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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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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예술가들

윤혜정 지음 / 을유문화사
이 책의 매력

김영민 교수의 문장을 잠깐 빌려본다. "정독할 부분을 찾는 방법 중 하나는 자기만의 질문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는 것이다. 그 질문에 답하는 문장들이 바로 정독할 부분들이다."(예약판매 중인 도서, <공부란 무엇인가> 속 문장이다.) 질문을 하나 품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나서는 것은 책을 잘 읽는 방법이자, 삶을 깊게 살아내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예술가는 자신이 잡은 질문의 내핵까지 들어가는 사람이다. "엄혹한 현실인으로 살아내느라" 많은 사람들이 종종 자기 나름의 질문을 놓치고, 제자리를 빙빙 맴돌 때, 예술가들은 삶과 세상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들로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제시한다. 하나의 질문으로 자신의 세계를 공고히 만든 예술가들의 생각을 엿듣는 일은, 그래서 단순한 흥미 이상의 차원이다.

20년 이상의 잡지 에디터 경력을 쌓은 저자 윤혜정이 거장 예술가들의 세계를 촘촘히 탐험한 기록을 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독자와 예술가의 중개자로서 그는 맨살 닿듯 밀착된 대화를 매끄럽게 끌어냈다. 디터 람스, 이자벨 위페르, 박찬욱 등 거장 예술가들의 생활과 사유는 곳곳에서 우리가 고민할 주제들을 던진다. 예술가들의 질문을 질문하는 것. 이 묘한 프랙털로 이루어진 책에서, 각자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며 즐거이 읽으시길 바란다.

이 책의 한 문장

나는 '나의 예술가들'을 통해 정치란 다름 아닌 고유하고 대담한 삶의 태도임을, 나의 방식으로 우리의 인간다운 생(生)에 기여하는 것임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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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란 무엇인가

베레나 크리거 지음 / 휴머니스트
이 책의 매력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에서는 "세상을 짊어지는 게 아니라 자기 사유를 흔들림 없이 진전시켜 나가는 것"이 예술가들의 유일한 임무라 말하며 "실패와 무목적성의 목적"을 "'나의 예술가들'의 소명 의식"이라 전한다. 직업으로 환원되지 않는(간명하게 환원된다 할지라도) 일들의 풍경과 의미는 예상보다 복잡할 게 분명하니, 예술가처럼 행위와 작업 자체를 정의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각자의 기대와 현실의 상황이 쉴 새 없이 부딪히며 새로운 정의와 역할을 만들어내기 일쑤겠다.

이런 맥락에서 '예술가'라는 이름의 현실과 부여된 의무와 때로는 부풀려진 상상을 역사 속에서 되짚어보는 작업은 여전히 흥미롭다. 작업에 합당한 비용을 말하는 예술가들에게 예술가가 어떻게 돈을 따질 수 있느냐며 반문하고, 눈에 띄려 의도한 행위를 두고 '예술가병'에 걸렸다 지적하는 모습을 보면, 예술가에 덧씌워진 이야기들이 어디에서 기원하여 오늘에 이르렀는지 궁금해지고, 앞선 시대의 예술가들은 이를 어떻게 수용하고 감내하며 극복했는지 알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 책은 "어린 시절의 재능, 재능을 방해하는 주변 환경, 시민적 관습에서 벗어난 삶, 가난,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 소명과 밥벌이 사이의 간극, 비극적인 요절, 죽은 뒤에 비로소 얻게 되는 명성"이라는 예술가의 전형 뒤에 어떤 삶이 있었고 그 삶은 어떤 구조 위에서 이루어졌는지를, 기술자에서 천재로, 천재에서 사업가로 변모한 예술가의 존재 양식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오늘날 예술가들이 직면한 딜레마뿐 아니라 다음 시대의 예술가론을 전망할 충분한 기초 자료라 하겠다.

이 책의 한 문장

오늘날 사람들은 시민사회를 통해 구성된 영역인 '미술'과 그것과 연관되어 있는 '자율적 미술가'라는 생각을 극복하려는 모든 노력이 미술가의 전능하고도 특별한 역할을 없앨 수 없다는 모순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오히려 '미술가의 자세'는 변형되고 확장되고 확인되었다. '저자의 죽음'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요구는 때때로 어느 정도 인기를 누렸지만, 결과적으로 '미술가'는 쉽게 죽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끈질기게 이승으로 되돌아온 유령 같은 존재로 등장하고 여전히 식지 않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8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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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크레딧

김주희 지음 / 현실문화
이 책의 매력

지하 경제로만 돌아가는데 이렇게 거대한 산업이 가능하다고? 늘 의문이었다. 이 책은 성매매 산업을 둘러싼 거대한 돈의 흐름을 추적한다.

우리 대부분이 잘 몰랐던 사실, 시중 은행은 '유흥업소 특화대출' 상품을 판다. 이로부터 시작된 물고 물리는 부채 관계는 여성을 성매매에 빠져들게 하고 빠진 곳에 묶어놓는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한국 사회는 비도덕적 개인들의 일탈 행위를 눈감아준 방조범이 아니라, 성매매 산업의 장을 만든 적극적 공범라는 것이다. 한국의 성매매 산업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금융 산업을 등에 업고 무럭무럭 자랐다.

성매매 산업에 덩굴처럼 얽혀있는 여러 주장과 담론들을 그대로 두고, 이 책은 시야를 넓혀보기를 권한다. 하나, 둘, 셋... 열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났을 때,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은 제일 밑바닥에 여성들이 맨몸으로 깔려있는 거대한 자본주의 경제체제다.

추천하는 글

저자가 분명히 지적하고 있듯 업주, 부동산, 일수업자부터 은행까지 전 사회가 성매매 산업에 공모하고 있다. 그렇기에 반성매매 운동의 목표는 여성의 탈성매매가 아니다. 성매매 경제를 변화시키기 위한 실천은 한국 사회의 탈성매매를 향해야 한다.(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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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호황

김기태, 하어영 지음 / 이후
이 책의 매력

이 책은 2011년 <한겨레 21>의 성매매 기획 기사를 바탕으로 한다. 당시 기사의 몇몇 지표를 여전히 기억하는데, 우선 4699만이라는 숫자다. 당시 한국의 인구가 아니라 2010년 한 해 동안 한국에서 벌어진 성매매 추정 건수다. 두 번째는 7조 원에 달하는 연간 성매매 거래액이다. 같은 해 한국 영화 산업 매출이 1조 2천억 원이니 다섯 배가 넘는 규모다. 마지막은 한국 남성 가운데 평생 1회 이상의 성매매를 했다고 답한 비율이 49%이고, 이전 해 한국 남성 10명 가운데 4명이 성매매를 했다는 설문 결과다.

