, 시훈이 독일에서 탄을 캤던 경험을 살려서 사북에 광부로 가게 된다는 스토리나, 이동하나 고현수가 강남에 땅을 사두어 졸부가 되는 것도 구성에 따른 포석이 아니냐고? 그분들을 위해서 의도하지 않은, 즉 구성하지 않은 스토리가 짜 맞춘 것처럼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답해 줄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집필하기 전에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그중 하나가 당연히 소설적 재미이다. 두 번째는 그 시대의 물가와 문화이다. 세 번째는 정치적 현실이다. 그 세 가지를 철저하게 지켜 나가면서 각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철저하게 몰두하게 되면 저절로 짜 맞춘 것처럼 구성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세세한 점에 대해서는 <금강>에 나오는 등장인물 누구든지 샘플로 찾아내서 생애를 추적해보면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로서 이 책 <금강>을 여타 소설과 소설작법적인 측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는 많다. 그 중에서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는 점을 특별히 앞세우고 싶다. 모산 마을 전체,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 그 자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인 까닭이다. 그리고 정치적이나, 사회사적으로 어느 한쪽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하게 제삼자 입장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 책의 원고는 지난 12년 동안 굴곡의 세월을 보냈다. 1권은 “놉”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의 빛을 보기도 했고, 출판사를 찾지 못해 몇 번이나 중도에 집필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금강>의 생명줄을 놓지 않은 것은 소설가라면 반드시 써야 할 주제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강>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낀 점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말이다. 그 길에서 내 손을 잡고 동행을 해 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더불어 <금강>의 결실을 맺게 해 주신 글누림출판사의 이태곤 편집장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또한 <금강>의 날개를 달아 주신 글누림출판사 최종숙 대표에게도 두 손을 꼭 잡고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금강 12

12년의 여정을 끝내며…… 금강은 꼭 쓰고 싶은 소설이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했을 때 심중에는 현대사를 아우를 대하장편소설이 화석으로 간직되어 있었다. 기회라는 것은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고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상의 제목은 <백성>이었다. 나는 백성을 쓰고 싶었다. 쓰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대서사소설을 써야 한다는 사명감 이전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의무감은 의무감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전업 작가로 90년대 초부터 2000년까지 10년 동안 많은 원고를 썼다. 오로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손가락에 진물이 나도록 키보드를 두들겼다. 이 책에 나오는 면 소재지인 ‘학산’은 내 고향이다. 나는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당연히 집을 나오면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고, 술잔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지인들이다. 그런데도 한 달에 하루 이틀만 밖에 나올 뿐 집 안에 틀어 박혀서 무조건 글만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한다고 방송이며 신문에서 연일 떠들어대고 있었다. 문득 10년이라는 세월을 까먹어 버리고, 내 생애에서 뚝 떨어져 나가 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초심으로 돌아가서 가제 <백성>을 집필하기로 했다. 하지만 생계형 작가에서 하루 아침에 생업을 뒤로 하고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백성>의 집필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하여, 우선 아웃사이더로 지난 10년간의 글쓰기를 해 온 나로서는 중앙문단에서 인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천문학사에서 2002년 신인상을 받은 장편소설 <하루>는 <백성>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도 농촌이고, 주제도 농민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따라서 <하루>는 이 책 <금강>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장편소설 <하루>는 원고지 1천2백 매 분량으로 쓴 농촌의 하루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 책 <금강>의 배경이 될 <하루>는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은 누군가 나를 위해 그때까지 이 소설의 거리를 남겨 두었다는 점이다. 막상 <금강>을 집필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장애물은 너무나 많았다. 50년대의 생활상이나 물가 등을 고증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과연 어느 출판사가 15권 분량의 장대한 분량의 원고를 활자화하여 서점에 내놓겠느냐는 의구심이 들었다. 더불어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원고를 집필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원고가 있다 하더라도 출간이 되지 않으면 작가 혼자의 글밖에 되지 않는다. 곧 독자를 잃어버린 종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종자가 꽃을 피우게 하는 역할은 출판사의 몫이고, 그 꽃을 감상하는 것은 독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고를 써도 출간을 할 출판사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집필을 미룰 수가 없었다. 그만큼 앞에서 말한 가제 <백성>은 내가 소설가가 되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쓰고 싶은 현대사를 주제로 한 소설은 무슨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심오한 철학이 담길 작품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여, 1950년대 중반부터 밀레니엄 시대의 2000년까지 우리 민족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모산’ 마을은 실제로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은 아니지만 사실적인 지명이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얼굴에 검댕이 묻었는지, 커다란 점이 있는지 흉터가 있는지 거울을 볼 때에만 확인할 수 있다. 거울은 얼굴 표면만 보여주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보여주고 미래까지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5,000년 역사 중에 가장 격동적인 세월이라고 해도 될 만큼 숨 막히던 지난 반세기의 우리 민족은 거울을 볼 틈이 없었다. 거울을 볼 시간에 일을 해야 하고, 거울을 볼 시간에 정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민주화를 꽃피우기 위하여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렇게 반세기를 살아왔으니 이제 거울을 볼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꼭짓점은 선(善)에 있다고 본다. 예술가가 아름다운 까닭도 그들이 지향하는 세계가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착함’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도 그렇다. 무언중에 선을 지향하는 소설을 쓰게 마련이다. 고전소설 <춘항전>이며 <홍길동전>의 주제가 권선징악(勸善懲惡)인 까닭도 그러한 연유일 것이다. <금강>에 등장하는 모산 동네 사람들은 반세기를 살아온 우리의 거울이다. 이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제1권의 ‘모산 사람들의 귀에는’이라는 부분부터, 이 소설의 대단원 막을 내리는 제 15권의 ‘흐뭇하게 웃었다’라는 부분까지 작가의 개입은 철저히 차단하고 모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카메라로 추적만 했다. 이 소설 <금강>이 현대사의 거울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바로 그 점에 있다. 따라서 모산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상도에도 있고, 전라도, 경기도, 강원도 제주도 어느 곳을 가든 모산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 <금강>이 우리 민족의 자화상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 하나 이 소설이 특별한 점은 이 소설을 집필하는 데 있어서 전체적인 아웃라인은 있었지만 세부적인 구성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작가의 힘이 개입된 부분은 1권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정도이다. 그 캐릭터들도 <금강>에서만 볼 수 있는 별나거나 특수한 캐릭터가 아니고, 우리나라 산골의 어느 동네에 가거나 쉽게 볼 수 있는 지극히 전형적이고 평범한 캐릭터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엄격한 의미로 본다면 그 캐릭터마저 작가의 창조물이라고 볼 수 없다. 그저 현실에서 차용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책 1권에서 옥천댁과 박태수는 순간적인 이끌림에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 부분도 작가인 내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장치가 아니다. 더 나아가서 ‘승우’와 ‘인숙’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측도 하지 않았지만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철용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영등포 문래동에 있는 철공소에 취직을 해서 팔을 잃어버리게 되는 사연도, 흑산도로 끌려가는 들례가 민초예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여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는 역사도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지난 12년 동안 <금강>의 자료를 구하고, 현대사를 뒤적이고, 원고지 칸을 채워가면서 전혀 지루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은 나는 작가인 동시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해서 모니터 앞에서 혼자 웃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이를 갈며 분노했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논리적으로 반문할지 모른다. 원고지 100매도 안 되는 단편을 쓰는 데도 플롯이 없으면 불가능한데, 원고지 1만 8천 매가 넘는 분량을 쓰면서 어떻게 손이 가는 대로 쓸 수가 있느냐.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 그 증거로 상규가 월남에 가게 되고, 그 상규가 나중에 고엽제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나, 시훈이 독일에서 탄을 캤던 경험을 살려서 사북에 광부로 가게 된다는 스토리나, 이동하나 고현수가 강남에 땅을 사두어 졸부가 되는 것도 구성에 따른 포석이 아니냐고? 그분들을 위해서 의도하지 않은, 즉 구성하지 않은 스토리가 짜 맞춘 것처럼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답해 줄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집필하기 전에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그중 하나가 당연히 소설적 재미이다. 두 번째는 그 시대의 물가와 문화이다. 세 번째는 정치적 현실이다. 그 세 가지를 철저하게 지켜 나가면서 각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철저하게 몰두하게 되면 저절로 짜 맞춘 것처럼 구성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세세한 점에 대해서는 <금강>에 나오는 등장인물 누구든지 샘플로 찾아내서 생애를 추적해보면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로서 이 책 <금강>을 여타 소설과 소설작법적인 측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는 많다. 그 중에서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는 점을 특별히 앞세우고 싶다. 모산 마을 전체,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 그 자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인 까닭이다. 그리고 정치적이나, 사회사적으로 어느 한쪽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하게 제삼자 입장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 책의 원고는 지난 12년 동안 굴곡의 세월을 보냈다. 1권은 “놉”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의 빛을 보기도 했고, 출판사를 찾지 못해 몇 번이나 중도에 집필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금강>의 생명줄을 놓지 않은 것은 소설가라면 반드시 써야 할 주제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강>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낀 점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말이다. 그 길에서 내 손을 잡고 동행을 해 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더불어 <금강>의 결실을 맺게 해 주신 글누림출판사의 이태곤 편집장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또한 <금강>의 날개를 달아 주신 글누림출판사 최종숙 대표에게도 두 손을 꼭 잡고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금강 13

