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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배관문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최근작
2019년 10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그 후>

배관문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 졸업, 도쿄대학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비교문학비교문화 코스) 학술박사, 사단법인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이며, 한림대학교 생사학연구소 HK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일본사상사, 특히 에도 시대 국학사상을 중심으로 일본 역사와 문화의 기원에 관한 논의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대표 논저로는 『宣長はどのような日本を想像したか: 『古事記傳』の「皇國」』(笠間書院, 2017), 공저로 『동아시아의 문화표상Ⅰ, Ⅱ』(민속원, 2015?2017), 『죽음의 풍경을 그리다: 한국적 생사학을 위하여』(모시는사람들, 2015), 『동아시아 고전학과 한자세계』(소명, 2016) 등이 있다. 역서로는 『일본인의 사생관을 읽다』(청년사, 2015), 공역으로 『좋은 죽음』(청년사, 2015), 『모노노아와레: 일본적 미학 이론의 탄생』(모시는사람들, 2016) 등이 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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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일본인의 사생관을 읽다> - 2015년 5월  더보기

나도 모르게 어느 날 자는 듯이 조용하고 평온하게 죽고 싶다는 희망사항은 현대인에게는 그야말로 꿈일지도 모른다. 과연 다가올 백세시대가 은퇴 후 30년 이상 새로운 짐을 지고 게다가 병을 안은 채 살아가야만 하는 장수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과연 행복일까 불행일까.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우리에게 죽음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화두를 던지고자 하는 것이 바로 생사학이다. 한국과 대만 등에서는 생사학이라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사생학이라고 부른다. 이 책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듯이, 서양에서 주로 호스피스 운동과 죽음준비 교육에서 시작된 죽음학은 일본으로 건너가 삶과 죽음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보다 강조하면서 사생학이라는 이름으로 발전했다. 특히 최근 십여 년간 일본에서 사생학이라는 신생 학문 분야의 정립에 주력해온 저자는 서구에서 유입된 죽음학의 영향만으로는 일본 사생학을 다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일본에서는 현대 고령화 사회가 되기 이전부터 사생관이라는 용어를 빈번하게 써왔기 때문이다. 일본 특유의 사생관과 그에 대한 높은 관심에 대해, 저자는 근대의 이른바 사생관 언설을 읽는 작업을 통해 이를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사생관이라는 말이 만들어지고 사생관 언설이라고 할 만한 것이 비롯된 시기 자체가 러일전쟁 전후다. 곧 무사 출신의 가토 도쓰도로 대표되는 메이지 시대의 무사도적 사생관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메이지 무사도나 다이쇼 교양주의에 보이는 엘리트들의 사생관과 대조적인 계보로, 민간전승의 죽음인식에 주목했던 민속학적 사생관을 중요하게 다룬다. 하지만 일본 민속학을 창시한 야나기타 구니오로 말하자면 제국 일본의 고위관료로서 타이완의 식민정책과 한국병합 등에 깊이 관여했고, 오리쿠치 시노부도 파시즘과 전쟁을 찬양하는 서사시를 대량으로 창작했다. 근대 일본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제국과 식민지, 그리고 전쟁을 정면에서 생각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비켜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은 전쟁이라는 문맥을 애당초 피해가기 어렵다. 21세기의 영화 [굿’ 바이]라면 전쟁과는 전혀 무관한 그저 현대 일본의 대중오락문화로 느껴질 수도 있으나, 실은 원작 『납관부 일기』를 쓴 아오키 신몬의 작가적 원체험에도 태평양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아오키는 네 살 때 부모를 따라 만주로 건너갔다가 패전과 함께 여덟 살 때 일본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귀국선을 기다리던 난민수용소에서 여동생과 남동생이 잇달아 죽었다. 그는 어느 모르는 아주머니와 함께 동생들의 주검을 시체가 잔뜩 쌓여있는 곳에 버리고 돌아왔다. 그때의 기억이 평생 그의 뇌리에 남아 그의 삶을 지배했던 것이다. 저자는 나름대로 패전 이후의 전쟁문학을 통해 전통적 사생관이 무너지고 현대 사생관으로 연결되는 장면을 포착하려고 한다. 바로 전시 중의 일명 자살특공대에서 살아남은 요시다 미쓰루의 작품을 통해서다. 요시다가 끊임없이 반복하는 실존적 물음 속에서, 저자는 무사도를 비롯하여 이른바 깨달음을 지향해왔던 일본인의 사생관의 계보가 후퇴하고 그것이 극복되어가는 양상을 보려고 한다. 이를 한국어판 서문에서는 ‘실존적 사생관’의 계보라고 명명하고 있다. 저자는 어디까지나 잠정적이라고 했지만……‘실존적’이라는 수식어가 적절한 선택인지는 다소 불만스럽기도 하다. 돌아보면 메이지의 무사도적 사생관이나 다이쇼 교양 청년들의 자살을 둘러싼 번민 역시그야말로 ‘실존적’ 관심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몇몇 문제가 이 책의 의의와 평가를 격하시키는 것은 아니다. 근대 일본의 ‘국가신도’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해온 저자가 위의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을 리 없다.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에는 정치적 맥락에 대한 고민이 본격적이지 못했다는 반성도 엿보인다. 추측컨대 오히려 각각의 인물들에 대한 사상적 판단은 최대한 유보한 채 그들이 대표하는 어떤 종류의 사생관을 읽어내는 데 집중했다고 하는 편이 타당할 듯하다. 무엇보다 근대 사생관 언설의 주요 흐름을 독자적으로 파악하여 현대 일본의 죽음 문화에 연결 짓는다는 점에서 이 책은 분명 최초의 시도에 해당한다. 저자는 일관되게 현대 사생학에 대한 접점을 의식하며 설명을 해나간다. 따라서 얼핏 접근은 용이하나 그 깊이는 상당하여 생각처럼 쉬이 읽히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먼저 일본 내지 일본인의 사생관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를 잠시 접어두고 이 책을 열었으면 한다. 이 책에 나오는 특정 작가나 작품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해당 장부터, 혹은 그 부분만 읽어도 도움이 되리라. 하지만 근대 일본 사생관의 흐름을 파악하고자 한다면 역시 순서대로 읽어나가기를 권한다. 저자가 선택한 구성이 반드시 시대적 순서에 따른 배열은 아니지만, 각 장의 사생관은 서로 맞물려 있고 당연히 앞의 사생관을 의식하며 전개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성미 급한 독자라면 각 장에 소개되어 있는 텍스트의 인용문만을 읽는 것도 방법이리라. 종횡무진으로 텍스트를 오가며 자신의 논지를 전개해가는 저자의 해설을 곁눈질하면서 저자가 인용한 작품의 문장을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다. 그다지 길지 않은 책인데도 그만큼 고르고 고른 문장들로 가득하다. 그래도 읽히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역자의 미숙한 번역 탓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한국인의 죽음관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지금 한국에서 생사학을 고민하기 위한 중요한 시사점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전쟁의 역사와 함께 형성된 근대 일본인의 사생관, 그리고 그로부터 출발한 현대 일본 사생학이 남긴 과제에 대해, 이제 전쟁의 다른 편에 서 있던 우리가 응답할 차례일 것 같다. 이 책을 닫으면서 저자가 던지는 물음에 조금이라도 공명한다면 혹은 그럴 수 없다면, 그 답을 찾는 것은 한국 생사학의 몫이다.

- 역자 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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