숫자가 전한 충격이 적지 않았지만, 이런 숫자가 가능한 구조는 더욱 놀라웠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사실상 국가가 포주로 나섰기에 규칙과 원칙을 지키지 못했고, 이 때문에 성매매가 불법이 아닌 (국가가 용인한) 관행처럼 여겨지며 두 세대가 넘는 시간 동안 한국사회에 자리를 잡았다는 분석에서 시작해 그러한 '불법=관행'이 한국을 벗어나 해외 성매매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 거대한 고리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실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불완전했지만)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게 2004년이고, 이 책은 이후 8년 동안 한국 성산업의 변화와 상황을 추적하며 성매매가 사회문제라는 인식의 틀을 다시금 확인했다. 그리고 이 책이 나온 지 다시 8년이 지나 금융과 부채로 더욱 빠져나갈 틈 없이 묶인 성산업을 파헤치는 책 <레이디 크레딧>이 도착했다. 한국사회의 탈성매매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할까. 이번 주 인문ON 두 권의 책이 그 시간을 앞당기는 데에 불쏘시개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추천하는 글

바라는 게 있다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성매매는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안전망이 부재한 사회에서 언제든, 모든 계층의 인간에게 닥칠 수 있는 사회문제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성매매가 전 사회적인 인권 유린의 문제며, 아직도 사회적 묵인 아래 성매매라는 폭력적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는 많은 여성들이 있다는 것도 기억해 주면 좋겠다.(정혜원, 한국여성인권진흥원)

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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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살아가는 반자본주의자를 위한 안내서

에릭 올린 라이트 지음 / 이매진
이 책의 매력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해 미쳐 날뛰는 21세기의 세계를 보며,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는 과연 몇 년 치일지 막연한 셈을 해본다. 멸망을 향한 질주를 막을 수 있을까. 자본주의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못박는다.

책은 평등/공정, 민주주의/자유, 공동체/연대 등의 개념을 하나하나 짚으며 자본주의에 대한 반자본주의자들의 비판을 정리한다. 그리고 우리가 건너가야 할 다른 세계를 제시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으로 에리히 프롬의 <불복종에 관하여>, 김규항의 <혁명 노트>를 추천한다.

이 책의 한 문장

마지막으로, 자본주의에 고유한 부와 소득의 불평등은 철학자 필리프 판 파레이스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의 불평등을 낳는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든 간에 자유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다. 부유한 사람은 거리낌없이 임금 노동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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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팝니다

팀 플래너리 지음 / 지호
이 책의 매력

자본주의가 세계를 장악한 현실에서 반자본주의자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을 게 분명하다. 완벽하게 벗어날 수 없기에 때로는 부딪히고 때로는 물러나며 작은 빈틈을 만들어 한 걸음 내딛는 게 현실에서 마주하는 최선의 모습이겠다. 그런데 이 방법이 정확한 상대를 대상으로 하는 효과적인 대응일까. <혁명을 팝니다>를 읽고 나면 체제에 저항하는 일이 생각보다 만만찮으며, 이로써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은 훨씬 어렵고 복잡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1960년대 베이비부머들이 시작한 체제에 대한 반대는 (물론 여러 사회 변화를 이끌었으나, 저자들의 평가에 따르면) 소비 자본주의가 한층 강화된 모습을 만드는 데 그쳤다. 이 책은 당대부터 최근까지 40여 년에 걸쳐 반문화 진영에서 떠오른 온갖 상징들이 차례로 체제에 포섭되는 과정을 드러내며, 그래서 더욱 멀고 드물고 희귀한 모습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의아하고 황당한 결론을 냉정하게 지적한다.

어느덧 21세기에 여전히 혁명을 꿈꾼다면, 혁명을 사고파는 허상에서 벗어나 제대로 혁명을 이뤄내고자 한다면, 반문화를 과감하게 떨쳐내고 규칙의 정비와 제도의 보완에 힘을 모아야 하는 걸까. 이 책의 결론이 마뜩잖다면 '반문화의 신화'를 넘어 '반문화의 실현'에 도전해볼 수도 있겠다. 고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이 책의 한 문장

반문화 반란이 소비 자본주의를 활성화시킨 것이 뭐 그리 놀랄 일이겠는가? 현실을 점검해봐야 할 때다. 즐겁게 노는 것은 전복적이지 않으며, 체제를 전혀 손상시키지 않는다. 사실, 만연한 향락주의로 인해 사회 운동을 조직하기가 더 어려워졌고 사회 정의의 이름으로 희생을 하라고 설득하기는 더욱 더 어려워졌다. 우리가 볼 때 진보 좌파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 정의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반문화에서 분리시킨 뒤 전자는 계속 추진하고 후자는 폐기처분하는 것이다.

7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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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밖에 없는 말

로저 올모스 지음 / 삽화가들의 사랑방
이 책의 매력

접시 위에 올라와있는 고기에서 소의 삶이 보이는 순간부터,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의 눈에서 절망이 보이는 순간부터, 우리는 조금 다른 세계에 살게 된다. 새롭게 열린 세계에서는 수시로 죄책감을 느낀다. 이번 주에 별 생각 없이 돈까스를 두 번이나 먹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연히 들른 공원 한 켠, 작은 우리 안에서 똥을 밟고 서있는 토끼 떼를 볼 때, 엄마가 새로 샀다는 코트 안에 여우 털이 촘촘히 박힌 것을 볼 때, 죄책감으로 기분이 바닥까지 가라앉는다.

그 죄책감은 생각보다 일상에 많은 제약을 불러온다. 그만큼 우리의 일상이 작은 존재들의 촘촘한 고통들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일상에 제동이 생길 때, 우리가 죄책감을 느끼고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할 때, 어떤 존재들은 목숨을 구한다. 우리가 잘못된 방향의 쾌락을 포기할 때, 어떤 생명들은 삶과 자유를 얻는다.

<할 수 밖에 없는 말>은 죄책감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다. 일러스트들로 구성된 이 책은 그림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대부분 우리가 외면하고 있던 고통에 관한 이야기다. 이 그림들은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고 그 아픔은 책을 덮고나서도 쭉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역설적으로 이 세계에 존재하는 고통을 줄일 것이다. 마음의 준비가 된 당신과 이 책을 한 장 한 장 함께 보며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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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빈자리

팀 플래너리 지음 / 지호
이 책의 매력

김경영 현 인문MD가 추천한 <할 수밖에 없는 말>을 보고, 말을 할 수 있었다 해도 이제는 어떤 말도 남길 수 없는 생명이 떠올랐다. <자연의 빈 자리>라는 서정적인 제목과는 달리, 이 책에는 지난 500년 동안 인류가 싸그리 없애버린 생명 100여 종이 등장한다. 남아있는 기록을 뒤져 생명의 모습을 되살려낸 그림 작가는 모든 작업을 그 생명의 실제 크기에 맞춰 진행했다. 아쉽게도 책에는 그대로 담을 수 없었지만, 있는 그대로의 생명을 그려내는 과정은 사라진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었을까 싶다.