12년의 여정을 끝내며…… 금강은 꼭 쓰고 싶은 소설이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했을 때 심중에는 현대사를 아우를 대하장편소설이 화석으로 간직되어 있었다. 기회라는 것은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고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상의 제목은 <백성>이었다. 나는 백성을 쓰고 싶었다. 쓰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대서사소설을 써야 한다는 사명감 이전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의무감은 의무감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전업 작가로 90년대 초부터 2000년까지 10년 동안 많은 원고를 썼다. 오로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손가락에 진물이 나도록 키보드를 두들겼다. 이 책에 나오는 면 소재지인 ‘학산’은 내 고향이다. 나는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당연히 집을 나오면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고, 술잔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지인들이다. 그런데도 한 달에 하루 이틀만 밖에 나올 뿐 집 안에 틀어 박혀서 무조건 글만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한다고 방송이며 신문에서 연일 떠들어대고 있었다. 문득 10년이라는 세월을 까먹어 버리고, 내 생애에서 뚝 떨어져 나가 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초심으로 돌아가서 가제 <백성>을 집필하기로 했다. 하지만 생계형 작가에서 하루 아침에 생업을 뒤로 하고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백성>의 집필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하여, 우선 아웃사이더로 지난 10년간의 글쓰기를 해 온 나로서는 중앙문단에서 인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천문학사에서 2002년 신인상을 받은 장편소설 <하루>는 <백성>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도 농촌이고, 주제도 농민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따라서 <하루>는 이 책 <금강>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장편소설 <하루>는 원고지 1천2백 매 분량으로 쓴 농촌의 하루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 책 <금강>의 배경이 될 <하루>는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은 누군가 나를 위해 그때까지 이 소설의 거리를 남겨 두었다는 점이다. 막상 <금강>을 집필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장애물은 너무나 많았다. 50년대의 생활상이나 물가 등을 고증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과연 어느 출판사가 15권 분량의 장대한 분량의 원고를 활자화하여 서점에 내놓겠느냐는 의구심이 들었다. 더불어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원고를 집필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원고가 있다 하더라도 출간이 되지 않으면 작가 혼자의 글밖에 되지 않는다. 곧 독자를 잃어버린 종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종자가 꽃을 피우게 하는 역할은 출판사의 몫이고, 그 꽃을 감상하는 것은 독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고를 써도 출간을 할 출판사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집필을 미룰 수가 없었다. 그만큼 앞에서 말한 가제 <백성>은 내가 소설가가 되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쓰고 싶은 현대사를 주제로 한 소설은 무슨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심오한 철학이 담길 작품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여, 1950년대 중반부터 밀레니엄 시대의 2000년까지 우리 민족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모산’ 마을은 실제로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은 아니지만 사실적인 지명이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얼굴에 검댕이 묻었는지, 커다란 점이 있는지 흉터가 있는지 거울을 볼 때에만 확인할 수 있다. 거울은 얼굴 표면만 보여주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보여주고 미래까지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5,000년 역사 중에 가장 격동적인 세월이라고 해도 될 만큼 숨 막히던 지난 반세기의 우리 민족은 거울을 볼 틈이 없었다. 거울을 볼 시간에 일을 해야 하고, 거울을 볼 시간에 정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민주화를 꽃피우기 위하여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렇게 반세기를 살아왔으니 이제 거울을 볼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꼭짓점은 선(善)에 있다고 본다. 예술가가 아름다운 까닭도 그들이 지향하는 세계가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착함’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도 그렇다. 무언중에 선을 지향하는 소설을 쓰게 마련이다. 고전소설 <춘항전>이며 <홍길동전>의 주제가 권선징악(勸善懲惡)인 까닭도 그러한 연유일 것이다. <금강>에 등장하는 모산 동네 사람들은 반세기를 살아온 우리의 거울이다. 이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제1권의 ‘모산 사람들의 귀에는’이라는 부분부터, 이 소설의 대단원 막을 내리는 제 15권의 ‘흐뭇하게 웃었다’라는 부분까지 작가의 개입은 철저히 차단하고 모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카메라로 추적만 했다. 이 소설 <금강>이 현대사의 거울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바로 그 점에 있다. 따라서 모산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상도에도 있고, 전라도, 경기도, 강원도 제주도 어느 곳을 가든 모산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 <금강>이 우리 민족의 자화상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 하나 이 소설이 특별한 점은 이 소설을 집필하는 데 있어서 전체적인 아웃라인은 있었지만 세부적인 구성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작가의 힘이 개입된 부분은 1권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정도이다. 그 캐릭터들도 <금강>에서만 볼 수 있는 별나거나 특수한 캐릭터가 아니고, 우리나라 산골의 어느 동네에 가거나 쉽게 볼 수 있는 지극히 전형적이고 평범한 캐릭터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엄격한 의미로 본다면 그 캐릭터마저 작가의 창조물이라고 볼 수 없다. 그저 현실에서 차용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책 1권에서 옥천댁과 박태수는 순간적인 이끌림에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 부분도 작가인 내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장치가 아니다. 더 나아가서 ‘승우’와 ‘인숙’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측도 하지 않았지만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철용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영등포 문래동에 있는 철공소에 취직을 해서 팔을 잃어버리게 되는 사연도, 흑산도로 끌려가는 들례가 민초예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여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는 역사도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지난 12년 동안 <금강>의 자료를 구하고, 현대사를 뒤적이고, 원고지 칸을 채워가면서 전혀 지루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은 나는 작가인 동시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해서 모니터 앞에서 혼자 웃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이를 갈며 분노했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논리적으로 반문할지 모른다. 원고지 100매도 안 되는 단편을 쓰는 데도 플롯이 없으면 불가능한데, 원고지 1만 8천 매가 넘는 분량을 쓰면서 어떻게 손이 가는 대로 쓸 수가 있느냐.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 그 증거로 상규가 월남에 가게 되고, 그 상규가 나중에 고엽제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나, 시훈이 독일에서 탄을 캤던 경험을 살려서 사북에 광부로 가게 된다는 스토리나, 이동하나 고현수가 강남에 땅을 사두어 졸부가 되는 것도 구성에 따른 포석이 아니냐고? 그분들을 위해서 의도하지 않은, 즉 구성하지 않은 스토리가 짜 맞춘 것처럼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답해 줄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집필하기 전에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그중 하나가 당연히 소설적 재미이다. 두 번째는 그 시대의 물가와 문화이다. 세 번째는 정치적 현실이다. 그 세 가지를 철저하게 지켜 나가면서 각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철저하게 몰두하게 되면 저절로 짜 맞춘 것처럼 구성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세세한 점에 대해서는 <금강>에 나오는 등장인물 누구든지 샘플로 찾아내서 생애를 추적해보면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로서 이 책 <금강>을 여타 소설과 소설작법적인 측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는 많다. 그 중에서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는 점을 특별히 앞세우고 싶다. 모산 마을 전체,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 그 자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인 까닭이다. 그리고 정치적이나, 사회사적으로 어느 한쪽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하게 제삼자 입장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 책의 원고는 지난 12년 동안 굴곡의 세월을 보냈다. 1권은 “놉”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의 빛을 보기도 했고, 출판사를 찾지 못해 몇 번이나 중도에 집필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금강>의 생명줄을 놓지 않은 것은 소설가라면 반드시 써야 할 주제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강>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낀 점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말이다. 그 길에서 내 손을 잡고 동행을 해 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더불어 <금강>의 결실을 맺게 해 주신 글누림출판사의 이태곤 편집장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또한 <금강>의 날개를 달아 주신 글누림출판사 최종숙 대표에게도 두 손을 꼭 잡고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금강 14

12년의 여정을 끝내며…… 금강은 꼭 쓰고 싶은 소설이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했을 때 심중에는 현대사를 아우를 대하장편소설이 화석으로 간직되어 있었다. 기회라는 것은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고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상의 제목은 <백성>이었다. 나는 백성을 쓰고 싶었다. 쓰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대서사소설을 써야 한다는 사명감 이전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의무감은 의무감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전업 작가로 90년대 초부터 2000년까지 10년 동안 많은 원고를 썼다. 오로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손가락에 진물이 나도록 키보드를 두들겼다. 이 책에 나오는 면 소재지인 ‘학산’은 내 고향이다. 나는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당연히 집을 나오면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고, 술잔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지인들이다. 그런데도 한 달에 하루 이틀만 밖에 나올 뿐 집 안에 틀어 박혀서 무조건 글만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한다고 방송이며 신문에서 연일 떠들어대고 있었다. 문득 10년이라는 세월을 까먹어 버리고, 내 생애에서 뚝 떨어져 나가 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초심으로 돌아가서 가제 <백성>을 집필하기로 했다. 하지만 생계형 작가에서 하루 아침에 생업을 뒤로 하고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백성>의 집필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하여, 우선 아웃사이더로 지난 10년간의 글쓰기를 해 온 나로서는 중앙문단에서 인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천문학사에서 2002년 신인상을 받은 장편소설 <하루>는 <백성>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도 농촌이고, 주제도 농민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따라서 <하루>는 이 책 <금강>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장편소설 <하루>는 원고지 1천2백 매 분량으로 쓴 농촌의 하루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 책 <금강>의 배경이 될 <하루>는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은 누군가 나를 위해 그때까지 이 소설의 거리를 남겨 두었다는 점이다. 막상 <금강>을 집필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장애물은 너무나 많았다. 50년대의 생활상이나 물가 등을 고증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과연 어느 출판사가 15권 분량의 장대한 분량의 원고를 활자화하여 서점에 내놓겠느냐는 의구심이 들었다. 더불어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원고를 집필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원고가 있다 하더라도 출간이 되지 않으면 작가 혼자의 글밖에 되지 않는다. 곧 독자를 잃어버린 종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종자가 꽃을 피우게 하는 역할은 출판사의 몫이고, 그 꽃을 감상하는 것은 독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고를 써도 출간을 할 출판사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집필을 미룰 수가 없었다. 그만큼 앞에서 말한 가제 <백성>은 내가 소설가가 되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쓰고 싶은 현대사를 주제로 한 소설은 무슨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심오한 철학이 담길 작품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여, 1950년대 중반부터 밀레니엄 시대의 2000년까지 우리 민족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모산’ 마을은 실제로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은 아니지만 사실적인 지명이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얼굴에 검댕이 묻었는지, 커다란 점이 있는지 흉터가 있는지 거울을 볼 때에만 확인할 수 있다. 거울은 얼굴 표면만 보여주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보여주고 미래까지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5,000년 역사 중에 가장 격동적인 세월이라고 해도 될 만큼 숨 막히던 지난 반세기의 우리 민족은 거울을 볼 틈이 없었다. 거울을 볼 시간에 일을 해야 하고, 거울을 볼 시간에 정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민주화를 꽃피우기 위하여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렇게 반세기를 살아왔으니 이제 거울을 볼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꼭짓점은 선(善)에 있다고 본다. 예술가가 아름다운 까닭도 그들이 지향하는 세계가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착함’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도 그렇다. 무언중에 선을 지향하는 소설을 쓰게 마련이다. 고전소설 <춘항전>이며 <홍길동전>의 주제가 권선징악(勸善懲惡)인 까닭도 그러한 연유일 것이다. <금강>에 등장하는 모산 동네 사람들은 반세기를 살아온 우리의 거울이다. 이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제1권의 ‘모산 사람들의 귀에는’이라는 부분부터, 이 소설의 대단원 막을 내리는 제 15권의 ‘흐뭇하게 웃었다’라는 부분까지 작가의 개입은 철저히 차단하고 모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카메라로 추적만 했다. 이 소설 <금강>이 현대사의 거울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바로 그 점에 있다. 따라서 모산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상도에도 있고, 전라도, 경기도, 강원도 제주도 어느 곳을 가든 모산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 <금강>이 우리 민족의 자화상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 하나 이 소설이 특별한 점은 이 소설을 집필하는 데 있어서 전체적인 아웃라인은 있었지만 세부적인 구성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작가의 힘이 개입된 부분은 1권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정도이다. 그 캐릭터들도 <금강>에서만 볼 수 있는 별나거나 특수한 캐릭터가 아니고, 우리나라 산골의 어느 동네에 가거나 쉽게 볼 수 있는 지극히 전형적이고 평범한 캐릭터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엄격한 의미로 본다면 그 캐릭터마저 작가의 창조물이라고 볼 수 없다. 그저 현실에서 차용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책 1권에서 옥천댁과 박태수는 순간적인 이끌림에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 부분도 작가인 내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장치가 아니다. 더 나아가서 ‘승우’와 ‘인숙’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측도 하지 않았지만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철용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영등포 문래동에 있는 철공소에 취직을 해서 팔을 잃어버리게 되는 사연도, 흑산도로 끌려가는 들례가 민초예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여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는 역사도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지난 12년 동안 <금강>의 자료를 구하고, 현대사를 뒤적이고, 원고지 칸을 채워가면서 전혀 지루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은 나는 작가인 동시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해서 모니터 앞에서 혼자 웃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이를 갈며 분노했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논리적으로 반문할지 모른다. 원고지 100매도 안 되는 단편을 쓰는 데도 플롯이 없으면 불가능한데, 원고지 1만 8천 매가 넘는 분량을 쓰면서 어떻게 손이 가는 대로 쓸 수가 있느냐.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 그 증거로 상규가 월남에 가게 되고, 그 상규가 나중에 고엽제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나, 시훈이 독일에서 탄을 캤던 경험을 살려서 사북에 광부로 가게 된다는 스토리나, 이동하나 고현수가 강남에 땅을 사두어 졸부가 되는 것도 구성에 따른 포석이 아니냐고? 그분들을 위해서 의도하지 않은, 즉 구성하지 않은 스토리가 짜 맞춘 것처럼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답해 줄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집필하기 전에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그중 하나가 당연히 소설적 재미이다. 두 번째는 그 시대의 물가와 문화이다. 세 번째는 정치적 현실이다. 그 세 가지를 철저하게 지켜 나가면서 각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철저하게 몰두하게 되면 저절로 짜 맞춘 것처럼 구성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세세한 점에 대해서는 <금강>에 나오는 등장인물 누구든지 샘플로 찾아내서 생애를 추적해보면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로서 이 책 <금강>을 여타 소설과 소설작법적인 측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는 많다. 그 중에서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는 점을 특별히 앞세우고 싶다. 모산 마을 전체,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 그 자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인 까닭이다. 그리고 정치적이나, 사회사적으로 어느 한쪽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하게 제삼자 입장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 책의 원고는 지난 12년 동안 굴곡의 세월을 보냈다. 1권은 “놉”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의 빛을 보기도 했고, 출판사를 찾지 못해 몇 번이나 중도에 집필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금강>의 생명줄을 놓지 않은 것은 소설가라면 반드시 써야 할 주제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강>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낀 점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말이다. 그 길에서 내 손을 잡고 동행을 해 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더불어 <금강>의 결실을 맺게 해 주신 글누림출판사의 이태곤 편집장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또한 <금강>의 날개를 달아 주신 글누림출판사 최종숙 대표에게도 두 손을 꼭 잡고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금강 15

