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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아니키우스 보이티우스 (boetius)

출생:477년

사망:524년

최근작
2024년 4월 <철학의 위안>

아니키우스 보이티우스(boetius)

480년경 로마의 전통적 귀족 가문 아니시아((Anicia) 명문가에서 태어났다(생몰 연대와 태어난 곳이 확실하지 않음). 그의 아버지는 오도아케르의 치하에서 집정관을 지냈으며 집안은 보수적이었지만 빠르게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그 후 막강한 권력과 부(富)를 누렸다. 그는 어릴 때 신동(神童)이었으며 어릴 때부터 학문에 대한 비상한 열의를 보였다. 그러다 그가 소년이었을 때 집정관이던 아버지가 갑자기 죽자, 이때부터 스콜라 철학자이며 로마 집정관과 원로원의 우두머리인 아우렐리우스 심마쿠스의 집에서 자라게 된다. 그는 심마쿠스에게 문학과 철학에 관한 것을 배우고 성장한 뒤 그의 딸 루스티시아나와 결혼했다. 그가 받은 교육의 질(質)은 최고였으며 수사학 · 논리학 · 천문학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학문에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그 후 이른 나이에 오도아케르를 멸망시킨 동고트족의 테오도리쿠스 왕의 눈에 들어 부르군디족의 왕 군도바드를 위해 물시계와 해시계를 만들고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를 위해 수금(竪琴)을 연주할 사람을 뽑는 일을 맡았다. 그리고 회계 담당원에 의한 화폐 품질 저하 사건을 조사하는 일에 기용되었다. 그 후 로마의 전통적 공직 중에서 가장 화려한 직위인 집정관에 오르고 국가 관리 전체의 우두머리로 궁정 관리들의 장(長)이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그의 두 아들이 집정관으로 임명된 후 523년경 동로마 편인 요한 1세의 선출을 지원했다는 반역죄에 연루된 후 그 일로 체포되어 사형 판결을 받고 파비아로 귀양을 가 처형을 기다리다 고문을 당한 후 옥사한다. 이때 그는 귀양지 파비아에서 처형당하기 전까지 ≪철학의 위안≫을 집필하였다. 그는 그리스어를 모르는 로마인에게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사상을 알리기 위해 두 사람의 모든 저작에 설명을 붙여 이해하기 쉽게 번역과 주해를 계획했지만 처형되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가 옥중에서 쓴 대표작 ≪철학의 위안≫은 철학과 신학을 비롯해 수학이나 음악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철학자 플라톤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교의 여러 문제를 응용해 스콜라 철학의 선구자가 된다. 그가 남긴 작품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Categoriae)≫ ≪명제론(De Interpretatione)≫ ≪변증론(Topics)≫ ≪분석론 전서(Prior Analytics)≫ ≪분석론 후서(Posterior Analytics)≫ ≪궤변론(Sophistical Fallacies)≫ 등의 번역과 주해서가 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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