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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에세이
국내저자 > 번역

이름:김연수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70년, 대한민국 경상북도 김천

직업:소설가

최근작
2023년 11월 <전자적 숲; 더 멀리 도망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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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가을,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라는 아름다운 장편소설을 발표한 김연수 작가를 만났습니다. 소녀들, 바다, 이야기, 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인터뷰 진행 협조해주셨습니다.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일부 질답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카밀라는 카밀라니까 카밀라

 

<원더보이>, <지지 않는다는 말>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까지 최근 반가운 소식이 이어졌는데, 강행군이라 고되지 않으신지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책이 나오고는 인터뷰 하고 지내고 있고, 간간히 산문을 쓰고 있어요. 앞으로 뭘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생각을사실 많이 안 하고요. (웃음) 몇 가지 생각 간단히 하고, 잠을 자요. 옛날에는 일을 하다 늦게 잤는데 요즘은 빈둥거리면서 늦게 자네요. 티브이보고 음악 듣다가 팟캐스트 듣다가 하면 세시, 네 시가 돼요. 예전엔 늦게 자도 쪽잠을 자고 여섯 시엔 깼었는데, 요즘은 일이 없으니까 열한 시쯤 일어나요. 예전 학창시절의 생활이죠. 밥 먹고 나와서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중국 계간지에도 연재하셨고, EBS 라디오 낭독도 하시는 등, 하나의 소설을 다양한 방식으로 알려오셨는데요, 여러 매체에 어떤 감상이 들었는지 궁금합니다.

 

번역된 소설은 짧아지더라고요. 분량이. 많이 썼는데 이렇게 짧아지는가? (웃음) 제가 중국어를 모르니까 번역된 원고는 알 수가 없고요, 좀 낯설긴 하더라고요. 다른 언어로 된 걸 보니까. 저는 열심히 쓴다고 썼는데, 과연 아름답게 됐을까생각도 들고.

 

또 낭독할 때는, 약간 객관화되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다른 사람이 읽어주니까요. ‘이 부분은 이런 얘기였구나, 놀랍게도’,  ‘이 부분은 긴장되네.’ 전 긴장되게 쓴 게 아닌데. 그런 걸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었고요. 또 낭독을 하면 내 이야기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전개가 되는지를 측정을 할 수가 있잖아요. 쓸 때는 모르지만, 한 시간 동안 이야기의 속도가 얼마나 되는지가 객관적으로 체크가 되요. 낭독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제가 썼음에도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쩌지 조마조마하더라고요.

 

 

 

전작 <원더보이>가 소년의 이야기라면, 이번 <파도가…>는 소녀들의 이야기로 읽혔습니다. 카밀라와 지은, 특히 우리에서 느껴지는 섬세한 심리 묘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소녀들의 이야기지만, 다른 소설 쓰듯이 감정이입을 하려고 했어요. 소녀들에 대해 제가 아는 것들, 지식을 가지고 상상을 계속 해서, ‘아마 그럴 것이다.’하는 결론이 날 때까지 충분히 오랫동안 생각을 하려고 했고요. 선입견, 뻔한 반응을 피해가면서 계속 생각하고 생각해서 알아내는 거죠. 이상하게도 제가 소년기를 지나왔는데도 <원더보이>의 소년보다 여자들이 더 생생한 것 같아요. 제가 좀 이상한 건지, 제가 여자 쪽에 더 맞는 건지. 여자 쪽은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소년은 사람들이 비현실적이라고 해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웃음) 싶기도 했고요.

세 번째 장, ‘우리부분을 쓸 땐 책을 딱 한 권 봤어요. <소녀들의 사생활>이라는 책이고요, 그 책 표지서부터 제가 쓰려고 했던 이야기의 느낌을 받았어요. 소녀들은 서로 이렇게 질투가 심하구나, 친한 친구인데도 원래 질투가 심하고, 소문을 많이 내는구나. 그런 외국 사례들을 봤고요.

