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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에세이

이름:신경숙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3년, 대한민국 전라북도 정읍 (염소자리)

직업:소설가

가족:1999년 <문학동네> 편집위원이자 시인, 문학평론가인 남진우와 결혼하였다.

취미/특기:독서

기타: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데뷔작
1985년 문예중앙 소설 <겨울우화>

최근작
2024년 4월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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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의 한 노천카페. 한적한 미술관 앞에서 신경숙 작가를 만났습니다. 신경숙 작가는 밝고, 쾌활하고 소탈한 모습이었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상상했던 것보다 힘있는 음성이었고, 소설을 읽으며 상상했던 대로 다정한 눈빛을 지녔습니다. 작가 개인의 매력이 전달되도록, 가능한 문장을 덜 다듬고, 최대한 입말을 살려 기록해 봅니다. 끊임없이 울리며 소통을 갈구하는 전화벨에 응답하듯, 신경숙 작가가 풀어놓은 다정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반가운 얼굴, 신경숙 
 

오랜만에 뵙습니다. 연재 이후 책으로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는데,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안부를 여쭙고 싶습니다.

12월 19일 연재가 끝났는데, 겨울 동안 내내 작품을 퇴고하는 게 주 일이었어요. 연재할 때 아침시간이어서, 써놓고 차마 연재 못했던 것들이 많았어요. 더 구체적인, 실물감을 주고 싶어 탈고를 오래 했어요. 없는 내용도 많아지고, 연재했던 것을 빼기도 하고, 그러면서 지냈어요. 사실 책은 3월 쯤, 이른 봄에 내고 싶었는데, 그때까지 작업이 안 끝났어요. 이 원고를 자꾸 더 갖고 있고 싶었어요. 퇴고된 원고를 네 번쯤 넘겼었어요. 에디터들이 애 많이 썼어요. 책이 나오는 순간까지 교정을 계속 했어요.

이쯤에서 다시 기억해보는 어.나.벨 작가의 말 : 이 작품은 육 개월 동안 연재된 원고를 초고 삼아 지난겨울 동안 다시 썼다. 겨울만이 아니다. 봄과 이 초여름 사이…… 아니, 방금 전까지도 계속 쓰고 있었다. 아무래도 인쇄되기 직전까지도 쓰고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책이 나온 후에도. 어째 나는 십 년 후…… 이십 년 후에도 계속 이 작품을 쓰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http://blog.aladdin.co.kr/somewhere )
 

원고를 많이 고쳤는데, 연재할 때 덧글 달던 분들이 필사를 했다고 그래요. 그 분들은 비교하며 보지 않을까 싶어요. 작품 끝나고 나면 좀 작별의 시간이 필요한데, 끝내고서도 연재가 끝났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지금도 계속 하는 느낌이야. 서재에서도 나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는지…. 6개월이 지났는데 그분들이 계속 와요. 그래서 특별히 애착이 있었죠. 뭐라고 부르죠? 연재 덧글러들을? 글을 너무 잘 쓰시고, 독자들? 그래서… 참 좋았어요. 나도 좋고. 처음에는 약간 처음하는 일이라, 조금….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했는데, 나중에는 응원도 받고. 그리고 또 연재하는 동안 참 사회적으로 나쁜 일들이 많았어요. 그때마다 그 공간에서 같이 애도하고. 그랬죠. 덧글러들 이름은 다 외워요. 지금도. 주은맘,리진, 콩쥐맘. 맘이 많았어요. (웃음) 연, 혜연, 미망… (다시 웃음) 리더수. 원주. 그리고 강산무진님, 혜지니(노바디), 진세삼촌, 용민이횽, 하늘을 가진넘, 한여름씨, 바람꽃, 파랑새, 종달새, 빛나는…. (다시 웃음)

 






여기저기서 많이 대답하신 얘기일 텐데, 한번 더 여쭤볼게요. 엄마 이후 ‘청춘’을, 그것도 아프지만 푸른 청춘을 소재로 삼으셨습니다. 이미 여러 번 이야기 된 주제지만 청춘을, 그것도 이 시점에 소재로 택하신 이유를 다시 한 번 듣고 싶습니다.

꼭 이 시점이라 택한 건 아니에요. <엄마> 나오기 전에, 연재를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어요. 책을 내고, 연재를 시작하자고. 항상 마음 속에 네 작품 정도가 있는 것 같아요. 다음 작품이 어떤 작품이 되는지를 보통 항아리로 비교를 해요. 항아리가 넷 정도 있으면 조금씩 이야기를 채워가다 보면 꽉 찬 항아리가 나오겠죠. 그럼 그 꽉 찬 항아리가 다음 작품이 되는 거구요. 연재 시작하기로 하고, 제주도에 은둔을 하려고 갔었어요. 그때 작품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두 이야기가 쌍둥이처럼 붙어 갖고 계속 따라다녔어요. 그러다 이 이야기가 이겼지. 

 

 



쌍둥이처럼 떠오른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였나요?

어느 날 갑자기 앞을 못 보게 된 사람이야기예요. 아마 십 년 전에한 인터뷰에도 나올 것 같은데, 다음 작품은 그 이야기가 나올는지도 모르겠어요. 오래 품고 있던 여러 이야기 중 어머니가 먼저 나왔고, 그 다음이 앞을 못 보게 된 사람 이야기고 그래요. 그런데 자꾸 밀리네요. 나는 과연 그 이야기를 쓸 수 있으려나. 언제? 그런 생각이 들기조차 하네요. 취재 때문에 앞 못 보는 아이들 다니는 학교 책 읽어주는 일도 몇 년 전에 했었고, 맹인 안내견 사육사들도 만나기도 했었고,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못 보게 된 어른이 계셨는데, 그 분 이야기도 많이 나눴었고 그랬거든요. 그 작품이 <엄마> 쓰기 전에부터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연재할 때 그 작품이 되지 않으려나 생각했는데. 이 작품(어.나.벨)이, 지가 끝까지 따라 붙더라구요. 그래서…. 시작했죠.

