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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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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다

유영규,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지음 / 북콤마
이 책의 매력

출간 직후 이 책의 소개를 처음 읽고서는 낯설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기시감이 들었다는 말이 아니다. 이런 내용, 이런 구성을 가진 책의 자리가 텅빈 채 존재하고 있었고 이 책은 그 자리에 꼭 맞추어 들어왔다는 느낌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이미 있어야 했던 책이 이제야 나왔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서울신문 탐사보도팀의 존엄사 취재에 대한 결과물이다.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한 한국인에 대한 취재를 시작으로 스위스의 조력자살 지원 단체, 전 세계의 존엄사 관련 사건과 논쟁들, 존엄사에 관한 국내 인식 등 존엄사에 관해 다면적, 다층적인 취재 내용을 풀어놓는다. 풍부한 탐사 내용과 별개로 조금 놀란 지점은 책머리에 존엄사, 적극적 안락사, 소극적 안락사, 조력 자살 등 아직 한국에서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용어들의 미세한 차이를 짚은 것이다. 언어 사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는 것은 대개 본격적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책은 스위스와 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 이미 진행된 논의와 합의된 부분을 직간접적으로 담고 있는데, 그에 비해 한국의 존엄사 논쟁은 관련한 언어의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았다는 데서 망망한 거리감을 느꼈다. 한국의 의료 수준이 세계적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죽음에 대한 논의는 거의 방치 수준이다.

이야기를 꺼내기조차 어려운 주제이긴 하다. 죽음에 대한 논의는 생명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하고, 이 큰 주제에서 뻗어나오는 줄기들은 굽이굽이 첨예한 논쟁을 품고 있다. 그러나 고통 속에 살며 마지막 존엄을 바라는 이들에겐 당장 눈 앞에 닥친 현실이기도 하다. 존엄한 죽음과 삶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타오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의 첫 문장

삶의 마지막을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율성과 책임, 자기결정 능력이다.

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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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는 살인인가

토니 호프 지음 / 한겨레출판
이 책의 기억

안락사 혹은 존엄사는 한동안 뻔한 논쟁거리였다. 윤리학을 중심으로 여러 유관 학문에서 숱하게 다뤄졌고, 한국사회에서도 20세기 말엽부터 꽤 진지하게 논의되어 왔으나, 양쪽의 입장이 분명하고 현실에 바로 적용되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더는 나아가지 않는 주제였다. 그럼에도 이 주제가 새롭고 절실한 이유는 선택의 가능성이 점차 높아져 이제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고, 몇몇 국가에서는 법제화까지 이루어진 상황이라 방법과 답안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의료 기술이 끊임없이 현장에 적용되는 상황이라 지난 책을 다시 끄집어내 들여다볼 이유는 크지 않겠으나, 안락사와 존엄사로 시작해 이를 실행하는 의료인과 의료 행위를 중심으로 논의를 들여다본다면, 당사자의 선택, 정치사회적 합의 외에도 유의미한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이 책을 기억해본다.(새로운 저자가 합류한 개정판이 <의료윤리>란 제목으로 나왔으나, 읽어본 이전 판본으로 권하는 상황이니, 어느 쪽을 택해 읽어도 무방하겠다.)

앞서 언급했든 이 책의 흥미로운 대목은 행위자로서의 의료인이다. 여러 주장과 기대와 법적 논의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앞서 선택과 결단을 내려야 할 때도 있을 텐데, 그런 경우 의료인은 법적 책임까지 져야 하는 경우를 맞이하게 될 테고, 그렇다고 법적 판단을 마냥 기다리자니 환자에 대한 최선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하고 때를 놓칠 수도 있으니, 사회적 논의가 법적 합의로 이어지는 가운데 이 당사자의 이야기는 필수라 하겠다. 스스로 의료윤리가 흥미롭다며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스스로 확답을 내릴 수는 없는 문제이니, 이 논의의 주요 참여자로서 의료인을, 주요 관점으로서 의료윤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살펴야 하겠다.

이 책의 한 문장

의료윤리는 형이상학적 측면에서 일상사까지 그 범위가 다양하다. 그것은 이처럼 큰 사안부터 일상적인 의료행위까지 모든 것과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서, 의사들은 환자들의 생사를 좌우하는 의료 분야에 종사하므로 일상생황에서도 윤리적 긴장감을 조금도 늦출 수 없다. (중략) 대부분의 경우 일상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의료윤리를 추구할 때, 이론으로 무장할 각오로 시간을 내어 깊이 생각하며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즉각적으로 실천에 옮길 채비도 역시 갖추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실제적이면서 현실적인 접근법을 채택할 수 있어야 한다.

1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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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전쟁

앰버 J. 카이저 지음 / 상상파워
이 책의 매력

18세기를 배경으로 한 서양의 영화들에서 자주 본 장면. 귀족 여성 한 명에게 하인들이 달라붙어 허리의 코르셋을 꽉 조이면 여성은 숨과 고통을 참고 흡! 소리를 내뱉거나 기절한다. 어릴 적부터 스트레스를 받거나 몸을 조금만 압박해도 호흡 곤란을 겪어서 속옷을 고를 때도 제약이 많은 나는, 그 장면들을 볼 때마다 남일 같지가 않았다. 출근할 때나 바깥에서 친구들을 만날 때를 제외한 일상에서 난 브래지어를 거의 입지 않는다. 여성 해방의 의미를 생각하기도 전에 살기 위해서 속옷을 벗어던졌다.

이 책을 통해 본 여성 속옷의 역사는 죄었다 늘렸다의 반복이다. 여성의 몸을 향하는 (남성) 사회의 시선에 맞추다 보니 시대에 따라 속옷은 여길 죄고 저길 늘리거나 여길 늘리고 저길 죄는 식으로 변화해왔다. 몸이 고통스럽지 않은 때가 없었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시대에 여성 속옷의 기능은 몸을 보호하는 데 있지 않았다. 몸을 '만드는' 데 있었다. 여성의 몸에 대해서는 몸을 가진 자보다 보는 자가 늘 더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대상화와 억압에 거부하는 몸짓들이 있어왔다. 이 책은 속옷을 둘러싼 여성들의 투쟁들까지 소개한다. 많은 여성들이 우리의 몸을 둘러싼 왜곡된 시선들을 벗겨내고 몸은 그저 그대로 몸일 뿐이라는 것을 알리고자 싸워왔다. 자주 인용되던 문구 그대로 "여성의 몸은 전쟁터"였고,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노브라'운동에마저 성적인 눈길을 던지는 현실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가 지금의 싸움에 이르렀는지 그 역사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이 책의 첫 문장

고통은 18세기 미적 특징의 일부였다. 꽉 조여 맨 코르셋으로 인해 여성들의 갈비뼈는 눌리고 살은 멍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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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다운 게 어딨어

에머 오툴 지음 / 창비
이 책의 기억

문제를 드러내고 알아가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텐데, 둘로 나뉜 세계(?)에서 가장 선명한 방법은 입장을 뒤바꾸는 것이다. 그게 무슨 문제나 되냐고 맞받아치던 일들이 그제서야 삶을 걸고 싸워야 할 문제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역지사지라는 게 머리로는 쉽지만 실제 행하기는 어려운 일이라, 막상 자신을 반대 처지에 던져놓는 일은 나름의 결단을 필요로 한다.

이 책의 저자 에머 오툴은 겨드랑이 털을 기르고 드러내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는데, 그가 전하는 이야기는 사실 이게 화제가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니, 기존 사회가 ~답다, ~다워야 한다에 얼마나 쉽게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빠져왔는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그의 기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삭발, 상의 탈의, 집안일 거부 등으로 이어지며 둘로 나뉜 세계의 경계라 여겨지는 바탕이 얼마나 근본 없는 것인지 그리고 둘이 아닌 세계를 억지로 둘인 양 구분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유쾌하고 담대하게 고정관념을 비틀고 권위에 저항하는 모습이 멋지고 활기차 단숨에 읽게 되는 책이지만, 결코 낮지 않은 일상의 억압을 직면하고 있을 숱한 얼굴이 떠올라 가볍게 덮을 수는 없는 책이다. 억지로 비틀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보여지는 존재의 연대를 희망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틈새를 열어젖히는 모든 시도에 경의를 표한다.

이 책의 한 문장

남자나 여자라는 것에 객관적 의미가 부재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정체성과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젠더 연기에는 어떠한 한계도 없다.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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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게 범죄

트레버 노아 지음 / 부키
이 책의 매력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남아공에서는 흑인과 백인이 같은 화장실을 쓸 수 없었다. 같이 쓸 수 없는 것이 당연히 화장실뿐만은 아니었다. 거주지도, 학교도, 일하는 곳도, 운동장도, 모든 것은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니 흑인과 백인이 함께 아이를 낳는 것은 범죄였다. 저자 트레버 노아의 흑인 어머니는 본인의 선택과 의지로, 계획하에 백인 남자와 함께 트레버를 낳았다. 트레버는 금기를 깨고 태어난 아이였다.

이 책은 트레버 노아가 겪은 엄혹한 시절의 유년기 이야기다. 트레버와 엄마가 겪어낸 삶은 척박하지만 당차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는 이 모자가 달리기를 얼마나 잘하는지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그 이후로 이어지는 이들의 삶 자체가 내게는 달리기로 읽혔다. 깡패를 따돌리고 달렸던 것처럼, 이들은 계속해서 달린다. 혐오와 차별을 넘어 달리고 덮쳐오는 비논리의 법을 따돌리며 달리고 삶의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벽을 피해 달린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현실에서 꿈꿀 수 있는 삶 너머의 어딘가다.

"이 남자가 당신의 울어야 할 타이밍을 빼앗는다!"가 책소개의 메인 카피인데 사실 나는 울 타이밍이 아닐 때도 틈틈이 빼먹지 않고 울었다. 울지 않고 읽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더러 깔깔거리기도 했다. 웃을 때마저 슬프긴 했지만. 이 책을 누구에게 추천하면 좋을지 생각해봤다. 삶이 괴로운 이에게? 힘든 현실에서도 잘 살아가는 법을 배우길 원하는 이에게? 아니, 그냥 누구라도 읽으면 좋겠다. 차별이 뭔지 모르는 이도, 차별 때문에 살기 힘든 이도, 인생이 팍팍한 이도, 즐거운 이도, 모두가 이 책을 읽고 차별과 삶과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다.

이 책의 첫 문장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만든 천재들은 자신들보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서로에게 등을 돌리게끔 만들었다. 말 그대로, 따로 떨어뜨려apart 미워하게hate 만든 것이다. 사람들을 여러 그룹으로 나눈 다음 서로 미워하게 만들면, 그들 모두를 아주 손쉽게 통제할 수 있다.