12년의 여정을 끝내며…… 금강은 꼭 쓰고 싶은 소설이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했을 때 심중에는 현대사를 아우를 대하장편소설이 화석으로 간직되어 있었다. 기회라는 것은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고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상의 제목은 <백성>이었다. 나는 백성을 쓰고 싶었다. 쓰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대서사소설을 써야 한다는 사명감 이전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의무감은 의무감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전업 작가로 90년대 초부터 2000년까지 10년 동안 많은 원고를 썼다. 오로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손가락에 진물이 나도록 키보드를 두들겼다. 이 책에 나오는 면 소재지인 ‘학산’은 내 고향이다. 나는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당연히 집을 나오면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고, 술잔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지인들이다. 그런데도 한 달에 하루 이틀만 밖에 나올 뿐 집 안에 틀어 박혀서 무조건 글만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한다고 방송이며 신문에서 연일 떠들어대고 있었다. 문득 10년이라는 세월을 까먹어 버리고, 내 생애에서 뚝 떨어져 나가 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초심으로 돌아가서 가제 <백성>을 집필하기로 했다. 하지만 생계형 작가에서 하루 아침에 생업을 뒤로 하고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백성>의 집필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하여, 우선 아웃사이더로 지난 10년간의 글쓰기를 해 온 나로서는 중앙문단에서 인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천문학사에서 2002년 신인상을 받은 장편소설 <하루>는 <백성>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도 농촌이고, 주제도 농민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따라서 <하루>는 이 책 <금강>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장편소설 <하루>는 원고지 1천2백 매 분량으로 쓴 농촌의 하루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 책 <금강>의 배경이 될 <하루>는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은 누군가 나를 위해 그때까지 이 소설의 거리를 남겨 두었다는 점이다. 막상 <금강>을 집필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장애물은 너무나 많았다. 50년대의 생활상이나 물가 등을 고증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과연 어느 출판사가 15권 분량의 장대한 분량의 원고를 활자화하여 서점에 내놓겠느냐는 의구심이 들었다. 더불어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원고를 집필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원고가 있다 하더라도 출간이 되지 않으면 작가 혼자의 글밖에 되지 않는다. 곧 독자를 잃어버린 종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종자가 꽃을 피우게 하는 역할은 출판사의 몫이고, 그 꽃을 감상하는 것은 독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고를 써도 출간을 할 출판사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집필을 미룰 수가 없었다. 그만큼 앞에서 말한 가제 <백성>은 내가 소설가가 되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쓰고 싶은 현대사를 주제로 한 소설은 무슨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심오한 철학이 담길 작품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여, 1950년대 중반부터 밀레니엄 시대의 2000년까지 우리 민족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모산’ 마을은 실제로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은 아니지만 사실적인 지명이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얼굴에 검댕이 묻었는지, 커다란 점이 있는지 흉터가 있는지 거울을 볼 때에만 확인할 수 있다. 거울은 얼굴 표면만 보여주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보여주고 미래까지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5,000년 역사 중에 가장 격동적인 세월이라고 해도 될 만큼 숨 막히던 지난 반세기의 우리 민족은 거울을 볼 틈이 없었다. 거울을 볼 시간에 일을 해야 하고, 거울을 볼 시간에 정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민주화를 꽃피우기 위하여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렇게 반세기를 살아왔으니 이제 거울을 볼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꼭짓점은 선(善)에 있다고 본다. 예술가가 아름다운 까닭도 그들이 지향하는 세계가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착함’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도 그렇다. 무언중에 선을 지향하는 소설을 쓰게 마련이다. 고전소설 <춘항전>이며 <홍길동전>의 주제가 권선징악(勸善懲惡)인 까닭도 그러한 연유일 것이다. <금강>에 등장하는 모산 동네 사람들은 반세기를 살아온 우리의 거울이다. 이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제1권의 ‘모산 사람들의 귀에는’이라는 부분부터, 이 소설의 대단원 막을 내리는 제 15권의 ‘흐뭇하게 웃었다’라는 부분까지 작가의 개입은 철저히 차단하고 모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카메라로 추적만 했다. 이 소설 <금강>이 현대사의 거울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바로 그 점에 있다. 따라서 모산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상도에도 있고, 전라도, 경기도, 강원도 제주도 어느 곳을 가든 모산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 <금강>이 우리 민족의 자화상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 하나 이 소설이 특별한 점은 이 소설을 집필하는 데 있어서 전체적인 아웃라인은 있었지만 세부적인 구성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작가의 힘이 개입된 부분은 1권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정도이다. 그 캐릭터들도 <금강>에서만 볼 수 있는 별나거나 특수한 캐릭터가 아니고, 우리나라 산골의 어느 동네에 가거나 쉽게 볼 수 있는 지극히 전형적이고 평범한 캐릭터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엄격한 의미로 본다면 그 캐릭터마저 작가의 창조물이라고 볼 수 없다. 그저 현실에서 차용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책 1권에서 옥천댁과 박태수는 순간적인 이끌림에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 부분도 작가인 내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장치가 아니다. 더 나아가서 ‘승우’와 ‘인숙’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측도 하지 않았지만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철용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영등포 문래동에 있는 철공소에 취직을 해서 팔을 잃어버리게 되는 사연도, 흑산도로 끌려가는 들례가 민초예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여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는 역사도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지난 12년 동안 <금강>의 자료를 구하고, 현대사를 뒤적이고, 원고지 칸을 채워가면서 전혀 지루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은 나는 작가인 동시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해서 모니터 앞에서 혼자 웃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이를 갈며 분노했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논리적으로 반문할지 모른다. 원고지 100매도 안 되는 단편을 쓰는 데도 플롯이 없으면 불가능한데, 원고지 1만 8천 매가 넘는 분량을 쓰면서 어떻게 손이 가는 대로 쓸 수가 있느냐.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 그 증거로 상규가 월남에 가게 되고, 그 상규가 나중에 고엽제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나, 시훈이 독일에서 탄을 캤던 경험을 살려서 사북에 광부로 가게 된다는 스토리나, 이동하나 고현수가 강남에 땅을 사두어 졸부가 되는 것도 구성에 따른 포석이 아니냐고? 그분들을 위해서 의도하지 않은, 즉 구성하지 않은 스토리가 짜 맞춘 것처럼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답해 줄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집필하기 전에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그중 하나가 당연히 소설적 재미이다. 두 번째는 그 시대의 물가와 문화이다. 세 번째는 정치적 현실이다. 그 세 가지를 철저하게 지켜 나가면서 각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철저하게 몰두하게 되면 저절로 짜 맞춘 것처럼 구성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세세한 점에 대해서는 <금강>에 나오는 등장인물 누구든지 샘플로 찾아내서 생애를 추적해보면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로서 이 책 <금강>을 여타 소설과 소설작법적인 측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는 많다. 그 중에서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는 점을 특별히 앞세우고 싶다. 모산 마을 전체,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 그 자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인 까닭이다. 그리고 정치적이나, 사회사적으로 어느 한쪽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하게 제삼자 입장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 책의 원고는 지난 12년 동안 굴곡의 세월을 보냈다. 1권은 “놉”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의 빛을 보기도 했고, 출판사를 찾지 못해 몇 번이나 중도에 집필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금강>의 생명줄을 놓지 않은 것은 소설가라면 반드시 써야 할 주제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강>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낀 점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말이다. 그 길에서 내 손을 잡고 동행을 해 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더불어 <금강>의 결실을 맺게 해 주신 글누림출판사의 이태곤 편집장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또한 <금강>의 날개를 달아 주신 글누림출판사 최종숙 대표에게도 두 손을 꼭 잡고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금강 2

12년의 여정을 끝내며…… 금강은 꼭 쓰고 싶은 소설이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했을 때 심중에는 현대사를 아우를 대하장편소설이 화석으로 간직되어 있었다. 기회라는 것은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고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상의 제목은 <백성>이었다. 나는 백성을 쓰고 싶었다. 쓰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대서사소설을 써야 한다는 사명감 이전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의무감은 의무감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전업 작가로 90년대 초부터 2000년까지 10년 동안 많은 원고를 썼다. 오로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손가락에 진물이 나도록 키보드를 두들겼다. 이 책에 나오는 면 소재지인 ‘학산’은 내 고향이다. 나는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당연히 집을 나오면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고, 술잔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지인들이다. 그런데도 한 달에 하루 이틀만 밖에 나올 뿐 집 안에 틀어 박혀서 무조건 글만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한다고 방송이며 신문에서 연일 떠들어대고 있었다. 문득 10년이라는 세월을 까먹어 버리고, 내 생애에서 뚝 떨어져 나가 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초심으로 돌아가서 가제 <백성>을 집필하기로 했다. 하지만 생계형 작가에서 하루 아침에 생업을 뒤로 하고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백성>의 집필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하여, 우선 아웃사이더로 지난 10년간의 글쓰기를 해 온 나로서는 중앙문단에서 인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천문학사에서 2002년 신인상을 받은 장편소설 <하루>는 <백성>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도 농촌이고, 주제도 농민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따라서 <하루>는 이 책 <금강>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장편소설 <하루>는 원고지 1천2백 매 분량으로 쓴 농촌의 하루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 책 <금강>의 배경이 될 <하루>는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은 누군가 나를 위해 그때까지 이 소설의 거리를 남겨 두었다는 점이다. 막상 <금강>을 집필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장애물은 너무나 많았다. 50년대의 생활상이나 물가 등을 고증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과연 어느 출판사가 15권 분량의 장대한 분량의 원고를 활자화하여 서점에 내놓겠느냐는 의구심이 들었다. 더불어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원고를 집필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원고가 있다 하더라도 출간이 되지 않으면 작가 혼자의 글밖에 되지 않는다. 곧 독자를 잃어버린 종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종자가 꽃을 피우게 하는 역할은 출판사의 몫이고, 그 꽃을 감상하는 것은 독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고를 써도 출간을 할 출판사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집필을 미룰 수가 없었다. 그만큼 앞에서 말한 가제 <백성>은 내가 소설가가 되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쓰고 싶은 현대사를 주제로 한 소설은 무슨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심오한 철학이 담길 작품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여, 1950년대 중반부터 밀레니엄 시대의 2000년까지 우리 민족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모산’ 마을은 실제로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은 아니지만 사실적인 지명이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얼굴에 검댕이 묻었는지, 커다란 점이 있는지 흉터가 있는지 거울을 볼 때에만 확인할 수 있다. 거울은 얼굴 표면만 보여주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보여주고 미래까지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5,000년 역사 중에 가장 격동적인 세월이라고 해도 될 만큼 숨 막히던 지난 반세기의 우리 민족은 거울을 볼 틈이 없었다. 거울을 볼 시간에 일을 해야 하고, 거울을 볼 시간에 정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민주화를 꽃피우기 위하여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렇게 반세기를 살아왔으니 이제 거울을 볼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꼭짓점은 선(善)에 있다고 본다. 예술가가 아름다운 까닭도 그들이 지향하는 세계가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착함’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도 그렇다. 무언중에 선을 지향하는 소설을 쓰게 마련이다. 고전소설 <춘항전>이며 <홍길동전>의 주제가 권선징악(勸善懲惡)인 까닭도 그러한 연유일 것이다. <금강>에 등장하는 모산 동네 사람들은 반세기를 살아온 우리의 거울이다. 이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제1권의 ‘모산 사람들의 귀에는’이라는 부분부터, 이 소설의 대단원 막을 내리는 제 15권의 ‘흐뭇하게 웃었다’라는 부분까지 작가의 개입은 철저히 차단하고 모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카메라로 추적만 했다. 이 소설 <금강>이 현대사의 거울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바로 그 점에 있다. 따라서 모산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상도에도 있고, 전라도, 경기도, 강원도 제주도 어느 곳을 가든 모산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 <금강>이 우리 민족의 자화상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 하나 이 소설이 특별한 점은 이 소설을 집필하는 데 있어서 전체적인 아웃라인은 있었지만 세부적인 구성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작가의 힘이 개입된 부분은 1권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정도이다. 그 캐릭터들도 <금강>에서만 볼 수 있는 별나거나 특수한 캐릭터가 아니고, 우리나라 산골의 어느 동네에 가거나 쉽게 볼 수 있는 지극히 전형적이고 평범한 캐릭터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엄격한 의미로 본다면 그 캐릭터마저 작가의 창조물이라고 볼 수 없다. 그저 현실에서 차용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책 1권에서 옥천댁과 박태수는 순간적인 이끌림에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 부분도 작가인 내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장치가 아니다. 더 나아가서 ‘승우’와 ‘인숙’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측도 하지 않았지만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철용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영등포 문래동에 있는 철공소에 취직을 해서 팔을 잃어버리게 되는 사연도, 흑산도로 끌려가는 들례가 민초예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여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는 역사도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지난 12년 동안 <금강>의 자료를 구하고, 현대사를 뒤적이고, 원고지 칸을 채워가면서 전혀 지루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은 나는 작가인 동시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해서 모니터 앞에서 혼자 웃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이를 갈며 분노했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논리적으로 반문할지 모른다. 원고지 100매도 안 되는 단편을 쓰는 데도 플롯이 없으면 불가능한데, 원고지 1만 8천 매가 넘는 분량을 쓰면서 어떻게 손이 가는 대로 쓸 수가 있느냐.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 그 증거로 상규가 월남에 가게 되고, 그 상규가 나중에 고엽제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나, 시훈이 독일에서 탄을 캤던 경험을 살려서 사북에 광부로 가게 된다는 스토리나, 이동하나 고현수가 강남에 땅을 사두어 졸부가 되는 것도 구성에 따른 포석이 아니냐고? 그분들을 위해서 의도하지 않은, 즉 구성하지 않은 스토리가 짜 맞춘 것처럼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답해 줄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집필하기 전에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그중 하나가 당연히 소설적 재미이다. 두 번째는 그 시대의 물가와 문화이다. 세 번째는 정치적 현실이다. 그 세 가지를 철저하게 지켜 나가면서 각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철저하게 몰두하게 되면 저절로 짜 맞춘 것처럼 구성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세세한 점에 대해서는 <금강>에 나오는 등장인물 누구든지 샘플로 찾아내서 생애를 추적해보면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로서 이 책 <금강>을 여타 소설과 소설작법적인 측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는 많다. 그 중에서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는 점을 특별히 앞세우고 싶다. 모산 마을 전체,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 그 자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인 까닭이다. 그리고 정치적이나, 사회사적으로 어느 한쪽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하게 제삼자 입장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 책의 원고는 지난 12년 동안 굴곡의 세월을 보냈다. 1권은 “놉”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의 빛을 보기도 했고, 출판사를 찾지 못해 몇 번이나 중도에 집필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금강>의 생명줄을 놓지 않은 것은 소설가라면 반드시 써야 할 주제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강>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낀 점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말이다. 그 길에서 내 손을 잡고 동행을 해 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더불어 <금강>의 결실을 맺게 해 주신 글누림출판사의 이태곤 편집장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또한 <금강>의 날개를 달아 주신 글누림출판사 최종숙 대표에게도 두 손을 꼭 잡고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금강 3