 


엄마를 얘기하는 작가 된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걸 벗어나고 싶었다는 생각도 했어요. 갑자기 쓴 작품은 아니에요. 후기에 있는 말을 그대로 하면, 20대를 통과해올 때 읽었던 작품들. 10대 후반, 20대 후반에 권유해서 찾거나 해서 읽었던 작품들 있잖아요. 헤세나 지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지와 사랑)>, <데미안> 등등…. 우리나라의 말로 쓰여진, 그런 젊은 청춘을 통과하며 읽는, 읽을 수 있는 작품을 내가 찾았던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 물론 있었겠지만, 그 당시를 통과하던 난 그런 작품을 못 찾고, 그렇게 그 시절이 지나왔어요.

내가 작가가 되어 활발하게 활동을 하던 때에, 90년대 때는 일본 작가들 소설을 많이 읽더라구요. 은근히 맘속으로, 한국어로 쓰여진 젊은이들이 등장하는 그런 작품을 생각해왔던 것 같아요. 르 끌레지오의 “모국어는 작가의 조국”이라는 말처럼, 나의 모국어로 된, 그런 작품이요. 언제나 어떤 시절을 통과해 나가면서… 통과한 후에도 옆에 두고 읽을 수 있는. 그런 청춘 소설. 그런 소설을 써봐야 하겠다. 생각하고 있었고, 그게 이 작품 쓸 때 많이 투사가 됐어요. 여기에 많이, 거의 다 투사가 된 것 같아요. 오래 생각하던 작품이라 퇴고도 더 오래 걸린 것 같구요.

 



 



끝없이 울리는 청춘의 종소리, <어.나.벨> 
 


윤과 명서, 소설 속 주인공들이 경험하는 수많은 상실은, 분명 아프긴 해도 처절하거나 끔찍하다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청춘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청춘의 힘이란 어떤 것인지, 또 청춘은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말이 청춘 소설이지. 어느 층을 겨낭한 동떨어진 소설은 아니에요. 글쎄… 좋은 소설, 훌륭한 소설이라고 내가 느꼈던 소설들, 예를 들면 <안나 카레리나>나 <적과 흑> 같은. 그 이야기 속에 시대가 담겨있고. 연애소설 성격을 띠기도 하면서, 어디에도 갇히지 않는 그런 성격을 가진 소설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물론 성장소설로 읽히는 부분도 있겠죠. 네 사람의 치열한 청춘을 통과해나가는 부분이 있으니.

내 생각은 그래요. 청춘은 모든 것을 가장 치열하게 생각하는 시간인 것 같아요. 사회가 자기에게 던지는 질문에도 그렇고, 개인간에 만남, 사랑은 물론이구요. 거의 전 존재를 걸어서, 그것에 몰두하고 몰입하고. 그런 때가 청춘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걸 통과해오면서, 뭔가 그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튕겨져 나가기도 하고. 그쵸?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주변의 다른 어떤 사람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걸 알차게 밀어내주며,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구요. 이 소설에도 그 두 가지가 다 담겨있다고 생각해요.

상실이라는 감정을 느낄 때 청춘 때처럼 늘 열렬하면 가슴이 터져 죽을 거야. 나를 떠나가고….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기면서 나이를 먹어가는 게 아닌가 생각을 했어요. 20대, 30대를 통과하며 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언젠가”라는 말이 소설에도 중요하게 나오는데, 언젠가… 우리가 생각하고 견디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이 뭔가를 바꿔놓을 것이다. 그런 꿈 같은 얘기를, 꿈이 아닌 그런 얘기를 누가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강렬했던 것 같구요. 소설이나 책도 그래서 많이 더 읽게 됐던 것 같아요. 답을 찾아내려구요. 누군가가 혹은 어느 책이 “언젠가” 지금 이걸 통과해나가면 괜찮아진다. 이런 말 해주길 굉장히 바랐던 것 같애. 그런데 그걸 안 해줬었어요. 다른 사람들도 책도 아무 말도 안 해주니까, 그래서 대신 책을 더 읽고, 그때의 관계에 더 몰두했겠지.

그 시절 내가 받은 느낌들. 그때 마음속으로 일으키던 갈등들, 그런 것들을 치유해주고, 잡아주는 손의 역할을, 이걸 여기에 윤교수를 통해서 했어요. 누가 뭘 바꿔놓진 못하겠지만. 옆에 누군가 있다,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윤교수가 했던 말이 있어요. “모든 것엔 다 끝이 있지만, 하늘의 별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다. 단 하나의 별빛이 돼라.” 청춘에게 그 말을 해주고 싶어요.

음… 또 작품에서는 너무 교훈적으로 흐르는 것 같아서 퇴고하면서 지운 말인데, 30대 중반 지나고 했을 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되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래야, 그러면 많은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이 될 거예요. 사인을 할 때나, 기회가 있을 때 ‘꿈을 이루세요’라고 써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구요. 내가 많이 산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청춘을 통과해 나오고 그래도 얼만큼 뒤를 돌아보는 나이가 된 지금의 느낌이.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게 꿈 가까이에 사는 거죠. 꿈을 이루게 되면. 설령 그 일 때문에 뭐가 잘못되고, 깨지고, 부서지고 그래도 그 실패가 더 힘이 되어주는 것 같애요. 아 이래서 잘 안 됐구나. 다음에는 이걸 이렇게 보완하고, 더 이렇게 해서, 이렇게.. 강건하게 해서, 다시 해봐야겠다. 이렇게 실패를 디딤돌로 삼게 되지만. 자기가 생존을 위해서 그다지 즐거움을 못 느끼거나, 할 수밖에 없어서 하는 일을 하다 실패하면, 그건 좌절을 주죠. 다신 딛고 일어날 힘을 안 줘요. 내가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하는 생각만 들고. 긴 인생을 놓고 볼 땐… 그렇다는 게 내 생각이에요.

