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때 그랬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생각을 품고 산다. 가능성으로서의 나, 지금의 나와는 다르지만 내가 될 수도 있었던 어떤 모습은, 늘 현실의 나와 함께 있는 것 아닐까. 그런 가능성들은 아마도 때로는 안도감과 함께, 더 자주는 후회와 함께 떠오를 것이다. 책을 옮기는 동안 본인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그런 안도감과 후회에 자주 빠졌던 나는,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에서야, 그런 가능성들, 〈다른 나〉라는 어떤 존재를 굳이 과거에서만 찾아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다른 나〉가 갈라져 나올 수 있었다면, 지금의 나에게서도 앞으로 수많은 다른 나들이 뻗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연한 흐름을 독자들도 마침내 알아봐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구나 〈그때 그랬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생각을 품고 산다. 가능성으로서의 나, 지금의 나와는 다르지만 내가 될 수도 있었던 어떤 모습은, 늘 현실의 나와 함께 있는 것 아닐까. 그런 가능성들은 아마도 때로는 안도감과 함께, 더 자주는 후회와 함께 떠오를 것이다. 책을 옮기는 동안 본인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그런 안도감과 후회에 자주 빠졌던 나는,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에서야, 그런 가능성들, 〈다른 나〉라는 어떤 존재를 굳이 과거에서만 찾아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다른 나〉가 갈라져 나올 수 있었다면, 지금의 나에게서도 앞으로 수많은 다른 나들이 뻗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연한 흐름을 독자들도 마침내 알아봐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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