12년의 여정을 끝내며…… 금강은 꼭 쓰고 싶은 소설이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했을 때 심중에는 현대사를 아우를 대하장편소설이 화석으로 간직되어 있었다. 기회라는 것은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고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상의 제목은 <백성>이었다. 나는 백성을 쓰고 싶었다. 쓰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대서사소설을 써야 한다는 사명감 이전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의무감은 의무감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전업 작가로 90년대 초부터 2000년까지 10년 동안 많은 원고를 썼다. 오로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손가락에 진물이 나도록 키보드를 두들겼다. 이 책에 나오는 면 소재지인 ‘학산’은 내 고향이다. 나는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당연히 집을 나오면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고, 술잔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지인들이다. 그런데도 한 달에 하루 이틀만 밖에 나올 뿐 집 안에 틀어 박혀서 무조건 글만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한다고 방송이며 신문에서 연일 떠들어대고 있었다. 문득 10년이라는 세월을 까먹어 버리고, 내 생애에서 뚝 떨어져 나가 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초심으로 돌아가서 가제 <백성>을 집필하기로 했다. 하지만 생계형 작가에서 하루 아침에 생업을 뒤로 하고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백성>의 집필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하여, 우선 아웃사이더로 지난 10년간의 글쓰기를 해 온 나로서는 중앙문단에서 인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천문학사에서 2002년 신인상을 받은 장편소설 <하루>는 <백성>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도 농촌이고, 주제도 농민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따라서 <하루>는 이 책 <금강>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장편소설 <하루>는 원고지 1천2백 매 분량으로 쓴 농촌의 하루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 책 <금강>의 배경이 될 <하루>는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은 누군가 나를 위해 그때까지 이 소설의 거리를 남겨 두었다는 점이다. 막상 <금강>을 집필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장애물은 너무나 많았다. 50년대의 생활상이나 물가 등을 고증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과연 어느 출판사가 15권 분량의 장대한 분량의 원고를 활자화하여 서점에 내놓겠느냐는 의구심이 들었다. 더불어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원고를 집필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원고가 있다 하더라도 출간이 되지 않으면 작가 혼자의 글밖에 되지 않는다. 곧 독자를 잃어버린 종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종자가 꽃을 피우게 하는 역할은 출판사의 몫이고, 그 꽃을 감상하는 것은 독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고를 써도 출간을 할 출판사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집필을 미룰 수가 없었다. 그만큼 앞에서 말한 가제 <백성>은 내가 소설가가 되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쓰고 싶은 현대사를 주제로 한 소설은 무슨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심오한 철학이 담길 작품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여, 1950년대 중반부터 밀레니엄 시대의 2000년까지 우리 민족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모산’ 마을은 실제로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은 아니지만 사실적인 지명이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얼굴에 검댕이 묻었는지, 커다란 점이 있는지 흉터가 있는지 거울을 볼 때에만 확인할 수 있다. 거울은 얼굴 표면만 보여주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보여주고 미래까지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5,000년 역사 중에 가장 격동적인 세월이라고 해도 될 만큼 숨 막히던 지난 반세기의 우리 민족은 거울을 볼 틈이 없었다. 거울을 볼 시간에 일을 해야 하고, 거울을 볼 시간에 정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민주화를 꽃피우기 위하여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렇게 반세기를 살아왔으니 이제 거울을 볼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꼭짓점은 선(善)에 있다고 본다. 예술가가 아름다운 까닭도 그들이 지향하는 세계가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착함’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도 그렇다. 무언중에 선을 지향하는 소설을 쓰게 마련이다. 고전소설 <춘항전>이며 <홍길동전>의 주제가 권선징악(勸善懲惡)인 까닭도 그러한 연유일 것이다. <금강>에 등장하는 모산 동네 사람들은 반세기를 살아온 우리의 거울이다. 이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제1권의 ‘모산 사람들의 귀에는’이라는 부분부터, 이 소설의 대단원 막을 내리는 제 15권의 ‘흐뭇하게 웃었다’라는 부분까지 작가의 개입은 철저히 차단하고 모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카메라로 추적만 했다. 이 소설 <금강>이 현대사의 거울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바로 그 점에 있다. 따라서 모산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상도에도 있고, 전라도, 경기도, 강원도 제주도 어느 곳을 가든 모산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 <금강>이 우리 민족의 자화상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 하나 이 소설이 특별한 점은 이 소설을 집필하는 데 있어서 전체적인 아웃라인은 있었지만 세부적인 구성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작가의 힘이 개입된 부분은 1권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정도이다. 그 캐릭터들도 <금강>에서만 볼 수 있는 별나거나 특수한 캐릭터가 아니고, 우리나라 산골의 어느 동네에 가거나 쉽게 볼 수 있는 지극히 전형적이고 평범한 캐릭터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엄격한 의미로 본다면 그 캐릭터마저 작가의 창조물이라고 볼 수 없다. 그저 현실에서 차용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책 1권에서 옥천댁과 박태수는 순간적인 이끌림에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 부분도 작가인 내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장치가 아니다. 더 나아가서 ‘승우’와 ‘인숙’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측도 하지 않았지만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철용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영등포 문래동에 있는 철공소에 취직을 해서 팔을 잃어버리게 되는 사연도, 흑산도로 끌려가는 들례가 민초예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여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는 역사도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지난 12년 동안 <금강>의 자료를 구하고, 현대사를 뒤적이고, 원고지 칸을 채워가면서 전혀 지루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은 나는 작가인 동시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해서 모니터 앞에서 혼자 웃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이를 갈며 분노했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논리적으로 반문할지 모른다. 원고지 100매도 안 되는 단편을 쓰는 데도 플롯이 없으면 불가능한데, 원고지 1만 8천 매가 넘는 분량을 쓰면서 어떻게 손이 가는 대로 쓸 수가 있느냐.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 그 증거로 상규가 월남에 가게 되고, 그 상규가 나중에 고엽제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나, 시훈이 독일에서 탄을 캤던 경험을 살려서 사북에 광부로 가게 된다는 스토리나, 이동하나 고현수가 강남에 땅을 사두어 졸부가 되는 것도 구성에 따른 포석이 아니냐고? 그분들을 위해서 의도하지 않은, 즉 구성하지 않은 스토리가 짜 맞춘 것처럼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답해 줄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집필하기 전에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그중 하나가 당연히 소설적 재미이다. 두 번째는 그 시대의 물가와 문화이다. 세 번째는 정치적 현실이다. 그 세 가지를 철저하게 지켜 나가면서 각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철저하게 몰두하게 되면 저절로 짜 맞춘 것처럼 구성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세세한 점에 대해서는 <금강>에 나오는 등장인물 누구든지 샘플로 찾아내서 생애를 추적해보면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로서 이 책 <금강>을 여타 소설과 소설작법적인 측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는 많다. 그 중에서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는 점을 특별히 앞세우고 싶다. 모산 마을 전체,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 그 자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인 까닭이다. 그리고 정치적이나, 사회사적으로 어느 한쪽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하게 제삼자 입장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 책의 원고는 지난 12년 동안 굴곡의 세월을 보냈다. 1권은 “놉”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의 빛을 보기도 했고, 출판사를 찾지 못해 몇 번이나 중도에 집필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금강>의 생명줄을 놓지 않은 것은 소설가라면 반드시 써야 할 주제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강>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낀 점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말이다. 그 길에서 내 손을 잡고 동행을 해 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더불어 <금강>의 결실을 맺게 해 주신 글누림출판사의 이태곤 편집장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또한 <금강>의 날개를 달아 주신 글누림출판사 최종숙 대표에게도 두 손을 꼭 잡고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금강 4

12년의 여정을 끝내며…… 금강은 꼭 쓰고 싶은 소설이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했을 때 심중에는 현대사를 아우를 대하장편소설이 화석으로 간직되어 있었다. 기회라는 것은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고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상의 제목은 <백성>이었다. 나는 백성을 쓰고 싶었다. 쓰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대서사소설을 써야 한다는 사명감 이전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의무감은 의무감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전업 작가로 90년대 초부터 2000년까지 10년 동안 많은 원고를 썼다. 오로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손가락에 진물이 나도록 키보드를 두들겼다. 이 책에 나오는 면 소재지인 ‘학산’은 내 고향이다. 나는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당연히 집을 나오면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고, 술잔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지인들이다. 그런데도 한 달에 하루 이틀만 밖에 나올 뿐 집 안에 틀어 박혀서 무조건 글만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한다고 방송이며 신문에서 연일 떠들어대고 있었다. 문득 10년이라는 세월을 까먹어 버리고, 내 생애에서 뚝 떨어져 나가 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초심으로 돌아가서 가제 <백성>을 집필하기로 했다. 하지만 생계형 작가에서 하루 아침에 생업을 뒤로 하고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백성>의 집필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하여, 우선 아웃사이더로 지난 10년간의 글쓰기를 해 온 나로서는 중앙문단에서 인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천문학사에서 2002년 신인상을 받은 장편소설 <하루>는 <백성>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도 농촌이고, 주제도 농민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따라서 <하루>는 이 책 <금강>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장편소설 <하루>는 원고지 1천2백 매 분량으로 쓴 농촌의 하루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 책 <금강>의 배경이 될 <하루>는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은 누군가 나를 위해 그때까지 이 소설의 거리를 남겨 두었다는 점이다. 막상 <금강>을 집필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장애물은 너무나 많았다. 50년대의 생활상이나 물가 등을 고증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과연 어느 출판사가 15권 분량의 장대한 분량의 원고를 활자화하여 서점에 내놓겠느냐는 의구심이 들었다. 더불어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원고를 집필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원고가 있다 하더라도 출간이 되지 않으면 작가 혼자의 글밖에 되지 않는다. 곧 독자를 잃어버린 종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종자가 꽃을 피우게 하는 역할은 출판사의 몫이고, 그 꽃을 감상하는 것은 독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고를 써도 출간을 할 출판사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집필을 미룰 수가 없었다. 그만큼 앞에서 말한 가제 <백성>은 내가 소설가가 되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쓰고 싶은 현대사를 주제로 한 소설은 무슨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심오한 철학이 담길 작품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여, 1950년대 중반부터 밀레니엄 시대의 2000년까지 우리 민족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모산’ 마을은 실제로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은 아니지만 사실적인 지명이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얼굴에 검댕이 묻었는지, 커다란 점이 있는지 흉터가 있는지 거울을 볼 때에만 확인할 수 있다. 거울은 얼굴 표면만 보여주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보여주고 미래까지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5,000년 역사 중에 가장 격동적인 세월이라고 해도 될 만큼 숨 막히던 지난 반세기의 우리 민족은 거울을 볼 틈이 없었다. 거울을 볼 시간에 일을 해야 하고, 거울을 볼 시간에 정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민주화를 꽃피우기 위하여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렇게 반세기를 살아왔으니 이제 거울을 볼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꼭짓점은 선(善)에 있다고 본다. 예술가가 아름다운 까닭도 그들이 지향하는 세계가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착함’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도 그렇다. 무언중에 선을 지향하는 소설을 쓰게 마련이다. 고전소설 <춘항전>이며 <홍길동전>의 주제가 권선징악(勸善懲惡)인 까닭도 그러한 연유일 것이다. <금강>에 등장하는 모산 동네 사람들은 반세기를 살아온 우리의 거울이다. 이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제1권의 ‘모산 사람들의 귀에는’이라는 부분부터, 이 소설의 대단원 막을 내리는 제 15권의 ‘흐뭇하게 웃었다’라는 부분까지 작가의 개입은 철저히 차단하고 모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카메라로 추적만 했다. 이 소설 <금강>이 현대사의 거울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바로 그 점에 있다. 따라서 모산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상도에도 있고, 전라도, 경기도, 강원도 제주도 어느 곳을 가든 모산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 <금강>이 우리 민족의 자화상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 하나 이 소설이 특별한 점은 이 소설을 집필하는 데 있어서 전체적인 아웃라인은 있었지만 세부적인 구성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작가의 힘이 개입된 부분은 1권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정도이다. 그 캐릭터들도 <금강>에서만 볼 수 있는 별나거나 특수한 캐릭터가 아니고, 우리나라 산골의 어느 동네에 가거나 쉽게 볼 수 있는 지극히 전형적이고 평범한 캐릭터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엄격한 의미로 본다면 그 캐릭터마저 작가의 창조물이라고 볼 수 없다. 그저 현실에서 차용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책 1권에서 옥천댁과 박태수는 순간적인 이끌림에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 부분도 작가인 내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장치가 아니다. 더 나아가서 ‘승우’와 ‘인숙’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측도 하지 않았지만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철용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영등포 문래동에 있는 철공소에 취직을 해서 팔을 잃어버리게 되는 사연도, 흑산도로 끌려가는 들례가 민초예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여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는 역사도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지난 12년 동안 <금강>의 자료를 구하고, 현대사를 뒤적이고, 원고지 칸을 채워가면서 전혀 지루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은 나는 작가인 동시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해서 모니터 앞에서 혼자 웃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이를 갈며 분노했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논리적으로 반문할지 모른다. 원고지 100매도 안 되는 단편을 쓰는 데도 플롯이 없으면 불가능한데, 원고지 1만 8천 매가 넘는 분량을 쓰면서 어떻게 손이 가는 대로 쓸 수가 있느냐.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 그 증거로 상규가 월남에 가게 되고, 그 상규가 나중에 고엽제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나, 시훈이 독일에서 탄을 캤던 경험을 살려서 사북에 광부로 가게 된다는 스토리나, 이동하나 고현수가 강남에 땅을 사두어 졸부가 되는 것도 구성에 따른 포석이 아니냐고? 그분들을 위해서 의도하지 않은, 즉 구성하지 않은 스토리가 짜 맞춘 것처럼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답해 줄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집필하기 전에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그중 하나가 당연히 소설적 재미이다. 두 번째는 그 시대의 물가와 문화이다. 세 번째는 정치적 현실이다. 그 세 가지를 철저하게 지켜 나가면서 각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철저하게 몰두하게 되면 저절로 짜 맞춘 것처럼 구성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세세한 점에 대해서는 <금강>에 나오는 등장인물 누구든지 샘플로 찾아내서 생애를 추적해보면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로서 이 책 <금강>을 여타 소설과 소설작법적인 측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는 많다. 그 중에서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는 점을 특별히 앞세우고 싶다. 모산 마을 전체,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 그 자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인 까닭이다. 그리고 정치적이나, 사회사적으로 어느 한쪽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하게 제삼자 입장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 책의 원고는 지난 12년 동안 굴곡의 세월을 보냈다. 1권은 “놉”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의 빛을 보기도 했고, 출판사를 찾지 못해 몇 번이나 중도에 집필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금강>의 생명줄을 놓지 않은 것은 소설가라면 반드시 써야 할 주제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강>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낀 점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말이다. 그 길에서 내 손을 잡고 동행을 해 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더불어 <금강>의 결실을 맺게 해 주신 글누림출판사의 이태곤 편집장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또한 <금강>의 날개를 달아 주신 글누림출판사 최종숙 대표에게도 두 손을 꼭 잡고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금강 5