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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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사이드 자서전

에드워드 W. 사이드 지음 / 살림
이 책의 기억

김경영 현 인문 MD가 추천한 트레버 노아의 <태어난 게 범죄>에 어울리는 책을 떠올리기 쉽지 않았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는 직업이 먼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인문/사회 분야에서 이만큼 유쾌한 사람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다시 책을 뒤적이며 그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주어진 운명에 속박되지 않으면서도, 그 경계를 잊거나 지우지 않고 삶에 포용하는, 더불어 그 이야기로 다른 이들을 웃고 울리며 다른 삶의 가능성을 마주하게 하는 이야기 말이다.

그러자 번뜩 떠올랐다. 바로 에드워드 사이드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한 번 더 정리하면, 그는 이름부터 영국식 에드워드와 아랍식 사이드로 서로 다른 문화가 얽힌 모습이고, 1935년 영국이 관할하는 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태어나, 이스라엘 건국 후 이집트로 이주했다가 홀로 미국으로 건너와 학자의 삶을 살았고, 평생 이 존재의 여정을 사유하여 서구 중심의 동양관을 치밀하게 드러낸 저작 <오리엔탈리즘>을 썼고, 백혈병 투병 중에도 레바논 현장으로 달려가 시위에 참여하며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 책무를 다했다.

그는 투병 중에 자서전을 쓰기 시작하여 자신의 마지막 책으로 세상에 남겼다. 흥미롭게도 이 책은 그의 모든 삶을 다루지 않고 어린 시절을 중심으로 청년기까지만 담고 있다. 어쩌면 이 책의 원제 'Out of Place'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이후에도 흔들리고 방황했겠으나,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그의 삶은, 이상한 말이지만 '흔들리지 않는 경계인'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숱한 다양이 일관으로, 그 일관 속에 다양이 여전히 생생히 살아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그의 삶과 이 책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겠다.

이 책의 한 문장

이따금 나 자신이 한 줄기 흐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고체처럼 충일하고 단단하고 안정된 자아라는 개념,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정체성보다는 한 줄기 흐름이 나는 더 좋다. 이 흐름은 인생의 주제곡처럼 깨어 있는 시간 동안 계속 흐르고, 전성기에도 화해나 조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 흐름은 점점 '멀어지고' 제자리에서 벗어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항상 움직이고 있다.

1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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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단에 대한 권리

박이대승 지음 / 오월의봄
이 책의 매력

낙태죄 위헌 결정 전후로 접한 관련 컨텐츠들은 대부분 개인의 경험에 대한 것이었다.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의 숨겨왔던 이야기들. 경험을 나누는 것은 중요하다. 결국 법이 바꾸는 것이 우리 개개인의 일상이고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도를 설정하는 단계에서는 경험의 언어를 정치와 철학의 언어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낙태죄에 덕지덕지 들러붙은 주장들을 한겹 한겹 떼내어 분류하고 정리한다. 합리와 비합리를 구분하고, 합리의 영역에 있는 주장들의 층위를 나누어 정리한다. 논쟁을 시작하기 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개념과 배경 지식을 설명하고 꼭 답해야할 질문들을 던진다. 말하자면 이 책은 올바른 방향의 논쟁을 하기 위한 사전작업이다. 최소한 이 책이 밑작업한 내용은 완벽하게 소화되어 있어야, 임신중단에 대한 깊은 차원의 논쟁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지금 이 중요한 시점에 필독서 한 권을 꼽자면 당연히 이 책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지금 시급한 것은 어떤 특정 입장을 선택하기에 앞서 합리적 찬성 입장과 합리적 반대 입장을 수립하는 작업이다. 서로 말이 되는 주장을 해야 논쟁이든 무엇이든 가능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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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나, 낙태했어

한국여성민우회 지음 / 다른
이 책의 기억

인문ON에 올릴 책을 고를 때면 가급적 멀리 돌아가려 애쓴다. 김경영 현 인문 MD가 권하는 책의 내용과 방향이 오늘을 보여주니, 조금 무디고 다소 아쉽더라도 논의의 과정이나 문제가 지나온 지점을 함께 살펴보면 좋겠다 싶은 마음 때문이다. 그런데 때때로 멀리 갈 수 없는 주제를 만나게 된다. 이번 주제가 그렇다. 낙태, 임신중지, 임신중단은 긴 역사를 거쳐온 문제이지만, 책으로 보면 대개 윤리와 논쟁의 맥락에서 여러 사회문제의 하나로 함께 다뤄진 경우가 많고, 해당 주제에만 주목하여 단행본이 나오기 시작한 지는 오래지 않았다.

그 가운데 오늘의 흐름에 직접 연결되는 먼 책이 지난 2013년에 나온 <있잖아… 나, 낙태했어>다. 한국여성민우회에서 기획한 이 책은 낙태를 경험한 스물다섯 명의 목소리를 담아, 낙태라는 말에 묻혀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던 각기 다른 상황과 이유와 이야기를 전한다. 낙태라고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황이 얼마나 머릿속에서만 그려진 장면인지 돌아보게 되고, 이 각기 다른 장면을 강요하거나 모른 척해온 구조와 맥락을 짐작하게 된다.

문제의 해결이나 진전을 위해서는 당연히 토론과 논의가 필요한데, 그에 앞서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첫걸음이겠다. 다소 멀리 돌아가는 듯 보여도 늘 그 길만이 최선이고 가능한 길이었음을 잊지 말자.

이 책의 한 문장

우리가 지금 낙태할 '권리'를 말하는 것조차 너무 서글프게 느껴졌습니다. 고작 낙태할 '권리'라니요. 수술대에 올려 주는 것을 권리라고 말해야 하는 암담함 말입니다.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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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동학대에서 아이를 구하는 케이스워커입니다

안도 사토시 지음 / 다봄
이 책의 매력

이 책은 일반 사무직으로 일하던 사토자키가 어느날 갑자기 아동 상담소의 케이스워커로 발령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케이스워커는 일본의 아동 복지 전문직을 칭하는 단어다. 익숙한 직업은 아닌 것이, 책 속의 사토자키도 본인이 케이스워커가 되고나서야 이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소설의 형식으로 쓰인 이 책은 아동 복지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나 같은 독자가 사토자키와 같은 눈높이에서 서서히 이 세계에 몸 담그도록 안내한다.

현실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아동 학대의 여러 케이스들을 접하면서 사토자키는 피해 아이들을 함부로 동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가르침, 부모의 성향에 맞추어 세심하게 상담하는 태도를 배워나간다. 이 책에 소개된 케이스들은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파괴하는 현장은 상상보다 더 끔찍하다. 현실의 지옥을 하나하나 맞닥뜨리는 동안 사토자키는 선배 케이스워커들에게 여러 도움을 받아가며 그 역시 한 명의 케이스워커로 성장해나간다.

아무리 거창하지 않게 소개하려 해도, 케이스워커의 일은 사람을 구하는 일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정신에 상처를 입어가며 어른에게서 파괴되고 있는 아이를 구해낸다. 그렇지만 사람을 구하는 대부분의 일이 그 가치를 저평가받는 것처럼 케이스워커의 일 역시 잘 알려져있지 않다. 이 책은 묵묵하고 치열하게 아이를 구해내는 일의 기쁨과 슬픔, 보람과 고난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힘겨워하는 케이스워커들에게 본래의 정신을 떠올리게 해주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작은 생명들을 구하는 이들이 스스로 부서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다.

이 책의 한 문장

"너 같은 타입은 클라이언트에 감정 이입을 하면 절대 안 돼. 점점 빠져들어서 허우적거리다가 너 자신이 망가져 버리니까. 네가 망가진 시점부터는 누구 하나도 도울 수 없어.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으면 케이스에 감정을 넣으면 안 돼. 절대로.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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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

임인택,하어영,임지선,류이근,최현준 지음 / 시대의창
이 책의 기억

아동학대에 다른 의견이 있을 수는 없겠다. 그럼에도 기대만큼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 건, 대다수가 뜻을 함께하는 내용이기에 구체적인 상황을 들여다보지 않는 게으름에 있다. 2016년에 처음 나온 이 책이 눈길을 끈 이유는 문제를 직접 대면하고자 하는 성실함이다. 판결문, 공소장, 언론 보도 등 드러났지만 제대로 확인되지 않거나 통계에 잡히지 않은 기록까지 찾아 한 명 한 명의 상황과 이름을 구분하여 정리하고, 그 가운데 상당수의 피해 아동과 그 곁에 있던 형제자매를 직접 만나 목소리를 담아내는 과정은, 지난하고도 괴로웠을 게 분명하다.

"우리의 기획은, 어른에게 맞거나 방치되다가 죽은 아이가 몇 명이나 되는지 제대로 세어보고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자고 시작한 것이었다." 일단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이들 역시 그러했다. 2016년 1판이 나온 후, 2017년 2판, 2019년 3판이 이어졌다. 본문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터라 어디가 달라졌을까 살펴보니, 부록에 담긴 자료 '2015년 이후 아동 학대 주요 사건 및 사회 변화'다. 아마도 사건의 목록은 늘어났을 테고, 그럼에도 사회 변화는 한 걸음 나아갔으리라 믿는다면, 그 게으름에서 벗어나 이 책의 성실함에 호응하며 답을 찾는 노력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한 문장

이것은 미완의 책이다. 글을 마감하려 할 때마다 또 다른 우주가 파괴된다. 봄여름이 그러하고 가을겨울이 그러하며, 2016년이 그러했고 2017년이 그러하다. 그 지옥을 빚은 자 누구인가. 꽃 피는 첫 들녘 모든 어른들이 서 퍼붓는 비를 맞고, 사라진 우주를 하나하나 "잊지 않을게" 호명하기까지 아동 학대 문제는 완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그 들판의 초입이다.

10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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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놀라운 동물의 언어

에바 메이어르 지음 / 까치
이 책의 매력

동물이나 언어에 관심있다면 이 책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나 역시 둘 모두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언어로 들여다본 동물의 내면'이라는 흥미로운 부제까지 더해진 탓에, 한껏 기대를 하고 읽었는데도 실망하지 않았다. 이 책은 여러 동물들이 같은 종들끼리 어떻게 소통을 하는지, 인간과는 어떻게 대화하는지, 또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지루하지 않은 문장들로 설명한다. 눈길을 끄는 사례들과 폭넓은 해석이 합쳐져 즐겁게 읽힌다.