한 종 한 종이 다시는 지구에서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숫자로 새로운 사실을 확인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오늘날 지구에서 하루에 사라지는 생명의 종수는 이 책에 담긴 종수보다 많다. 이 '자연의 빈 자리'를 인간은 무엇으로 채우고 있고, 무엇으로 채우려 하는 걸까. 각각의 생명이 사라지는 과정을 읽어가면 갈수록 그 생명을 사라지게 만든 인간의 마음이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마 500년 후(에도 인류가 살아있다면) 누군가 오늘날 우리를 돌아봐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모두에게 주어진 자연의 자리는 다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절절하게 확인하는 책이다.

이 책의 한 문장

큰바다쇠오리들은 안전한 물 속으로 달아나려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바위 틈새에서 한 마리가 잡혔고, 다른 한 마리도 몇 미터 채 달아나지 못하고 바닷가에서 잡혔다. 둘 다 그 자리에서 곤봉에 맞아 죽었다. 남은 알은 선원의 장화에 으깨어졌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세계 박물관에 놓여 있는 80여 점의 박제들과 75개의 알뿐이다.

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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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역사는 모두의 역사다

마리아 바스타로스,나초 M. 세가라 지음 / 롤러코스터
이 책의 매력

525년, 고대 창녀이자 무희였던 테오도라는 비잔틴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와 결혼한 후, 강제 매춘을 금지하고 강간죄에 사형을 선고했다. 그녀의 최우선 과제는 불행한 여성을 돕는 것이었다고 한다.
1322년, 유대인 치료사이자 조산사인 자코바 펠리시는 무허가 의료 행위를 한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녀가 치료한 여성 환자들은, 부끄러워서 남자 의사에게는 차마 가지 못했기에 그녀가 아니었으면 치료를 받지 못했을 것이라 증언했다.
1599년, 베아트리체 첸치는 가족에게 온갖 잔혹한 학대를 일삼던 아버지를 망치로 내리친다. 많은 사람들이 정상참작을 요구했지만 그녀는 결국 사형을 당한다.

지적이고 용기있는 여성, 기존의 질서를 뚫고 서로를 구한 여성, 재능있는 여성, 그 재능으로 세상을 구한 여성, 만일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한 상태에서 성별만 남성이었다면 세상으로부터 훨씬 추앙받았을 여성. 선사시대부터 21세기 현재까지 역사를 이어 온 수많은 여성들의 얼굴이 강렬한 색채의 일러스트로 빼곡히 들어차있는 책이다. 이들이 여성의 역사를 구성한다.

그리고 기록되지 않은 여성들이 있다. 죽음으로서 현실을 알린 여성, 죽지 않고 살아남아 폭력이 반복되는 하루들을 꿋꿋이 살아낸 여성, 즐겁게 일상을 향유한 여성, 차별에 무감각한 여성, 분노하면서도 겁이 많아 조용히 뒤에서 응원하는 여성. 이들도 여성의 역사를 구성한다.

당연한 말을 당연하게 듣지 않는 사회에, 깜짝 놀랄만큼 충격적인 말을 전한다. 마음 단단히 먹고 들으시길. 여성의 역사는 여성이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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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

하워드 진,앤서니 아노브 지음 / 이후
이 책의 매력

가려진 역사, 지워진 역사, 잊힌 역사라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가 떠오른다. 역사가이자 운동가로서 하워드 진의 활동이라든지 <미국 민중사>라는 저작에 붙은 평가 때문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독서 경험 때문일 텐데,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지향으로서 동의하고 공감하긴 했으나 이를 바탕으로 서술한 총체적 기록을 처음 마주한 경험이 바로 <미국 민중사>이기 때문이다.

<미국 민중사>는 '목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당시에는 억지로 입막음을 당했을 그리고 기록으로 남겨지기 어려웠을 살아있는 목소리들로 구성된 이야기는, 미국 역사와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온 이들의 끊임없는 저항과 투쟁이 무엇을 바꾸고 이루었는지에 매진한다. 역사를 뒤집어보는 경험과 시선을 만나기에 맞춤한 책이고 이 책마저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작은 존재와 생명을 찾아보는 새로운 마음과 다짐을 전하기에 충분한 책이다.

그런데 막상 오늘 추천하는 책은 <미국 민중사>가 아닌 <미국 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이다. 앞선 책의 기초 자료라 할 이 책에는 가공되지 않은 목소리들 수천 개가 빼곡히 담겨 있다. 오늘의 목소리와 공명할 당대의 목소리,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목소리, 확성기를 들이대 더욱 키워야 할 목소리가 읽는 내내 가슴에 박힌다. 그렇게 울리는 목소리마다 내 곁, 오늘 이곳의 목소리를 겹쳐본다. 읽는 내내 소리 내지 않을 수 없는 목소리들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이런 저항의 목소리들을 누락하거나 과소평가 한다면 권력이 총이나, 돈, 또는 신문이나 텔레비전 방송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만 있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는 노동자든, 유색인이든, 여자든 권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 않은 사람들이 조직하고 저항함으로써 운동을 일으킨다면 어떤 정부도 억누를 수 없는 목소리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7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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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야기

케빈 홉스, 데이비드 웨스트 지음 / 한즈미디어
이 책의 매력

나무 관련 신간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일단 기분이 좋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사무실에서 나무 책을 펼치는 순간, 내 주변의 시간만 다르게 흐르기 시작한다. 지구의 곳곳에 각각 다른 특성을 가진 이 나무들이 오랜 세월 동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 나무들을 연구하며 기록하고 그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합쳐져서 내 일상과 분리된 비현실적인 세계를 만들어낸다. 책 한 번 펴는 것으로 잠깐 동안 가성비 좋게 비현실을 경험한다.

환상의 세계는 아름다울수록 좋은 법. 이 책을 더 기대했던 이유는 티보 에렘이 일러스트를 그렸기 때문이다. 그의 세밀한 펜촉 끝에서 탄생한 나무들이 모든 페이지에 살아있다. "무조건 소장!"을 외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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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나무

라르스 뮈팅 지음 / 열린책들
이 책의 매력

북유럽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장작을 팬다. 취미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지구의 생명이 아닌 각자의 생존과 나무를 연결하여 생각할 일이 드문 오늘날, 여전히 나무로 체온을 지키며 겨울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니, 반갑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가구나 종이가 아니라 가공되지 않은 나무를 그대로 사용하는 이들의 감각과 마음이.