그러려면 청춘의 시간을 통과할 때 하고 싶은 일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준비를 해야 되겠지. 여름방학이라든지 시간 날 때 있잖아요. 빈 시간들. 때론 그런 때에 ‘뭘 하지?’ 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준비를 위한 시간으로 썼으면 해요. ‘작가’가 되겠다고 합시다. 그 꿈에 가까이 가는 시간을 만들면, 그게 쌓이고 쌓여서, 가까이에 데려다 주지 않을까 해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그 가까이에서 생각하면서 살 수 있는, 그런 삶 쪽으로 데려다주지 않을까. 

 



그러려면 반드시 꿈이 있어야겠네요.

그렇죠. 그게 안타까운 거예요. 아이들에게 ‘뭘 하고 싶은데?’ 물어보면 ‘잘 모르겠어요.’ 하고 대답하니까, 그 말을 들을 때, 걱정이 좀 돼요. 다른 것보다 그런 때 걱정이 돼. (꿈이 없는 게) 그 아이 개인 책임이 아니구, 우리의 모든 게, 어느 한 곳으로, 너무 한곳으로 가게 한 거지. 자기 재능이나, 내가 하고픈 일이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하면 즐겁게 느끼고. 충만함을 느끼는지, 이런 것들을 생각할 시간을 갖는 시절이 아니라. 대학을 가야 된다든지 이런 곳으로 가는 거죠. 새벽 두 시까지 공부를 하긴 하는데, 나는 어떤 존재인지. 뭘 하며 살면 좋겠다든지. 이런 생각을 하는 시간은 거의 없는 것 같애. 자기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런 게 안타깝고 그래요. 그래도 찾아내야죠. 중요한 문제라고 봐요. 인생의 질이 달라지니까요. 처음엔 모르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달라져요. 자기가 하고픈 일을 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은 얼굴 표정이나 삶의 질이 달라요. 꿈 가까이에서 사는 사람이 더 많길 바라지만 현실은 아닌 사람이 더 많죠. 

 



선생님은 어떠셨나요?

그런 면에서 전 감사하게 생각해요. 누가 주입시켜 준 것도 아닌데, 꿈을 일찍 생각한 것 같아요. 작가가 되어야 되겠다. 책을 읽고 하며 은밀하게 생각했어요. 그게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까지, 계속… 글을 쓰게 하고. 새 작품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하고, 이런 것의 근원이 되어준 것 같애요. 어떤 지독한 상황을 바라보면서도, 나는 이 상황에서 나갈 거야, 글을 쓸 거거든. 이런 생각을 일찍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쁜 일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었고, 아무것에나 자존심을 걸지 않아도 되었고,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청춘이 꿈을 꾸는 건 그들만의 기쁨이 아니고, 윗세대 같은, 우리들의 희망이기도 해요.

 



 




우리 서로의 크리스토프가 되자, 

서로의 전화벨이 되자 

 

제목처럼 작품 속에선 끊임없이 서로를 찾는 ‘전화벨’이 울립니다. 윤에게, 미루에게 반복해서 울리는 전화벨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그들이 전화를 받지 않을 때에도 울리고 있었던 전화벨은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을는지 궁금합니다.

제목은요, 전화벨 소리가 계속 울리는, 그 말이 주는 느낌. “소통”의 의미로 쓴 거예요. 너 혼자 아니다. 내가 너 찾고 있어. 그리고 너도 나한테 오고 싶구나. 이런 뜻이 전달된다고 쓴 거예요. 일상의 전화벨이 아니고, 함축을 했어요. 윤과 미루가 계단 밑의 방에서 아주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도, 전화벨이 계속 울렸잖아요. 그건 ‘너희들만이 아니야. 누군가가 소통을 원하고 있어’ 이런 의미가 되기를 바랐어요. 그 소통이 절망을 줄지, 기쁨을 줄 지는 모르죠. 그래도… 나머지는 읽는 사람들의 상상의 여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구요.

이 소설에는 현대 문명기기가 일절 없어요. 전화만, 전화벨만. 그렇게 한 이유가 거기 있었어요. 명서한테도 모르는 사람이 새벽 사무실로 전화해서 누군가를 찾아달라고 얘기하잖아요. 명서는 그 얘기를 들어주고…. 수많은 타인들. 수많은 시간들이, 단절이 아니고 미세한 전화선처럼 연결이 되어있다는, 그런 뜻이 들어가길 바랐어요. 정윤이 전화를 받고, 한 청년이 지수 좀 만나게 해주세요 하며 우는 장면이 있어요. 윤이 지수라는 사람을 만나게 해줄 수는 없지만, 그 청년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야만 하잖아요. 윤은 잘못 걸려온 전화를 받았기 때문에, 그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는 거죠. 그런 의미였어요. 들어주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 이 사이에 전화벨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디선가, 우리가 어딘지 모르는 곳이지만 미세하게 어떤 식으로든 동시대를 사는 한 연결이 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으면… 했어요.