가장 좋은 점은 저자가 동물에 대해 취하는 사려깊은 태도다. 인간의 관점으로 동물을 재단하지 않고 동등한 위치에서 탐구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이를테면 저자는 인간의 언어로 하는 동물 지능 실험이 '인간의 언어만이 진짜 언어라고 보는' 인간중심적 사고임을 꾸준히 비판한다. 직접적으로 소리 높여 말하지 않지만 동물권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책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오랫동안 동물의 지능은 인간의 지능을 기준으로 측정되어 왔다. 예를 들면 인간에 비해서 동물이 얼마나 퍼즐을 잘 푸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이 있다. 동물의 감각은 인간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달해왔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실험에서 동물은 절대로 인간만큼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할 것이다. 동물이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기술은 인간과는 다르다. 그러나 반대로도 생각해볼 수 있다. 개미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협동에 서툴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는 인간이 그다지 똑똑해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비둘기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공간지각 능력이 형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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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게 배우는 노년의 삶

앤 이니스 대그 지음 / 시대의창
이 책의 기억

동물 이야기는 늘 경이롭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찾아보고 읽지만 항상 새로운 이야기뿐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야생동물의 노년도 마찬가지다.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일이 잦고 사고나 질병도 적지 않은 야생의 삶이기에 천수를 누리는 야생동물의 모습을 만나보기는 쉽지 않은데, 이 역시 인간의 좁은 시야 때문이었을 뿐 비교적 수명이 길고 무리를 이루는 동물은 노년의 삶, 역할, 마무리를 맞이하기 마련이고, 바로 여기에서 야생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시작된다.

흔히 야생의 본능은 생존이라고 말하는데, 늙고 병들어 사냥을 하지 못하고 먹을거리만 축내는 이를 무리에서 내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전히 순환의 시간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야생의 세계에서 경험은 중요한 자산이니 이를 기대하는 걸까.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을 보면서 나름의 역할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노년의 존재를 수긍하게 되는데, 다른 한편 이게 맞는 건가 싶은 생각이 떠나지 않기도 한다.

노년의 존재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필요와 무관한 존재의 의미라는 점에서 말이다. 필요와 역할 역시 우리가 내다보는 범위에서만 짐작할 수 있을 터, 무엇을 기준으로 이해하고 판단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최소한 노년이 살아온 세월만큼의 시간은 함께 내다봐야 하지 않을까 지레짐작해볼 뿐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수명이 긴 사회적 종에서는 늙은 동물이 꼭 필요하다. 경험이 많으며 과거에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기억하기 때문이다. 기억이 생사를 가를 수도 있기에 이러한 경험은 긴요하다. 가뭄이 닥치면 늙은 코끼리 가모장은 40년 전에 갔던 수원지로 무리를 이끌고 가서 모래를 퍼내 물을 찾는 방법을 어린 코끼리에게 보여줌으로써 무리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코끼리를 도살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기에 무리가 인간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다.

10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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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하는 마음

양희 지음 / 제철소
이 책의 매력

나는 다큐를 하면서 살 줄 알았다. 대학 전공도, 관심사도 늘 다큐에 맞춰져 있었다. 부끄러워서 다시 보진 못하지만 단편을 몇 편 만들기도 했다. 점점 멀어진 이유는 현실 때문이었다. 가까워질수록 현실을 보게 됐는데, '다큐 아니면 못 살겠다'는 마음이 아니고는 버틸 수 없는 환경이었다. 나는 다큐를 사랑했지만 다큐가 아니어도 살 순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씩 멀어졌다.

내가 다큐로부터 멀어진 이유는 다큐 하는 사람들을 동경하는 이유와 같다. 이들은 다큐가 아니면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삶을 건 이들이 오래 보고 들려주는 세상엔 어김없이 응집된 에너지의 덩어리가 있다. 그것은 감당하기 힘든 사회의 진실이기도, 뼛속까지 스며드는 애환의 감정이기도, 인간의 모순과 복합성에 대한 빛나는 통찰이기도 하다.

그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고단함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대부분 이 일을 하는 이유와 일을 하며 느끼는 기쁨에 대한 이야기다. 불순물을 가라앉힌 맑은 마음들을 읽다보면 이들의 작품을 하나하나 모두 보고 싶어진다. 이들의 추전작은 덤이다.

이 책의 한 문장

특히 다큐는 세상과 사람에 관심이 많아야 해요. 그게 없으면 이쪽 일을 못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전부거든요. 그리고 세상에 대한 촉과 관심이 많은 사람, 열려 있는 사람이어야 해요. 한마디로 세상이 궁금해 못 살겠는 그런 사람이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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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김영진, 이세영 지음 / 혜화동
이 책의 기억

책과 다큐멘터리가 겹치는 지점들을 떠올려본다. 여러 측면에서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겠지만, 그중 꼭 하나를 짚는다면 '진실'이겠다. 개별 작품이 다루는 사건과 주제, 그것을 대하는 방식과 표현하는 방법, 나아가 그 작품을 알리고 전하는 데 이르기까지 고민이 끊이지 않고 더욱 깊어지는 이유가 바로 진실 때문이다. 어느 하나 흐트러지면 작품이 담고 있는 진실까지 훼손되거나 오해받기 십상일 테니.

이 책에서 만난 열 명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주목한 이슈는 지난 10년 전후로 한국사회에서 진실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야기들이다. 천안함, 용산 참사, 세월호,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등은 여전히 진실로 가는 여정 위에 있다. 대다수 국민이 알고 있고 적지 않은 조사가 이루어졌음에도 여전히 논쟁 중이니, 진실 여부와 무관하게 피로감을 느낀다는 이들도 나오는 상황이다. 과연 무엇이 부족한 걸까.

"어떤 대형 사건이 있는데 그 사건의 진실을 아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그 큰 사건의 진실이 정말 사회적 진실이 되느냐가 중요한 거죠."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나볼 수 있는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를 만든 사람들의 목소리로 다시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실이 구성되는 과정을 이해하고 그 진실을 마주하고 감당할 준비가 되어야만 진실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역사는 진보한다'는 말은 상투적 명제지만 이들 다큐멘터리 영화인들은 그 상투성의 함정을 자신들의 의지와 행위로 돌파해냈다. 우리의 현실이 좀 더 살만한 것이 돼 갈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여기 적어 놓은 다큐멘터리 영화인들의 말과 생각에서 드러나듯이 지치지 않는 헌신, 소외된 이웃과 불의에 맞서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포기하지 않는 헌신 덕분인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다큐멘터리 영화인들의 작업에 대한 자그마한 경의의 표시이다.

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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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직업

이은혜 지음 / 마음산책
이 책의 매력

전문 직업인의 이야기는 언제나 마음을 잡아끈다. 매일 어떤 고민을 하는지는 우리 각자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고, 고민에 큰 영향을 주는 요인 중 하나는 하루 8시간 이상씩 마주하는 일일 것이다. 다른 직업을 가진 이의 고민을 듣는 것은 그의 기원을 추적하는 일이기도 해서 늘 더 많이, 더 깊이 듣고 싶어진다. 수많은 직업인 중에서도 나는 이야기를 다루는 직업군의 이야기를 가장 좋아한다. 흘러 들어와서 고인 이야기들이 만들어내는 세계는 크고 깊고 강렬한 우주가 되기 때문이다. 그 우주를 헤집고 다니는 이들의 이야기는 항상 매력 있다.

편집자는 마음을 잡아끌기 딱 적당한 직업이다. 이 책은 글항아리 출판사 편집장이 쓴 편집자에 대한 이야기다. 편집자가 얼마나 매력적인 직업인지 알려주기 위해 쓴 책이라는데, 가뿐히 그 목적을 달성한 것 같다. 편집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저자와 독자와 편집자의 세계는 그 자체로 완결성 있게 느껴진다. 이야기의 세계를 유영하며 자신의 줄기를 단단히 잡고 길을 만들어가는 이들은 지적이고 열정적이다. 열정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 그렇듯 이 책도 어떤 기운을 슬며시 전해준다. 아마도 조금 더 힘내어 하루를 또 살아봐야겠다는 감각 같은 것.

이 책의 한 문장

비밀은 글을 쓰게 한다. 그러므로 진짜 비밀은 없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비밀과 달리 글로 쓰인 비밀은 울음과 비탄을 마침내 정돈해서 담아내는 까닭에 희망을 향해 달린다. 수많은 사람이 오늘도 출판사로 원고를 보내온다. 그것들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아카이브로 축적되어 거대한 강물을 이룬다. 강물은 때로는 핏빛이다. 하지만 다른 물줄기와 섞이고 모여들면서 하나의 역사를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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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노동, 목소리

김신식,고아영,양현범,이수정,이용석,장미경,정우진,정유민,진영수,최진규,황현주 지음 / 숨쉬는책공장
이 책의 기억

책을 만드는 사람과 책을 만드는 일, 즉 편집자와 편집은 늘 '노동자성' 앞에서 적지 않은 혼란과 고민을 만난다. 특히 편집자가 되는 과정에서 미리 만나는 앞선 편집자의 일과 삶은 대체로 노동자성이 드러나지 않거나 애써 드러내지 않았거나 혹은 말하는 이가 애초에 그것을 감각하지 못했거나 묻지 않았거나 때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잊어버리고 살아온 지 오래된 터라, 앞선 기대와 이후 마주하는 현실의 격차가 훨씬 커 당황스럽기도 하다.

이 책은 현장의 노동자들이 출판의 의미에 가려 보이지 않던 출판 노동의 현실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전에 없던 이야기라 하겠다. 정확하게 말하면 늘 있어 왔고 나름대로 치열하게 이야기되었으나 '앞서 언급한 (앞선 편집자의 일과 삶을 담은) 책들'처럼 널리 알려질 기회를 얻지 못했고, 아름답고 빛나는 이야기이지만 이면도 함께 담아내기에 더 많은 시선을 모으기 쉽지 않았던 이야기다. 이들은 자신들이 해왔던 일의 방법으로 말할 기회를 만들고 권리를 찾고 서로에게 메아리가 되기로 결정하였고, 이 책의 표지가 그러하듯 전면적으로 이를 드러냈다.

나는 이점이 책이 갖춰야 할 진실성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해왔고 하고 있는 일의 상황과 방법과 전망을 배신하지 않고, 그것에 기반하여 이야기를 풀어내고 끌어가고 전하는 힘 말이다. 출판과 편집에 조금 더 다가서고 싶다면 부디 이 책을, 출판 노동자로 살아가고 싶다면 꼭 이 책을 먼저 만나길 바란다. 당신이 마주할 현실과 훨씬 가까울 테고, 함께 걸어가며 그 현실을 한 걸음 밀고나갈 이들이 바로 이 책의 사람들일 테니 말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책을 생각했다. 책은, 도대체, 뭘까? 책은 나를 속이고 기만하는 허상인가? 책은 ‘386워너비’들의 사회적 패션을 완성하는 장신구 같은 건가? 그렇다면 책은 혹시, 아무것도 아닌 것인가? 출판 강좌 같은 곳에서 대선배들이 늘어놓던 무용담을 들을 땐 전혀 하지 못했던 생각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출판은 분명 화려하고 드라마틱하고 치열하고 아름답고 때론 온화하고 지적이며 정의롭고 섬세하고 다정했다. 출판이 무엇인지 알려 주는 책들이 말하는 책이란, 지성으로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신성한 생물이었고 세상의 모든 편집자들을 숨 쉬게 만드는 생의 이유이자 에너지였다. 책 만드는 자의 자세와 태도를 논하는 대선배들에게 편집자란, 명예롭고 헌신적이며 유의미하고 위대한 직업이었다.