어느 계절에 어떤 나무를 장작으로 패야 하는지 배우고, 쌓을 때는 공기의 순환과 보관의 효율을 고려하여 구조공학을 반영하고, 땔 때는 나무껍질의 방향까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 나무를 직접 마주하고 살아가는 이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나무를 아끼고 위하는 게 아닐까 싶다. 다음 겨울을 위해서라도 나무와 생명은 순환되어야 할 테니, 어쩌면 장작을 마련하고 때는 과정이야말로 정말 나무와 함께하는 삶일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생긴다. 물론 이 모든 상상과 무관하게 나무는 나무일 따름이겠지만 말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이것은 1년이라는 큰 순환의 일부입니다. 나무와 함께 있으면 제가 그 순환의 일부라는 느낌이 듭니다. 무겁고 축축한 통나무를 만지면 봄과 직접 접할 수 있습니다. 겨울에 좋은 것이 우리를 기다린다는 신호이자 힌트죠. 하지만 감상적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완벽한 장작을 태우더라도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으니까요. 삶처럼 덧없는 것과 이런 관계를 맺는 것이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닙니다.

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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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멀

김현기 지음 / 포르체
이 책의 매력

코끼리를 좋아한다. 코끼리는 초식 동물이지만 거대해서 맹수에게 공격받지 않는다. 착취당하지도 착취하지도 않는 동물, 생태계 피라미드에서 벗어나 있는 유일한 포유류다. 정의로운 동물이라 천적에게 공격받는 초식 동물들을 보면 구해주기도 한다. 이렇게 멋지다니! 좋아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서 내 왼팔엔 코끼리 타투가 있다.

그런데 코끼리에게 천적이 없다는 거, 인간이 없는 세상에서만 해당되는 말이다. 코끼리가 돈이 되는 순간부터 인간은 코끼리를 잔학하게 고문하고 죽여왔다. 아프리카의 코끼리는 상아를 노리는 인간들에게 산 채로 얼굴을 썰리고 아시아의 코끼리는 자연스럽게 인간을 태우고 묘기를 부리게 되기까지 온몸이 묶인 채 쇠꼬챙이로 찔리고 얻어맞는다. 인간은 어디까지 인간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휴머니멀'이 화제일 때, 사실 무서워서 보지 못했다. 영상으로 생생하게 보는 것이 너무 괴로울 것 같았다. 대신 책이 출간되자마자 챙겨 읽었다. 인간이 죽이고 학대하는 수많은 동물들의 이야기, 책을 덮을 때 입술에서 피 맛이 났다. 책을 보는 동안 잘근잘근 씹은 거다. 입술을 정리하며 책 속의 문장을 떠올린다. "코끼리를 보고 눈물은 누구나 흘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땀을 흘려줄 사람은 누구입니까?" 다큐 방영 이후 SNS에서 #동물학대금지 해시태그 릴레이가 번져간 것은 모두 나와 비슷한 생각의 흐름을 따라갔기 때문일 것이다. 눈물을 흘린 우리는 모두 땀 흘릴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절망도 인간으로부터, 구원도 인간으로부터. 각자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아주 흥미로운 사실은 이겁니다. 인간은 동물을 두려워하지만, 알고 보면 동물이 인간을 훨씬 두려워한다는 것 말이죠. 사자에게 그들만의 공간을 보장해준다면, 녀석들은 인간에게 절대 해를 끼치지 않을 거예요. 사람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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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 몸짓

칼 사피나 지음 / 돌베개
이 책의 매력

반려동물과 대화를 나누는 집사를 보면 정말로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 매번 뜻대로 소통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상대가 나에게 말을 건네고 나의 말에도 종종 귀를 기울인다는 믿음에는 의심이 없는 모습이다. 어떤 언어를 쓰든 서로 말을 나눈다는 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말을 하지 못해 긍휼히 여기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말을 쓰지만 생명과 생명, 존재와 존재로서 말을 나누는 자세 말이다.
이런 태도로 동물의 말, 즉 소리와 몸짓을 살펴보면, 비로소 동물의 감정이 느껴지고 생각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저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탄생을 축복하고 죽음을 애도하며 그 사이에 벌어지는 온갖 삶의 장면을 각자의 개성으로 마주하는 장면을 읽다보면, 처음에는 신기하고 놀라운 느낌이 들지만 갈수록 어떻게 이렇게까지 무지하고 무신경했을까 돌아보게 된다. 동물과 생명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요즘, 관심의 크기뿐 아니라 새로운 깊이를 더하는 데에 도움이 될 책이다.

추천의 글

진정한 이해와 사랑의 순간에는 말이 필요 없다. 언어가 없는 존재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대신 그들에게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인간인 우리는 그것을 다 알 리도, 알 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완전한 과학적 확신에 도달하기 전까지, 말 없는 이들에게도 마음과 감정과 사랑이 있다고 인정하기를 고집스럽게 거부해 왔다. 넘쳐나는 자료와 증거들은 단순 일화로 치부했고, 과학이 아닌 스토리텔링으로 비하해 왔다. 바로 이런 관점이야말로 가장 비과학적이고 반지성적인 태도라고 이 책은 말한다. 그리고 머리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마음으로 그들을 이해하는 길이 있다는 사실도 말해 준다.(김산하, 영장류학자)

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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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내일

야나 슈타인게써, 옌스 슈타인게써 지음 / 리리
이 책의 매력

기온이 2도 상승할 때 지구가 잃는 빙하의 양, 기온이 4도 상승할 때 잠기는 국가의 수... 충격적이긴 하지만 수치로 보는 미래가 마음에 바로 와닿진 않는다. 그 결과 당장 실천해야 할 대안을 찾기보단 "설마"하는 마음과 "제발"하는 믿음이 합쳐져 외면하게 되기 일쑤다. 이 책의 저자 야나와 옌스 부부는 앞으로도 이 지구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수치가 아닌 현실을 보여주기로 했다. 이 가족이 그린란드에서 시작해 여러 대륙을 거쳐 다시 독일의 집으로 돌아오는 장대한 모험의 목적은 하나였다. 기후 변화가 세계 곳곳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마주하는 것. 그들의 여정을 따르는 동안 세계의 아름다운 풍광과 사람들의 일상을 파괴적으로 바꾸어놓는 기후 변화의 현실이 동시에 머리를 어지럽힌다.

이 책의 한 문장

기후변화는 문화의 존재를 위협할까? “순록을 이끌고 다음 행선지를 어디로 정할지는 날씨에 달렸죠. 물론 최근 10년 동안 우리는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합니다. 특히 겨울이 어렵죠.” 이상할 정도로 더운 겨울이 지속되면서 눈에 이어 비가 내리다 보니 바닥은 곧바로 얼어붙어 얼음판이 되어버린다. ··· “순록이 먹을 만한 풀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봄과 여름은 너무 추워서 산에 자란 풀이 충분한 영양소를 키우지 못하고요.” 순록 암컷은 새끼에게 젖을 배불리 먹이지 못한다. 아주 고약한 일이다. … 너무 많은 눈에 많은 새끼들이 죽어나간다. “사미는 언제나 변화를 견뎌왔죠. 기후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빙하기와 오늘을 비교하면 기후는 전혀 다릅니다. 물론 옛날에도 고약한 날씨는 있었죠. 그러나 그때 사람과 동물은 다른 곳을 찾아 옮겨 다니면 되었죠. 그러나 오늘날엔 그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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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의 심리학

