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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윤성희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73년, 대한민국 경기도 수원

직업:소설가

기타:청주대 철학과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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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소설의 첫 만남 11~20 세트 - 전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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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개
1.
이야기들이 나를 향해 밀려온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이야기들을 향해 내가 걸어간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어떤 소설은 내 안의 구멍을 들여다보게 만들고 어떤 소설은 나를 낯선 곳으로 데리고 간다. 좋은 소설들은 이 이 두 가지를 근사하게 포개놓는다. 다만, 어느 것이 먼저인지에 따라 달라질 뿐.이선진의 소설은 먼저 밀려오는 소설이다. 이선진은 ‘어느 날 연필 꽁지에 달린 지우개를 잃어버렸는데, 그 지우개를 시간이 훌쩍 지난 후 철 지난 외투 주머니에서 발견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문장을 쓴다. 그래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게 아니라 그림자처럼 붙어 있다 천천히 나를 덮어버린다. 나는 이 인물들이 안쓰럽지 않다. 위로를 해주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도 무언가가 나를 찌른다. 단편 하나를 읽을 때마다 며칠 속상하다. 나는 왜 이 소설 속 인물들 때문에 마음이 따끔해지는가? 그 질문이 나를 밖으로 향하게 한다.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알 것만 같지만 잘 모르겠는 그 세상으로, 나를 걸어가게 한다.
2.
이 작가의 문장 뒤에는 많은 것이 감추어져 있다. 쓰지 못한 것이 아니라 쓰지 않은 것. 그것을 통해 작품 속 인물들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는 자세다.
3.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지극히 몽환적이다. 감상적인 이야기에 빠질 위험을 아슬아슬하게 잘 끌고 가 멋진 결론을 이끌어 낸 점, 주인공의 슬픔을 문장 아래로 감추려는 작가의 재능도 믿음직스러웠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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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구 서소문로 89-31)
일상을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마치 돋보기로 보듯 그렇게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평범한 장면도 환상의 세계를 보는 듯하게 느껴진다. 극단적인 세밀함은 알 수 없는 거대한 존재가 ‘인간’이란 존재를 내려다보는 듯한 효과를 준다. 거대한 배가 쓰러지고, 보험사와 실랑이를 하고, 구조조정을 한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고, 음모가 난무하고, 나를 지키기 위해 타인을 밀어낸다. 이 소설은 이런 과정들을 리얼하게 그려낸다. 너무나 리얼해서 직업의 세계라는 다큐를 보는 듯하다. 그 결과, 독자인 나는 책을 읽다 어느 순간 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마치 운동장의 개미를 내려다보듯. 그걸 구경하는 내가 누운 배처럼 쓸모없는 인간이 된 듯해 쓸쓸해진다.
5.
  • 바질 정원에서 - 한수영 소설집 
  • 한수영 (지은이) |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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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구 서소문로 89-31)
어떤 일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상태로 일어나고 어떤 일이 언제 끝났는지 모르는 상태로 끝나버리는 것이 삶이라면,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뒤늦은 질문을 하는 것뿐이리라. 그 질문은 결코 과녁을 명중하지 못한다. 빗나간다. 그저 질문이 그린 궤적을, 빗나간 그 궤적을, 어리둥절해하며 바라볼 뿐이다. 한수영의 인물들도 그렇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중얼거린다. “뭔가 조금씩 어긋나고 있다고.” “분명 뭔가 있는데 그게 뭔지 알 수 없다고.” 어느 선사에서 울려 퍼지는 잘못 울린 종소리처럼, 삶이 내게 너무 이르게 찾아오거나 너무 늦게 도착한 것은 아닌가 의심하면서. 한수영은 머뭇거림의 순간을 포착한다. 그것을 문장으로 아름답게 길어 올린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인물들과 함께 “하루치의 무사한 산책”을 다녀온 기분이 들 것이다.
6.