 





전화'라는 게 일방적인 소통수단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어떠한 간절함, 기대감, 두려움을 내포한 소통수단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선생님에게 첫 '전화', 첫 전화벨'에 대한 기억이나 느낌은 어떤 것인지, 실제 생활에서는 소통수단으로 주로 어떤 것을 사용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 우리는 개인전화가 아니고, 동네 이장집에, 전화가 한 대 있었어요. 내 전화는 아니었구요. 20대 통과할 때 우리는 광화문에서 만났는데, 만나면 헤어지기가 싫은 거예요. 그게 청춘인 것 같아요. 막 걸어 다니고, 차비도 없고, 선배도 돈이 없어 갖고. (웃음) 잠깐만 있어봐 하더니. 어디서 토큰을 꺼내는 거예요. 자기도 딱 천원짜리 하나 있었겠지? 그걸로 토큰을 사서 나눠주고… (웃음) 그렇게 온종일 백수의 시절이 있었어요. 자정이 거의 지나서 광화문에서 헤어지고, 집에 가서 잘 들어갔나? 또 전화하고. 그게 아침까지 이어지고… 전화를 생각하면 그게 가장 남아요. 아마 그때… 참… 고독하고 불안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전화선을 끈처럼 붙잡고 있었던 것 같아.

내 친구가 해외를 가서 자주 체류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혼자 자취를 했어요. 2-3개월 나갔다 오곤 했는데, 없는 걸 알면서도 친구가 없는 빈방에 전화를 해보곤 했어요. 보고 싶고 해서요. 수화기를 귀에 대고 가만히 빈방에 울리는 벨소리를 듣곤 했죠. 지금처럼 메일로 보내고 할 때도 못 되었고, 편지나 받는데 연락도 안 되고 하니까, 빈방에 전화를 하게 되었어요. 그때 전화번호 몇 개가 강력하게 기억에 남아요. 그게 꼭… 사랑하는 사람끼리만 그런 게 아니고. 청춘 시절에는 친구와의 우정 사이에도 전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잘못 걸려온 전화도 많았구요. 나한테 전화벨 소리는… 그런 의미로 와요.

 


소설을 읽고 있으면 마치 선생님의 학교생활이 상상이 되는 것 같은데요. 대학 시절, 선생님은 어떤 학생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윤, 미루, 단, 명서 중에 자신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이 있으시다면 어떤 인물인지도요.

각기 네 사람 안에 어느 부분이… 각기 조금씩 들어있어요. 미루는 다는 아니지만 모델이 있어요. 그런 비슷한 친구가… 시를 굉장히 잘 쓰는 친구가 있었죠. (오래 침묵) 자주 만나고 그랬는데, 어느 날… 그… 한 몇 개월. 연락이 그렇게 안 되는 거예요. 언제부턴지… 그래가지고… 끊임없이 계속… 내가 알고 있는 그애네 집 번호로 계속, 전화한지 팔 개월만인가? 팔 개월 전에 잘못됐다는 얘기를 전해… 그랬어요.

작가 후기도 썼지만, 사랑 이야기를 썼는데 죽음 이야기가 되었다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 거기에 중점을 두고 퇴고에 몰두했어요. 청춘이 아니라도 그렇지만, 청춘 때는 더 그런 것 같애요. 자기 전존재를 확 뒤돌아보게 하는 일이 있어요. 나와 관계 맺고 있던 타인의 이해할 수 없는… 너무 이해 불가능한. 너무… 아무 잘못이 없는,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죽음과 맞닥뜨렸을 때라고 생각해요. 그런 단절을 가장 깊이 생각해보는 때가 청춘의 때라고 봤어요. 사랑 못잖게, 인간에 대해서도 깊은 사색을 하는… 그런 시기가 청춘의 시기라고 생각해요. 개인의 죽음, 사회의 죽음, 공동체의 죽음을 나의 일로 강력하게 느끼는 때요. 어딘가에서는 정윤과 명서가 만나서 기쁜 순간들을 쌓아가고 하는 것처럼, 상실과 아픔도요. 또 그런 상실, 아픔 속에서 사람을 건재하게 하고. 빛 속으로 끌고 오는 건 계속되는 만남과 사랑하는 기쁨과 발견이겠죠. 살아서 숨쉬는 것들이 지니고 있는 빛나는 아름다움 같은 것들이요. 한쪽만 취할 순 없겠죠. 이 모든 것에 가장 자기 존재를 걸어 생각하고, 투사하고, 지나오는 시기가 청춘 시절인 것 같아요.







주인공 정윤은 서울의 많은 곳을 걸어 다닙니다. 명륜동에서 혜화, 궁과 성벽. 작품에 등장하는 곳곳을 지도로 만들어 밟아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서울에서 가장 걷기 좋은 장소는 어디일까요? 가장 좋아하는 곳은 어디신지도 궁금합니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 광화문.. 정동길. 아, 바이올렛에 나오는 길이기도 하네요. 그게 서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내가 가장 열심히 걸어 다녔던 곳은 헌책방이 있던 청계천 쪽이었어요. 지금은 모두 의류상가죠. 소설 속에 나오는 길들, 안국동, 사직동이나. 그게 다 그 선상에 있어요. 동숭동 낙산까지요. 그쪽엔 아직도 남아있는 다정한 길들이 많아요.

차를 타고 지나가는 게 현대인의 일상이 되어 버려서, 직접 접촉이라는 것이 아주 귀하게 됐는데, 걷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대지와 내가 일대일로 만나는 것이구요, 많은 생각을 할 수가 있구요, 또 무엇보다도 관심이 많아져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거든요. 골목에서 나오는 아이, 시장통, 식료품들. 생선들. 접촉할 수도 있고. 사고팔고 하는 사람들 통해서 살아가는 모습도 보게 되구요. 내가 좋아하는 어떤 곳과도 많이 마주치게 되고, 궁금해하게 되죠. 늘 눈을 마주치고. 관심 있게 보구요. 차 타고 다닐 때는 몰라요. 나도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예전엔 걸어다니면서 필요한 물건은 일부러 사러 나가는 게 아니라 걸어다닐 때 많이 샀어요. 바늘집이랄지 스타킹 손톱깎이 이런 거요. 애써서 찾지 않아도 눈에 띄면 샀어요. 작품에도 나오지만, 화분도 사구요.

