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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인문/사회과학

이름:김삼웅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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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통사와 혈사로 읽는 한국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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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대한매일신보』(지금의 『서울신문』) 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으며, 4년여 동안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제주 4·3사건 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고, 2019년 현재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추진 위원회 위원,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 등을 맡고 있다.
역사·언론 바로잡기와 민주화·통일운동에 큰 관심을 두고,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의 평전 등 이 분야의 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필화사』, 『한국곡필사』, 『위서』, 『금서』, 『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년』, 『백범 김구 평전』, 『약산 김원봉 평전』, 『박정희 평전』, 『김영삼 평전』, 『김대중 평전』, 『노무현 평전』, 『김근태 평전』, 『신영복 평전』, 『의열단, 항일의 불꽃』, 『3·1혁명과 임시정부』, 『10대와 통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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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운동과 민족정신> - 2019년 4월  더보기

― 다시 ‘역사’를 생각하면서 (1) 조선시대 역사가 순암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역사가가 지켜야 할 큰 원칙은 역사의 정통성과 계통을 밝히고, 찬적簒賊을 엄하게 다스리고, 충절을 드러내 주고, 옳고 그름의 기준을 바로잡고, 전장典章을 자세히 기록하는 것이다.”라고 역사서술의 원칙을 밝혔다. 단재 신채호는 이런 원칙으로 씌인 《동사강목》을 필사하여 짊어지고 블라디보스토크(해삼위)와 만주?중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며 역사연구의 지침으로 삼았다. 단재는 나라를 빼앗겨도 역사만 지키면 국권을 회복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풍찬노숙의 망명객으로서 <조선사>를 집필하고 각종 사론史論을 썼다. 독재자들은 불법무도를 자행하면서 자기합리화의 수단으로 ‘역사’를 들먹인다. 역사를 우습게 여기는 자들이 역사심판론을 제기하는 것은 유체이탈 어법을 한참 뛰어넘는다. 4대강을 죽이면서 ‘4대강 살리기’, 노동자들의 권익을 옭죄면서 ‘노동개혁’, 위안부 문제를 굴욕적으로 처리하고 ‘불가역적’이란 쇠말뚝까지 박으면서 ‘역사평가’를 내세웠다. 그런가 하면 전작권 환수를 무기한 연기하면서 ‘자주국방’, 메르스보다 백만 배 위험하다는 탄저균 실험을 용산기지에서 15차례나 실시하고도 ‘혈맹관계’, 누리예산을 없애면서 무기수입에는 ‘세계최고금액’, 국가핵심권력을 자기들끼리 독점하면서 ‘국민화합’, 최상위층 1%가 전체 부의 18%를 차지하는 ‘창조경제’, 물대포 직사와 세월호참사 외면하면서 ‘선진화’, 독립운동가보다 친일파 앞세우는 ‘건국절’ 등 반역사적 현상이 역사의 가면을 쓰고 진행되었다.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토스가 처음 사용한 그리스어 historia는 ‘진실을 찾아내는 일’이란 뜻이다. 중국의 허신許愼은 역사의 사史는 “사事를 기록하는 사람”으로 풀이한다. 사史의 뜻은 “바르게 기록하는 손”의 의미로도 쓰인다. 동물 중에 인간만이 역사를 가진다. 따라서 역사의 산물인 인간은 역사의 엄숙성을 알아야 한다. ‘역사의 엄숙성’과 관련하여 찰스 비어드는 “역사서술은 일종의 신념행위”라고 정의했다. 어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도 비판대상이 되고 재평가하는 것이 역사의 신념행위라는 것이다. 우리는 최근까지 ‘국가’만 있고 ‘역사’가 없는 몰역사의 시대에 살았다. 역사를 말하면서 역사를 외면하거나 반역사의 길을 가는 시대가 되었다. “나라는 없어질 수 있으나 역사는 없어질 수 없다. 나라가 형체라면 역사는 정신이기 때문이다”(박은식). 사마천의 《사기》에는 굴원屈原의 <회사부(懷沙賦)>를 싣고 있는데, 이는 절명絶命의 노래이다. 굴원은 “백白이 흑黑으로 변하고 / 상上이 하下로 둔갑한다. 봉황은 조롱에 갇히고 / 계치(닭꿩)만 하늘을 난다”고 하였다. 그는 결국, “아 권력의 기막힌 재주여 / 먹줄을 없애고 멋대로 고치는구나”란 말을 남기고 멱라수에 몸을 던졌다. ‘먹줄’은 정의?진실의 잣대를 말한다. 노자는 ‘천도론天道論’에서 여덟 글자를 통해 하늘과 역사의 준엄함을 밝혔다. 