대부분의 소설 속 인물들은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뒤늦게 묻는다. 마음에 커다란 틈이 생긴 뒤에야. 혹은 틈이 너무 벌어져 무너진 뒤에야. 그러면서 틈이 생기기 이전, 아주 가느다란 실금이어서 거의 보이지도 않던 그 순간을 찾기 위해 애를 쓴다. 좋은 소설은 여기에서 결정된다. 뒤돌아보는 자의 시선, 뒤돌아보는 자의 태도, 뒤돌아보는 자의 윤리. 성해나는 제대로 뒤돌아볼 줄 아는 작가이다. 손쉽게 단정하지 않고 함부로 이해하지 않는다.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질문을 곱씹고 곱씹는다. 작가의 사려 깊은 시선은 문장 곳곳에 스며든다. “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기분”의 찰나를 문장으로 건져 올린다. 성해나의 문장은 정확하면서 예민하고, 명확하면서 깊고, 단정하면서 힘이 세다. 책을 읽다보면 이 모든 것이 조화롭게 천천히 스며든다. 그래, 이게 읽는 맛이지. 혼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7.
천운영의 소설은 눈으로 읽으면서 동시에 귀로 듣는 소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말맛을 느끼려면 읽는 것도 듣는 것도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 그저 마음을 열어놓고, 불어오는 바람과 흘러가는 구름을 느끼며 풍경 속에 자신을 가만히 두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이야기는 굽이굽이 흘러갈 것이다. 이야기는 휘어지고 휘어질 것이다. 이야기는 내 안에서 “할랑할랑 흔들면서, 어깨를 들썩들썩, 뻗었다가 흘렀다가 올랐다가 내렸다가” 춤을 추게 될 것이다. 심장이 얼쑤 하고 추임새를 넣는다. 추임새가 메아리처럼 울려퍼지면,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로 연결되고 삶은 다른 이의 삶으로 연결된다. 그 순간, 천운영 소설은 징해진다. 오메, 이토록 징한 삶이라니. 그 삶이 문장을 넘어서는 순간 천운영 소설은 읽으면서 동시에 듣게 된다. 눈으로 읽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맛보다…… 그러다 마침내 온몸으로 통과하는 소설이다.
8.
소설 속 1인칭을 이런 두 가지 성향으로 나눠보면 어떨까? 끊임없이 자신을 말하려는 ‘나’와 끊임없이 타인을 관찰하려는 ‘나’. 전자의 나는 자신을 사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척한다. 후자의 나는 타인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이 소설을 다 읽고 주인공에게 계속 마음이 쓰였는데, 그것은 자신을 말하려는 ‘나’의 태도 때문이었다. “첫 번째 자살 시도는 세 살 때였다고 한다”라는 문장을 태연하게 말하는 아이. 지루한 걸 끔찍해하고, 거짓말하는 순간 통쾌함을 느끼는 아이. 그 이면에는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모습이 보인다. 주인공은 수영을 배운다. 발장구 백 번. 수영 강사는 그렇게 말한다. 거짓말이란 것은 이 아이에게 발장구 백 번과 같은 것 아닐까. 물에 뜨기 위해 계속 발장구를 쳤듯이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거짓말이 필요했으리라.
9.
우리는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살 수 없다(아니, 그렇게 살아지지가 않는다). 집만 해도 그렇다. 소파, 스탠드, 식탁, 침대 커버와 커튼들. 어쩜 저렇게 완벽하게 조화로운지! 내가 사는 집을 한번 둘러보기만 해도 단번에 비교가 된다. 욕실 타일 사이에 낀 곰팡이, 유행 지난 벽지, 식탁 한쪽에 쌓인 각종 영양제들. 드라마는 먹는 걸 자주 보여주지 치우는 걸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음식물 쓰레기를 버린다. 그걸 버리러 갈 때마다 다른 집들의 음식물 쓰레기 더미를 보아야 한다. 하물며 연애는 더더욱 드라마와 다르다(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드라마처럼 꿈꾸고 싶긴 하다). 일이고, 연애고, 결혼이고…… 늘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다. 예기치 못한 것이 간섭한다. 그것이 우리를 초라하게 만든다. 아무리 노력해봐도 근사해지지 않는다. 그 예기치 못한 놈이 바로 ‘일상’이다.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 내 발목을 붙잡는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지저분한 내 집을 누군가에게 들켜버린 느낌이 든다. 무심한 듯 던지는 삐딱한 말들이 가슴에 박힌다. 그건 인물들이 삐딱해서가 아니라, 대사 속에 일상이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한 번도 세련된 적이 없는 여자인데 스스로 그걸 알까? 그래서 자신이 굉장히 세련된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강남역을 향해 가는 여자의 마지막 모습이 더더욱 슬프다.