 


(이 대목에서 문학동네 담당자께서 이야기를 이어가셨습니다.)
세 사람이 각자가 길을 가며 보는 게 다르잖아요. 그게 되게 좋았어요. 어떤 쪽에 가까우셨어요? 

그때 나는 주로 하늘을 많이 봤죠. 지금도 그런 편이네. 어느 때는 나만 보는 게 아까워 갖고 문자도 보내고. 짧게요. 달떴네. 세 자 보내죠. 달랑 세자겠지만 받은 사람은 달 보러 베란다에 나와 고개를 하늘 쪽에 대고 달을 찾아보겠지. 찾게 되면 같이 보게 되는거구. 지금은 사람을 보는 것 같아요. 어디 낯선 데 여행가면 시장통에 가보곤 해요. 이스탄불 시장에는 세계를 모아놓은 것 같이 벼라별게 다 있더군요. 1유로도 안 되는 돈으로 체리를 한바구니 사서 먹은 적도 있네. 램프를 사왔던 기억도. 포항 이런 데 가면… 시장에 가 봐요. 죽도시장이던가? 그 시장 너무 재미있어요. 사람보다 당연 생선이 더 많아. 난 한번도 보지도 못한 것들이 막 쌓여있어. 문어도 막 엄청 큰 게 있구요. <엄마를 부탁해>에 나오는데. 생선. 큰 거……. 물고기. 개복치라는 물고기. 그것도 보구요. 상인이 물고기 내장 안에 들어가 살을 도려 내는 것도 봤어... 진짜 물고기 뱃속이 자동차 트렁크만하더군. 그거 이름이 뭐였더라.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 (웃음)






함께 나누고 싶은, 신경숙의 취향 

 

표지 그림을 직접 고르셨다고 들었어요. 표지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탈고하고 있을 때 우연히 애킨스의 그림을 보게 되었어요. 비가 그친 후에. 여명이 비치는 거죠. 이 빛을 새벽빛이라고 생각했어요. 애킨스는 달빛화가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래요. 노란색을 빛이 이렇게 밝은 느낌으로 쓴 게 좋았어요. 사람들은 가을책 같다고 그러데. (웃음) 그림이 이 소설의 무언가하고 닿아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뭐, 그냥 이 그림은 어떠냐고 말만 했을 뿐이에요. 만드는 사람이 별론데요 할 수도 있고 그런 거잖아요. 디자이너가 이렇게 잘 해줬죠. 나는 좋았어요. 만들어진 책을 보니 안심이 됐어요.

 


이 작품을 읽고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분들도 많으실 텐데요, 에밀리 디킨슨을 좋아하시는 이유를 다시 여쭤봐도 될까요.

에밀리 디킨슨은 그러니까… 완벽주의자죠. 죽음에 대한 시를 많이 썼어요. 자기 시가 세상에 발표되기를 원하지 않기도 하고, 그랬었죠. 학교 다닐 때 즐겨 읽던 시집이에요. 그땐 아무도 안 읽었었어요. (웃음) 보통 즐겨 읽던 시들은 아니었죠. 백석이랑 프란시스 잠이랑 시집을 좋아해서 시들을 따라 읽었어요. 좋아해서 많이 읽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같이 읽던 시였어요. 시를 읽다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찍혀있는 말들이 있어요. 인생이란 게 모두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애절함이나 애틋함 같은, 정말 작은, 정성스러운 마음들이나 소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도록 나를 이끌어준 것 같기도 해요. 당나귀를 데리고 천국에 가자는 사람이 시인이니까, 디킨슨은 무엇보다 관념적이구요 (웃음) 묵상적인 기도도 많아요. 에밀리 디킨슨을 쓸 땐, 그런 기도나 마음이 소설 속에 들어갔으면 했어요.

 
에밀리 디킨슨은 묘하게 순결하고, 또 꿋꿋해요. 요절하면서도 자기 가치를 지켜나가고, 그런 게 가만히 새겨들을수록 좋죠.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곳에서 성장했고, 어딘가에서 날아온 건지도 모르는 시인의 이름이지만, 그의 시가 시를 읽는 사람을 하나로 잇는 끈 같은 역할을 해주잖아요. 문자라는 게 그렇죠. 다른 말을 쓰고, 다른 곳에서 태어나고. 전혀 얼굴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게 언어고, 그게 언어의 힘 같아요. 내가 언어로 작품을 만들어놓고 써놨을 때, 어디인지 모르는 누군가에 날아가서 거기서 공감을 하기도 하고. ‘어딘가에는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작가가 있네. 나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젖어 들기도 하고. 문자와 함께 어떤 시기를 통과해가기도 하고. 언어는 수공업에 가까운 것이고, 영상하고는 다른 고전적인 맛이 있지 않나요. 수공업적이라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것하고 닿아있지 않나, 생각해요.

소설 속 청춘들에게도 걷고, 읽고, 쓰고, 그런 시간을 많이 줬어요. 그런 행동들은 풍속이 달라진 먼 훗날에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이들이 읽고 쓴다고 작가, 독서가가 된다는 게 아니라 그 행위, 그 자체가 가지는 상징성이 있잖아요. 나를 써서 너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네가 쓴 것을 내가 보기도 하고, 바람 결을 타고 어딘가 가서 전파되기도 하구요. 밥 먹는 형태도 달라질 수가 있겠지만, 그래도 사람은 걷고 읽고 쓸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우.리.는.숨.을.쉰.다 윤교수의 책에 들어있을 법한 작품 20권은 어떤 것들일까요?

