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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시드니 포이티어 (Sidney Poitier)

본명:Sidney L. Poitier

국적:아메리카 > 북아메리카 > 미국

출생:1927년, 플로리다주 마이에미 (물고기자리)

최근작
2021년 5월 <도시의 가장자리 : 리마스터링>

시드니 포이티어(Sidney Poitier)

배우 겸 연출가이자 작가. 흑인최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유명하다. 바하마 제도 사람인 부모가 미국을 방문하던 중 플로리다에서 태어난 시드니 포이티어는 농부의 아들로 가난하게 살았다. 그의 부모는 교육은 조금밖에 받지 못했고 비행청소년이 되어 버릴 것 같던 열다섯 살의 그를 마이애미로 보내 형과 함께 살게 했다. 그곳에서는 좀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의 인종적 신분 차이를 몸소 겪어 보고 이런저런 막노동을 전전하다가 어느새 뉴욕으로 흘러 들었다. 잠시 군대에 몸담은 후 다시 할렘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충동적으로 시도해본 오디션에 연이어 실패하면서 연기에 대한 열정이 더욱 불타올랐고 동시에 고향 억양을 고치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긴급한 과제를 의식했다.

이러한 한계들을 극복하고 결국 그는 아메리칸 니그로 시어터에 입단 허가를 받았고 그곳에서 선보인 그의 재능은 브로드웨이의 더욱 유망한 작업들로 이어져 마침내는 1950년대 초에 할리우드까지 진출하는 발판이 되었다. 대표성의 문제, 더 엄밀히 는 흑인들에 관한 대표성의 결여가 문화적 경험에서 중심적인 요소였던 민권운동 시기에, 미국의 흑인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에 관한 서로 다른 관점들 사이에서, 포이티어가 완벽하게 자리를 잡아가게 한 일련의 역할들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포기와 베스(1959)」와 「흑과 백(1958)」, 「패치 오브 블루(1965)」 그리고 그에게 아카데미상을 안겨 준 「들판의 백합(1963)」 등 인기 있는 주류 영화의 주인공으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런 흐름은 「밤의 열기 속으로(1967)」와 「초대 받지 않은 손님(1967)」에서 계속 이어졌고, 그 후 포이티어는 감독을 시작하면서(「업타운의 토요일 밤(1974)」, 「폭소감방(1980)」) 스크린에 직접 등장하는 일을 줄였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그를 '톰 아저씨'라고 주장한다. 피부는 갈색이지만 인종차별적인 주류영화계의 한 가운데에서 문화적으로는 '백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배우로서 그가 해온 작업을 통해서도 이러한 입장은 해결되지 않는 듯하다. 주류영화의 아이콘이라는 포이티어의 이미지와 위치에 대한 응수로서 만들어진 영화로 「스위트 스위트백의 배드애스 송(1971)」과 「슈퍼플라이(1972)」 등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적대적이거나 적어도 다른 관점은, 대체로 「월터의 선택(1961)」처럼 인종적 정체성이라는 주제에 관한 포이티어의 선구적인 작업들과 민권운동에서 그가 해온 활동들을 무시하는 처사다. 그러므로 포이티어를 괴롭힌 진짜 문제는 그가 예술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진정한 선구자로서 자신이 가장 강력한 인상을 발휘할 수 있던 시기에 사회 변혁의 필요성을 몸소 보여 주었다는 것과, 그러면서 주류문화를 무시하거나 영향력이 미미해지는 결과를 감수하면서까지 주류문화에 반역을 꾀하는 무모한 시도를 하지 않고 그 주류문화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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