12년의 여정을 끝내며…… 금강은 꼭 쓰고 싶은 소설이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했을 때 심중에는 현대사를 아우를 대하장편소설이 화석으로 간직되어 있었다. 기회라는 것은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고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상의 제목은 <백성>이었다. 나는 백성을 쓰고 싶었다. 쓰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대서사소설을 써야 한다는 사명감 이전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의무감은 의무감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전업 작가로 90년대 초부터 2000년까지 10년 동안 많은 원고를 썼다. 오로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손가락에 진물이 나도록 키보드를 두들겼다. 이 책에 나오는 면 소재지인 ‘학산’은 내 고향이다. 나는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당연히 집을 나오면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고, 술잔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지인들이다. 그런데도 한 달에 하루 이틀만 밖에 나올 뿐 집 안에 틀어 박혀서 무조건 글만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한다고 방송이며 신문에서 연일 떠들어대고 있었다. 문득 10년이라는 세월을 까먹어 버리고, 내 생애에서 뚝 떨어져 나가 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초심으로 돌아가서 가제 <백성>을 집필하기로 했다. 하지만 생계형 작가에서 하루 아침에 생업을 뒤로 하고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백성>의 집필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하여, 우선 아웃사이더로 지난 10년간의 글쓰기를 해 온 나로서는 중앙문단에서 인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천문학사에서 2002년 신인상을 받은 장편소설 <하루>는 <백성>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도 농촌이고, 주제도 농민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따라서 <하루>는 이 책 <금강>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장편소설 <하루>는 원고지 1천2백 매 분량으로 쓴 농촌의 하루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 책 <금강>의 배경이 될 <하루>는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은 누군가 나를 위해 그때까지 이 소설의 거리를 남겨 두었다는 점이다. 막상 <금강>을 집필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장애물은 너무나 많았다. 50년대의 생활상이나 물가 등을 고증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과연 어느 출판사가 15권 분량의 장대한 분량의 원고를 활자화하여 서점에 내놓겠느냐는 의구심이 들었다. 더불어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원고를 집필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원고가 있다 하더라도 출간이 되지 않으면 작가 혼자의 글밖에 되지 않는다. 곧 독자를 잃어버린 종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종자가 꽃을 피우게 하는 역할은 출판사의 몫이고, 그 꽃을 감상하는 것은 독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고를 써도 출간을 할 출판사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집필을 미룰 수가 없었다. 그만큼 앞에서 말한 가제 <백성>은 내가 소설가가 되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쓰고 싶은 현대사를 주제로 한 소설은 무슨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심오한 철학이 담길 작품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여, 1950년대 중반부터 밀레니엄 시대의 2000년까지 우리 민족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모산’ 마을은 실제로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은 아니지만 사실적인 지명이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얼굴에 검댕이 묻었는지, 커다란 점이 있는지 흉터가 있는지 거울을 볼 때에만 확인할 수 있다. 거울은 얼굴 표면만 보여주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보여주고 미래까지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5,000년 역사 중에 가장 격동적인 세월이라고 해도 될 만큼 숨 막히던 지난 반세기의 우리 민족은 거울을 볼 틈이 없었다. 거울을 볼 시간에 일을 해야 하고, 거울을 볼 시간에 정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민주화를 꽃피우기 위하여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렇게 반세기를 살아왔으니 이제 거울을 볼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꼭짓점은 선(善)에 있다고 본다. 예술가가 아름다운 까닭도 그들이 지향하는 세계가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착함’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도 그렇다. 무언중에 선을 지향하는 소설을 쓰게 마련이다. 고전소설 <춘항전>이며 <홍길동전>의 주제가 권선징악(勸善懲惡)인 까닭도 그러한 연유일 것이다. <금강>에 등장하는 모산 동네 사람들은 반세기를 살아온 우리의 거울이다. 이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제1권의 ‘모산 사람들의 귀에는’이라는 부분부터, 이 소설의 대단원 막을 내리는 제 15권의 ‘흐뭇하게 웃었다’라는 부분까지 작가의 개입은 철저히 차단하고 모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카메라로 추적만 했다. 이 소설 <금강>이 현대사의 거울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바로 그 점에 있다. 따라서 모산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상도에도 있고, 전라도, 경기도, 강원도 제주도 어느 곳을 가든 모산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 <금강>이 우리 민족의 자화상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 하나 이 소설이 특별한 점은 이 소설을 집필하는 데 있어서 전체적인 아웃라인은 있었지만 세부적인 구성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작가의 힘이 개입된 부분은 1권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정도이다. 그 캐릭터들도 <금강>에서만 볼 수 있는 별나거나 특수한 캐릭터가 아니고, 우리나라 산골의 어느 동네에 가거나 쉽게 볼 수 있는 지극히 전형적이고 평범한 캐릭터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엄격한 의미로 본다면 그 캐릭터마저 작가의 창조물이라고 볼 수 없다. 그저 현실에서 차용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책 1권에서 옥천댁과 박태수는 순간적인 이끌림에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 부분도 작가인 내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장치가 아니다. 더 나아가서 ‘승우’와 ‘인숙’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측도 하지 않았지만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철용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영등포 문래동에 있는 철공소에 취직을 해서 팔을 잃어버리게 되는 사연도, 흑산도로 끌려가는 들례가 민초예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여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는 역사도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지난 12년 동안 <금강>의 자료를 구하고, 현대사를 뒤적이고, 원고지 칸을 채워가면서 전혀 지루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은 나는 작가인 동시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해서 모니터 앞에서 혼자 웃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이를 갈며 분노했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논리적으로 반문할지 모른다. 원고지 100매도 안 되는 단편을 쓰는 데도 플롯이 없으면 불가능한데, 원고지 1만 8천 매가 넘는 분량을 쓰면서 어떻게 손이 가는 대로 쓸 수가 있느냐.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 그 증거로 상규가 월남에 가게 되고, 그 상규가 나중에 고엽제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나, 시훈이 독일에서 탄을 캤던 경험을 살려서 사북에 광부로 가게 된다는 스토리나, 이동하나 고현수가 강남에 땅을 사두어 졸부가 되는 것도 구성에 따른 포석이 아니냐고? 그분들을 위해서 의도하지 않은, 즉 구성하지 않은 스토리가 짜 맞춘 것처럼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답해 줄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집필하기 전에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그중 하나가 당연히 소설적 재미이다. 두 번째는 그 시대의 물가와 문화이다. 세 번째는 정치적 현실이다. 그 세 가지를 철저하게 지켜 나가면서 각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철저하게 몰두하게 되면 저절로 짜 맞춘 것처럼 구성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세세한 점에 대해서는 <금강>에 나오는 등장인물 누구든지 샘플로 찾아내서 생애를 추적해보면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로서 이 책 <금강>을 여타 소설과 소설작법적인 측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는 많다. 그 중에서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는 점을 특별히 앞세우고 싶다. 모산 마을 전체,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 그 자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인 까닭이다. 그리고 정치적이나, 사회사적으로 어느 한쪽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하게 제삼자 입장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 책의 원고는 지난 12년 동안 굴곡의 세월을 보냈다. 1권은 “놉”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의 빛을 보기도 했고, 출판사를 찾지 못해 몇 번이나 중도에 집필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금강>의 생명줄을 놓지 않은 것은 소설가라면 반드시 써야 할 주제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강>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낀 점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말이다. 그 길에서 내 손을 잡고 동행을 해 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더불어 <금강>의 결실을 맺게 해 주신 글누림출판사의 이태곤 편집장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또한 <금강>의 날개를 달아 주신 글누림출판사 최종숙 대표에게도 두 손을 꼭 잡고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금강 6

