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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안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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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근대문학, 생명을 사유하다>

안지영

국문학 연구자. 문학 비평가. 현대시를 전공했으며, 현재 국민대학교 교양대학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에는 1980~90년대 여성해방운동 및 생태운동에 관심을 두고 연구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천사의 허무주의』, 『틀어막혔던 입에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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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천사의 허무주의> - 2017년 12월  더보기

이 책의 내용을 구상하면서 ‘시인의 존재론’을 다루어보겠다는 나름의 담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여느 위대한 예술가들이 그러하듯이 위대한 시인들에게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겪지 못하는 것을 겪어내는 존재의 방식이 있다고 믿는다. 과연 192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허무주의 계보를 훑으며 시인들의 삶 자체가 하나의 작품임을 절감하였다. 이들은 자기 삶의 매 순간을 충만한 시간으로 수놓으며 개체적 자아를 넘어 존재론적 비약을 보여주었다. 시인들은 꽃이자 풀이자 나무였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미풍이었다가 그 미풍에 흩날리듯 날아가는 나비가 되었다. 이들의 시는 그렇게 자연과 문명, 삶과 죽음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과 세계 사이의 복잡한 관계망이 회복된 아름다운 순간들과 만나게 해주었다. 나는 이와 같은 시인의 존재론이 허무주의라는 공통된 세계관과 더불어 전개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허무주의는 무엇보다 ‘역사적인 것’에서 ‘비역사적인 것’으로의 전회를 가능하게 하는 존재미학이다. 허무주의를 부정적으로 인식해온 이들에게 이와 같은 접근은 낯선 것일 수밖에 없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책에서는 이를 김춘수의 표현을 살짝 빌려와 ‘역사허무주의’로 구체화하였다. 그러니까 이것은 삶에 대한 의욕이 없는 금욕주의적 허무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옭아매는 역사를 부정하고 삶을 더 욕망하게 되는 허무를 말함이다. 스스로를 역사의 주체라고 자임하는 ‘근대적 개인’이 역사의 폭력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역사허무주의는 역사의 노예로 살아온 삶을 해방시켜 존재의 비약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비역사적인 것’의 지평 안에서 삶을 꾸려간다는 것이 시인들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벤야민이 파울 클레의 에서 포착한 천사의 모습은 시인들의 자화상이기도 하였다. 벤야민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서 시간을 균질적이고 공허한 것으로 만들며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라고 명령하는 역사의 폭풍 앞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는 천사에 대해 묘사한 바 있다. 이러한 천사의 모습은 진보에 대한 믿음을 고수하느라 역사의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에 대한 비유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 벤야민이 인용한 니체의 말처럼, “우리는 역사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지식의 정원에서 소일하는 나태한 자가 필요로 하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어쩌면 역사가 폐허라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천사는 폭풍을 뚫고 충만한 시간을 되찾게 해줄 ‘작은 문’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그러한 천사의 소임을 맡아준 것이 니체의 철학이었다. 니체는 역사의 폭풍에 휘말리는 순간들마다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너는 새로운 꽃을 피울 수 있는가’라는 니체적 명제는 변증법적 역사철학에 대한 선전포고라 할 수 있다. 그는 인간들이 역사의 과잉으로 인해 겪게 되는 불행을 상기시키며 비극과 웃음과 사랑의 가치를 일깨워주었다. 나는 이 책에서 이와 같은 니체의 명제를 구현해낸 시인들이 역사라는 폐허에 피워낸 다채로운 꽃밭을 펼쳐 보이고 싶었다. 이들이 인간으로서 자신의 왜소함에 비애를 느끼고 좌절할 때 나 역시 허무한 슬픔을 느꼈다. 이들의 절망은 깊었고 다시는 날개를 펼 수 없을 것처럼 보일 때조차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시를 읽으며 비애를 뚫고 넘어갈 수 있는 힘이란 바로 그 비애로부터 비롯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법을, 그리고 웃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니체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러니 시인의 슬픔은 결코 나약함의 증표가 아니다. 역사허무주의는 역사에 대한 패배 선언이 아니라 역사 따위는 진정한 싸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거대한 긍정이다. “맛없는 울음”(오장환, 「연화시편」)을 울며 역사를 짊어지고 느릿느릿 기어가는 거북의 아릿한 슬픔 속에서 천사는 아름다운 비상을 보여준다.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단맛을 불어넣어주십시오”라는 릴케의 간절한 기도에서 알 수 있듯이 무르익은 슬픔은 삶을 성숙하게 한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죽음에 대한 소망은 죽음마저 축복할 만한 것으로 변용시킨다. 해서, 「두이노의 비가」에서 릴케는 이렇게 노래한다. “몰락조차도 그에겐/존재를 위한 구실, 최후의 탄생에 불과했나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와 릴케의 천사의 동일성을 지적한 하이데거의 명민한 통찰처럼, 니체의 철학 못지않게 이 책의 버팀목이 되어준 것이 릴케의 시이다. 시인들이 절망에 빠져 있던 순간마다 영혼의 피난처를 마련해주었던 것처럼, 릴케는 이 책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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