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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어린이/유아

이름:김이정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 대한민국 경상북도 안동

최근작
2023년 12월 <푸른색 루비콘>

그 남자의 방

힘든 시기를 지내다보니 내게 문학이 있다는 게,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나는 힘들 때마다 노트북을 들고 도서관으로 가곤했다. 소설을 쓰다보면 세상은, 현실은 어느새 내 몸에서 저만치 떨어져 나가 내 일이 아닌 양 거리감을 갖고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보면 모든 게 가벼워지고 만만해지고 견딜 만해졌다. 가끔씩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 짜릿하기도 했다. 모험의 길을 떠난 돈키호테라도 된듯했다. 문학의, 소설쓰기의 힘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한때 소설을 쓰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노라 큰소리쳤던 나의 오만이 부끄럽기만 했다. 그리하여 이 소설들은 누구보다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써진 것들이다. 쓸 때는 잘 몰랐지만 모아놓고 보니 그 지형이 명백해 보인다. 죽은 노파의 넋을 통해서도, 고독한 장년의 남자를 바라보면서도, 히말라야 계곡의 강바닥을 걸으면서도, 사랑에 빠진 여자, 사랑을 잃은 여자들을 이야기하면서도 나는 결국 세상 누구보다 나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다. 이토록 이기적인 글쓰기라니! 하지만 한편으론 이 보다 더 다행한 일이 없지 않은가 생각한다. 소설이 위로해주지 않았다면 내 삶은 얼마나 더 황량했으랴! 이제 내가 받은 위로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위안으로 전해지길 바란다. 소설을 쓰면서 내가 받은 큰 위로가 이 세상 구석의 어떤 이에게 전해져 작은 위안이라도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도둑게

첫 창작집에 엮일 살붙이들을 이 바다 위에서 떠나 보냅니다. 거칠 것 없는 이곳에서 훨훨 떠나 보낼 수 있어 참 다행입니다. 어쩌면 이곳에서 떠나 보내기 위해 지금까지 붙들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참 오래도 어눌하게 더듬거렸습니다.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요? 서툴고 어리석고 엄살투성이며 좁고 얕으며 가볍고 비틀린 내 모습들이 인도양 햇살 아래에 남김없이 드러나 보입니다. 부끄럽고 또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인도양은 내게 속삭입니다. 외면하지 말라고, 두 눈 부릅뜨고 실오라기 하나 남김없이 떠나 보내라고... 모두 떠나 보내고 나면 자유로워질까요? 모두 텅 비우고 나면 인도양 바다 같은 푸른 물이 다시 차오를까요? 그 물을 양수 삼아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요?

선량하고 무해한 휴일 저녁의 그들

하이엔드 라이프 “오디오를 좋아한다. 때론 음악보다 오디오를 더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어릴 적 집에 있던 진공관 라디오부터 지금 듣고 있는 빈티지 오디오까지, 내가 음악을 들은 기기들을 생각하면 가끔 내 인생 전체를 오디오의 역사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한때 오디오에 빠져 있을 땐 중고 스피커나 튜너, 앰프를 사러 남의 집을 겁 없이 드나들었다. 남자 혼자 있는 집을 방문해 청음을 하고 무거운 스피커를 차에 싣고 오기도 했다. 집에 와서 케이블과 안테나, 잭을 연결하는 것도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전기와 전파에 대한 이해도 없이 그것들을 무사히 연결해 소리가 나기까지의 과정은 늘 어렵고 힘들었다. 간혹 연결이 잘되어 아름다운 음악이 예고도 없이 흘러나올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잘못 연결해서 잡음이 스피커를 찢어버릴 것처럼 쏟아졌다. 그때마다 나는 매뉴얼을 읽지 않는 습관을 탓했다. 찾아보고 읽어보면 될 것을 나는 늘 무턱대고 덤볐다. 대부분 기기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겨우 이해했다. 내겐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감정이 가는 대로 겁 없이 따라가고 나중에 후회했다. 어느 밤, 대리운전 기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집에 도착했는데 주차까지 완벽하게 해주고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에 울컥했다. 힘껏 곧추세운 등뼈들 사이로 매서운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내 모습이었다. 빈티지 오디오가 정이 가듯 남자도 이젠 연민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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