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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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

파울 페르하에허 지음 / 반비
이 책의 매력

가부장제의 시효가 다해감을 나날이 느낀다. 학교에서 선생의 말은, 집에서 부모의 말은 힘을 잃고 바람에 나부낀다. 제왕적 가부장이 없어지면 자유와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현실은 다르다. 기본적인 질서의 유지가 어려워진다. 옳음에 대한 합의의 영역이 점점 줄어든다. 시민 개개인의 내적 추동으로 질서가 작동되지 않자 사회는 규제를 늘린다. 촘촘한 규약, 빽빽한 감시. 사람들은 무력하고 우울해진다.

이 책은 가부장제와 권위를 뚜렷이 구분한다. 우리가 잃어야 할 것은 가부장제일 뿐, 권위 그 자체가 아니라고 말한다. 쉰내나는 가부장제를 버린 후엔 새로운 권위를 찾아야 한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따를 수 있는 권위. '수평적 권위'다.

뚜렷한 한 가지 개념으로 사회를 분석하는 책이 가지는 통찰을 그대로 담아낸 책이다. 권위의 존재와 부재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가 가져야 할 권위가 어떤 모양인지 의심하며 읽어보길 권한다.

이 책의 한 문장

우리는 한 시대의 종말을 겪고 있다. 약 1만 년 동안 성, 사회, 종교, 정치, 경제 등 우리 인생의 모든 분야를 좌우했던 가부장적 권위가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권위 자체와 작별을 고하는 것은 아니다. 아렌트는 권위란 인간관계를 규제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권위 없이는 사회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이런 문장으로 글을 끝맺는다. 권위가 사라지면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의 기본 문제들’과 다시 한번 부딪히게 된다고.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어떤 형태의 권위를 새로 형성해야 하는가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신속히 찾아야 한다. 전통적 권위가 이미 기본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더욱 자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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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

지주형 지음 / 책세상
이 책의 기억

김경영 NEW 인문MD의 추천작 <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를 뒤적이는 내내 신자유주의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저자의 전작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에서 집중하여 다룬 주제이기도 하지만, 권위가 사라진 자리를 분석하는 이야기를 읽자니 너무나 강력한 권위로 모든 문제의 원인, 현상, 출구로 이야기되던 신자유주의의 정체가 새삼 궁금해졌다.

한국현대사에서 반공 외에 이만큼 강력한 권위로 작동한 이데올로기는 없었고,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를 통과하지 않고 한국사회의 구조와 작동을 이해하거나 변화시키기란 불가능할 게 분명하니, 신자유주의와 함께 붙어다니는 세계화를 아우르며 세계 경제구조 속에서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를 강력하게 추동한 상황과 방향을 되짚는 과정은 필연이겠다.

더불어 이 책은 거대 서사에 매몰되지 않고 구체적인 상황이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역사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담아내어, 이 과정이 (겉으로 크게 드러나는) 자본의 독점뿐 아니라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경제적 의사결정의 독점이었으며, 최대한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는 생명을 억압하여 시민의식과 민주주의를 질식시켰다고 주장한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었다면 안타깝고 슬픈 일이겠으나, 다수가 알면서도 어찌하지 못하거나 모른 척해왔다면 무섭고 두려운 일 아닐까. 흔히 이야기하는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를 그리려면, 둘을 따로 살피는 시점에서 벗어나 신자유주의라는 하나의 관점으로 둘을 아우르는 분석, 해석, 전망이 절실하겠다.

이 책의 한 문장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패배주의나 시장이나 전문가 시스템을 이상화하는 물신주의는 그릇된 것이다. 시장이나 전문지식은 합리적 토론을 거친 민주적 절차에 의해 통제될 수 있고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나름의 장점과 한계를 가진 여러 자원 배분 방식 중의 하나로 명확히 인식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실질적 경제민주주의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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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과 가족, 핵가족의 붕괴에 대한 유쾌한 묵시록

고미숙 지음 / 북튜브
이 책의 매력

고미숙은 영화 '기생충'에서 핵가족의 위기를 읽는다. 단지 계층의 문제로만 해석할 때 남던 개운치 못한 뒷맛이 폐쇄적인 세 핵가족의 자기파멸적 충돌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해소된다.

'기생충'에 나오는 세 가족은 각자 그 자체로 완결된 폐쇄적 핵가족이다.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이 가족 이외의 타인과 관계맺는 장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타자와의 관계성이 단절된 가족들은 내부의 결속만을 강화한다. 강화된 결속은 타자를 배제하고 가족의 욕망만을 향해 전진하는데, 그 끝에 세 가족의 유혈 낭자한 참극이 벌어진다.

이는 '기생충'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저자는 영화를 빌려 오늘날 물적 욕망의 화신으로만 남은 핵가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똘똘 뭉친 개개 핵가족들이 자본 증식을 위한 무한 동력기로만 기능할 때 우리에게 남은 미래는 무엇일까. 책은 파멸을 막기 위해선 가족의 윤리를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한 문장

가족은 그냥 생명의 베이스인 거예요. 태어나서 이 베이스캠프를 배경 삼아서 자기의 길을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수신을 하고 제가를 하고 치국을 하고 평천하를 하는 쪽으로 가는 겁니다. 누구든 나아가서 새로운 가족이든 새로운 네트워크든 형성을 하는 거라고요. 왜 평생 자꾸 이 핵가족으로 되돌아오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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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가족

김형재, 박재형 지음 / 마티
이 책의 기억

언제부터인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언제부터인가 핵가족이라는 말은 언어 생활에서 사라진 듯하다. 가족 형태가 급격하게 바뀌며 대가족과 구분하여 핵가족을 따로 지칭할 필요가 없어지기도 했을 테고, 그렇게 생겨난 핵가족이라는 관점으로 오늘날 가족의 상황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기도 어렵기 때문일 터, <확률가족>은 핵가족의 주거 표준이라 할 아파트를 중심으로, 부모 세대가 아파트를 통과하며 근로소득자에서 중산층 소비자로 변모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을 경험했으나 반복할 수는 없는 자녀 세대의 이야기를 구체적인 개인사로 들려준다.

이 책의 장점은 자기 이야기를 이 맥락에서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점인데, 열댓 개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 마음과 함께 '더 나은 삶을 위한 생애 기회'의 확률이 늘어날 가능성도 줄어드는 기분이 들어 착잡해지다가, 기존의 상수가 사라진 시대에 나와 비슷한 삶의 궤적을 공유하는 이들이 새롭게 만들어 낼 변수는 무엇일지, 그러니까 아파트 한 채도 없는데 무슨 희망을 이야기하느냐가 아니라, 그야말로 아파트를 지워버린 자리에 놓을 수 있는, 더불어 더 많은 이들이 더 자유롭고 덜 경쟁적인 방식으로 만날 수 있는 '생애 기회'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상승 곡선에서 책장을 덮게 된다. 이 정도면 희망적인 변수 아닐까 싶다.

이 책의 한 문장

‘에코 세대’의 상황은 부모 세대와 달랐다. 1, 2인 가구의 증가, ‘삼포 세대’라는 별칭의 등장, 저출산 기조의 지속 등은 이제 30대에 접어들기 시작한 이 세대의 구성원들이 저성장, 고령화 시대의 문턱을 어떻게 넘어서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일 것이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이들은 가족, 주거, 교육, 소비의 측면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아파트와 사교육으로 요약되는 부모 세대의 삶, 달리 말하면, 고도성장기의 중산층 핵가족 모델에서 탈피해 저성장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삶의 모델을 발명해낼 수 있을까?

9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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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진부함

이라영 지음 / 갈무리
이 책의 매력

책의 1부는 저자 이라영이 당해온 폭력의 역사다. 여자라서, 여자로서 당한 폭력을 연도별로 정리했다. 책의 제목이 왜 '폭력의 진부함'인지는 금세 알 수 있다. 다른 장소, 다른 때, 다른 사람에게 저자는 비슷한 폭력을 되풀이하여 꾸준히 당한다. 앞에 분명 나왔던 이야기 같은데 다른 이야기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당해온 피해와도 비슷하다. 진부하게도.

이라영은 증언자와 고발자 들에 대한 “말의 연대”로서 살아오며 당한 폭력을 복기했다고 썼다. 그 연대를 이어가본다. 나는 초등학생 때 상체를 숙이고 청소하던 내 가슴을 만지고 도망간 한 학년 위 남자의 얼굴을 기억한다. 학생을 무릎에 앉히거나 벽에 세운 뒤 양 팔 안에 가둬놓고 상담을 하던 사회 선생을 기억한다. 여자는 한 달에 한 번 딸기잼이 나와서 좋겠다고 말하던 체육 선생도 기억한다. 전환형 인턴을 했던 회사에서, 여대 출신인 나를 앉혀놓고 여대 애들이 얼마나 멍청하며, 불순한 목적으로 대학에 가는지 설교한 사람은 내 인사권을 쥔 상사였다.

약자가 당한 폭력은 다 닮은 꼴이다. 내가 나라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우리가 사회적 약자의 몸을 가져서 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때 그 곳에 없었어도 그 폭력은 일어났을 것이다. 약자는 개별성을 가지지 않으니까. 피해자는 바꿔끼워질 수 있다. 폭력이 그 자리에 있다면. 저자는 문화화된 폭력에 저항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각자의 용기있는 발화를 말한다. 우리가 덩어리진 약자가 아닌 구체성을 가진 개인임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이 책소개로 그 연대에 손 하나를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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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사람들

박영희 지음 / 우리교육
이 책의 기억

사회가 욕망하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그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아니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은유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임에도 은유처럼 읽혀 고민이 깊어지는 표현이다. 이들의 가시성은 필요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백인 중심 사회에서 살아가는 흑인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랠프 엘리슨의 소설 <보이지 않는 인간>은 이 상황을 적확하게 그려낸다. "그들은 모든 것을 빠짐없이 다 보면서도 정작 나의 진정한 모습은 보지 않는다.”