소녀들이 실수로 뭔가를 저지르고 큰 일이 벌어진다,’ 질투라는 모티프는 처음부터 생각했었어요. 시골 학교에서 쟤는 걸렙니더하는 쪽지가 오는 장면, 처음에는 십대 때 장난으로 시작 한 일이 큰 일을 만든다, 는 게 모티프였어요.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보게 된 거죠.

 

 

 

연재 당시와 제목을 바꾸었습니다. <희재>에서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으로 제목을 정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희재>도 써도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원래는 <희재>라는 제목이 중요한 모티프예요. 근데, 희재가 너무 중립적이라는 생각이었어요. 어떤 소설인지 알기가 어려운 것 같은 느낌. 마지막 순간까지 제목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민을 했죠. 제 경우엔 새로 만들어내는 경우는 잘 없고, 주로 제가 쓴 글에 제목이 있어요. 몇 번 이런저런 제목을 생각해냈는데 반응이 안 좋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순간에 이 제목을 생각한 거죠. 처음에는 여러 제목 중 하나였는데, 점점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 맞는 것 같더라고요. 이 제목이 책의 많은 걸 대변해준다고 생각해요. 서정적인 것,’바다라는 소재,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뒤에 이어지는 문장(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가 이 책의 주제인 점도 있고요.

 

 

 

 

 

지은과 카밀라, 소녀는 소녀가 되고

 

카밀라의 지은 찾기가응답하라 1987’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섯 개의 상자로 정리된 추억같은 소재를 보면 기억과 사물이 구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님의 이전 책에서도 어떤 시기에 대한 세밀한 기억이 주요 모티프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야기에 대한 철학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럼 이야기는 어디에 있느냐. 흔적들에 있다는 거죠. 유품이 흔한 예겠죠. 유품 속에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 이야기를 우리가 모를 뿐이다. 시간이 지나도 세계는 남아있잖아요. 골목이라든지, 이런 곳엔 이야기투성이라는 거죠. 물건으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제 소설에서 일반적이에요. 이야기가 숨어있으니까, 우리가 모를 뿐이죠. 이 소설도 마찬가지예요. 카밀라라는 애가, 뭔가 있을 것 같은 사진에서 숨어있는 이야기를 찾아가는 거잖아요. 그런 방식이 제가 이야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철학 같은 도입부랄까 그래요.

 

 

 

카밀라의 이야기를 여는 첫 소제목이 "카밀라는 카밀라니까 카밀라인 거지."입니다. 처음 읽었을 땐 맛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는데, 곱씹을수록 운명적이라는 느낌도 들고, 동백꽃을 배경으로 한 사진을 찍었을 때의 지은을 상상해보면 카밀라 역시 사랑으로 빚어진 아이라는 걸 이 문장이 말해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첫 소제목으로 이 문장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카밀라에게는 네가 왜 네가 됐는지 대답을 누구도 못해주고 있잖아요. "카밀라는 카밀라니까 카밀라인 거지." 이런 답은 무책임한 얘기인 거죠. 이 아이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증명해야 되는 존재예요. ‘너는 이러 저러 했기 때문에 태어나게 된 것이다’, 말해주는 대신 너는 이야기가 없는 애다….’ 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니까, 첫 제목은 이 아이가 정체성이 없는 아이임을 말하고 싶었어요.

 

 

 

소설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장면, 문장을 꼽을 수 있을까요?

 

다 좋긴 한데요… (웃음) 앞부분에 많이 있어요. 카밀라가 처음에 진남에 왔을 때, 눈 내리는 거 보는 장면…. 그리고 꿈 장면도 되게 좋고요. 엄마 연락이 안 와서두 개의 꿈을 꾸는데, 오로라 물고기랑 파란 달 보는 꿈이 있는데, 그 꿈은 사실 제가 꿨던 꿈이에요. 파란 달이 뜨는 걸 꿈에서 본 적이 있어요. 공을 들인 장면은 바다에 뛰어드는 장면이에요. 유람선 노래가 들리고 있고, 여러 가지가 중첩되어 있는 장면. 그 장면은 쓰는 동안에 되게 숨이 막힐 정도의, 그런 느낌으로 썼어요.