10.
소설을 읽고 이 아이를 사랑하게 되면 이제 달리기를 시작하는 아이에게 온 힘을 다해 박수를 쳐주고 싶을 것이다.
11.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분명한 사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맞닥뜨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예외 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이다. 부모. 애인. 친구. 그리고 자식. 순서 없이, 급작스럽게, 그렇게. 이때의 상실은, 이때의 이별은, 우리가 아는 단어를 넘어선다. 이것은 치유되지 않는다. 이 소설이 어머니의 사십구재에서 시작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사십구일이 지났기 때문에 여기엔 감상이 끼어들 틈이 없다. 감상은 제거된 채 상실은 깊어진다. 그리고 그 공간으로 현실이 밀고 들어온다. 어떤 현실은 지나치게 사소해서, 어떤 현실은 다른 대안이 없어서, 어떤 현실은 너무 속물적이어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속수무책이 된다. 아버지가 응급실에 갈 때, 정신을 잃어가면서도 택시 기사에게 200원 거스름을 받는 것을 보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놈의 징글맞은 생이라니!
12.
「내가 울기 시작할 때」를 읽다 나는 잔잔한 호수에 작은 돌을 던지고 그 파문을 오래 들여다보는 게 소설이라는 생각을 오랜만에 다시 하게 되었다. 데뷔작인 「작정기」를 읽을 때도 들었던 생각이지만, 이 작가가 만들어내는 ‘겹’은 아름답다. 문장의 겹. 시간의 겹. 인물의 겹. 이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올까? 이 글을 쓰기 위해 김지연의 소설들을 다시 읽다보니, 과거와 미래가 현재에 합쳐지는 순간을 몇 번이나 만났다. 그곳, 그 시간의 틈에서 감정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이상한 슬픔이어서 정작 소설을 읽을 때는 슬픈 줄 모르고 있다가 한참 뒤에야 슬픔이 밀려온다.
13.
삶이 초라해질수록 이 세상은 거대한 동물원이 되어간다. 그 안에서 우리는 마늘을 까고, 공룡 알을 접고, 인형 눈깔을 붙인다. 우리를 바라보는 구경꾼들이 누구인지 모른 채. 동물원에서 동물들을 흉내 내는 동안은 누구나 사람이 아니니 사람 구실을 할 필요가 없고, 그래서 역설적으로 가장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된다고 이 소설은 말한다. 그 잔인한 사실을 목격하는 순간 우리에게 동물원은 사전적 의미를 벗어나는 시공간으로 자리 잡는다. 공작새가 날개를 펴기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다리던 10대는 예전에 지나갔으니 이제 동물원으로 느긋하게 산책하러 다니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 굿바이 동물원. 그렇게 중얼거려본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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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책의 전자책 : 11,040원 전자책 보기
일상을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마치 돋보기로 보듯 그렇게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평범한 장면도 환상의 세계를 보는 듯하게 느껴진다. 극단적인 세밀함은 알 수 없는 거대한 존재가 ‘인간’이란 존재를 내려다보는 듯한 효과를 준다. 거대한 배가 쓰러지고, 보험사와 실랑이를 하고, 구조조정을 한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고, 음모가 난무하고, 나를 지키기 위해 타인을 밀어낸다. 이 소설은 이런 과정들을 리얼하게 그려낸다. 너무나 리얼해서 직업의 세계라는 다큐를 보는 듯하다. 그 결과, 독자인 나는 책을 읽다 어느 순간 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마치 운동장의 개미를 내려다보듯. 그걸 구경하는 내가 누운 배처럼 쓸모없는 인간이 된 듯해 쓸쓸해진다.
15.