목록을 정할까 나도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너무나 정하고 싶은 욕구가 강렬했는데, 규정함으로써, 20권 안에 들지 않은… 작품들이 배제되는 게 그랬어요. 순위를 매길 수도 없는 거고. 우열을 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각자 독자적인 한 세계들이라고, 난 그렇게 생각해요. 스무 권을 추려내면, 추려냄으로써 바깥으로 나가게 되는 수많은 작품들이, 그게 더 중요하게 느껴졌어요.

사실 약간 거부감이 있거든요. 대학생이 읽어야 할 스무 권의 책, 이런 목록이요. 이것만 읽으면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안 읽어도 되는 사람도 안 읽어도 되고, 스무 권이 아니라 백 권을, 수만 권을 읽어도 되는 사람도 있구요. 정해지는 게 조금 그랬어요. 나조차 그럴 필요는 없다, 하구요. 문인들 셋에게 물어봤는데, 스무 권 목록을 셋 다 반대하더라구요.




우.리.는.숨.을.쉰.다. 같은 목록을 지닌 윤과 명서와 미루와 단이, 소설 속 아이들의 소통이 부러웠어요. 제게도 이런 책을 말해주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만이라도 귀 기울여주고 관심 가지고, 진심으로 ‘왜 그래?’ 이러는 사람 있으면, 사람은 자살을 하거나 그러진 않는 것 같아. 절망하지 않는 것 같아.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요. 현대 생활이라는 것이 그래요. 다 소통이 되는 것 같다가도, 정말 절실할 때에는 아무 것하고도 닿아있지 않는 느낌으로 사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누누이 말하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마음이, 서로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가까이 가려고 하는 그 마음. 마음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설령 실패해도 말이죠. 명서하고 윤이 서로 안 만나게 되고, 하는 그 과정이 굉장히 길잖아요. 끝까지 같이 있어보려고 하잖아요. 어디냐고 물어봐서, 항상 찾아가고. 어디쯤이라도 가서. 못 찾는 날도 있었고. 끝까지 계속 못 헤어지고, 지켜지지 않는 약속을 해요. 메일한통으로  십년씩 근무한 직장 해고도 시키는 시대에 그게 통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렇게 했어요. 작별도 사랑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끝까지. 노력해서... 같이 가보려고 하는 마음. 그런 진심이 어른거리는 사랑 가까이 있는 것들을 썼어요.

 


 



작가 신경숙, 새로운 소통을 경험하다



처음 경험해보신 인터넷 연재였다고 들었습니다. 조회수와 댓글로 어.나.벨을 함께 읽고 반겨주신 분들이 많이 계세요. 알라딘 독자분들에 대한 감상과 인사 부탁 드립니다.

너무 고마웠어요. 그리구…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 게, 연재했을 때 나하고 계속 같이 해준 사람을 위해서이기도 했어요. 명서랑 윤이 작별을 보류하고 그랬듯이,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한에는 연재를 마치고도 끝까지 다 해내고 싶었으니까요.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었어요. 이걸 그 분들에게 새로 바쳐요. 되게… 진짜 모니터가 살아있는 것 같았다니까. 사실 나는 워낙 기계치라 컴퓨터를 좋아하지 않아요. 겁이 되게 많아요. 또. 그런데… 연재하면서 그분들이랑 나랑 어떤 때는 정말, 함께 쓰는 것 같았고 같이 있는 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내가 못 쓴 거예요. 아주 기가 막힌 일들을 많이 뺐어요. 너무 마음 아프게 하는 것 같아가지고. 그래도 책으로 낼 때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문학 텍스트로서 작품에는 최선을 다해야 하니까요.

아침에… 아침에 이렇게 너무 강한 내용들을 쓸 수가 없더라구요. 그게 왜 그랬겠어. 그 마음들이 전해져 오니까. 그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써놓고 안 보내기도 하고, 그랬죠. 너무 저기… 강하게 접촉을 하는 것 같더라구. 그땐 진짜 그런 마음이었네요. 그러나, 이미 이제 한 번… 연재로 만났으니까, 책은 문학 텍스트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어요. 나중에 또 꺼내서 읽어볼 수 있는.. 책이 되도록. 특히 나와 함께했던 그분들이.

 