조지 마셜 지음 / 갈마바람
이 책의 매력

이제는 기후위기라 불리는 기후변화를 둘러싼 논의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숱한 연구와 분석을 거쳐 지구에 살아가는 인류 대다수는 지구에서 누리는 오늘의 삶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충분히 알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쉽게 바뀔 듯 보이지 않는다. 이미 기울어졌으니 살던 대로 살다가 끝내자는 의지는 아닐 터,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겠는데, 이 책은 바로 마음이 원인이라고 강조한다. 마음? 몸과 현실이 따라주지 않아서 그렇지, 마음으로야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항변한다면, 그래서 마음이 문제라고 답을 되돌려줄 수밖에 없겠다. 지금 절실한 건 설득이 아니라 참여이고, 행동을 바꾸는 데에 마음이 훨씬 강력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생각해보라.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면 내일 괴롭다는 걸 몰라서 내일로 미루는 게 아니지 않는가.(물론 내 이야기다.) 기후위기를 둘러싼 논쟁이 왜 매번 같은 자리를 맴돌다 멈추고 마는지, 코앞에 닥친 위기를 왜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지, 비로소 그 행동과 마음이 이해가 되니, 이해를 넘어 변화로 나아갈 새로운 출발점이 생겼다. 물론 출발 총성은 이미 울렸다.

이 책의 한 문장

요컨대 우리가 기후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기후변화가 유발하는 불안과 그것이 요구하는 근본적인 변화를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기후변화는 다른 중대한 위협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기후변화에는 우리의 뇌가 단기적 이익을 포기하도록 이끌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편향을 작동시켜 서로 적극적으로 공모하고 기후변화를 영구히 뒷전으로 미뤄둔다.

6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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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일인입니다

노라 크루크 지음 / 엘리
이 책의 매력

우선 이 책의 '미리보기'를 꼭 봐주시기 바란다. 한 장 한 장이 모두 다른 일러스트로 구성되어 있다. 책장 넘기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옛날옛적 유행했던 '러브장' 혹은 요즘 트렌드인 '다꾸'가 생각나기도 한다. 그러나 내용이 달달하진 않다. 이 책은 독일인으로서 살아가는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후 2세대, 경험하지 못한 과거 세대의 잘못을 원죄로 삼고 살아가는 삶은 뿌리없이 흔들리고 자주 위축된다. 저자는 과거로부터 밀려오는 죄의식을 눈 부릅뜨고 마주한다. 가족의 죄를 캐내며 부끄러움과 수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의 용기에 숙연해진다.

추천의 글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전후 2세대 독일인의 내면 풍경을 처음 엿볼 수 있었다. 전쟁 세대는 귄터 그라스, 크리스타 볼프, 우베 욘존 등을 통해서 그리고 전후 1세대는 페터 슈나이더, 페터 한트케 등을 통해서 나치즘의 과거가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청산’되었는지 살펴봐왔지만 전후 2세대까지 나치즘의 과거가 심리적 상처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작품을 통해서 처음 깨닫게 되었다. 이 그림 소설은 바로 이 세대의 내면을 놀라운 감정이입의 필치로 섬세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있다." - 김누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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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아이들

타냐 크라스냔스키 지음 / 갈라파고스
이 책의 매력

역사를 되돌리거나 뒤바꿀 수는 없겠지만, 인간이 최선으로 역사를 반성한다면, 어쩌면 회복에는 이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가능성의 확인은 당대의 역사를 후대가 어떻게 기억하고 이해하느냐에서 시작될 텐데, 나치 전범의 아이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는지를 돌아보면, 앞선 역사라 해도 이를 대면하는 일이 삶 전체를 걸어야만 하는 것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조금이나마 피해자를 위로할 방법을 찾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애쓰는 자녀들의 모습에서 인간의 가능성을, 그럼에도 자신의 안온한 삶을 지키려 사실을 외면하고 역사를 부정하고 혼자만의, 아니 아버지와 자신만의 세계로 빠지고 마는 모습에서 인간의 어려움을 마주한다. 나라면, 이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이 지난 역사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오늘 내가 마주한 현실의 도전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의 한 문장

니클라스는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자신이 찾아낼 수 있던 서류들을 아주 세밀하게 검토한 뒤 다음의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다. 탐욕과 광적인 출세주의 이외에는 아무것도. 그리고 그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행한 그 잔혹한 선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이 선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며 또한 진정한 반유대주의자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만일 히틀러가 프랑스인이나 중국인을 대상으로 같은 일을 하라고 요구했다면, 마찬가지로 그는 니체, 실러, 괴테, 코르네유를 인용하며 그들을 상대로 광기어린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6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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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 밤하늘을 기록하다

NASA,빌 나이,Nirmala Nataraj 지음 / 영진.com
이 책의 매력

각자의 밤하늘이 있을 것이다. 내 경우 '밤하늘'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교환학생 시절 노르웨이에서 본 은하수다. 산 속의 오두막집으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온 몸에 담요를 칭칭 감고 모닥불 앞에 앉아 마시멜로를 구워먹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수만 개의 별이 눈으로 쏟아졌다. 불 앞에서 볼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등은 시렸고 입에선 하얀 김이 나왔고 머리 위엔 은하수가 있었다. 이 책은 NASA에서 촬영한 밤하늘의 이미지들과 사진에 대한 간략한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적막하고 아름다운 이 사진들을 보는데 그 밤의 황홀했던 공기가 기억났다. 이 책을 읽는 다른 이들이 떠올리는 밤하늘의 기억은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이 책의 한 문장

"슬프게도, 밤하늘이 만든 경이로움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볼 수 없을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다. 우주에서조차 광공해는 지구를 덮고 있는 담요처럼 보인다. 몇십 년 안에, 우리 중 많은 사람이 맑은 밤에 즐길 수 있었던 광경을 더는 볼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 세기에 현저하게 줄어든 밤하늘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던 상황은 단순히 과거의 것이 되어 이 책에 담긴 이미지들이 더욱 가슴 아프면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게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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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방랑

황인준 지음 / 사이언스북스
이 책의 매력

오늘날 우주를 바라보고 향하는 시도는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을 전제하지 않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다수의 우주 역시 미항공우주국(NASA)의 역할이 크다. 과학기술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런 경향은 점차 가속화되었는데, 그럼에도 우주를 꿈꾸는 개인의 마음이 줄어든 건 아니기에, 개인 우주 여행 등 우주를 만나려는 각자의 시도 역시 꾸준하다.

이 책의 저자 황인준은 수십 년 동안 우주를 바라보며 살았고, 그 여정에 개인 천문대까지 더하며 여전히 우주로 향하는 사람이다. "내 인생 모두를 별빛과 맞바꾸었습니다."라는 그의 말은 차오른 감정이 아니라 담담한 사실에 가깝다. 그리고 그간 채집하고 기록한 우주를 전하며 넓고 깊은 우주로 우리를 초대한다. 나 혹은 당신 물론 우리 모두를 품기에 우주는 여전히 충분하니, 우리가 할 일은 빠져드는 것뿐이다. 훌쩍, 풍덩.