 

나중에 연재를 하면서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었는데, 앞에 너무 잘 써가지고 그만 못 둔 부분이 있어요. (웃음) 앞부분 카밀라 나온 부분이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 카밀라한테 감정이입이 많이 되어서, 카밀라라는 여자애에게 이 얘기를 끝내주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끝까지 써주고 싶다는 생각, 끔찍한 결론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담당 md가 적어둔 좋은 문장을 함께 실어봅니다. : 하지만 개인의 불행은 건기나 우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곳 방글라데시에서 저는 수많은 개인사적인 불행을 만났습니다. 불행이란 태양과도 같아서 구름이나 달에 잠시 가려지는 일은 있을망정 이들의 삶에서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거기 늘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거기 늘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잊습니다. 이들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불행을 온몸으로 껴안을 때, 그 불행은 사라질 것입니다. 신의 위로가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그 길뿐입니다.)

 

 

 

 

소녀들이 겪는 수난이 이 이야기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임신한 여고생의 자살, 입양아의 뿌리 찾기.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어쩐지 따뜻한 느낌의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진실포옹같은 단어들도 그랬고요,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세계가 우리 생각보다는 좀더 괜찮은 곳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사진'이라는, 카밀라의 첫 사진에 대한 명명도 뭔가를 믿고 싶게 만드는 제목이었습니다.

 

시작할 때는 결말에 대해 몰랐어요. 처음에는 얼토당토 않은 소문, 이에 개입된 당사자들의 증언, 그보다 깊은 아무도 모르는 일, 그 아무도 모르는 일이 아름다운 사랑이지 않을까. 이 정도만 생각을 한 거죠. 제가 결말을 모르는 상태로 카밀라를 따라가다 보니 수많은 가능성이 있더라고요. 성폭행더 끔찍하게는 오빠의 딸, 아무도 모르는 사람의 딸까지. 수많은 가능성이 있는데, 저는 그 중에 하나 제일 좋은 걸 선택하고 소설을 썼어요. 아마 그러리라고 생각하면서요.

 

다 쓰고 보니 나는 카밀라 편에 서서 소설을 쓴 것 같아요. 나는 카밀라를 좋아하니까, 카밀라가 많은 이야기 중에 다른 이야기를 믿지 말고 이 이야기를 믿어라 라는 입장에서 소설을 쓴 느낌이에요. 뜻밖에도 카밀라가 사진을 보면서도 이런 제목을 붙여놓은 거죠. 생각보다는 괜찮은 곳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보다 이 세계가 낫다고 생각을 하는 애니까. 카밀라도 이 세계의좋은 점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결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말은 못하겠어요. 어떤 게 진짜 이야기라고. 여러 이야기가 있고, 카밀라가 그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데 카밀라의 성격으로 봐서는 그 중에 제일 나은 이야기, 이희재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로 선택할 거라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희망 같은 것을 믿는 아이니까요. 쓰는 입장에서는, 독자들도 그렇고 카밀라와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접근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카밀라는 이런 결과로 태어난 거야…' 작가 입장에서 결말을 지어 먼저 생각하지 않고, 24년만에 찾아온 입양아의 눈으로 카밀라가 처한 상황에 접근하고 싶었어요.