12년의 여정을 끝내며…… 금강은 꼭 쓰고 싶은 소설이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했을 때 심중에는 현대사를 아우를 대하장편소설이 화석으로 간직되어 있었다. 기회라는 것은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고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상의 제목은 <백성>이었다. 나는 백성을 쓰고 싶었다. 쓰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대서사소설을 써야 한다는 사명감 이전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의무감은 의무감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전업 작가로 90년대 초부터 2000년까지 10년 동안 많은 원고를 썼다. 오로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손가락에 진물이 나도록 키보드를 두들겼다. 이 책에 나오는 면 소재지인 ‘학산’은 내 고향이다. 나는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당연히 집을 나오면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고, 술잔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지인들이다. 그런데도 한 달에 하루 이틀만 밖에 나올 뿐 집 안에 틀어 박혀서 무조건 글만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한다고 방송이며 신문에서 연일 떠들어대고 있었다. 문득 10년이라는 세월을 까먹어 버리고, 내 생애에서 뚝 떨어져 나가 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초심으로 돌아가서 가제 <백성>을 집필하기로 했다. 하지만 생계형 작가에서 하루 아침에 생업을 뒤로 하고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백성>의 집필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하여, 우선 아웃사이더로 지난 10년간의 글쓰기를 해 온 나로서는 중앙문단에서 인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천문학사에서 2002년 신인상을 받은 장편소설 <하루>는 <백성>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도 농촌이고, 주제도 농민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따라서 <하루>는 이 책 <금강>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장편소설 <하루>는 원고지 1천2백 매 분량으로 쓴 농촌의 하루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 책 <금강>의 배경이 될 <하루>는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은 누군가 나를 위해 그때까지 이 소설의 거리를 남겨 두었다는 점이다. 막상 <금강>을 집필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장애물은 너무나 많았다. 50년대의 생활상이나 물가 등을 고증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과연 어느 출판사가 15권 분량의 장대한 분량의 원고를 활자화하여 서점에 내놓겠느냐는 의구심이 들었다. 더불어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원고를 집필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원고가 있다 하더라도 출간이 되지 않으면 작가 혼자의 글밖에 되지 않는다. 곧 독자를 잃어버린 종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종자가 꽃을 피우게 하는 역할은 출판사의 몫이고, 그 꽃을 감상하는 것은 독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고를 써도 출간을 할 출판사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집필을 미룰 수가 없었다. 그만큼 앞에서 말한 가제 <백성>은 내가 소설가가 되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쓰고 싶은 현대사를 주제로 한 소설은 무슨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심오한 철학이 담길 작품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여, 1950년대 중반부터 밀레니엄 시대의 2000년까지 우리 민족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모산’ 마을은 실제로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은 아니지만 사실적인 지명이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얼굴에 검댕이 묻었는지, 커다란 점이 있는지 흉터가 있는지 거울을 볼 때에만 확인할 수 있다. 거울은 얼굴 표면만 보여주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보여주고 미래까지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5,000년 역사 중에 가장 격동적인 세월이라고 해도 될 만큼 숨 막히던 지난 반세기의 우리 민족은 거울을 볼 틈이 없었다. 거울을 볼 시간에 일을 해야 하고, 거울을 볼 시간에 정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민주화를 꽃피우기 위하여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렇게 반세기를 살아왔으니 이제 거울을 볼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꼭짓점은 선(善)에 있다고 본다. 예술가가 아름다운 까닭도 그들이 지향하는 세계가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착함’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도 그렇다. 무언중에 선을 지향하는 소설을 쓰게 마련이다. 고전소설 <춘항전>이며 <홍길동전>의 주제가 권선징악(勸善懲惡)인 까닭도 그러한 연유일 것이다. <금강>에 등장하는 모산 동네 사람들은 반세기를 살아온 우리의 거울이다. 이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제1권의 ‘모산 사람들의 귀에는’이라는 부분부터, 이 소설의 대단원 막을 내리는 제 15권의 ‘흐뭇하게 웃었다’라는 부분까지 작가의 개입은 철저히 차단하고 모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카메라로 추적만 했다. 이 소설 <금강>이 현대사의 거울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바로 그 점에 있다. 따라서 모산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상도에도 있고, 전라도, 경기도, 강원도 제주도 어느 곳을 가든 모산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 <금강>이 우리 민족의 자화상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 하나 이 소설이 특별한 점은 이 소설을 집필하는 데 있어서 전체적인 아웃라인은 있었지만 세부적인 구성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작가의 힘이 개입된 부분은 1권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정도이다. 그 캐릭터들도 <금강>에서만 볼 수 있는 별나거나 특수한 캐릭터가 아니고, 우리나라 산골의 어느 동네에 가거나 쉽게 볼 수 있는 지극히 전형적이고 평범한 캐릭터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엄격한 의미로 본다면 그 캐릭터마저 작가의 창조물이라고 볼 수 없다. 그저 현실에서 차용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책 1권에서 옥천댁과 박태수는 순간적인 이끌림에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 부분도 작가인 내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장치가 아니다. 더 나아가서 ‘승우’와 ‘인숙’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측도 하지 않았지만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철용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영등포 문래동에 있는 철공소에 취직을 해서 팔을 잃어버리게 되는 사연도, 흑산도로 끌려가는 들례가 민초예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여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는 역사도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지난 12년 동안 <금강>의 자료를 구하고, 현대사를 뒤적이고, 원고지 칸을 채워가면서 전혀 지루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은 나는 작가인 동시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해서 모니터 앞에서 혼자 웃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이를 갈며 분노했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논리적으로 반문할지 모른다. 원고지 100매도 안 되는 단편을 쓰는 데도 플롯이 없으면 불가능한데, 원고지 1만 8천 매가 넘는 분량을 쓰면서 어떻게 손이 가는 대로 쓸 수가 있느냐.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 그 증거로 상규가 월남에 가게 되고, 그 상규가 나중에 고엽제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나, 시훈이 독일에서 탄을 캤던 경험을 살려서 사북에 광부로 가게 된다는 스토리나, 이동하나 고현수가 강남에 땅을 사두어 졸부가 되는 것도 구성에 따른 포석이 아니냐고? 그분들을 위해서 의도하지 않은, 즉 구성하지 않은 스토리가 짜 맞춘 것처럼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답해 줄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집필하기 전에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그중 하나가 당연히 소설적 재미이다. 두 번째는 그 시대의 물가와 문화이다. 세 번째는 정치적 현실이다. 그 세 가지를 철저하게 지켜 나가면서 각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철저하게 몰두하게 되면 저절로 짜 맞춘 것처럼 구성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세세한 점에 대해서는 <금강>에 나오는 등장인물 누구든지 샘플로 찾아내서 생애를 추적해보면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로서 이 책 <금강>을 여타 소설과 소설작법적인 측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는 많다. 그 중에서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는 점을 특별히 앞세우고 싶다. 모산 마을 전체,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 그 자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인 까닭이다. 그리고 정치적이나, 사회사적으로 어느 한쪽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하게 제삼자 입장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 책의 원고는 지난 12년 동안 굴곡의 세월을 보냈다. 1권은 “놉”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의 빛을 보기도 했고, 출판사를 찾지 못해 몇 번이나 중도에 집필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금강>의 생명줄을 놓지 않은 것은 소설가라면 반드시 써야 할 주제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강>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낀 점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말이다. 그 길에서 내 손을 잡고 동행을 해 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더불어 <금강>의 결실을 맺게 해 주신 글누림출판사의 이태곤 편집장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또한 <금강>의 날개를 달아 주신 글누림출판사 최종숙 대표에게도 두 손을 꼭 잡고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금강 7

12년의 여정을 끝내며…… 금강은 꼭 쓰고 싶은 소설이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했을 때 심중에는 현대사를 아우를 대하장편소설이 화석으로 간직되어 있었다. 기회라는 것은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고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상의 제목은 <백성>이었다. 나는 백성을 쓰고 싶었다. 쓰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대서사소설을 써야 한다는 사명감 이전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의무감은 의무감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전업 작가로 90년대 초부터 2000년까지 10년 동안 많은 원고를 썼다. 오로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손가락에 진물이 나도록 키보드를 두들겼다. 이 책에 나오는 면 소재지인 ‘학산’은 내 고향이다. 나는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당연히 집을 나오면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고, 술잔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지인들이다. 그런데도 한 달에 하루 이틀만 밖에 나올 뿐 집 안에 틀어 박혀서 무조건 글만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한다고 방송이며 신문에서 연일 떠들어대고 있었다. 문득 10년이라는 세월을 까먹어 버리고, 내 생애에서 뚝 떨어져 나가 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초심으로 돌아가서 가제 <백성>을 집필하기로 했다. 하지만 생계형 작가에서 하루 아침에 생업을 뒤로 하고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백성>의 집필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하여, 우선 아웃사이더로 지난 10년간의 글쓰기를 해 온 나로서는 중앙문단에서 인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천문학사에서 2002년 신인상을 받은 장편소설 <하루>는 <백성>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도 농촌이고, 주제도 농민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따라서 <하루>는 이 책 <금강>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장편소설 <하루>는 원고지 1천2백 매 분량으로 쓴 농촌의 하루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 책 <금강>의 배경이 될 <하루>는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은 누군가 나를 위해 그때까지 이 소설의 거리를 남겨 두었다는 점이다. 막상 <금강>을 집필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장애물은 너무나 많았다. 50년대의 생활상이나 물가 등을 고증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과연 어느 출판사가 15권 분량의 장대한 분량의 원고를 활자화하여 서점에 내놓겠느냐는 의구심이 들었다. 더불어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원고를 집필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원고가 있다 하더라도 출간이 되지 않으면 작가 혼자의 글밖에 되지 않는다. 곧 독자를 잃어버린 종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종자가 꽃을 피우게 하는 역할은 출판사의 몫이고, 그 꽃을 감상하는 것은 독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고를 써도 출간을 할 출판사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집필을 미룰 수가 없었다. 그만큼 앞에서 말한 가제 <백성>은 내가 소설가가 되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쓰고 싶은 현대사를 주제로 한 소설은 무슨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심오한 철학이 담길 작품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여, 1950년대 중반부터 밀레니엄 시대의 2000년까지 우리 민족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모산’ 마을은 실제로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은 아니지만 사실적인 지명이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얼굴에 검댕이 묻었는지, 커다란 점이 있는지 흉터가 있는지 거울을 볼 때에만 확인할 수 있다. 거울은 얼굴 표면만 보여주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보여주고 미래까지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5,000년 역사 중에 가장 격동적인 세월이라고 해도 될 만큼 숨 막히던 지난 반세기의 우리 민족은 거울을 볼 틈이 없었다. 거울을 볼 시간에 일을 해야 하고, 거울을 볼 시간에 정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민주화를 꽃피우기 위하여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렇게 반세기를 살아왔으니 이제 거울을 볼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꼭짓점은 선(善)에 있다고 본다. 예술가가 아름다운 까닭도 그들이 지향하는 세계가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착함’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도 그렇다. 무언중에 선을 지향하는 소설을 쓰게 마련이다. 고전소설 <춘항전>이며 <홍길동전>의 주제가 권선징악(勸善懲惡)인 까닭도 그러한 연유일 것이다. <금강>에 등장하는 모산 동네 사람들은 반세기를 살아온 우리의 거울이다. 이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제1권의 ‘모산 사람들의 귀에는’이라는 부분부터, 이 소설의 대단원 막을 내리는 제 15권의 ‘흐뭇하게 웃었다’라는 부분까지 작가의 개입은 철저히 차단하고 모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카메라로 추적만 했다. 이 소설 <금강>이 현대사의 거울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바로 그 점에 있다. 따라서 모산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상도에도 있고, 전라도, 경기도, 강원도 제주도 어느 곳을 가든 모산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 <금강>이 우리 민족의 자화상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 하나 이 소설이 특별한 점은 이 소설을 집필하는 데 있어서 전체적인 아웃라인은 있었지만 세부적인 구성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작가의 힘이 개입된 부분은 1권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정도이다. 그 캐릭터들도 <금강>에서만 볼 수 있는 별나거나 특수한 캐릭터가 아니고, 우리나라 산골의 어느 동네에 가거나 쉽게 볼 수 있는 지극히 전형적이고 평범한 캐릭터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엄격한 의미로 본다면 그 캐릭터마저 작가의 창조물이라고 볼 수 없다. 그저 현실에서 차용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책 1권에서 옥천댁과 박태수는 순간적인 이끌림에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 부분도 작가인 내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장치가 아니다. 더 나아가서 ‘승우’와 ‘인숙’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측도 하지 않았지만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철용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영등포 문래동에 있는 철공소에 취직을 해서 팔을 잃어버리게 되는 사연도, 흑산도로 끌려가는 들례가 민초예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여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는 역사도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지난 12년 동안 <금강>의 자료를 구하고, 현대사를 뒤적이고, 원고지 칸을 채워가면서 전혀 지루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은 나는 작가인 동시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해서 모니터 앞에서 혼자 웃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이를 갈며 분노했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논리적으로 반문할지 모른다. 원고지 100매도 안 되는 단편을 쓰는 데도 플롯이 없으면 불가능한데, 원고지 1만 8천 매가 넘는 분량을 쓰면서 어떻게 손이 가는 대로 쓸 수가 있느냐.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 그 증거로 상규가 월남에 가게 되고, 그 상규가 나중에 고엽제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나, 시훈이 독일에서 탄을 캤던 경험을 살려서 사북에 광부로 가게 된다는 스토리나, 이동하나 고현수가 강남에 땅을 사두어 졸부가 되는 것도 구성에 따른 포석이 아니냐고? 그분들을 위해서 의도하지 않은, 즉 구성하지 않은 스토리가 짜 맞춘 것처럼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답해 줄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집필하기 전에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그중 하나가 당연히 소설적 재미이다. 두 번째는 그 시대의 물가와 문화이다. 세 번째는 정치적 현실이다. 그 세 가지를 철저하게 지켜 나가면서 각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철저하게 몰두하게 되면 저절로 짜 맞춘 것처럼 구성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세세한 점에 대해서는 <금강>에 나오는 등장인물 누구든지 샘플로 찾아내서 생애를 추적해보면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로서 이 책 <금강>을 여타 소설과 소설작법적인 측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는 많다. 그 중에서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는 점을 특별히 앞세우고 싶다. 모산 마을 전체,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 그 자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인 까닭이다. 그리고 정치적이나, 사회사적으로 어느 한쪽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하게 제삼자 입장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 책의 원고는 지난 12년 동안 굴곡의 세월을 보냈다. 1권은 “놉”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의 빛을 보기도 했고, 출판사를 찾지 못해 몇 번이나 중도에 집필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금강>의 생명줄을 놓지 않은 것은 소설가라면 반드시 써야 할 주제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강>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낀 점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말이다. 그 길에서 내 손을 잡고 동행을 해 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더불어 <금강>의 결실을 맺게 해 주신 글누림출판사의 이태곤 편집장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또한 <금강>의 날개를 달아 주신 글누림출판사 최종숙 대표에게도 두 손을 꼭 잡고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금강 8