이 책의 한 문장

"지상에서는 인간이 만들어 내는 빛에 비해 별빛은 미약합니다. 아무리 어둡고 좋은 하늘에서 얻은 별빛과 은하수 사진이라고 해도 조그마한 전등 불빛 하나에 묻혀 버리고는 합니다."

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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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의 미로

이문영 지음 / 오월의봄
이 책의 매력

한겨레21에서 연재했던 '가난의 경로', 그 연재 이후 이문영 기자가 4년간 좇은 45명의 기록이다. '가난의 경로' 연재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읽는 동안 몸이 파르르 떨렸던 것도. 그 후 나는 두 개의 회사를 거쳤고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었고 좋아하는 음악의 스타일이 변했다. 그리고 이 책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기자가 좇던 45명 중 9명은 사망했다. 가난이 갇힌 미로 속에서 탈출할 유일한 방법은 죽음이라는 것을 <착취도시, 서울>에 이어 다시 진절머리나게 깨닫는다.

이 책의 한 문장

"벌레가 파먹은 듯한 지구의 후미진 땅에서 동자동이 도시의 뒷면을 구성했다. 인간이 살 수 있는 최소의 주거 공간에서 인간에게 던져진 가장 남루한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죽음과 동거했다. 그들은 한 건물에서 살았지만 남모르게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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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증발

레나 모제 글, 스테판 르멜 사진, 이주영 옮김 / 책세상
이 책의 매력

살다보면 예기치 않은 혹은 피할 수 없는 문제를 마주하기 마련이다. 이럴 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함께 찾아보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그 문제가 각자의 탓이 아니며 각자가 해결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공감하는 게 우선 아닐까 싶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실패와 책임을 묻는 가혹한 시선이 쏟아지고 다음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압도적이다. 그러니 각자는 사람답게 살지 못하거나 사람으로 살지 않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그 길을 택하는 사람들, 매년 10만 명이 넘는 '증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개인의 책임은 최대로 사회의 책임은 최소로, 그리하여 사회가 증발해버린 곳, 그곳에서는 사람도 증발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 남을 수 있겠는가.

이 책의 한 문장

찌는 듯 무더운 저녁, 젊어 보이는 남자 세 명이 술집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 남자는 희망을 위해 건배한다. 한 남자가 이들에게 다가와 일자리를 제안했다. 적어도 두 달 동안 숙식이 제공되는 일이다. 쓸고 닦고 쓰레기를 자루에 담는 작업이다. 쓰레기의 정체는 원전 폐기물, 핵먼지. 내일 이 세 명은 후쿠시마에서 원전 폐기물을 처리하는 일을 할 것이다. 어차피 가출한 사람들이라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누구도 찾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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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요괴 요감

고성배 지음 / 비에이블
이 책의 매력

귀신, 싫다. 살면서 절대 마주할 일 없길 바란다. 존재도, 특성도 궁금하지 않다. 좀비, 좀비물에서 흔히 나오는 극단적 상황 속의 인간 본성이나 인류애 같은 것은 흥미롭지만 개별적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딱히 알아야 할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한국 패치를 장착해 빠르게 달리는 좀비에게 쫓기는 상상을 해보면 나는 끝까지 극단적 공포를 느끼며 살아남기보단 빠르게 패배 선언을 하고 먹히는 편을 택할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뜯어 먹히는 것보단 좀비가 실재하지 않는 게 더 좋겠다.

그렇지만 요괴는 좀 다르다. 이 요괴 도감에 따르면 많은 수의 요괴들이 인간들에겐 해를 끼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그저 자신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요괴는 요괴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살면 되는 거다.(물론 인간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조차 생김새나 특성은 흰 소복 입고 머리 푼 천편일률적인 귀신보다 훨씬 창의적이다.) 이 많은 요괴들이 제각각의 개성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납작했던 세상이 조금 재미있게 느껴진다. 가장 마음 갔던 요괴는 가타와구루마. 사람이 쳐다보면 아이를 납치한다. 하지만 "죄는 나에게 있으니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는 숨기지 말아줘"라고 써놓으면 다음 날 아이를 다시 돌려준단다. 뭐랄까... 조금 하찮고 귀엽다.

이 책의 한 문장

"당신의 믿음으로 요괴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길 바란다. 우리가 요괴의 존재를 믿으면 그들은 생생하게 걷고 날던 미지의 생물로 남지만, 믿지 않으면 단순한 신화나 우스갯소리로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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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경

전발평,예태일 편저, 김영지, 서경호 옮김 / 안티쿠스
이 책의 매력

고전을 읽기 쉽지 않은 이유는 이해와 분석을 강요받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산해경>은 완전히 자유롭게 풀려난 고전이라 하겠다. <산경>은 그나마 가깝고 알려진 지역의 문물을 다루지만 더 먼 곳을 다루는 <해경>에 이르면 알지 못하는 세계를 알고 있는 방식으로 풀어내려 온갖 방법이 등장하는데, 읽다 보면 어디까지가 이해와 분석이 가능한 영역인지 기준이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재미가 시작된다.
가보지도 않은 곳을 태연한 태도로 진심을 담아, 게다가 구체적으로 펼쳐보이는 모습에서 세계 전체를 그려보고자 했던 호방함을, 그 와중에도 현실 세계와 어긋나지 않도록 연결 고리를 이어가는 모습에서는 치밀함을, 무엇보다 더 넓은 세계를 만나보고자 했던 호기심에서 시대를 뛰어넘은 인류의 공통 감각을 만날 수 있다. 답이 보이지 않을 때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보면, 지금 다다른 답이 안될 리가 없다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을 평하는 글

"장자가 이르기를 '사람이 아는 것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헤아릴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이것을 <산해경>에서 볼 수 있다. 사물은 스스로 괴상한 것이 아니라 나를 기다린 후에 괴상해진다. 괴상한 것은 과연 자신에게 있는 것이요, 사물이 괴상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북방의 오랑캐는 옷 짓는 배를 보고 삼씨인가 의심하고 월나라 사람들은 담요를 보고 솜털이라고 놀란다. 대개 익히 보아온 것을 믿고 드물게 듣는 것은 기이하게 여기기 때문이다.(곽박, 郭璞)"

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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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들려주는 인종차별 이야기

타르 벤 젤룬 지음 / 롤러코스터
이 책이 새로운 이유

어떤 현상에 대해 공통의 토대를 가지지 않은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어렵다. 논리를 내면화한 이후부터는 그것을 당위로 말하게 되고, 처음에 스스로 설득된 논리를 잊기 때문이다. 인종주의에 대해 차근차근 짚으며 설명해주는 책이다. 입이 트일 기회다.