소설은 세상엔 선발투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박진감 넘치는 서사가 주제를 향해 묵직한 직구를 던진다. 그 직구의 문장들을 읽고 나면 볼을 던질 수밖에 없는 혁오가 오래 마음에 남는다. 야구란 후회를 관리하는 게임이라는 오래된 명언을 떠올리자 혁오가 자신만의 리그를 만들고 그 안에서 혼자 싸워야 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같은 경기를 해도 다른 리듬 안에 있는 혁오는 얼마나 외로운 선수인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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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해야 했던 여자들이 있다.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고, 우습게 볼 수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상처받지 않고, 겁먹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절대 강간당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이 꿈은 얼마나 슬픈 꿈인가? 세상은 폭력에 무심하게 노출되어 있고 시스템은 약자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사회가 변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꿈인 것이다. 소설 속 여자들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다른 세상’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다른 성’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쉽다. 이것은 가정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내 노력은 필요 없게 된다. 결국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쩌면 그것이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몸부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17.
이 소설은 매력 있다. 계속 읽게 만드는 것. 감동을 주는 것. 그리고 책을 덮었을 때 잔상이 남는 것. 이 소설에는 이런 지점들이 있었다.
18.
그리고 어떤 정의보다 그 정의를 넘어서는 작품을 만나는 것이 더 좋은 해답 찾기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들소」를 읽고 이 작가가 누구인지 너무나 궁금했기에 행복했다. 그리고 좋은데 뭐가 좋은지 정확히 말할 능력이 모자라 그저 어리둥절해하며 오랫동안 가만히 있었다. 아 좋은 작품은 그냥 좋구나, 어떻게 좋은지 말로 설명할 수 없어도 좋구나, 하면서. _ 기준영, 「들소」
19.
  • 출판사/제작사 유통이 중단되어 구할 수 없습니다.
  •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레이 브래드버리>의 리커버판입니다.
10대 시절 이 책을 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전혀 다른 결의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나는 이 소설을 읽을 때마다 생각한다. 날지 못하는 모형 로켓 안에서 달을 보고, 물고기처럼 헤엄치는 유성을 만나고, 화성에 도착하는 상상을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소설이 줄 수 있는 이야기의 아름다움이라고.
20.
장점을 길게 열거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단순하게 이 소설을 말하고 싶다. 일단 읽어 보라고. 그러면 계속 읽고 싶을 거라고.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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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탐구하는 것이 소설이다. 관계의 첫 번째 단계는 ‘나’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 ‘너’를 볼 수 있다. 이 아이는 그걸 모르고 ‘우리’의 세계에 속하고 싶어 했다. 이 소설은 이제 막 그걸 알아낸 아이의 소중한 성장기이다.
22.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 소설이다. 관계의 첫 번째 단계는 ‘나’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 ‘너’를 볼 수 있다. 이 아이는 그걸 모르고 ‘우리’의 세계에 속하고 싶어 했다. 이 소설은 이제 막 그걸 알아낸 아이의 소중한 성장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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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매력 있다. 계속 읽게 만드는 것. 감동을 주는 것. 그리고 책을 덮었을 때 잔상이 남는 것. 이 소설에는 이런 지점들이 있었다.
24.
이 소설은 부모 세대의 사소한 장난이 그 이후 그들과 남은 이들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이렇게 말하면 실은 이 소설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과 같다. 예측 가능한 이야기는 하나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측 가능한 이야기는 문장 뒤에 숨겨두기 때문이다. 세련되고, 영리하고,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어떤 소설이 좋은 소설입니까? 누가 묻는다면 한두 줄로 답을 하기는 참 어렵다. 하지만 읽고 난 다음 나도 모르게 좋은 소설이네, 라는 말이 나오는 소설들은 많다. 이 소설도 그랬다.
25.
여기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해야 했던 여자들이 있다.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고, 우습게 볼 수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상처받지 않고, 겁먹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절대 강간당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이 꿈은 얼마나 슬픈 꿈인가? 세상은 폭력에 무심하게 노출되어 있고 시스템은 약자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사회가 변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꿈인 것이다. 소설 속 여자들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다른 세상’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다른 성’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쉽다. 이것은 가정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내 노력은 필요 없게 된다. 결국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쩌면 그것이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몸부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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