12년의 여정을 끝내며…… 금강은 꼭 쓰고 싶은 소설이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했을 때 심중에는 현대사를 아우를 대하장편소설이 화석으로 간직되어 있었다. 기회라는 것은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고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상의 제목은 <백성>이었다. 나는 백성을 쓰고 싶었다. 쓰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대서사소설을 써야 한다는 사명감 이전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의무감은 의무감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전업 작가로 90년대 초부터 2000년까지 10년 동안 많은 원고를 썼다. 오로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손가락에 진물이 나도록 키보드를 두들겼다. 이 책에 나오는 면 소재지인 ‘학산’은 내 고향이다. 나는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당연히 집을 나오면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고, 술잔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지인들이다. 그런데도 한 달에 하루 이틀만 밖에 나올 뿐 집 안에 틀어 박혀서 무조건 글만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한다고 방송이며 신문에서 연일 떠들어대고 있었다. 문득 10년이라는 세월을 까먹어 버리고, 내 생애에서 뚝 떨어져 나가 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초심으로 돌아가서 가제 <백성>을 집필하기로 했다. 하지만 생계형 작가에서 하루 아침에 생업을 뒤로 하고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백성>의 집필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하여, 우선 아웃사이더로 지난 10년간의 글쓰기를 해 온 나로서는 중앙문단에서 인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천문학사에서 2002년 신인상을 받은 장편소설 <하루>는 <백성>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도 농촌이고, 주제도 농민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따라서 <하루>는 이 책 <금강>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장편소설 <하루>는 원고지 1천2백 매 분량으로 쓴 농촌의 하루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 책 <금강>의 배경이 될 <하루>는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은 누군가 나를 위해 그때까지 이 소설의 거리를 남겨 두었다는 점이다. 막상 <금강>을 집필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장애물은 너무나 많았다. 50년대의 생활상이나 물가 등을 고증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과연 어느 출판사가 15권 분량의 장대한 분량의 원고를 활자화하여 서점에 내놓겠느냐는 의구심이 들었다. 더불어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원고를 집필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원고가 있다 하더라도 출간이 되지 않으면 작가 혼자의 글밖에 되지 않는다. 곧 독자를 잃어버린 종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종자가 꽃을 피우게 하는 역할은 출판사의 몫이고, 그 꽃을 감상하는 것은 독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고를 써도 출간을 할 출판사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집필을 미룰 수가 없었다. 그만큼 앞에서 말한 가제 <백성>은 내가 소설가가 되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쓰고 싶은 현대사를 주제로 한 소설은 무슨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심오한 철학이 담길 작품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여, 1950년대 중반부터 밀레니엄 시대의 2000년까지 우리 민족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모산’ 마을은 실제로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은 아니지만 사실적인 지명이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얼굴에 검댕이 묻었는지, 커다란 점이 있는지 흉터가 있는지 거울을 볼 때에만 확인할 수 있다. 거울은 얼굴 표면만 보여주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보여주고 미래까지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5,000년 역사 중에 가장 격동적인 세월이라고 해도 될 만큼 숨 막히던 지난 반세기의 우리 민족은 거울을 볼 틈이 없었다. 거울을 볼 시간에 일을 해야 하고, 거울을 볼 시간에 정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민주화를 꽃피우기 위하여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렇게 반세기를 살아왔으니 이제 거울을 볼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꼭짓점은 선(善)에 있다고 본다. 예술가가 아름다운 까닭도 그들이 지향하는 세계가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착함’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도 그렇다. 무언중에 선을 지향하는 소설을 쓰게 마련이다. 고전소설 <춘항전>이며 <홍길동전>의 주제가 권선징악(勸善懲惡)인 까닭도 그러한 연유일 것이다. <금강>에 등장하는 모산 동네 사람들은 반세기를 살아온 우리의 거울이다. 이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제1권의 ‘모산 사람들의 귀에는’이라는 부분부터, 이 소설의 대단원 막을 내리는 제 15권의 ‘흐뭇하게 웃었다’라는 부분까지 작가의 개입은 철저히 차단하고 모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카메라로 추적만 했다. 이 소설 <금강>이 현대사의 거울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바로 그 점에 있다. 따라서 모산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상도에도 있고, 전라도, 경기도, 강원도 제주도 어느 곳을 가든 모산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 <금강>이 우리 민족의 자화상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 하나 이 소설이 특별한 점은 이 소설을 집필하는 데 있어서 전체적인 아웃라인은 있었지만 세부적인 구성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작가의 힘이 개입된 부분은 1권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정도이다. 그 캐릭터들도 <금강>에서만 볼 수 있는 별나거나 특수한 캐릭터가 아니고, 우리나라 산골의 어느 동네에 가거나 쉽게 볼 수 있는 지극히 전형적이고 평범한 캐릭터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엄격한 의미로 본다면 그 캐릭터마저 작가의 창조물이라고 볼 수 없다. 그저 현실에서 차용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책 1권에서 옥천댁과 박태수는 순간적인 이끌림에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 부분도 작가인 내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장치가 아니다. 더 나아가서 ‘승우’와 ‘인숙’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측도 하지 않았지만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철용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영등포 문래동에 있는 철공소에 취직을 해서 팔을 잃어버리게 되는 사연도, 흑산도로 끌려가는 들례가 민초예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여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는 역사도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지난 12년 동안 <금강>의 자료를 구하고, 현대사를 뒤적이고, 원고지 칸을 채워가면서 전혀 지루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은 나는 작가인 동시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해서 모니터 앞에서 혼자 웃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이를 갈며 분노했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논리적으로 반문할지 모른다. 원고지 100매도 안 되는 단편을 쓰는 데도 플롯이 없으면 불가능한데, 원고지 1만 8천 매가 넘는 분량을 쓰면서 어떻게 손이 가는 대로 쓸 수가 있느냐.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 그 증거로 상규가 월남에 가게 되고, 그 상규가 나중에 고엽제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나, 시훈이 독일에서 탄을 캤던 경험을 살려서 사북에 광부로 가게 된다는 스토리나, 이동하나 고현수가 강남에 땅을 사두어 졸부가 되는 것도 구성에 따른 포석이 아니냐고? 그분들을 위해서 의도하지 않은, 즉 구성하지 않은 스토리가 짜 맞춘 것처럼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답해 줄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집필하기 전에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그중 하나가 당연히 소설적 재미이다. 두 번째는 그 시대의 물가와 문화이다. 세 번째는 정치적 현실이다. 그 세 가지를 철저하게 지켜 나가면서 각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철저하게 몰두하게 되면 저절로 짜 맞춘 것처럼 구성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세세한 점에 대해서는 <금강>에 나오는 등장인물 누구든지 샘플로 찾아내서 생애를 추적해보면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로서 이 책 <금강>을 여타 소설과 소설작법적인 측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는 많다. 그 중에서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는 점을 특별히 앞세우고 싶다. 모산 마을 전체,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 그 자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인 까닭이다. 그리고 정치적이나, 사회사적으로 어느 한쪽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하게 제삼자 입장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 책의 원고는 지난 12년 동안 굴곡의 세월을 보냈다. 1권은 “놉”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의 빛을 보기도 했고, 출판사를 찾지 못해 몇 번이나 중도에 집필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금강>의 생명줄을 놓지 않은 것은 소설가라면 반드시 써야 할 주제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강>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낀 점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말이다. 그 길에서 내 손을 잡고 동행을 해 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더불어 <금강>의 결실을 맺게 해 주신 글누림출판사의 이태곤 편집장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또한 <금강>의 날개를 달아 주신 글누림출판사 최종숙 대표에게도 두 손을 꼭 잡고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금강 9

12년의 여정을 끝내며…… 금강은 꼭 쓰고 싶은 소설이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했을 때 심중에는 현대사를 아우를 대하장편소설이 화석으로 간직되어 있었다. 기회라는 것은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고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상의 제목은 <백성>이었다. 나는 백성을 쓰고 싶었다. 쓰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대서사소설을 써야 한다는 사명감 이전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의무감은 의무감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전업 작가로 90년대 초부터 2000년까지 10년 동안 많은 원고를 썼다. 오로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손가락에 진물이 나도록 키보드를 두들겼다. 이 책에 나오는 면 소재지인 ‘학산’은 내 고향이다. 나는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당연히 집을 나오면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고, 술잔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지인들이다. 그런데도 한 달에 하루 이틀만 밖에 나올 뿐 집 안에 틀어 박혀서 무조건 글만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한다고 방송이며 신문에서 연일 떠들어대고 있었다. 문득 10년이라는 세월을 까먹어 버리고, 내 생애에서 뚝 떨어져 나가 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초심으로 돌아가서 가제 <백성>을 집필하기로 했다. 하지만 생계형 작가에서 하루 아침에 생업을 뒤로 하고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백성>의 집필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하여, 우선 아웃사이더로 지난 10년간의 글쓰기를 해 온 나로서는 중앙문단에서 인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천문학사에서 2002년 신인상을 받은 장편소설 <하루>는 <백성>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도 농촌이고, 주제도 농민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따라서 <하루>는 이 책 <금강>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장편소설 <하루>는 원고지 1천2백 매 분량으로 쓴 농촌의 하루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 책 <금강>의 배경이 될 <하루>는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은 누군가 나를 위해 그때까지 이 소설의 거리를 남겨 두었다는 점이다. 막상 <금강>을 집필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장애물은 너무나 많았다. 50년대의 생활상이나 물가 등을 고증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과연 어느 출판사가 15권 분량의 장대한 분량의 원고를 활자화하여 서점에 내놓겠느냐는 의구심이 들었다. 더불어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현대사를 아우를 만한 원고를 집필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원고가 있다 하더라도 출간이 되지 않으면 작가 혼자의 글밖에 되지 않는다. 곧 독자를 잃어버린 종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종자가 꽃을 피우게 하는 역할은 출판사의 몫이고, 그 꽃을 감상하는 것은 독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고를 써도 출간을 할 출판사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집필을 미룰 수가 없었다. 그만큼 앞에서 말한 가제 <백성>은 내가 소설가가 되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쓰고 싶은 현대사를 주제로 한 소설은 무슨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심오한 철학이 담길 작품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여, 1950년대 중반부터 밀레니엄 시대의 2000년까지 우리 민족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모산’ 마을은 실제로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은 아니지만 사실적인 지명이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얼굴에 검댕이 묻었는지, 커다란 점이 있는지 흉터가 있는지 거울을 볼 때에만 확인할 수 있다. 거울은 얼굴 표면만 보여주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보여주고 미래까지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5,000년 역사 중에 가장 격동적인 세월이라고 해도 될 만큼 숨 막히던 지난 반세기의 우리 민족은 거울을 볼 틈이 없었다. 거울을 볼 시간에 일을 해야 하고, 거울을 볼 시간에 정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민주화를 꽃피우기 위하여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렇게 반세기를 살아왔으니 이제 거울을 볼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꼭짓점은 선(善)에 있다고 본다. 예술가가 아름다운 까닭도 그들이 지향하는 세계가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착함’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도 그렇다. 무언중에 선을 지향하는 소설을 쓰게 마련이다. 고전소설 <춘항전>이며 <홍길동전>의 주제가 권선징악(勸善懲惡)인 까닭도 그러한 연유일 것이다. <금강>에 등장하는 모산 동네 사람들은 반세기를 살아온 우리의 거울이다. 이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제1권의 ‘모산 사람들의 귀에는’이라는 부분부터, 이 소설의 대단원 막을 내리는 제 15권의 ‘흐뭇하게 웃었다’라는 부분까지 작가의 개입은 철저히 차단하고 모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카메라로 추적만 했다. 이 소설 <금강>이 현대사의 거울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바로 그 점에 있다. 따라서 모산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상도에도 있고, 전라도, 경기도, 강원도 제주도 어느 곳을 가든 모산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 <금강>이 우리 민족의 자화상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 하나 이 소설이 특별한 점은 이 소설을 집필하는 데 있어서 전체적인 아웃라인은 있었지만 세부적인 구성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작가의 힘이 개입된 부분은 1권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정도이다. 그 캐릭터들도 <금강>에서만 볼 수 있는 별나거나 특수한 캐릭터가 아니고, 우리나라 산골의 어느 동네에 가거나 쉽게 볼 수 있는 지극히 전형적이고 평범한 캐릭터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엄격한 의미로 본다면 그 캐릭터마저 작가의 창조물이라고 볼 수 없다. 그저 현실에서 차용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책 1권에서 옥천댁과 박태수는 순간적인 이끌림에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 부분도 작가인 내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장치가 아니다. 더 나아가서 ‘승우’와 ‘인숙’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측도 하지 않았지만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철용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영등포 문래동에 있는 철공소에 취직을 해서 팔을 잃어버리게 되는 사연도, 흑산도로 끌려가는 들례가 민초예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여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는 역사도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지난 12년 동안 <금강>의 자료를 구하고, 현대사를 뒤적이고, 원고지 칸을 채워가면서 전혀 지루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은 나는 작가인 동시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해서 모니터 앞에서 혼자 웃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이를 갈며 분노했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논리적으로 반문할지 모른다. 원고지 100매도 안 되는 단편을 쓰는 데도 플롯이 없으면 불가능한데, 원고지 1만 8천 매가 넘는 분량을 쓰면서 어떻게 손이 가는 대로 쓸 수가 있느냐.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 그 증거로 상규가 월남에 가게 되고, 그 상규가 나중에 고엽제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나, 시훈이 독일에서 탄을 캤던 경험을 살려서 사북에 광부로 가게 된다는 스토리나, 이동하나 고현수가 강남에 땅을 사두어 졸부가 되는 것도 구성에 따른 포석이 아니냐고? 그분들을 위해서 의도하지 않은, 즉 구성하지 않은 스토리가 짜 맞춘 것처럼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답해 줄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집필하기 전에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그중 하나가 당연히 소설적 재미이다. 두 번째는 그 시대의 물가와 문화이다. 세 번째는 정치적 현실이다. 그 세 가지를 철저하게 지켜 나가면서 각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철저하게 몰두하게 되면 저절로 짜 맞춘 것처럼 구성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세세한 점에 대해서는 <금강>에 나오는 등장인물 누구든지 샘플로 찾아내서 생애를 추적해보면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로서 이 책 <금강>을 여타 소설과 소설작법적인 측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는 많다. 그 중에서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는 점을 특별히 앞세우고 싶다. 모산 마을 전체,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 그 자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인 까닭이다. 그리고 정치적이나, 사회사적으로 어느 한쪽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하게 제삼자 입장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 책의 원고는 지난 12년 동안 굴곡의 세월을 보냈다. 1권은 “놉”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의 빛을 보기도 했고, 출판사를 찾지 못해 몇 번이나 중도에 집필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금강>의 생명줄을 놓지 않은 것은 소설가라면 반드시 써야 할 주제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강>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낀 점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말이다. 그 길에서 내 손을 잡고 동행을 해 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더불어 <금강>의 결실을 맺게 해 주신 글누림출판사의 이태곤 편집장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또한 <금강>의 날개를 달아 주신 글누림출판사 최종숙 대표에게도 두 손을 꼭 잡고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백수 블루스