천망회회天網恢恢 소이불실疎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촘촘하지는 못하나 결코 놓치지 않는다.” 하였다. 역사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은 역사의 두려움을 알아야 한다. 역사의 물레방아는 천천히 돌지만 잘게 갈아나가고, 천망은 듬성듬성 하지만 놓치지 않는다. 하여 옛사람들이 역사는 그물이고 거울이라 했다. 국민을 배반하고 정의에 역행하면 설혹 실정법이 ‘거미줄 법’이어서 피해가더라도 역사의 심판이 있고 최종적으로 하늘의 그물이 기다린다.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는 심판과 감계鑑戒”란, 잘못된 역사는 후대에 심판을 받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 담긴다. 덧붙이거니와 (범죄적) 공인들이 함부로 역사를 들먹이지 말 것이며, 역사에 반하는 언행은 삼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론인과 학자들이 최소한 조선시대 사관 정도의 역사의식과 책임감이 따라야 가능할 것이다. (2) 한국사의 개혁과 통합과정에는 항상 거대한 저해세력이 작용했다. 그것이 외세나 내부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반도국가라는 지정학, 거듭되는 정쟁에 책임을 돌리기도 한다. 국난기나 난국이면 협력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개혁을 실천해야 함에도 분열하고 이반하여 민족사에 통한을 남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통한과 치욕을 겪고도 되풀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의 비극성은 현재진행형이다. 고조선의 확장과정에 중국 연나라의 침입, 위만조선 통합과정에 한나라의 침범, 삼국의 통합노력에 개입한 수?당, 청나라 속박에서 벗어날 무렵 러?일의 개입, 일제로부터 해방시기 미?소의 분할점령 등 통합과 독립단계에서는 어김없이 외세가 개입했다. 이런 현상은 반도국가의 지정학적인 숙명이란 핑계가 가능했다. 묘청의 서경천도 등 국정개혁을 토벌한 김부식의 보수세력, 조광조의 개혁을 짓밟은 훈구세력, 전봉준의 동학혁명을 말살하고자 일본군까지 끌어들인 사대세력, 찬탁과 반탁, 남북협상?분단세력의 이전투구 그리고 지금 남북화해 세력과 냉전회귀 세력의 대결은 모두 민족내부에서 벌어진 부끄러운 정쟁의 산물이다. 단재 신채호는 민족사의 분열과 관련, 1929년 ‘조선역사상 1천년래 제1대사건’이란 글을 썼다. 묘청의 개혁실패가 끼친 결과를 분석한 내용이다. “낭불양가?佛兩家 대 유가儒家의 전戰이며 국풍파 대한학파의 전이며 독립당 대 사대당의 전이며 진취사상 대 보수사상의 전이니, 묘청은 곧 전자의 대표요 김부식은 곧 후자의 대표다.” 단재가 고려왕조의 ‘변란’인 이 사건을 ‘1천년래 제1 대사건’으로 규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전역에 묘청 등이 패하고 김부식 등이 승하였으므로 조선사가 사대적 보수적 속박적 사상?유교사상에 정복되고 말았거니와 만일 이와 반대로 김부식이 패하고 묘청 등이 승하였다면 조선사가 독립적?진취적 방면으로 진전하였을 것이니 이 전역을 어찌 1천년래 제1대사건이라 하지 않으랴.”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조지 오웰). 그래서 못된 짓을 하거나 업적이 없는 권력자는 역사를 왜곡?날조한다. 또 지배권을 영속화하기 위해 특정 사실을 변조하기도 한다. 조선을 강탈한 일제가 가장 먼저 서두른 것은 조선사편수위원회(조편위)를 만들어 한국사를 왜곡날조한 일이었다. 그때 만든 한국사는 오늘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교본이 되고 있다. 청나라 말기 〈고사구침론古史鉤?論〉를 쓴 학자 공자진은 “그 나라를 멸망시키려면 반드시 먼저 그 사史를 제거하라. 그 문방文坊을 허물고 기강을 파괴하려면 먼저 그 사를 제거하라. 그 인재를 단절시키고 교육을 근절하려면 먼저 그 사를 제거하라.”고 역사의 권능을 높이 평가했다. 일제가 조편위를 만든 것, 박정희가 유신교과서를 만든 것, 박근혜정부가 교과서 국정화의 무리수를 강제한 이유는 모두 역사를 권력에 종속시켜 입맛대로 조작하고 국민을 색맹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선인들이 나라는 망해도 역사만 지키면 다시 부흥할 수 있다는 ‘역사정신’과는 딴판이다. 병자호란 후 ‘대청황제공덕비’에 어쩔 수 없이 차출되어 비문을 쓴 한성판윤 오준은 후일 수치심에서 벼슬을 버리고 붓을 잡았던 오른손을 돌로 찍어 다시는 글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데이비드 왓슨 노블의 저서에 《역사를 버린 역사가들》이 있다. 유럽의 낡은 인습과 권력종속 따위를 피해 신대륙(미국)으로 건너간 학자들이 유럽의 유산을 그대로 답습한 행태를 분석한 책이다. ‘역사를 버린 역사가’들이 역사를 집필하고 가르치면서 역사를 왜곡함으로써 우리 민족은 치욕을 겪었다. (3) 이 역사 에세이는 월간 《책과인생》에 〈책수레 만리길〉이란 제목으로 10여 년 간 쓴 글 중에서 ‘역사’와 ‘독립운동’과 관련한 내용을 묶었다. 본격적인 역사연구나 사론史論이라기보다 그때 그때 시의에 따라 쓴 ‘역사 에세이’라고 하겠다. 연재를 허락해 주시고 단행본으로 엮어주신 범우사에 감사의 말씀 올린다. ― 2019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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