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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사인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56년, 대한민국 충청북도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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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꿈속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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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

상 받은 소감 써내라고 득달같이 독촉 오고, 아무 생각도 나지는 않고, 오만 감회가 지나가고, 허, 이거 참, 큰일인데, 기분은 점점 쑥스럽고 얄궂어지고, 그런 끝에 끄적거려 보기를, 이 상을 어떻게 받나 앞으로 받나 뒤로 받나 덥썩 받나 빼며 받나 서서 받나 앉아서 받나 엎어져 받나 자빠져 받나 엉금엉금 기어가서 받나 떼구르르 굴러가서 받나 눈 꾹 감고 받나 눈 딱 부릅뜨고 받나 내려깔고 받나 옆으로 흘기며 받나 얼씨구나 받나 섧디섧게 받나 쩔쩔 매며 받나 시큰둥하게 받나 더질더질, 해본다.

따뜻한 밥 한 그릇

이 책은 '아무것도 아닌' 책일 듯합니다. 생활에 유용한 지식이 담긴 것도 아니고, 정돈된 일가견이 표명되어 있지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별 '쓸모'가 없겠습니다. 그렇다고 그저 허드렛 것일 뿐이라 하자니, 그것도 좀 섭섭할 듯합니다. ... '아무것도 아닌' 글이요, 책인 까닭에 정색을 하고 만든 것들보다 독자들께 부담을 덜 드리는 공덕은 있을 듯하다고 억지 위안을 삼습니다. 별 맛은 없을지라도, 매일 한 그릇씩 따뜻한 밥을 지어올리고자 애쓴 것을 갸륵하게 여겨, 너그럽게 거두어주시기 바랍니다.

밤에 쓰는 편지

개정판 시인의 말 그 시절의 울분과 설움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영영 끝날 것 같지 않던 그 젊은 날이라니. 두려움을 들키지 않으려 얼마나 애썼던가. 옛 시들을 힘겹게 다시 읽으며, 대수롭달 바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밉지도 않았다. ‘노동과 사랑이, 옳음과 아름다움이 어떤 수준에서건 통일되는 자리쯤에 시가 서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회피하지 않으려 딴에는 애썼고, 지금도 그 생각에 큰 변함은 없다. 지렁이 같은 낮은 배밀이로만 그 자리에 이를 수 있다는 확신 같은 것이 더 보태졌을 뿐이다. 구두점을 살렸다. 구두점을 없애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둘 수도 있겠지만, 불필요한 오독의 여지를 줄이는 쪽이 떳떳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역시 지난 연대의 아픔을 다시 읽고 싶지는 않고, 다만 세상에 좀더 평화롭고 따뜻한 일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2020년 10월

밤에 쓰는 편지

초판 시인의 말 부모님의 수연에 맞추어 첫 시집을 낼 수 있다니, 생애에 또 한번 있기 어려운 복이다. 누구에게랄 것 없이 고맙고 고맙다. 유난히도 곡절 많은 삶을 사셨다고 생각되는 분들이어선지 그이들의 갑년을 당하매 자꾸 눈물이 쏟아지려 한다. 뉘 집 자식인들 다를까마는 나는 아버님의 다감하고 다정하심과 어머님의 온화한 가운데 굳으신 성품을 깊이 사랑하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그 성품들로 해서 그분들은 많이 고통받으셨다. 모쪼록 갑년의 기념으로 이 작은 책을 기꺼이 거두어주신다면, 그리하여 그분들의 고단하신 나날에 다소나마 위안으로 삼아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알겠다. 나는 주변의 여러 어른들 그리고 선배 · 동료들의 분을 넘는 사랑과 너그러움에 기대어 오늘 이렇게나마 있다. 나의 게으름과 비재와 어눌함을 그분들은 결벽스럽고 신중한 것이라 감싸주셨고, 심약과 우유부단함을 짐짓 세심하고 정이 많은 것이라고 여겨주셨다. 이 시집만 해도 이영진 · 강형철 · 김형수 세 동료 시인들의 애정 어린 독려와 도움, 수연일에 댈 수 있도록 도무지 가능하지 않을 일을 되게 만드신 김정순 선생님의 배려가 없었다면 꾸려질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오래 그립던 벗 정명교와 한연호 두 분이 바쁜 중에도 열 일을 제치고 마음 한 자락씩을 보태어주셔서 발문과 표지를 갖춘 책 모양이 되니, 나의 주제에 참으로 당치도 않은 복이다. 깊이 감사드린다. 모쪼록 이 못난 시들이 그분들의 뜻에 되도록 적게만 어긋나는 것이기를 빌 따름이다. 시들은 대개 쓰여진 시기의 역순으로 배열했으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대학 시절의 치기 어린 시들 몇을 4부에 포함시켰다. 그것 역시 어쩔 수 없는 한 시절의 분신들이다. 독자들로부터 너무 구박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도 나는 시에 대해 할말이 마땅치 않다. 막연하지만 노동과 사랑이, 옳음과 아름다움이, 희망과 슬픔이 어떤 수준에서건 통일되는 자리쯤에 시가 서야 한다고 더듬거려볼 뿐이다. 그것뿐이다. 1987년 9월 25일

시를 어루만지다

대체로 나는, 시 쓰기는 제 할 말을 위해 말을 잘 ‘사용하는’ 또는 ‘부리는’ 데 있지 않다고 말해왔다. 시공부는 말과 마음을 잘 ‘섬기는’ 데에 있고, 이 삶과 세계를 잘 받들어 치르는 데 있다고 말해왔다. 그러므로 종교와 과학과 시의 뿌리가 다르지 않으며, 시의 기술은 곧 사랑의 기술이요 삶의 기술이라고 말해왔다. 생각건대 쓰기뿐 아니라 읽기 역시 다르지 않아, 사랑이 투입되지 않으면 시는 읽힐 수 없다. 마치 전기를 투입하지 않으면 음반을 들을 수 없는 것처럼. 그러므로 단언하자면 시 쓰기와 똑같은 무게로 시 읽기 역시 진검승부인 것이며, 시를 읽으려는 이라면 앞에 놓인 시의 겉이 ‘진부한 서정시’ 이건 ‘생경한 전위시’ 이건 다만 사랑의 절실성과 삶의 생생함이란 더 깊은 준거 위에서 일이관지(一以貫之)하고자 애쓰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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