작가 이벤트를 진행하며, 알라딘 독자분들이 남겨주신 질문을 몇 개 소개하고 싶습니다. 소설 속 청춘들은 유독 아픕니다. 명서와 윤이 그렇고, 단이가 그렇고, 미래와 미루가 그렇습니다. 작가님께서도 소설 속 청춘처럼 사랑에 아파해본 적이 있으신지요. 책벌레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청춘이 아닐 걸요. 아픈 건 그런 열정이 있기 때문이에요. 무엇이든 가볍게 스쳐가지 못하니까. 정윤이 미루에게 몰입하듯이, 누군가 관계를 맺으면 몰입하고, 그런 게 청춘 아니겠어요. 내 안에서,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괴로워도 그런 거죠. 나도 그러지 않았겠어요? 어떤 부분은 아직도 나도 해결이 안 돼요. 남아있는 것도 많이 있어요. 모든 일들이 모든 아픔들이, 관계에서 발생한 일들이 아직도 다 답이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니까 아마. 의문…이라고 할까요.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 만약에 그런 일이 없었다면?’ 그런 가정은 지금도 있죠. 끝까지, 인생이 끝날 때까지, 가끔 가슴속에서 꺼내서 돌이켜보겠죠? 그런 것은 가지고 있는 게 좋죠. 그런 것도 없이 사는 게 더 안타까운 일이죠. 난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소설 안에도 썼던 이야긴데, 상실의 감정이나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괴로워하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는 없어요. 사람에겐 감정이 있잖아요. 그렇지만 그걸 받아들이고 내면화시키고 그러면서… 한 발짝씩 다른 시간 속으로 건너가는 거죠. 바래지면서. 다른 모습으로 비쳐지면서… 간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해결 안 된 게 떠돌고 있죠. 가끔 왜 그런 일이 생겼지, 생각해요. 그게 그때만 생기는 일이 아니더라구요. 나는 사십이 되어서도, 너무 깜짝 놀랄 일이 생기던데. 그런 점들은 강렬하게 불멸의 풍경으로 남죠. 청춘 때 겪은 아픔들은. 인생의 끝까지 따라와요. 그 감정, 상실의 감정… 서로 멀어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 이런 마음들이 발생해야, 미루라든지 이런 사람처럼 자기를 다 투사해버리지 않고도 다른 시간으로 넘어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서로 크리스토프 이야기처럼. 업어주는. 사람이기도 하고, 업히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거죠. 나 혼자는 살아갈 수 없고, 함께. 공유. 연결된 채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독자 앨리스님의 질문입니다.  슬픈 사랑이나 마음이 찡하게 잔잔한 이야기들을 주로 쓰시는데 행복한 해피 엔딩의 이야기를 쓰실 계획은 혹시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아. 있었어요. 내 작품 중 <J이야기> 그런 거 읽으면 밝은데. 어나벨도 재미있는(유머러스한) 부분이 있잖아요. (웃음) 이상한 결과물이 되니까, 따로 떨어지는 유머나 그런 걸 할 수는 없었죠. 섞여 들어야 되는 거니까요.

또 나는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해피엔딩 쪽에 선이 가 닿아있다면 뭘 계속 쓰고 있겠나 싶어요. 해결되지 않고 금지되어 있고,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쓰겠죠. 내가 가끔 얘기하는데, 사람이 아무 희망이 없어도 살아가야 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희망 때문만에 사는 것은 아닌, 또 다른 무엇이 있는 게 인생이기도 하다는 거. 닿지 않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어도, 희망이 단 한 톨도 없어도 숨을 쉬고 살아가야 하는 게 우리잖아요. 그런 현실의 이야기들에 비하면 굉장히 밝은 이야기들이 아닌가요. 소설이 현실을 앞설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인걸요. 그래도 긍정적인 쪽으로 가까이 가려고 하는 이야기들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구요.

진짜로 사람을 변화시켜놓는 것은, 나는 슬픔을 느끼는 그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그 마음이 우리 안에서 죽어있다면요. 연민스러운 어떤 것을 봐도 내 마음이 아주 무감각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있을 때면 그때 내 마음이 끝나는 거죠. ‘어떡하지 저 걸…’ 생각하는, 갖가지의 슬픈 마음들, 그런 마음들…이 존재하는 한 그것들을 변화시킨다고 봐요. 타인의 불행에 공감하기 때문에, 내 마음도 흔들리고 아픈 것이지 않겠어요. 끝까지 흔들리고 아프고 그래야 될 것 같아요. 그게 피하고 싶겠지만. 피하는 것은 정면으로 보는 게 아니죠. 글쎄. 근데 유머라면 모를까, 해피 엔딩을 적나라하게 쓸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소설의 결말에 대한 얘기를 할게요. 미루하고 단이는, 명서와 정윤에게 있어 어린 시절 영혼의 한 부분을 나눠가진 동지들이잖아요. 같은 곳에서 태어나서, 같은 곳을 보고 성장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그 말보다 더 중요한 게 있죠. 정윤에게는 단이가, 명서에게는 미루가 자기의 일부분이고, 태생지인 거죠. 그걸… 잃어버린 두 사람이… 어떤 시간을 서로 견뎌내지 않고는…. 정윤이 “나랑 함께 있자.” 했을 때, 명서는 그렇게 하지 않잖아요. 나는 명서의 선택이 옳았다고 봐요. 서로를 괴롭히지. 황폐하게. 너무 아픈 사람들은 서로를 구해내지 못해요. 행간에 숨은, 그런… 뜻이 전해지길 바랐어요. 다른 사람이 오히려 그 사람을 위로할 수 있죠. 서로 떨어져 있는 게, 그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필요하던데. (웃음)

원래 에필로그는 굉장히 길었어요. 끝내기가 싫은 거예요. 끝내는 날도 잡아놨는데, 끝내게 해달라고 내 쪽에서 말을 해놨는데도 막상, 못 끝냈어요. ‘아 다행이다. 끝이란 글자가 없어서’ 이런 덧글을 자꾸 보게 되니까요. 아마 내가 최고로 긴 에필로그를 쓰게 될 것 같군요. 그런 덧글도 달았을 거예요. 끝내야 하는데 끝내기 싫어서…. 그랬어요. 이번 소설의 결말을 다듬으면서는 미처 끝내기 싫어 길어진 부분을 덜어내기도 했죠.







책, 그리고 신경숙 

 

가벼운 질문입니다. 올해 읽으신 책 중 가장 인상깊었던 책이 있다면.