 

 

 

 

 

바람의 말, 파도의 말, 이야기

 

‘바람의 말 아카이브라는 설정처럼, 이 소설의 큰 줄기는 바람의 말(풍문)을 모아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풍문은 SNS로 진화했고요. 진실을 기워 모아, 점의 이야기를 선의 이야기로 만드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진실이라는 게 존재 한다고 봐요. 그렇지만 한번 살고, 그 뒤에 사람들이 회상을 하잖아요. 그건 진실이 아니라고 봐요. 똑같이 회상하는 사람은 없다고 보거든요. 서로서로 얘기가 다 다른 거고요. 진실은 있는데, 우리는 진실을 말할 수 없다는 거죠. 결국엔 스스로 채택한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해요. 소설가가 서사를 만들듯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인생의 서사를 채택해 그렇게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거죠. 자기 삶을 재구성하는데 있어서, 수많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까지 포함해서, 우리는 어쨌든 한 가지 방법을 택해서 그게 내 인생이라고 얘기하는 거잖아요. 자기 인생의 진실은 자기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달려있는 거겠죠. 수많은 눈도 있고 소문도 있을 거고요자기가 자기 인생을 어떻게 쓰는가, 이게 중요하고, 그게 진실이 되는 거죠. 우리가 입양아처럼 드라마틱한 상황이 아니니까, 자기 정체성을 처음부터 추적해봐야 할 경우는 잘 없지만, 대신 우리는 평생에 걸쳐서 찾아왔겠죠. 입양아인 카밀라의 시선처럼, 우리도 구성된 삶을 살고 있는 건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김연수봇bot이라는 트위터 계정이 있는건 알고 계신가요? 실제로 SNS를 이용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연수봇은 알고 있어요. SNS는 쓰지 않습니다. 처음엔 보고 검색하기도 했는데, 좋은 얘기도 있고 나쁜 얘기도 있더라고요. 처음엔 나쁜 것들이 신경을 쓰여서 안 봤어요. 대부분 오해죠. 당연히 나에게 나쁜 말이니까, 나쁜 말은 오해라고 생각하죠. 근데 오해면 기분이 안 나빠야 되잖아요. 그런데도 신경이 쓰이니 그럼 진실이라는 뜻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한심하죠. 그럼 계속 보자, 이런 마음이 안 생길 때까지. 계속 나쁜 것만 찾아서 보는 둥 마는 둥 하기도 했어요. 사실 저는 가까운 사람들 말 정도만 귀 기울여서 듣는 편이에요. 멀리 있는 사람들은 어쨌든 자기 입장에서 얘기를 하게 되잖아요. 다른 사람이 저에 대해 쓴 걸 보면, 많은 경우가 나하고는 다른 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저도 다른 누군가에 대해 그 사람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거고요.

 

무엇보다 할 일이 너무 많아가지고 (웃음) SNS를 할 수 있는 틈이 없는 데다가, 저는 대답을 하는 것도 한참 걸려요. SNS는 속성상 바로 답이 나오는 걸 요구하더라고요. 사안이 생기면 바로, 악플이 달리면 바로, 이런 게 너무 힘들어서저는 심지어 고치거든요. 블로그에 올리는 글도 고치는데, 수정할 여유도 없이 막 올라가는 거니까 힘들더라고요. 블로그만 해도 손으로 쓰는 것에 가까운데, SNS는 말을 하는 것에 가까운 것 같아요. 말을 잘 하지 못해서 그런지, 매체 자체가 별로 안 땡기는 거죠. 힘들어요.

 

미투데이 계정도 삭제하신 걸로 봤습니다.

 

처음에 미투데이는 시끄러운 곳이 아니었는데, 점점 과방 같더라고요. 과방에 모여있는데 내가 들어오고 작가님 어제 이거 보셨어요, 이런 과정이 계속되는 것 같았어요. 원래 제가 과방에서 여러 사람하고 얘기 안 하고 구석에서 있는, 그런 사람이었는데요, SNS는 느낌이 라운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 같았어요. 저랑은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바람의 말'에 연관된 이들은 현재 영화감독, 사회활동가, 진보 교육감 후보 등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살고 있습니다. 그 시절을 아예 잊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쁘다는 생각, 놀랍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이들의 현재가 마음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나쁘다고는 생각 안 해요. 왜냐하면, 일이 벌어진 이후, 어떤 사람이든 회상은 나중에 하게 되잖아요. 저는 어떤 나쁜 짓을 한 사람이라도, 그 이후에 자기가 되게 나쁜 짓을 했다라고는 기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어떻게 견디고 사나요. 처음엔 자신이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더라도나중엔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 삶이 유지가 안 되잖아요.

