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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서승

출생:1945년, 일본 교토

최근작
2020년 8월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서승

1945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났다. 도쿄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유학하던 중 1971년 4월 보안사에 끌려가서, ‘재일교포학생 학원침투간첩단사건’으로 동생 준식과 함께 기소되었다.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90년 2월 28일 가석방될 때까지 19년간 옥살이를 했다.
출소 후 넓은 세상을 만나려고 미국, 유럽, 남미 등을 돌아다니고, 1994년에 교토로 돌아와서 대학 강사를 하면서, 동아시아의 분단, 냉전과 국가폭력의 진상규명과 피해의 회복, 역사청산, 평화를 지향하고, 한국, 타이완, 오키나와, 일본의 동지들과 함께 ‘동아시아의 냉전과 국가 테러리즘’ 국제심포지엄운동을 설립하여 1992년까지 각 지역에서 행사를 진행했다.
1998년부터 2011년까지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 법학부 교수로 일했으며 2018년부터는 우석대학교 석좌교수, 동아시아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1994년, 한국정치범감옥의 실태와 독재정권의 사상전향제도에 맞선 정치범들의 투쟁을 기록한 <옥중 19년>(일본어판, 이와나미 서점)을 펴냈으며 1999년에는 한국어판, 2002년에는 영어판, 2017년에 중국어판을 출간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활동하면서 <서승의 동아시아 평화기행-한국, 타이완, 오키나와를 가다>(창비, 2011), <동아시아의 우흐가지 1,2-서승의 역사인문기행, 2016> (진인진)등의 저서를 펴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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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평화로 가는 한국, 제국으로 가는 일본> - 2019년 12월  더보기