(현실의 변화는 더디지만) 이제는 종종 마주하게 되는 표현 '보이지 않는 사람'을 책으로 만난 기억은 르포작가 박영희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는 다른 작가들과 함께 한국의 인권현장을 누비며 이주 노동자, 농촌 청소년, 아시아 여성을 만나 <길에서 만난 세상>을 펴냈고, 이어지는 두 번째 '길에서 만난 세상'에 '보이지 않는 사람'을 제목으로 붙였다. 소외되었다,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보이지 않는다 등의 표현에서, 구체적인 자리와 상황, 그 상황에 처한 이유와 보이지 않는 원인 그리고 보이도록, 들리도록 하는 데 필요한 일들이 무엇인지로 생각과 실천의 내용과 방향이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 이들에게, 안타깝지만 아마도 여전할 현장의 '보이지 않는 사람들' 이야기를 전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목록

노점상, 환경미화원, 아르바이트 대학생, 농민, 아파트 경비원, 신용불량자, 전문계고 학생, 장애인, 부당 해고자, 공부방 아이들, 대학, 아파트 등 청소원, 새터민

8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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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성교육을 합니다

인티 차베즈 페레즈 지음 / 문예출판사
이 책의 매력

나는 여중, 여고를 나왔는데,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1-2주에 한 시간씩 성교육을 받았다. 선생님들은 놀랍게도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는 법이 없었다. 내가 받은 수업은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이었다. '색즉시공'이나 '몽정기' 같은 영화를 함께 보면서 선생님은 장면 장면마다 일시정지를 하고서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바른 것인지 자세히 설명했다. 집에 가서 손거울을 들고 자신의 나체를 구석구석 관찰하라는 숙제를 내주기도 했다. 그 시간들을 통해 나는 내 몸과 성에 대해 그릇된 태도를 가질 가능성을 차단당했다. 사춘기 시절에 선생님이 노골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알려준 성에 관한 지식들은 강력한 영향을 줬다. 아직까지도 그 때 수업들을 떠올려보면 의아할 만큼 앞서나간 내용이면서도 꼭 필요한 지식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일 년에 한 번씩 학교에서 순결 캔디 같은 것을 주며 순결 서약을 하는 행사를 했던 것을 미루어 짐작했을 때 그건 학교의 방향이라기보다는 선생님 몇 분의 개인적인 철학으로부터 비롯된 교육이었던 것 같다.

나는 운이 좋았지만 이런 선생님을 만날 기회는 모두에게 오는 것이 아니다. 특히나 한국의 사회정서상 남학생에겐 희박하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성교육을 빨간 비디오로 받았다는 농담이 아무렇지도 않게 통용되었는데 이것은 농담이 아닌 진실이며 웃기지 않을 뿐 아니라 절망스러운 현실의 반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여성의 경우 꼭 학창시절에 성교육을 받지 못했더라도 생애주기 속에서 언젠가는 몸과 성에 관해 찾아보고 알아갈 기회가 온다. 잘 모를 경우, 자신의 몸에 직접적인 위해가 가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여성 커뮤니티들에서는 실제로 몸과 성에 관한 많은 실용적 정보들이 오간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사춘기 시절 성개념이 잘못 잡힌 남성이 재교육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남성을 대상으로 한 질 좋은 성교육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 책은 남성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의 A to Z다. 저자는 스웨덴의 성교육 전문가다. "상호 존중이 모든 관계의 토대"임을 전제로 하는 이 책은 사춘기 남성이 궁금해할만한 모든 것을 담는 동시에 성에 관한 그릇된 태도를 확실하게 차단한다. 남성과 여성의 신체, 자위 방법, 섹스, 포르노 등에 대해 돌려서 표현하지 않고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궁금증이 남지 않을 만큼 깔끔하면서도 바른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돕는다. 더구나 이 책은 이성애자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7장, "여자와 잔다는 것" 바로 뒷장인 8장은 "남자와 잔다는 것"이다. 누군가 내게 아들을 위한 성교육 책을 한 권만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나는 군말 없이 이 책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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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북

귄터 아멘트 지음 / 박영률출판사
이 책의 매력

동네 담벼락에 빨간색 라카로 끄적인 'SEX'란 글자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학교에서 성교육을 따로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이들 가운데 대학에 들어가 학과나 동아리 선배들과 세미나를 경험한 이들이라면 이 책을 기억할 가능성이 높다. 독일에서 출간된 지 반세기가 되었고, 한국 대학에서 세미나 커리큘럼으로 읽힌 지도 사반세기가 되었는데, 본문 중간중간 검열로 실리지 못한 사진들을 이러저러한 내용이라며 글로 대체한 부분이 여전한지 궁금해진다.(아래 '이 책의 한 문장'처럼 표기되어 있다.)

사회학 박사인 저자는 30대 여성, 17세 소년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생물학적 성교육을 다루되 사회학적 성교육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점이 특징이다. 다시 말해 성에 대한 사회의 이해와 태도, 성교육의 내용과 방법 등을 살펴보면, 해당 사회가 성뿐 아니라 사회 전반을 어떻게 꾸려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진다. 이 책의 한국어판에 실리지 못한 사진들이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처리되고 있는지. 어느 쪽이든 오늘 한국사회의 현실 그리고 나아갈 방향을 살펴볼 계기로 삼을 수 있겠다.

이 책의 한 문장

이 자리에는 OOO한 사진이 있었습니다.(편집자 주)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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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젠더

아이리스 고틀립 지음 / 까치
이 책의 매력

필요한 줄 몰랐지만 원해왔던 이들이 많을 것 같다. 젠더에 관해 필요한 모든 기초 지식을 정리한 책이다.

젠더 교육이 국영수 과목처럼 필수 교과목으로 인정된다면야 걱정 없겠지만 현실은 이상과는 많이 달라서, 우린 젠더 공부를 시작하는 시기가 제각각이다. 오래도록 담론을 접해왔던 사람에겐 당연한 말들이, 젠더 이분법의 세계에만 살다가 새롭게 다른 눈을 뜨기 시작한 사람에겐 별 세계의 말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용어도, 태도도 모두 어렵다. 전혀 다른 의미의 호칭을 잘못 사용하는 경우도 있고 배려의 차원에서 말했는데 큰 실수를 하는 일도 있다.

이 세계의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꼭 필요한 교과서가 드디어 출간됐다. 깔끔한 일러스트, 명쾌한 설명과 함께!

이 책의 한 문장

젠더를 본다는 것, 그러니까 눈과 마음을 열고 본다는 것은 미래로 가는 길에 첫발을 내딛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 미래란 누구나 자기 자신으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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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도 괜찮아

김두식 지음 / 창비
이 책의 매력

김경영 현 인문MD가 추천한 젠더 입문서 <뷰티풀 젠더>를 보고 비슷한 맥락에서 권할 만한 책이 무엇일지 떠올려보았다. 그렇게 시간을 되돌리다 보니, 젠더에 앞서 인권이 비슷한 상황과 처지에서 이야기된 시기가 있었고, 이 책처럼 간명한 논리적 설명과 공감도 높은 사례로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바로 김두식 교수의 <불편해도 괜찮아>다.

책을 펼치며 이 책이 출간된 게 무려 10년 전이라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이제는 인권 감수성이란 표현이 흔히, 자주 쓰이고, 영화나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에 드러나는 인권 감수성의 문제도 적극적으로 거론되는 편이니, 지난 10년 동안 세상이 앞으로 나아간 것은 분명하고, 이 책이 그 과정에서 건강한 역할을 충분히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고마운 기억에 더해 새로운 불편한 마음으로 책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지키는 인권에서 공감하는 인권으로, 의심스러울 때는 약자의 이익으로 같은 큰 틀의 논의는 여전히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만, 10년 동안 앞으로 나아간 시선으로 바라볼 때 새롭게 쓰여야 할 부분은 없을지 더욱 주의하여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인권과 젠더 모두 그렇게 다음 페이지를 함께 써나가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물론 서로가 서로를 가두는 게 아니라, 모두가 모두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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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예술가들

윤혜정 지음 / 을유문화사
이 책의 매력

김영민 교수의 문장을 잠깐 빌려본다. "정독할 부분을 찾는 방법 중 하나는 자기만의 질문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는 것이다. 그 질문에 답하는 문장들이 바로 정독할 부분들이다."(예약판매 중인 도서, <공부란 무엇인가> 속 문장이다.) 질문을 하나 품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나서는 것은 책을 잘 읽는 방법이자, 삶을 깊게 살아내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예술가는 자신이 잡은 질문의 내핵까지 들어가는 사람이다. "엄혹한 현실인으로 살아내느라" 많은 사람들이 종종 자기 나름의 질문을 놓치고, 제자리를 빙빙 맴돌 때, 예술가들은 삶과 세상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들로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제시한다. 하나의 질문으로 자신의 세계를 공고히 만든 예술가들의 생각을 엿듣는 일은, 그래서 단순한 흥미 이상의 차원이다.

20년 이상의 잡지 에디터 경력을 쌓은 저자 윤혜정이 거장 예술가들의 세계를 촘촘히 탐험한 기록을 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독자와 예술가의 중개자로서 그는 맨살 닿듯 밀착된 대화를 매끄럽게 끌어냈다. 디터 람스, 이자벨 위페르, 박찬욱 등 거장 예술가들의 생활과 사유는 곳곳에서 우리가 고민할 주제들을 던진다. 예술가들의 질문을 질문하는 것. 이 묘한 프랙털로 이루어진 책에서, 각자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며 즐거이 읽으시길 바란다.

이 책의 한 문장

나는 '나의 예술가들'을 통해 정치란 다름 아닌 고유하고 대담한 삶의 태도임을, 나의 방식으로 우리의 인간다운 생(生)에 기여하는 것임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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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란 무엇인가

베레나 크리거 지음 / 휴머니스트
이 책의 매력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에서는 "세상을 짊어지는 게 아니라 자기 사유를 흔들림 없이 진전시켜 나가는 것"이 예술가들의 유일한 임무라 말하며 "실패와 무목적성의 목적"을 "'나의 예술가들'의 소명 의식"이라 전한다. 직업으로 환원되지 않는(간명하게 환원된다 할지라도) 일들의 풍경과 의미는 예상보다 복잡할 게 분명하니, 예술가처럼 행위와 작업 자체를 정의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각자의 기대와 현실의 상황이 쉴 새 없이 부딪히며 새로운 정의와 역할을 만들어내기 일쑤겠다.

이런 맥락에서 '예술가'라는 이름의 현실과 부여된 의무와 때로는 부풀려진 상상을 역사 속에서 되짚어보는 작업은 여전히 흥미롭다. 작업에 합당한 비용을 말하는 예술가들에게 예술가가 어떻게 돈을 따질 수 있느냐며 반문하고, 눈에 띄려 의도한 행위를 두고 '예술가병'에 걸렸다 지적하는 모습을 보면, 예술가에 덧씌워진 이야기들이 어디에서 기원하여 오늘에 이르렀는지 궁금해지고, 앞선 시대의 예술가들은 이를 어떻게 수용하고 감내하며 극복했는지 알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 책은 "어린 시절의 재능, 재능을 방해하는 주변 환경, 시민적 관습에서 벗어난 삶, 가난,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 소명과 밥벌이 사이의 간극, 비극적인 요절, 죽은 뒤에 비로소 얻게 되는 명성"이라는 예술가의 전형 뒤에 어떤 삶이 있었고 그 삶은 어떤 구조 위에서 이루어졌는지를, 기술자에서 천재로, 천재에서 사업가로 변모한 예술가의 존재 양식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오늘날 예술가들이 직면한 딜레마뿐 아니라 다음 시대의 예술가론을 전망할 충분한 기초 자료라 하겠다.