이 책의 한 문장

"이 인간은 아무도 없는 섬에서조차 혐오하고 경멸하고 모욕할 사람을 기어코 찾아내고 말 거야. 자신이 존재하기 위해, 살아 있다고 느끼기 위해 혐오하는 것이지. 사랑할 수도 있으련만, 사랑은 쉬운 일이 아니야. 사랑받을 만해야 해. 사랑을 유혹해야 하고, 미소 뒤에 숨은 어둠과 그늘로부터 사랑을 되찾아야 해."

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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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욤비

욤비 토나, 박진숙 지음 / 이후
이 책이 여전한 이유

난민이 직접 전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집단이 아닌 구체적 개인으로 전달되는 목소리는 더더욱.

이 책의 한 문장

"구사일생으로 도착한 한국에서 내가 가장 먼저 맞닥뜨린 것은 외면과 의심, 그리고 거부였다. 그것이 믿음과 격려, 그리고 기회로 바뀌기까지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불법 체류자로, 외국인 노동자로, 때로는 그냥 '새끼야'로 불리면서 고군분투한 그 시간을 버틴 뒤에야 비로소 나는 콩고에서 온 대한민국 난민이 됐다."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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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도서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뉴욕공공도서관 지음 / 정은문고
이 책이 새로운 이유

구글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궁금한 것이 생기면 어떻게 해결했을까? 뉴요커들은 도서관을 찾았다. 뉴욕도서관의 사서들이 받은 재미있고 요상한 질문들과 이에 대한 현명하고 재치있는 답변들을 모은 사랑스런 책이다.

이 책의 한 문장

"맨발로 일할 수 있는 직업이 있을까요?
몇 가지만 읊어보겠습니다. 와인농장의 포도 밟기, 숯불 걷기, 인명구조대... 손 모델도 굳이 신발을 신을 일은 없겠네요."

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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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자를 왕처럼 모시진 않겠습니다

박영숙 지음 / 알마
이 책이 여전한 이유

시장에서의 거래뿐 아니라 시민과 공동체의 관계까지도 서비스로 여겨지는 요즘, 공공의 장을 숙고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가 바로 도서관 아닐까.

이 책의 한 문장

"왕처럼 모시지 않겠다는 것은 결국 자발성에 대한 바람과 ‘가르치려고 들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힌 선언이다. 책을 ‘읽는’ 것은 지극히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행위가 아닌가. 훌륭한 시설과 장서를 갖추고 있다 해도, 책을 만나고 그 만남의 진동이 삶 속에 스며들도록 ‘만들’ 수는 없다. 도서관은 말을 걸 뿐, 상대방의 머리와 가슴에 가닿는 것은 그들 자신의 몫이다."

4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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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장 이야기

조정진 지음 / 후마니타스
이 책이 새로운 이유

38년간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다 60세에 은퇴한 저자는, 생계를 위해 4년째 시급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의 이야기다.

이 책의 한 문장

"나이 들면 온화한 눈빛으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백발이 되어서도 핏발 선 눈으로 거친 생계를 이어 가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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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기획 / 후마니타스
이 책이 여전한 이유

20대부터 70대까지, 59명, 30여 종의 일들. 비정규직에 얽히지 않은 연령과 직종은 없다.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이며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다.

이 책의 한 문장

"예전에 새벽에 순찰하다가 낯선 사람을 만났어요. 도둑놈 같은데 물어볼 수는 없어서 "당신 어디 갔다 오느냐" 이랬더니 "당신이 뭔데 나한테 그러느냐"라면서 "여기서 일하고 싶으면 입 딱 다물고 있어"라고 말하더라고요. 도둑놈이었어요."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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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을 권리

황두영 지음 / 시사IN북
이 책의 매력

1인 가구가 는다. 제도 밖의 사람들이 는다.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이 는다. 보호받으려면 기존의 제도를 따르라는 강요는 폭력이다. 원하는 방식의 삶과 법의 보호, 둘 다를 꿈꾸는 것이 당연한 사회를 바란다. 생활동반자법이 무엇을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는지 여러모로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생활동반자법 논의의 핵심은 '고독'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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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통치

조은주 지음 / 창비
이 책의 매력

가족 제도의 기원을 추적하고 따져묻는 시도는 꾸준하다. 이 책은 한국에서 가족과 임신/출산이 제도와 정치의 장에서 어떻게 다뤄졌는지를 파헤치며, 새로운 가족 그리고 가족 너머의 개인과 공동체를 상상할 기반을 전한다는 점에서 관련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기에 맞춤하다.

이 책의 한 문장

"가족은 이 시대 최대의 격전지이자 각축장이 되었다."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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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왕 야누시 코르차크

베티 진 리프턴 지음 / 양철북
이 책의 매력

타협 없는 신념으로 인간의 존엄을 지켜낸 이의 삶이 세밀하게 복원되었다. 야누시 코르차크에 깊이 몰입하여 그의 눈으로 세상을 본 저자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선생님은 평생 도덕적 결정을 하며 산 분이에요. 소아과 의사가 되기로 한 결정도 그렇고. 의사와 작가 일을 접고 가난한 고아를 보살피기로 한 결정도 그렇고. 유대인 고아들과 함께 게토에 들어가기로 한 결정도 그렇고. 트레블링카에 아이들과 같이 가기로 한 그 마지막 결정은, 그분이 원래 그럴 사람이었어요. 그분 자체가 그런 사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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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조은주 지음 / 창비
이 책의 매력

역사가 어린이를 마주했을 때 곤란한 점은 당사자의 목소리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 한계를 바탕으로 세계사 속에서 어린이의 지위 변화를 추적하며, 동료 시민으로서 어린이를 대하는 태도를 요청한다. 여전히 그리고 확실히 가야만 하는 길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어린이에 대한 생각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놀랍도록 다를 수 있다. 어떤 사회에서는 어린아이가 일하는 것을 정상이라 생각한다. 그 일이 상당히 고된 경우에도 그렇다. 또 어떤 사회에서는 어린이가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회에서는 어린이가 불행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생각이 무척 낯설 수도 있다."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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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숨지 않는다

박희정, 유해정, 이호연 지음 / 한겨레출판
이 책의 매력

세상이 없애버리려던 삶을 기어코 드러내어 전시하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어떤 의지를 준다. 구술기록 방식으로 서술된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이들이 내 옆에서 가만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이 책의 한 문장

"사람에겐 고난이 예기치 않게 찾아오잖아? 그걸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한 거야. 그걸 극복 못 하는 사람도 있고, 극복해서 조금 나아지는 사람도 있고, 아예 다른 삶을 사는 사람도 있는데, 모두 다르니까 고비를 나랑 똑같이 넘기지는 않을 거야. 종종 나는 그 고난을 어떻게 넘겼을까 생각해보곤 하는데, ‘아 저렇게 넘긴 사람도 있구나’ 생각해보게 하는 그런 삶이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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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공 1970, 그녀들의 反역사

김원 지음 / 이매진
이 책의 매력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는데 막상 다가서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그 앞에서 어떤 태도와 방법으로 방향을 찾아야 할지. 해답이 아닌 실천을 전하는 책.