 

25년이 지난 뒤에 어떤 애가 지은이의 딸이라고 하면서, 우리 엄마에 대해 알고 싶다고 말하면 누구라도 "너네 엄마한테 내가 큰 잘못을 했다."라고 말할 사람이 없다는 거죠. 그 일은 끔찍한 일이고 모르는 게 좋다. 그 사람들의 입장에선 그게 맞아요. 내가 도와줄라고 했는데 너희 엄마가 거부했다. 이게 저 입장에선 거짓이 아니라는 거예요. 모든 당사자의 얘기를 들어보고 나면 잘못된 기억이라는 걸 알 순 있겠죠. 그러나 이미 기억은 흩어졌고, 그 뒤에도 계속 살아왔으니, 자신의 삶에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을 거잖아요. 힘든 애들 도와서 대학을 보낸다든지, 이런 좋은 기억이 있으면 그런 실수는 없어지는 거죠. 신이 아닌 이상, 우리는 누구도 객관적으로 그 일에 대해서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죠. 각자의 진실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이야기를 쓸 때도 교장이나 최성식이나 이 사람들이, 죄책감을 갖고 감추거나 이러지 않을 거라고 저는 생각을 했어요. 자기 스스로는 자기가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신해숙이 신경 쓰는 건 지은의 딸이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남편의 말이 거짓일까 하는 것. 최성식은 그 신해숙의 오해가 제일 문젠 거예요. 정지은이 어떻게 됐고,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았겠죠. 나쁜 사람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뒤에 나오는 사람들도.. 대부분 다 까먹었겠죠. 미옥이라는 사람은 분명히 나쁜 짓을 했어요, 했는데도 까먹었어요. 자기가 원인이라고 생각을 안 해요. 그걸 기억을 못하고 있는 거예요. 최종적으로는 책에는 쓰지 않았는데, 지은이 죽고 나서 그 해 여름 방학 때 미옥과 유진이 싸우는 장면이 있었어요. 유진이 네가 죽인 거라고 말하고, 그래서 둘이 그래서 의절해요. 유진은 미옥이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미옥은 강하게 거부했기 때문에 기억을 못해요. 지은이 죽게 된 과정은 잊고, 지은이 아빠 때문에 자기 아빠가 죽은 것만 기억을 하는 거죠.

 

미옥은 바람의 아카이브에서 기억을 보면서 비로소 대면을 했겠죠. 우리는 다 미옥이 입장이 된다고 봐요. 내가 착각을 있고 있는 거죠. 그러다 진실을 한번쯤 대면할 때가 있잖아요. 아주 끔찍한이미지로 치면 에어리언의 괴물 같은, 그게 진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요눈뜨고 볼 수 없는, 너무 끔찍한 추악한, 근데 그게 진실이에요, 그 사람한텐. 그래서 진실을 대면할 수가 없는 거죠. 진실은 끔찍하게 생겼지만 모순이 하나도 없는 아름다운 것일 거라 생각해요. 모든 사람들의 진실엔 조금씩 모순이 있으니, 우리가 만약에 객관적인 진실을 대면하게 되면, 끔찍한데 아름답다고 느끼게 되겠죠.