이 책의 한 문장

오늘날 사람들은 시민사회를 통해 구성된 영역인 '미술'과 그것과 연관되어 있는 '자율적 미술가'라는 생각을 극복하려는 모든 노력이 미술가의 전능하고도 특별한 역할을 없앨 수 없다는 모순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오히려 '미술가의 자세'는 변형되고 확장되고 확인되었다. '저자의 죽음'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요구는 때때로 어느 정도 인기를 누렸지만, 결과적으로 '미술가'는 쉽게 죽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끈질기게 이승으로 되돌아온 유령 같은 존재로 등장하고 여전히 식지 않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8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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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크레딧

김주희 지음 / 현실문화
이 책의 매력

지하 경제로만 돌아가는데 이렇게 거대한 산업이 가능하다고? 늘 의문이었다. 이 책은 성매매 산업을 둘러싼 거대한 돈의 흐름을 추적한다.

우리 대부분이 잘 몰랐던 사실, 시중 은행은 '유흥업소 특화대출' 상품을 판다. 이로부터 시작된 물고 물리는 부채 관계는 여성을 성매매에 빠져들게 하고 빠진 곳에 묶어놓는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한국 사회는 비도덕적 개인들의 일탈 행위를 눈감아준 방조범이 아니라, 성매매 산업의 장을 만든 적극적 공범라는 것이다. 한국의 성매매 산업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금융 산업을 등에 업고 무럭무럭 자랐다.

성매매 산업에 덩굴처럼 얽혀있는 여러 주장과 담론들을 그대로 두고, 이 책은 시야를 넓혀보기를 권한다. 하나, 둘, 셋... 열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났을 때,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은 제일 밑바닥에 여성들이 맨몸으로 깔려있는 거대한 자본주의 경제체제다.

추천하는 글

저자가 분명히 지적하고 있듯 업주, 부동산, 일수업자부터 은행까지 전 사회가 성매매 산업에 공모하고 있다. 그렇기에 반성매매 운동의 목표는 여성의 탈성매매가 아니다. 성매매 경제를 변화시키기 위한 실천은 한국 사회의 탈성매매를 향해야 한다.(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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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호황

김기태, 하어영 지음 / 이후
이 책의 매력

이 책은 2011년 <한겨레 21>의 성매매 기획 기사를 바탕으로 한다. 당시 기사의 몇몇 지표를 여전히 기억하는데, 우선 4699만이라는 숫자다. 당시 한국의 인구가 아니라 2010년 한 해 동안 한국에서 벌어진 성매매 추정 건수다. 두 번째는 7조 원에 달하는 연간 성매매 거래액이다. 같은 해 한국 영화 산업 매출이 1조 2천억 원이니 다섯 배가 넘는 규모다. 마지막은 한국 남성 가운데 평생 1회 이상의 성매매를 했다고 답한 비율이 49%이고, 이전 해 한국 남성 10명 가운데 4명이 성매매를 했다는 설문 결과다.

숫자가 전한 충격이 적지 않았지만, 이런 숫자가 가능한 구조는 더욱 놀라웠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사실상 국가가 포주로 나섰기에 규칙과 원칙을 지키지 못했고, 이 때문에 성매매가 불법이 아닌 (국가가 용인한) 관행처럼 여겨지며 두 세대가 넘는 시간 동안 한국사회에 자리를 잡았다는 분석에서 시작해 그러한 '불법=관행'이 한국을 벗어나 해외 성매매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 거대한 고리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실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불완전했지만)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게 2004년이고, 이 책은 이후 8년 동안 한국 성산업의 변화와 상황을 추적하며 성매매가 사회문제라는 인식의 틀을 다시금 확인했다. 그리고 이 책이 나온 지 다시 8년이 지나 금융과 부채로 더욱 빠져나갈 틈 없이 묶인 성산업을 파헤치는 책 <레이디 크레딧>이 도착했다. 한국사회의 탈성매매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할까. 이번 주 인문ON 두 권의 책이 그 시간을 앞당기는 데에 불쏘시개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추천하는 글

바라는 게 있다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성매매는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안전망이 부재한 사회에서 언제든, 모든 계층의 인간에게 닥칠 수 있는 사회문제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성매매가 전 사회적인 인권 유린의 문제며, 아직도 사회적 묵인 아래 성매매라는 폭력적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는 많은 여성들이 있다는 것도 기억해 주면 좋겠다.(정혜원, 한국여성인권진흥원)

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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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살아가는 반자본주의자를 위한 안내서

에릭 올린 라이트 지음 / 이매진
이 책의 매력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해 미쳐 날뛰는 21세기의 세계를 보며,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는 과연 몇 년 치일지 막연한 셈을 해본다. 멸망을 향한 질주를 막을 수 있을까. 자본주의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못박는다.

책은 평등/공정, 민주주의/자유, 공동체/연대 등의 개념을 하나하나 짚으며 자본주의에 대한 반자본주의자들의 비판을 정리한다. 그리고 우리가 건너가야 할 다른 세계를 제시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으로 에리히 프롬의 <불복종에 관하여>, 김규항의 <혁명 노트>를 추천한다.

이 책의 한 문장

마지막으로, 자본주의에 고유한 부와 소득의 불평등은 철학자 필리프 판 파레이스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의 불평등을 낳는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든 간에 자유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다. 부유한 사람은 거리낌없이 임금 노동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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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팝니다

팀 플래너리 지음 / 지호
이 책의 매력

자본주의가 세계를 장악한 현실에서 반자본주의자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을 게 분명하다. 완벽하게 벗어날 수 없기에 때로는 부딪히고 때로는 물러나며 작은 빈틈을 만들어 한 걸음 내딛는 게 현실에서 마주하는 최선의 모습이겠다. 그런데 이 방법이 정확한 상대를 대상으로 하는 효과적인 대응일까. <혁명을 팝니다>를 읽고 나면 체제에 저항하는 일이 생각보다 만만찮으며, 이로써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은 훨씬 어렵고 복잡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1960년대 베이비부머들이 시작한 체제에 대한 반대는 (물론 여러 사회 변화를 이끌었으나, 저자들의 평가에 따르면) 소비 자본주의가 한층 강화된 모습을 만드는 데 그쳤다. 이 책은 당대부터 최근까지 40여 년에 걸쳐 반문화 진영에서 떠오른 온갖 상징들이 차례로 체제에 포섭되는 과정을 드러내며, 그래서 더욱 멀고 드물고 희귀한 모습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의아하고 황당한 결론을 냉정하게 지적한다.

어느덧 21세기에 여전히 혁명을 꿈꾼다면, 혁명을 사고파는 허상에서 벗어나 제대로 혁명을 이뤄내고자 한다면, 반문화를 과감하게 떨쳐내고 규칙의 정비와 제도의 보완에 힘을 모아야 하는 걸까. 이 책의 결론이 마뜩잖다면 '반문화의 신화'를 넘어 '반문화의 실현'에 도전해볼 수도 있겠다. 고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이 책의 한 문장

반문화 반란이 소비 자본주의를 활성화시킨 것이 뭐 그리 놀랄 일이겠는가? 현실을 점검해봐야 할 때다. 즐겁게 노는 것은 전복적이지 않으며, 체제를 전혀 손상시키지 않는다. 사실, 만연한 향락주의로 인해 사회 운동을 조직하기가 더 어려워졌고 사회 정의의 이름으로 희생을 하라고 설득하기는 더욱 더 어려워졌다. 우리가 볼 때 진보 좌파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 정의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반문화에서 분리시킨 뒤 전자는 계속 추진하고 후자는 폐기처분하는 것이다.

7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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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밖에 없는 말

로저 올모스 지음 / 삽화가들의 사랑방
이 책의 매력

접시 위에 올라와있는 고기에서 소의 삶이 보이는 순간부터,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의 눈에서 절망이 보이는 순간부터, 우리는 조금 다른 세계에 살게 된다. 새롭게 열린 세계에서는 수시로 죄책감을 느낀다. 이번 주에 별 생각 없이 돈까스를 두 번이나 먹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연히 들른 공원 한 켠, 작은 우리 안에서 똥을 밟고 서있는 토끼 떼를 볼 때, 엄마가 새로 샀다는 코트 안에 여우 털이 촘촘히 박힌 것을 볼 때, 죄책감으로 기분이 바닥까지 가라앉는다.

그 죄책감은 생각보다 일상에 많은 제약을 불러온다. 그만큼 우리의 일상이 작은 존재들의 촘촘한 고통들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일상에 제동이 생길 때, 우리가 죄책감을 느끼고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할 때, 어떤 존재들은 목숨을 구한다. 우리가 잘못된 방향의 쾌락을 포기할 때, 어떤 생명들은 삶과 자유를 얻는다.

<할 수 밖에 없는 말>은 죄책감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다. 일러스트들로 구성된 이 책은 그림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대부분 우리가 외면하고 있던 고통에 관한 이야기다. 이 그림들은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고 그 아픔은 책을 덮고나서도 쭉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역설적으로 이 세계에 존재하는 고통을 줄일 것이다. 마음의 준비가 된 당신과 이 책을 한 장 한 장 함께 보며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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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빈자리

팀 플래너리 지음 / 지호
이 책의 매력

김경영 현 인문MD가 추천한 <할 수밖에 없는 말>을 보고, 말을 할 수 있었다 해도 이제는 어떤 말도 남길 수 없는 생명이 떠올랐다. <자연의 빈 자리>라는 서정적인 제목과는 달리, 이 책에는 지난 500년 동안 인류가 싸그리 없애버린 생명 100여 종이 등장한다. 남아있는 기록을 뒤져 생명의 모습을 되살려낸 그림 작가는 모든 작업을 그 생명의 실제 크기에 맞춰 진행했다. 아쉽게도 책에는 그대로 담을 수 없었지만, 있는 그대로의 생명을 그려내는 과정은 사라진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었을까 싶다.

한 종 한 종이 다시는 지구에서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숫자로 새로운 사실을 확인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오늘날 지구에서 하루에 사라지는 생명의 종수는 이 책에 담긴 종수보다 많다. 이 '자연의 빈 자리'를 인간은 무엇으로 채우고 있고, 무엇으로 채우려 하는 걸까. 각각의 생명이 사라지는 과정을 읽어가면 갈수록 그 생명을 사라지게 만든 인간의 마음이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마 500년 후(에도 인류가 살아있다면) 누군가 오늘날 우리를 돌아봐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모두에게 주어진 자연의 자리는 다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절절하게 확인하는 책이다.