한반도평화시대의 한일갈등과 주권의식 경향신문에 ‘동서남북인의 평화찾기’의 이름으로 2017년 6월부터 매달 한번, 25회 쓴 동아시아 평화를 화두로 하는 글들을 모아 책으로 묶었다. 연재 에세이를 묶어서 1부로 하고, 여러 기회에 쓴 비교적으로 긴 글들을 묶어서 2부로 했으니, 대강 이 몇 년 동안의 나의 사색과 행동의 궤적을 모은 것이라고 하겠다. 내가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을 떠나서, 전주의 우석대학교에 자리를 옮겨 서울에 정착한지 2년이 지났다. 몸을 서울에 두고 동아시아의 인간과 민족, 역사와 사회를 생각하는 기회를 얻었는데, 이 수년은 한편에서 남북관계가 전쟁과 평화의 양극단을 왕복하는 격동을 겪어, 기적과 같은 감동과 희망을 안겨주었다가 이제는 다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긴장감과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변덕스러운 트럼프 대통령과 거인 중국과의 각축을 일진일퇴하고, 한일관계가 악화의 일로를 치닫고 역사상 최악이라고 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동아시아의 평화가 삐걱삐걱 비명을 올리고 있다. 과거에도 625전쟁이나, 베트남전쟁 시기에 동아시아 국제관계는 위기에 처했으나, 요즘처럼 온 몸에 잔뜩 병균이 서리고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시기는 많지 않았던 것 같아. 그나마 우리 겨레가 한 마음, 한 몸이라도 이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국제관계의 거친 바다를 헤쳐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데, 남북분단에 더해서 한국 내부의 반 역사적인 반 지성적인 세력들이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는 소리도 못 내고 엎드려 있다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거세지고, 아베정권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혐오와 공격이 노골화되자, 조국 전 법무장관 문제를 빌미로 벌 떼 같이 들고 일어나 나치스처럼 혐오의 동원정치를 펼치고 있다. 1990년에 출소한지 벌써 3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 동안 나의 사상과 행동의 중심이 되어 온 ‘동아시아’와 ‘평화’라는 열쇠 말은 시중의 매체에 넘쳐 흐르건만, 진즉 동아시아 개념에 대한 역사적?구조적 이해는 캄캄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관광 열풍 속에서 오키나와, 타이완, 베트남,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를 누비고 다니면서도, 동아시아 역사의 심연을 들여다 보려고 하지 않는다. 모두가 평화를 말하면서도 서로 다른 평화를 말하고 있으며, 평화의 실현은 멀어져 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한반도의 혼미와 동아시아의 난제의 많은 부분은 일본에서 비롯된다. 원래 ‘아시아’라는 말은, 서구 열강의 침략과 약탈의 발자취를 따라 손님처럼 이 지역에 들어왔으며, ‘동아시아’라는 말은 서구제국주의의 본을 따라, 침략과 약탈의 길을 매진한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말이니, 그 ‘부국강병?식산흥업’의 길은 우리가 따라 배울 바가 아니다. 우리 겨레는 동아시아 근대에 펼쳐진 전쟁과 평화의 두 갈레 길 중 평화의 길을 뚜벅 뚜벅 걸어 왔다. 우리에게 ‘평화란 모든 민족이 독립하고 평등한 것’이라는 안중근의사의 말씀이 사무치는 까닭이다. 우리와 달리 일본은 전쟁의 길을 걸어왔으며, 2차세계대전에서의 처참한 패전 후 잠시 잠복기를 거쳐 이제는 그 야욕의 고개를 쳐들려고 하고 있다. 아베는 워낙 출범부터 문재인 대통령과 그 정권의 민주주의, 민족통일, 평화지향에 생리적, 본능적인 혐오감을 숨기려 하지 않고, 문재인정부를 ‘친북 좌파정권’이니 비난하면서 사사건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왔는데, 작년 일본기업들에게 징용공에 대한 배상명령을 대법원이 내리자, 한일간의 청구권문제는 한일기본조약이나 청구권협정에서 표명한 ‘완전히 끝났다’는 한일간의 약속을 어겼다고 하면서 사사건건 “약속을 지키라”고 외우고 있다. 억지로 씌운 낡아빠진 차용증을 들이대며 백성을 겁박하는 악질 고리대업자의 행패다. 이런 광경을 보면 부조리에 치떨리는 분노와 이성이나 양심이 없는 자들에 대한 닿지 않는 아득함을 느낀다. 1905년과 1910년에 무력과 협박으로 억지 도장을 찍게 한 한국병합조약을 지금도 ‘적법’이라고 하는 캄캄한 아득함이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우리 민족을 분단하고, 반공 독재정권을 옹립하여 민족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해온 미국과 그 것을 기화로 ‘반공’을 내세우면서 식민지지배의 악행을 다 덮고 동아시아 시장제패의 욕망을 마음껏 키워온 일본과의 합작으로 우리의 민족의 해방과 ‘평화시대’의 개막의 꿈을 짓밟으려고 하고 있다. 우리겨레의 비극의 뿌리는 일제의 잔재가 완전히 청산되지 않는 데에 있다. 세계대전 후 미국이 동아시아에서의 패권을 위해 일본을 속국으로 만들면서 일본에게 군국주의 해체와 식민지책임 청산을 중단하고 이른바 ‘한미일동맹’이라는 의사 군사동맹 속에 일본과 한국을 묶어서 동아시아 군사지배체제를 만들었다. 그래서 일본을 전진기지로 하는 샌프란시스코조약체제=미일안보조약체제에서 일본이 통제 받는 대신에 과거청산을 면제 받았다. 특히 경제면에서는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대리인으로서 ‘대동아공영권’ 시장의 일부 복구의 허가를 받았다. 이것이 한일 기본조약체제이며, 일본의 ‘경무장 고도경제성장’은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일본은 홀로서기를 하기까지 미국의 날개 아래 숨어서 이 틀을 유지하려고 애 쓰고 있다. ‘한일 갈등’이라는 싸움은 제국주의=식민지지배체제, 냉전=민족분단체제를 불변의 질서로 밀어붙이려 하는 힘에 대한 우리 민족의 자주?자립하고자 하는 온몸 싸움인 것이다. 무슨 민간이 돈을 모아 일본과 절충적인 화해를 모색하는 식의 고식책으로 해결 되는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우리의 대응은 미일에 대해서 민족주권을 제고하면서 자주적 교섭능력을 키울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도 우리는 ‘한반도평화시대’를 열어나가고 서서히 통일시대에 발을 들여놔야 할 것이다. ‘분단시대’를 넘어서고 ‘통일시대’로 가는 ‘평화시대’에, 우선 우리는 전쟁을 절대 거부하고, 남북의 소통?교류를 대대적으로 확대하고, 민족공영의 협력사업을 증진시키고, 외교현안에서는 민족적 이익에 대해서 긴밀히 공조하고, 교육, 학술, 과학기술, 의료?보건, 스포츠, 예술, 예능 등 광범위하고 심도 있는 공동의 문화사업을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평화시대’의 성패의 관건은 우리가 운명의 주인임을 자각하는 주권자의식을 얼마나 똑바로 세우는가에 달려 있다. 태어나서 75년, 투옥된지 50년, 출소한지 30년이 되려는 이 해에 소책자나마 출간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이것도 경향신문 연재 중에 끊임없는 관심과 성원을 아끼지 않았던 애독자 여러분의 덕분이다. 특히 이 책의 출판을 맡아주시고 편집에 범상치 않는 노력을 기울여 주신 경향신문 오광수 부국장님, 내 원고를 꼼꼼히 일고 바로잡아주신 해외동포재단 이경은 상임이사님에게 각별한 감사를 드린다. 연재의 타이틀에 있는 ‘동서남북인’은 남송의 시인 루요우(陸游)가 쓰던 호를 빌린 것이다. 그 뜻은 동서남북 정처 없이 떠도는 자라는 말이라는데, ‘타향’인 일본에서 태어나서, 고향을 찾다가 찾지 못하고, 결국은 평생 안주하지 못해 낯선 타향을 떠돌아다닌 나에게 어울리는 호라고 하겠다. 인생 말년에 때때로 나는 평생 무얼 했나 하는 회한에 사로 잡히곤 한다. 참으로 덧없고 보잘것없는 인생이었구나 하는 생각 속에서도 인생의 지나간 굴곡마다 만난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서로 격려하고 서로 붙잡아 준 분들도 있는 것을 상기하고, 첩첩이 싸인 난관 속에서도 우리 겨레는 통일시대로 향하는 ‘평화시대’의 길을 한발씩 걸어갈 것이라는 희망을 붙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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