 

 

 

 

 

소설을 읽는 이들, 우리

 

진남을 처음 상상할 때 통영을 생각하셨다는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투박하고 활기찬 통영이라는 도시의 느낌이 진남과 겹쳐졌습니다. 주요 장소로진남을 생각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처음 생각한 이야기가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통영을 배경으로 하는 청춘소설이었어요. 400-600매 짜리, 일본풍의, 경쾌하고 짧은 소설을 생각했어요.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남자애랑 동물소리를 잘 듣는 여자애가 나오는 태풍이 다가오기 사흘 전의 이야기. 서울 가고 싶어하는 시골 애들 이야기. 처음 연재하려는 건 이거였고요. 수업 중 여고에서 선생님에게 쪽지가 날아오는 이야기는 머릿속에서 안 떠나는 다른 이야기였어요. 쪽지가 날아오는 이야기의 배경은 경상도 보수적인 동네예요. 두 이야기를 생각하다 이 두개가 결합을 해버린 거죠. 지은의 얘기에 흔적 정도가 남아있지만. 원래 청춘 소설을 썼으면 "동물 소리는 알아듣는데 왜 내 말은 못 알아들어." 이런 대사가 나왔을 거예요. (웃음)

 

두 얘기가 합쳐지면서 통영으로 배경이 잡히게 됐어요. 보수적인 동네가 갑갑하기도 하고, 보수적인 동네면 훨씬 다르고 훨씬 어두운 얘기가 됐을 거예요. 정말 끔찍했을 거라, 피하고 싶었어요. 연재 제의를 받고, 일년 간 처음 이야기를 짤 때는 통영에 가서 써야겠다는 생각도 해서 동피랑마을 레지던스도 알아보고 했었는데요, 이야기가 합쳐지니까 얘기 특성상 도시를 직접 쓰기가 부담스러워져서, 아예 도시 취재를 안 했어요.

 

(진남은 통영의 옛 지명이라고 합니다.)

 

 

 

미국, 태평양, 일본, 방글라데시, 진남 같은 장소들이 구체적으로 등장합니다. 요즘 김연수를 사로잡은장소들이 궁금합니다.

 

몇 년간 계속 서귀포예요. 서귀포 배경으로 소설도 썼잖아요. 여전히 가고 싶어요다른 곳은 아직까지는 크게제겐 서귀포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소설 속에서 작가를 사로잡은 캐릭터가 있다면.

 

제 주인공이니까 좋아하지만. 카밀라 되게 좋아해요. 귀신을 보면서 살겠다 말하는 장면 같은 거되게 멋있더라고요.

 

 

 

소설 속 인물들이 서로 소통하는 방식, 에밀리 디킨슨, 페터 한트케 같은 우아한 문장가들이 주로 소개되고 있는데요, 번역자로 활동하고 있기도 한 김연수 작가가 요즘 눈여겨보고 있는 작가가 궁금합니다. 추천하고 싶은 책도 궁금하고요.

 

소설을 읽다 보면 이 작가는 나한테 없는 걸 가졌다는 걸 느낄 때가 있어요. 제이디 스미스 라고.영국 소설가의 <하얀 이빨>이라는 작품은 어마어마해요. 이야기가 끌리거나 이런 사람은 아닌데 무진장 수다스러워요. 이야기 자체가. 그래서 21세기의 찰스 디킨스다 이런 얘길 많이 하더라고요. 제겐 이런 수다스러움이 없어가지고,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개 이런 사람들이에요. 살만 루시디 같은 사람들. 방언 터지듯 이야기가 나오는. 지금 저희가 쓰는 소설엔 없는 면이라, 부럽죠.

 

최근에 읽은 책 중엔 <옆구리의 발견>이라는 시집이 좋더라고요. 저자분이 젊고, 예전의 장석남 시인 같은 사람들이 쓰던 시 같았어요. 여전히 시는 이렇게 새로운 시인들이 계속 나오는구나, 생각했어요. 시는 역시 새로운 시인들이 좋아요. 소설은 오래 쓴 소설이 좋고요. (웃음))

 














 

 

다음 작품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게 될까요? 현재 연재중이신 <소설가의 일> 에세이로 만나볼 수 있을지요.

 

장편은 내후년, 2014, 2015년 즈음이 되지 않을까 해요. 연재중인 에세이는 내년일 거 같고요. 단편집이나 소설가의 일은 내년일 것 같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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