이 책의 한 문장

큰바다쇠오리들은 안전한 물 속으로 달아나려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바위 틈새에서 한 마리가 잡혔고, 다른 한 마리도 몇 미터 채 달아나지 못하고 바닷가에서 잡혔다. 둘 다 그 자리에서 곤봉에 맞아 죽었다. 남은 알은 선원의 장화에 으깨어졌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세계 박물관에 놓여 있는 80여 점의 박제들과 75개의 알뿐이다.

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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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역사는 모두의 역사다

마리아 바스타로스,나초 M. 세가라 지음 / 롤러코스터
이 책의 매력

525년, 고대 창녀이자 무희였던 테오도라는 비잔틴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와 결혼한 후, 강제 매춘을 금지하고 강간죄에 사형을 선고했다. 그녀의 최우선 과제는 불행한 여성을 돕는 것이었다고 한다.
1322년, 유대인 치료사이자 조산사인 자코바 펠리시는 무허가 의료 행위를 한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녀가 치료한 여성 환자들은, 부끄러워서 남자 의사에게는 차마 가지 못했기에 그녀가 아니었으면 치료를 받지 못했을 것이라 증언했다.
1599년, 베아트리체 첸치는 가족에게 온갖 잔혹한 학대를 일삼던 아버지를 망치로 내리친다. 많은 사람들이 정상참작을 요구했지만 그녀는 결국 사형을 당한다.

지적이고 용기있는 여성, 기존의 질서를 뚫고 서로를 구한 여성, 재능있는 여성, 그 재능으로 세상을 구한 여성, 만일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한 상태에서 성별만 남성이었다면 세상으로부터 훨씬 추앙받았을 여성. 선사시대부터 21세기 현재까지 역사를 이어 온 수많은 여성들의 얼굴이 강렬한 색채의 일러스트로 빼곡히 들어차있는 책이다. 이들이 여성의 역사를 구성한다.

그리고 기록되지 않은 여성들이 있다. 죽음으로서 현실을 알린 여성, 죽지 않고 살아남아 폭력이 반복되는 하루들을 꿋꿋이 살아낸 여성, 즐겁게 일상을 향유한 여성, 차별에 무감각한 여성, 분노하면서도 겁이 많아 조용히 뒤에서 응원하는 여성. 이들도 여성의 역사를 구성한다.

당연한 말을 당연하게 듣지 않는 사회에, 깜짝 놀랄만큼 충격적인 말을 전한다. 마음 단단히 먹고 들으시길. 여성의 역사는 여성이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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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

하워드 진,앤서니 아노브 지음 / 이후
이 책의 매력

가려진 역사, 지워진 역사, 잊힌 역사라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가 떠오른다. 역사가이자 운동가로서 하워드 진의 활동이라든지 <미국 민중사>라는 저작에 붙은 평가 때문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독서 경험 때문일 텐데,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지향으로서 동의하고 공감하긴 했으나 이를 바탕으로 서술한 총체적 기록을 처음 마주한 경험이 바로 <미국 민중사>이기 때문이다.

<미국 민중사>는 '목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당시에는 억지로 입막음을 당했을 그리고 기록으로 남겨지기 어려웠을 살아있는 목소리들로 구성된 이야기는, 미국 역사와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온 이들의 끊임없는 저항과 투쟁이 무엇을 바꾸고 이루었는지에 매진한다. 역사를 뒤집어보는 경험과 시선을 만나기에 맞춤한 책이고 이 책마저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작은 존재와 생명을 찾아보는 새로운 마음과 다짐을 전하기에 충분한 책이다.

그런데 막상 오늘 추천하는 책은 <미국 민중사>가 아닌 <미국 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이다. 앞선 책의 기초 자료라 할 이 책에는 가공되지 않은 목소리들 수천 개가 빼곡히 담겨 있다. 오늘의 목소리와 공명할 당대의 목소리,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목소리, 확성기를 들이대 더욱 키워야 할 목소리가 읽는 내내 가슴에 박힌다. 그렇게 울리는 목소리마다 내 곁, 오늘 이곳의 목소리를 겹쳐본다. 읽는 내내 소리 내지 않을 수 없는 목소리들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이런 저항의 목소리들을 누락하거나 과소평가 한다면 권력이 총이나, 돈, 또는 신문이나 텔레비전 방송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만 있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는 노동자든, 유색인이든, 여자든 권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 않은 사람들이 조직하고 저항함으로써 운동을 일으킨다면 어떤 정부도 억누를 수 없는 목소리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7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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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야기

케빈 홉스, 데이비드 웨스트 지음 / 한즈미디어
이 책의 매력

나무 관련 신간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일단 기분이 좋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사무실에서 나무 책을 펼치는 순간, 내 주변의 시간만 다르게 흐르기 시작한다. 지구의 곳곳에 각각 다른 특성을 가진 이 나무들이 오랜 세월 동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 나무들을 연구하며 기록하고 그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합쳐져서 내 일상과 분리된 비현실적인 세계를 만들어낸다. 책 한 번 펴는 것으로 잠깐 동안 가성비 좋게 비현실을 경험한다.

환상의 세계는 아름다울수록 좋은 법. 이 책을 더 기대했던 이유는 티보 에렘이 일러스트를 그렸기 때문이다. 그의 세밀한 펜촉 끝에서 탄생한 나무들이 모든 페이지에 살아있다. "무조건 소장!"을 외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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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나무

라르스 뮈팅 지음 / 열린책들
이 책의 매력

북유럽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장작을 팬다. 취미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지구의 생명이 아닌 각자의 생존과 나무를 연결하여 생각할 일이 드문 오늘날, 여전히 나무로 체온을 지키며 겨울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니, 반갑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가구나 종이가 아니라 가공되지 않은 나무를 그대로 사용하는 이들의 감각과 마음이.

어느 계절에 어떤 나무를 장작으로 패야 하는지 배우고, 쌓을 때는 공기의 순환과 보관의 효율을 고려하여 구조공학을 반영하고, 땔 때는 나무껍질의 방향까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 나무를 직접 마주하고 살아가는 이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나무를 아끼고 위하는 게 아닐까 싶다. 다음 겨울을 위해서라도 나무와 생명은 순환되어야 할 테니, 어쩌면 장작을 마련하고 때는 과정이야말로 정말 나무와 함께하는 삶일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생긴다. 물론 이 모든 상상과 무관하게 나무는 나무일 따름이겠지만 말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이것은 1년이라는 큰 순환의 일부입니다. 나무와 함께 있으면 제가 그 순환의 일부라는 느낌이 듭니다. 무겁고 축축한 통나무를 만지면 봄과 직접 접할 수 있습니다. 겨울에 좋은 것이 우리를 기다린다는 신호이자 힌트죠. 하지만 감상적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완벽한 장작을 태우더라도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으니까요. 삶처럼 덧없는 것과 이런 관계를 맺는 것이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닙니다.

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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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멀

김현기 지음 / 포르체
이 책의 매력

코끼리를 좋아한다. 코끼리는 초식 동물이지만 거대해서 맹수에게 공격받지 않는다. 착취당하지도 착취하지도 않는 동물, 생태계 피라미드에서 벗어나 있는 유일한 포유류다. 정의로운 동물이라 천적에게 공격받는 초식 동물들을 보면 구해주기도 한다. 이렇게 멋지다니! 좋아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서 내 왼팔엔 코끼리 타투가 있다.

그런데 코끼리에게 천적이 없다는 거, 인간이 없는 세상에서만 해당되는 말이다. 코끼리가 돈이 되는 순간부터 인간은 코끼리를 잔학하게 고문하고 죽여왔다. 아프리카의 코끼리는 상아를 노리는 인간들에게 산 채로 얼굴을 썰리고 아시아의 코끼리는 자연스럽게 인간을 태우고 묘기를 부리게 되기까지 온몸이 묶인 채 쇠꼬챙이로 찔리고 얻어맞는다. 인간은 어디까지 인간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휴머니멀'이 화제일 때, 사실 무서워서 보지 못했다. 영상으로 생생하게 보는 것이 너무 괴로울 것 같았다. 대신 책이 출간되자마자 챙겨 읽었다. 인간이 죽이고 학대하는 수많은 동물들의 이야기, 책을 덮을 때 입술에서 피 맛이 났다. 책을 보는 동안 잘근잘근 씹은 거다. 입술을 정리하며 책 속의 문장을 떠올린다. "코끼리를 보고 눈물은 누구나 흘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땀을 흘려줄 사람은 누구입니까?" 다큐 방영 이후 SNS에서 #동물학대금지 해시태그 릴레이가 번져간 것은 모두 나와 비슷한 생각의 흐름을 따라갔기 때문일 것이다. 눈물을 흘린 우리는 모두 땀 흘릴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절망도 인간으로부터, 구원도 인간으로부터. 각자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아주 흥미로운 사실은 이겁니다. 인간은 동물을 두려워하지만, 알고 보면 동물이 인간을 훨씬 두려워한다는 것 말이죠. 사자에게 그들만의 공간을 보장해준다면, 녀석들은 인간에게 절대 해를 끼치지 않을 거예요. 사람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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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 몸짓

칼 사피나 지음 / 돌베개
이 책의 매력

반려동물과 대화를 나누는 집사를 보면 정말로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 매번 뜻대로 소통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상대가 나에게 말을 건네고 나의 말에도 종종 귀를 기울인다는 믿음에는 의심이 없는 모습이다. 어떤 언어를 쓰든 서로 말을 나눈다는 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말을 하지 못해 긍휼히 여기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말을 쓰지만 생명과 생명, 존재와 존재로서 말을 나누는 자세 말이다.
이런 태도로 동물의 말, 즉 소리와 몸짓을 살펴보면, 비로소 동물의 감정이 느껴지고 생각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저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탄생을 축복하고 죽음을 애도하며 그 사이에 벌어지는 온갖 삶의 장면을 각자의 개성으로 마주하는 장면을 읽다보면, 처음에는 신기하고 놀라운 느낌이 들지만 갈수록 어떻게 이렇게까지 무지하고 무신경했을까 돌아보게 된다. 동물과 생명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요즘, 관심의 크기뿐 아니라 새로운 깊이를 더하는 데에 도움이 될 책이다.

