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채한기. 충남 천안 광덕에서 나고 자랐다. 광덕초, 광풍중, 천안북일고와 청주대를 졸업했다. 1993년 한국불교신문사에 입사했으며 1995년 법보신문사로 자리를 옮겼다. 26년 동안 불교 전문 기자로서의 길을 걸어왔으며 현재 법보신문 상임논설위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어진 길을 따라 절에 드는 순례의 여정을 담은 <길 따라 절에 들다>를 법보신문에 연재해 주목받았다. 이후 큰스님들을 직접 만나 그분들의 수행과 가르침, 전법의 역경을 조명한 <천강에서 달을 보다>를 통해 불자들에게 지혜와 깨달음의 감로수를 전해왔다.
필자가 친견한 모든 선지식에게 꼭 여쭈어 본 질문 한 가지가 있다. 출가인연이다.
‘나는 누구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길을 나선 스님이 있다. 할머니 혹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절에 들어 선 스님이 있다. ‘그냥 절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 하나 품고 산문을 연 스님도 있다. 다양한 출가인연을 관통하는 핵심어 하나를 발견했다. 숙연(宿緣)이다.
스님들 사이에 전해지는 가르침 하나가 있다. ‘법의(法衣·가사, 승복)는 여러 생에 걸친 원력의 막중함과 일찍이 심어 둔 지혜의 종자가 성숙되어야 입을 수 있다.’ 다생에 걸친 숙연이라니! 삭발염의(削髮染衣)의 지중함을 결코 잊지 말라는 뜻이다.
하여, 간밤의 잠에서 깨어 난 스님은 세수한 후 거울을 보며 삭발한 머리를 쓰윽 만져 본다. 스님들에게 머리카락은 번뇌와 망상을 뜻하는 무명초(無明草)다. 자신도 모르게 솟아오른 번뇌망상. 삭도(削刀)를 들어 단박에 베어낸다. 승복을 입은 스님은 거울 앞에 다시 서서는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됐다!’ 싶으면 옷깃과 소맷귀를 또 한 번 ‘탁’ 세우고 방문을 연다. 수행인으로서의 자긍심이다. 그리고 이름조차 험한 샘물은 마시지 말라는 뜻을 새김이요, 한 톨의 쌀에 시주의 은혜가 일급 근임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청초한 하루를 시작한 선지식이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건 독자님들이 읽어내야 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