이 책의 한 문장

"이제 나는 한때의 도시빈민이 25년이 지난 뒤 빈곤의 회로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질문에 확답할 수 없는가에 대해서 글쓰기를 시작한다."

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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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김영옥, 메이, 이지은, 전희경 지음 / 봄날의책
이 책의 매력

우연한 행운으로 나는 아직 건강하고, 젊다.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질병과 언젠가 필연적으로 올 늙음을 생각할 때 가장 무서운 것은 사회가 만든 '정상적인 몸'의 기준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몸의 '정상성'에 집착하는 사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이같은 책들이 더 널리 읽히길 바란다.

이 책의 한 문장

"인간의 몸은 무수히 다르고, 유동적이며, 예측 불가능하다. 또한 사고, 재난, 재해 앞에서 더없이 취약하다. 사람이 인생의 어떤 순간에 아프게 되는 것은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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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 더 아픈 차별

김민아 지음 / 뜨인돌
이 책의 매력

"아프면 내/네 탓"에서 벗어나 '병'만이 아닌 '병과 사람'을 함께 구할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 지금, 시급하게 확인해야 할 커다란 방향과 틀이 담긴 책.

이 책의 한 문장

"국민이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을 향유하게 하는 주체는 당연히 국가입니다. 국가는 국민의 건강을 보호할 책무가 있습니다. 책무는 상시적인 임무로서 일시적인 관용이나 자선 행위일 수 없습니다."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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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와 함께

로빈 월 키머러 지음 / 눌와
이 책의 매력

인문ON에서 로빈 월 키머러의 저작인 <향모를 땋으며>를 소개한 바 있다. 같은 저자의 책을 또다시 소개하는 것을 피하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이 원주민 출신 여성 식물학자의 시각은 놀랍고 특별하다. 그의 눈으로 본 아름다운 대지와 식물들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싶다.

이 책의 한 문장

"의도적으로 두가지 앎의 방식을 모두 들려주는 이 책의 글에서 물질과 영혼은 다정하게 함께 걸을 것이다. 때로 춤도 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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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안단테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 지음 / 돌베개
이 책의 매력

작은 것에서 조심스럽고도 우렁찬 움직임을, 천천히 움직이는 것에서 섬세하고도 확실한 움직임을 찾아내는 이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이 책의 한 문장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문제들과 비교할 떄 아주 작고 심지어 하찮은 존재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우리 인간들보다 훨씬 더 잘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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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들

김동수 지음 / 삶창
이 책의 매력

한번 휘몰아치고 지나간 이슈는 해결되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문제는 여전하고 그곳엔 아직도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의 한 문장

"민주노조 파괴는 현재진행형이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잊지 않기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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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

김순천, 권성현, 진재연 엮음 / 후마니타스
이 책의 매력

노동자는 파업을 거치며 어떻게 변해갈까. 스스로 돌아보며 한 걸음 다시 내딛는 생생한 목소리.

이 책의 한 문장

"승리하기 위해 파업 투쟁한 게 아니라, 파업 투쟁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승리한 거예요."

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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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천자오루 지음 / 사계절
이 책의 매력

구체적인 현실의 차원에서 장애인의 기본권을 말하는 책이다. 추상적인 담론과 현실적인 언어는 각기 다른 영역에서 각자의 일을 하는데 이 책은 후자가 가질 수 있는 힘을 충실하게 발휘한다.

이 책의 한 문장

"저는 자라는 내내 내가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한테 구애하고 싶은지를 분명하게 알았어요. 나한테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그런 게 없어지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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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왜 아픈가

에바 일루즈 지음 / 돌베개
이 책의 매력

굳이 사랑을 사회학으로 분석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그렇게라도 알고 싶다고 답할 수밖에요.

이 책의 한 문장

"사랑을 잘한다는 건 자기이해에 맞게 사랑한다는 걸 뜻했다. 사랑의 감정을 체험하는 것은 이제 오로지 자아의 실용적 프로젝트에만 매달렸다."

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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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악마

줄리아 쇼 지음 / 현암사
이 책의 매력

누구의 마음에나 악은 있다. 다만 우리는 악해지지 않기를 선택할 수 있다. 잘 선택하기 위해서는 우선 악이 어떤 놈인지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우리 사회는 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얘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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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스티브 테일러 지음 / 다른세상
이 책의 매력

인류의 희망을 찾기 위해 다소 멀리 가는 책이라 중간중간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벌어진 오늘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가봄직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한 문장

"이 책은 우리가 잃어버린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으려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도 이야기한다."

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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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모를 땋으며

로빈 월 키머러 지음 / 에이도스
이 책의 매력

원주민이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인 평행우주를 상상해본다. 그 곳에선 사람들이 식물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고 분석에 앞서 아름다움을 느낄 것이며 사람과 만물의 관계가 풍성할 것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서구적 사유에서는 사유지를 '권리'로 이해하지만 선물 경제에서는 재산에 '책임'이 결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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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 그린비
이 책의 매력

자신까지도 상품으로 여겨 모든 것을 사고팔아야만 하는 지금, 가치가 실현되는 공간과 시간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이 책의 한 문장

"만일 우리가 가능한 최대한의 물질적 부와 쾌락, 권력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아니라면,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들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인가?"

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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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사이드

로빈 월 키머러 지음 / 에이도스
이 책의 매력

우리가 모르는 새 우리를 죽이는 것과 그에 대항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건 우리도 모르는 새 우리가 빚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의 한 문장

>"지구의 안전과 생존을 위한 조건을 지키는 것은 모두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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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2월 12일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이 책의 매력

거대한 폭력은 거대하게 이야기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폭력도 그렇다. 이 책은 폭력을 이야기하는 최소한의 출발점을 전한다.

이 책의 한 문장

>"그 날 퐁니·퐁넛 사람들의 하루를 이해한다면 세상을 모두 알 수 있을까?"

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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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진지하게

로즈 조지 지음 / 카라칼
이 책의 매력

이 책을 읽은 우리는 이제 '똥'이라는 단어에서 구린내, 변비, 급똥의 당황스러움 같은 것 이외에 세계의 화장실과 수도관, 그리고 똥을 나르는 여자들 또한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신체 기능과 그 기능을 다루는 방식은 모든 곳에 흔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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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살리기 땅 살리기

조셉 젠킨스 지음 / 녹색평론사
이 책의 매력

숱한 문명 붕괴 시나리오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한 가지가 바로 이것이다. 문명의 존속이 이것에 달렸다는 말이다. 이제라도 해답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책의 한 문장

"자연계에는 폐기물이란 없다. 그것은 다만 사람들의 이해 부족으로 만들어낸 잘못된 개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