바람에게 부치는 편지 아무 것도 아닌 이 계절에 한 권의 시집을 펼치면서 바람의 품을 펼쳐 놓고 이 편지를 씁니다. 시를 쓴다는 것에 인생의 무게를 두고 싶지는 않지만 가끔은 시를 쓰지 않고는 못 견디도록 가슴이 아플 때는 있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이 내게 어떠한 꽃으로 다가 오는지 혹은 그리움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신비스러운 명약으로 내면에 삼켜지는지는 모릅니다. 그저 시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시를 씁니다. 돌이켜 보면 내 젊음의 페이지, 이십오 페이지는 온통 시로 얼룩져 있습니다. 강원도 삼척군 장성읍의 외딴 방에서 한겨울을 보낼 때, 밤을 새워 내리는 눈이 무너져 방 앞에 있는 구두를 묻어 버리던 그날 밤, 캡틴큐 병을 들고 재봉틀 의자에 올라서서 수채화 붓으로 천장에 시를 썼습니다. 아니 그때는 그것이 시인 줄은 몰랐습니다. 검은 석탄으로 가슴을 짓눌러 버리는 우울하고, 절망스러운 날들. 왜 내가 우울하고 삶에 절망하고 있는지 그 이유조차 모르고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오토바이로 달리며 우우우! 괴성을 질러대던, 그해 여름밤에 아스팔트 길에 뿌린 눈물의 이유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저 가슴이 답답해지는 날이면 수채화 붓으로 벽이며 천장에 그때의 기분을 표출시켰습니다. 훨씬 나중에 본격적으로 시를 배우고, 시의 성질을 알게 되고, 시의 위대성과 간사함, 시의 영혼을 알고 나서, 그 해 겨울밤 천장에 휘갈겨 쓴 절망, 고독, 외로움, 슬픔, 눈물, 그리움들이 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는 제게 있어서 동행인입니다. 25년째 소설을 쓰고 있으면서도 시를 잊지 못하는 이유 또한 시는 제 그림자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햇볕이 없을 때는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을까요? 사막을 외롭고 힘들게 걸어 갈 때는 동행을 하지만, 밤에는 영혼과 하나가 되기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삶에 지쳐 있을 때, 기다림이 무기력해 졌을 때, 이른 새벽 컴퓨터 앞에 앉아서 소설이 써지지 않을 때, 먼 하늘을 바라보다 까닭 없이 눈물이 날 때, 시는 저와 함께 하고 싶어서 제 가슴을 짓누르는 것을 느낍니다. 이 시집은 백수들의 시입니다. 누가 백수이고, 누가 명함인지는 아무도 판단을 해주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판단할 권리는 없습니다. 명함이 있다고 해서 백수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는 없고, 백수라고 해서 내일 명함을 가지지 말라는 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는 백수들이 추는 블루스입니다. 혼자서 블루스를 출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춤을 추어야 하는데, 그 누군가는 바로 당신의 꿈일 것입니다. 혹, 백수도 아닌 작가가 어떻게 백수의 심정을 알고 시를 쓰냐고 반문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세상의 진정한 예술가들은 백수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이 한 권의 시집이 나오기까지 힘써 주신 글누림출판사 최종숙 대표님과 이태곤 편집장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묵묵히 동행을 하면서 말없이 내조를 해 주신 아내 김복이 씨와 사랑하는 아들 석영과 용구, 조카 동희와 함께 출간의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2015년 7월

예비작가를 위한 실전 소설 쓰기

내가 소설 작법에 관련된 책을 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사반세기 동안 외길을 걸어온 소설 선배로서 후배들을 위한 그 어떤 사명감 비슷한 책임감 때문은 결코 아니다. 내가 굳이 소설 작법에 관한 책을 내지 않더라도 이미 시중에는 소설 작법에 관한 책이 범람하고 있다. 어느 작법 책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 중인 예비 작가 분들에게 굳이 나까지 작법 책을 한 권 더 출간해 선택의 혼란을 가중시켜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예비 작가를 위한 실전 소설 쓰기』라는 작법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나 역시 문단에 등단을 하기 전에 결코 짧다고는 볼 수 없는 5년여의 습작 기간이 있었다. 습작을 하는 동안 여러 권의 소설 작법에 관한 책을 통독했다. 그 결과 절실히 느낀 점은 소설 작법에 관한 책은 예비 작가들에게 문림의 비서(秘書)와도 같지만 필사의 비서는 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작법 책을 읽을 때는 금방이라도 주옥같은 작품을 쓸 것 같은데,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도무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실하게 느낀 게 왕초보를 위한 책이 한 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고 독학으로 소설을 쓰려는 예비 작가부터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학생까지 모두 공통적으로 느끼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우리 동네 소통령 선거

가을이다. 사람들이 가끔 묻는다. 매일 소설 쓸거리가 생각나느냐고? 나는 대답한다. 매일 소설을 새로 쓰는 것이 아니다. 쓰고 있던 소설을 매일 이어 쓰고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다시 묻는다. 좌우지간 소설 쓸거리가 있으니까 매일 쓰는 거 아니냐? 그럼 나는 그럴지도 모른다고 애매하게 대답한다. 나는 매일 소설을 쓰는 사람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루를 소설 쓰는 걸로 시작을 한다. 그 일은 매일 아침을 먹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입맛을 잃을 정도로 몸이 아프지 않는 이상, 매일 아침을 먹는 건 당연한 현상 아닌가? 살아 있으니까……. 올해로 소설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지 28년째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작은 역사를 이루었다면 대하장편소설 <금강>을 출간했다는 점이다. 28년의 50%에 가까운 12년 6개월이라는 세월을 금강 집필하는데 썼다. 나머지는 늦깎이 공부를 하고, 이런저런 소설을 썼다. 물론 <금강>을 쓰는 동안도 다른 장편소설을 틈틈이 썼다. 편식은 영양실조에 걸리기 쉽다. 글쓰기도 그렇다. <금강>에만 매달려 있다 보면 긴장을 놓칠 우려가 있다. 한두 달 동안 잠깐 다른 곳으로 신경을 써야 팽팽한 긴장을 유지할 수가 있다. 소설의 소재도 그렇다. 어떤 사람은 시종일관 한 우물만 파야 되는 거 아니냐? 예를 들어 어느 작가 이름을 떠올리면 ‘아! 사회비판적인 소설을 쓰시는 분’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나는 잡식성이다. 이 책도 내가 그동안 써 왔던 소설과 전혀 다른 소재를 선택하고 있다. ‘선거’라는 다소 생소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선거’라는 무거운 주제를 블랙코미디로 썼다는 점은 앞서 출간한 <천득이>와 같다. 그러고 보니 등장인물의 캐릭터도 <천득이>에 나오는 인물들과 비슷한 면이 있기는 하다. 나는 글 욕심이 많은 편이다. 지금도 <금강>의 전편에 해당하는, 1900년도부터 1955년까지 근현대를 다룬 소설을 쓰겠다는 욕망을 꼭꼭 감추어 두고 있다. 물론 당장 오늘부터 쓸 수도 있다. 자료도 그만큼 축척해 두었고, 시간 날 때마다 들여다보고 있다. 그런데도 쉽게 첫 장을 쓸 수가 없는 것은, 일단 시작을 하면 끝장을 봐야 한다는 성격 때문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미루어 둘 수는 없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꽃이 핀다, 그때 시작을 하게 될지도 모르고, 함박눈을 바라보며 가제 <백성>의 첫 줄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백성>을 쓸 생각을 하면 즐겁고, 시작을 할 생각을 하면 두렵기도 한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이 책이 잘 팔렸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왜? 이 책이 나오기까지 애를 써 주신 글누림출판사의 최종숙 대표님을 비롯하여 이태곤 편집이사님께 은혜를 갚고 싶다. 더불어 아낌없는 헌신으로 후원을 하고 있는 사랑하는 아내 김미교 님께 ‘나하고 살아 줘서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천득이

금강, 그 긴 여정 뒤에 오는 파란비 대하장편소설 금강(전15권)이 세상의 햇볕을 받은 지는 몇 개월 되지 않는다. 한 권이 아닌 열다섯 권이다. 집필 기간만 해도 12년 6개월이라는 세월이다. 이제 좀 쉴 때가 안 됐느냐는, 한 일이 년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여행이나 다니면서 세월을 보내는 것이 좋지 않으냐고 주변 분들이 말씀을 건넨다. 좋은 말씀이다. 또 그렇게 하고 싶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컴퓨터 앞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지 않고 아침이 되길 기다리며 TV를 보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하지만 나는 금강 5부가 서점에 깔린 그날도 글을 쓰고 있었다. 천성일까? 아집일까? 아니면 근성일까? 때로는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기도 한다. 결론은 그 어느 것도 아니다.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 정답인 것 같다. 글을 써도 세월은 가고, 쓰지 않아도 세월은 간다. 그렇다면 글을 쓰면서 세월을 보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그것이 내 의식이다. 의식이라는 것은 과학처럼 검증이 불가능하다. 세상 사람들의 의식이 제각각이듯이, 내 의식은 작가는 깨어 있는 한 늘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눈앞에 내리는 비는 색깔이 없지만 내 의식 안에 내리는 비는 바다를 닮은 파란색인 것이다. 금강은 아직 평단의 평을 받지 못한 상황이다. 15권이라는 방대한 분량 때문일 것이다. 조급증 걸린 작가처럼 다시 천득이라는 장편소설을 내놓는다는 점이 부끄럽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득이를 출간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힌 것은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천득이는 금강을 집필하는 도중, TV를 시청하다 문득 모티브가 떠올라 빠르게 써 내려간 소설이다. 금강 집필에만 오랜 세월 몰두해 있다 보니, 내 스스로가 과연 글을 잘 쓰고 있는 것인지, 필체가 녹슨 것은 아닌지, 혹은 타성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뇌의 결과가 천득이인 것이다. 결과는 대만족이다. 한 유력한 신문의 문학상 후보작에도 거론이 됐고, 어느 문학상을 받을 기회도 주어졌었다. 그 상을 포기하게 된 것은 행여 금강에 누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제 금강을 위해 희생이 됐던 천득이가 세상의 햇볕을 받을 순서가 된 것이다. 이 책의 출간에 산파 역할을 한 글누림출판사의 최종숙 대표님과 이태곤 편집장에게 감사를 드린다. 늘 묵묵히 뒷바라지를 해주고 있는 아내 김복이 님에게 이 지면을 빌어 당신을 내 숨결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더불어 씩씩하게 제 몫을 다 하고 있는 석영이와 용구, 예쁜 조카 동희에게도 파이팅을 하자고 외치고 싶다. 파이팅! 2015년 4월 어느 날 영동 우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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