탈고하는 동안에는 책을 집중적으로 읽지 못해서, 올해 읽은 책이라기보다 최근에 읽은 책들 중에서 일 때문에 읽은 한국문학은 미안하지만 뒤로 물려놓고 얘기해보면 <눈으로 하는 작별>이라는 책이 좋았어요. 음 그리고, 오늘 어제 새벽 그제 새벽 읽은 작품이 콜레트의 <여명>이라는 거였어요. 좋았어요. 재미있었어요. 번역도 좋았고, 아름다운 작품이었어요. 내가 써야 되는데 왜 이 사람이 썼지…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웃음) 작가를 보고 궁금해서, 다른 작품 있나 찾아보기도 했구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고, 그런 소설이에요. 언어에 대한 표현이, 1800년대에 썼는데도 세련되고, 아름답고,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게 많은, 그런 작품이었어요. 또 작가 자신이 정말… 굉장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더라구요. 사실 뭐 근데 나중에는 자기 어머니에게 돌아가는 이야기기도 해요. 어머니처럼 살게 되는 이야기기도 하고. 읽는 마음이 참…
 
<쥘과의 하루>라는 책도 좋았네, 읽어봐요. 얇은 책인데 별일 아닌 듯 시작되는데 다 읽고 나면 마음이 젖은 솜처럼 되어있어. 독서의 즐거움은 그렇게 요지부동인듯한 내 마음이 흔들릴 때야.  아 그것도 재미나게 읽었다. <멜랑콜리 미학>이요. 영화 글루미 선데이 얘기가 나와요. 인간의 마음속에 발생하는 멜랑콜리아에 대한 내용인데… 너무 글이 좋았어요. 읽기도 쉽고, 동감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그 영화 잘 봤고 생각하는 게 많은 영화였는데도, 나늘 스치고 지나간 부분들에 대해 깊이 있음서도 공감 있게 펼쳐놨어요. 음… 많은 사람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애.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멜랑콜리아적인 얘기가 있어요. 사실 멜랑코리아라는 말을 흔하게 써서 가볍게 느껴지지만 굉장히 무거운 말이에요. 우리의 우울증과도 깊이 관련이 있고 애도의 시간이 왜 필요한지를 알게 되는 마음이죠. 또 최근에 읽은 책은… 김홍중의 <마음의 사회학>도 잘 봤어요. 이정도가 최근의 내 독서네.


 

 



 

 

 

  

 

마지막으로 여쭙고 싶습니다. 지금 이 땅을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청춘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아닐까 합니다. 청춘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을 말씀해주세요.

어나벨을 읽으면 될 것 같애요. (모두 웃음) 항상 곁에 두고, 작은 빛 같은, 그런 책이 되었으면 해요. 표지의 이 노오란 밝은 빛이, 옆에 스며드는 느낌이었으면 좋겠어.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는 듯한 온기가 느껴졌으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쓰긴 썼죠. 음. 몇 번 다시 읽게 되는 소설이 되면 좋겠어요. 작품 속 <우리는 숨을 쉰다>처럼. 함께 숨을 쉬는 책이 되었으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요…. 일단은 한국문학 전집을 읽어봤으면 좋겠어요. 누구누구의 책이 아닌 전체를, 열정을 가지고 읽었으면 해요. 제가 읽을 땐 이광수부터 윤흥길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그 이후부터… 펼쳐져 있겠죠. 그걸 읽는 건 중요한 것 같애요. 왜 그러냐면 지금 사람들은 작가가 아니라도 글을 잘 쓸 줄 알아야 되는 시대에요. 소통이 오히려, 글쓰기로 더 일반화된 경우가 많잖아요. 메일을 쓴다든지요. 일단은 인터넷 용어라고 하는 말들이 오래가지 않잖아요. 변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결국은, 우리는 말과 글쓰기로 돌아올 것 같아요. 그러니 노트를 하나 마련하고, 우리 말로 쓰여진 문학전집을… 그냥… 친구처럼 옆에 두고 한 권씩 섭렵하다 보면, 어떤 역사책을 읽는 것보다도.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한 많은 것들을 알게 되고, 시대적인 것들도 경험하게 되고, 모국어를 자기화시켜 풍성해질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다음에, 인문학 쪽으로 넘어가면 좋겠지요. 언어가 내면에 풍성하게 쌓이는 경험은, 한국문학 전집을 통해서 했으면 해요. 우리는 저기 50년대부터 읽었는데 그게 부담이면 7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그러니까 윤흥길서부터 김애란까지 골고루 따라 읽었으면 해요. 그러다 공감대가 형성되는 작가를 만나면 전작주의 독서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70,80년대와 90년대를 그리고 지금 2000년대를 살아왔고 살아왔는지를 소설보다 잘 보여주는 건 없을 거예요. 그 시대를 경험하고, 더불어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되고 그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니까...거기에 더불어 노트 하나를 준비해서 자기가 모르는 언어의 뜻을 정리 하고… 아 그러고 보니 소설에도 나오네요. (웃음) 그렇게 읽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또 그래야 돼요. 지금은 그래요. 글쓰기라는 게 누구만 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예전보다 더 보편적으로 누구에게나 중요한 일이 되었잖아요. 요즘  청춘들이 자기만의 노트를 지녔으면 꼭 그랬으면 해요.

 



계절이 무색하게 쌀쌀한 날씨에도 섬세한 답변을 건네주셔서 더욱 풍성하고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한국어로 소설을 쓰는,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서의 확고한 자아와 그만큼의 책임감, 또 글과 독자에 대한 애정이 동시에 느껴지는 인터뷰였습니다. 신경숙의 글이 한 시점을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에게 큰 의미가 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언젠가 글이 담긴 항아리가 가득 채워지면 비로소 문장이 되어 나타날 다른 이야기들을 기대해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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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바로가기생활인  2010-06-17 13:37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 게 연재 함께 해준 저희를 위해서란 말씀, 에서 눈물이 납니다. 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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