추천의 글

진정한 이해와 사랑의 순간에는 말이 필요 없다. 언어가 없는 존재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대신 그들에게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인간인 우리는 그것을 다 알 리도, 알 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완전한 과학적 확신에 도달하기 전까지, 말 없는 이들에게도 마음과 감정과 사랑이 있다고 인정하기를 고집스럽게 거부해 왔다. 넘쳐나는 자료와 증거들은 단순 일화로 치부했고, 과학이 아닌 스토리텔링으로 비하해 왔다. 바로 이런 관점이야말로 가장 비과학적이고 반지성적인 태도라고 이 책은 말한다. 그리고 머리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마음으로 그들을 이해하는 길이 있다는 사실도 말해 준다.(김산하, 영장류학자)

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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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내일

야나 슈타인게써, 옌스 슈타인게써 지음 / 리리
이 책의 매력

기온이 2도 상승할 때 지구가 잃는 빙하의 양, 기온이 4도 상승할 때 잠기는 국가의 수... 충격적이긴 하지만 수치로 보는 미래가 마음에 바로 와닿진 않는다. 그 결과 당장 실천해야 할 대안을 찾기보단 "설마"하는 마음과 "제발"하는 믿음이 합쳐져 외면하게 되기 일쑤다. 이 책의 저자 야나와 옌스 부부는 앞으로도 이 지구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수치가 아닌 현실을 보여주기로 했다. 이 가족이 그린란드에서 시작해 여러 대륙을 거쳐 다시 독일의 집으로 돌아오는 장대한 모험의 목적은 하나였다. 기후 변화가 세계 곳곳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마주하는 것. 그들의 여정을 따르는 동안 세계의 아름다운 풍광과 사람들의 일상을 파괴적으로 바꾸어놓는 기후 변화의 현실이 동시에 머리를 어지럽힌다.

이 책의 한 문장

기후변화는 문화의 존재를 위협할까? “순록을 이끌고 다음 행선지를 어디로 정할지는 날씨에 달렸죠. 물론 최근 10년 동안 우리는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합니다. 특히 겨울이 어렵죠.” 이상할 정도로 더운 겨울이 지속되면서 눈에 이어 비가 내리다 보니 바닥은 곧바로 얼어붙어 얼음판이 되어버린다. ··· “순록이 먹을 만한 풀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봄과 여름은 너무 추워서 산에 자란 풀이 충분한 영양소를 키우지 못하고요.” 순록 암컷은 새끼에게 젖을 배불리 먹이지 못한다. 아주 고약한 일이다. … 너무 많은 눈에 많은 새끼들이 죽어나간다. “사미는 언제나 변화를 견뎌왔죠. 기후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빙하기와 오늘을 비교하면 기후는 전혀 다릅니다. 물론 옛날에도 고약한 날씨는 있었죠. 그러나 그때 사람과 동물은 다른 곳을 찾아 옮겨 다니면 되었죠. 그러나 오늘날엔 그럴 수 없습니다.”

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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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의 심리학

조지 마셜 지음 / 갈마바람
이 책의 매력

이제는 기후위기라 불리는 기후변화를 둘러싼 논의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숱한 연구와 분석을 거쳐 지구에 살아가는 인류 대다수는 지구에서 누리는 오늘의 삶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충분히 알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쉽게 바뀔 듯 보이지 않는다. 이미 기울어졌으니 살던 대로 살다가 끝내자는 의지는 아닐 터,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겠는데, 이 책은 바로 마음이 원인이라고 강조한다. 마음? 몸과 현실이 따라주지 않아서 그렇지, 마음으로야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항변한다면, 그래서 마음이 문제라고 답을 되돌려줄 수밖에 없겠다. 지금 절실한 건 설득이 아니라 참여이고, 행동을 바꾸는 데에 마음이 훨씬 강력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생각해보라.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면 내일 괴롭다는 걸 몰라서 내일로 미루는 게 아니지 않는가.(물론 내 이야기다.) 기후위기를 둘러싼 논쟁이 왜 매번 같은 자리를 맴돌다 멈추고 마는지, 코앞에 닥친 위기를 왜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지, 비로소 그 행동과 마음이 이해가 되니, 이해를 넘어 변화로 나아갈 새로운 출발점이 생겼다. 물론 출발 총성은 이미 울렸다.

이 책의 한 문장

요컨대 우리가 기후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기후변화가 유발하는 불안과 그것이 요구하는 근본적인 변화를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기후변화는 다른 중대한 위협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기후변화에는 우리의 뇌가 단기적 이익을 포기하도록 이끌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편향을 작동시켜 서로 적극적으로 공모하고 기후변화를 영구히 뒷전으로 미뤄둔다.

6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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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일인입니다

노라 크루크 지음 / 엘리
이 책의 매력

우선 이 책의 '미리보기'를 꼭 봐주시기 바란다. 한 장 한 장이 모두 다른 일러스트로 구성되어 있다. 책장 넘기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옛날옛적 유행했던 '러브장' 혹은 요즘 트렌드인 '다꾸'가 생각나기도 한다. 그러나 내용이 달달하진 않다. 이 책은 독일인으로서 살아가는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후 2세대, 경험하지 못한 과거 세대의 잘못을 원죄로 삼고 살아가는 삶은 뿌리없이 흔들리고 자주 위축된다. 저자는 과거로부터 밀려오는 죄의식을 눈 부릅뜨고 마주한다. 가족의 죄를 캐내며 부끄러움과 수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의 용기에 숙연해진다.

추천의 글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전후 2세대 독일인의 내면 풍경을 처음 엿볼 수 있었다. 전쟁 세대는 귄터 그라스, 크리스타 볼프, 우베 욘존 등을 통해서 그리고 전후 1세대는 페터 슈나이더, 페터 한트케 등을 통해서 나치즘의 과거가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청산’되었는지 살펴봐왔지만 전후 2세대까지 나치즘의 과거가 심리적 상처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작품을 통해서 처음 깨닫게 되었다. 이 그림 소설은 바로 이 세대의 내면을 놀라운 감정이입의 필치로 섬세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있다." - 김누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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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아이들

타냐 크라스냔스키 지음 / 갈라파고스
이 책의 매력

역사를 되돌리거나 뒤바꿀 수는 없겠지만, 인간이 최선으로 역사를 반성한다면, 어쩌면 회복에는 이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가능성의 확인은 당대의 역사를 후대가 어떻게 기억하고 이해하느냐에서 시작될 텐데, 나치 전범의 아이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는지를 돌아보면, 앞선 역사라 해도 이를 대면하는 일이 삶 전체를 걸어야만 하는 것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조금이나마 피해자를 위로할 방법을 찾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애쓰는 자녀들의 모습에서 인간의 가능성을, 그럼에도 자신의 안온한 삶을 지키려 사실을 외면하고 역사를 부정하고 혼자만의, 아니 아버지와 자신만의 세계로 빠지고 마는 모습에서 인간의 어려움을 마주한다. 나라면, 이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이 지난 역사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오늘 내가 마주한 현실의 도전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의 한 문장

니클라스는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자신이 찾아낼 수 있던 서류들을 아주 세밀하게 검토한 뒤 다음의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다. 탐욕과 광적인 출세주의 이외에는 아무것도. 그리고 그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행한 그 잔혹한 선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이 선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며 또한 진정한 반유대주의자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만일 히틀러가 프랑스인이나 중국인을 대상으로 같은 일을 하라고 요구했다면, 마찬가지로 그는 니체, 실러, 괴테, 코르네유를 인용하며 그들을 상대로 광기어린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6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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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 밤하늘을 기록하다

NASA,빌 나이,Nirmala Nataraj 지음 / 영진.com
이 책의 매력

각자의 밤하늘이 있을 것이다. 내 경우 '밤하늘'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교환학생 시절 노르웨이에서 본 은하수다. 산 속의 오두막집으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온 몸에 담요를 칭칭 감고 모닥불 앞에 앉아 마시멜로를 구워먹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수만 개의 별이 눈으로 쏟아졌다. 불 앞에서 볼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등은 시렸고 입에선 하얀 김이 나왔고 머리 위엔 은하수가 있었다. 이 책은 NASA에서 촬영한 밤하늘의 이미지들과 사진에 대한 간략한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적막하고 아름다운 이 사진들을 보는데 그 밤의 황홀했던 공기가 기억났다. 이 책을 읽는 다른 이들이 떠올리는 밤하늘의 기억은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이 책의 한 문장

"슬프게도, 밤하늘이 만든 경이로움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볼 수 없을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다. 우주에서조차 광공해는 지구를 덮고 있는 담요처럼 보인다. 몇십 년 안에, 우리 중 많은 사람이 맑은 밤에 즐길 수 있었던 광경을 더는 볼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 세기에 현저하게 줄어든 밤하늘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던 상황은 단순히 과거의 것이 되어 이 책에 담긴 이미지들이 더욱 가슴 아프면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게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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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방랑

황인준 지음 / 사이언스북스
이 책의 매력

오늘날 우주를 바라보고 향하는 시도는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을 전제하지 않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다수의 우주 역시 미항공우주국(NASA)의 역할이 크다. 과학기술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런 경향은 점차 가속화되었는데, 그럼에도 우주를 꿈꾸는 개인의 마음이 줄어든 건 아니기에, 개인 우주 여행 등 우주를 만나려는 각자의 시도 역시 꾸준하다.

이 책의 저자 황인준은 수십 년 동안 우주를 바라보며 살았고, 그 여정에 개인 천문대까지 더하며 여전히 우주로 향하는 사람이다. "내 인생 모두를 별빛과 맞바꾸었습니다."라는 그의 말은 차오른 감정이 아니라 담담한 사실에 가깝다. 그리고 그간 채집하고 기록한 우주를 전하며 넓고 깊은 우주로 우리를 초대한다. 나 혹은 당신 물론 우리 모두를 품기에 우주는 여전히 충분하니, 우리가 할 일은 빠져드는 것뿐이다. 훌쩍, 풍덩.

이 책의 한 문장

"지상에서는 인간이 만들어 내는 빛에 비해 별빛은 미약합니다. 아무리 어둡고 좋은 하늘에서 얻은 별빛과 은하수 사진이라고 해도 조그마한 전등 불빛 하나에 묻혀 버리고는 합니다."

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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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의 미로

이문영 지음 / 오월의봄
이 책의 매력

한겨레21에서 연재했던 '가난의 경로', 그 연재 이후 이문영 기자가 4년간 좇은 45명의 기록이다. '가난의 경로' 연재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읽는 동안 몸이 파르르 떨렸던 것도. 그 후 나는 두 개의 회사를 거쳤고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었고 좋아하는 음악의 스타일이 변했다. 그리고 이 책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기자가 좇던 45명 중 9명은 사망했다. 가난이 갇힌 미로 속에서 탈출할 유일한 방법은 죽음이라는 것을 <착취도시, 서울>에 이어 다시 진절머리나게 깨닫는다.

이 책의 한 문장

"벌레가 파먹은 듯한 지구의 후미진 땅에서 동자동이 도시의 뒷면을 구성했다. 인간이 살 수 있는 최소의 주거 공간에서 인간에게 던져진 가장 남루한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죽음과 동거했다. 그들은 한 건물에서 살았지만 남모르게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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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증발

레나 모제 글, 스테판 르멜 사진, 이주영 옮김 / 책세상
이 책의 매력

살다보면 예기치 않은 혹은 피할 수 없는 문제를 마주하기 마련이다. 이럴 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함께 찾아보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그 문제가 각자의 탓이 아니며 각자가 해결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공감하는 게 우선 아닐까 싶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실패와 책임을 묻는 가혹한 시선이 쏟아지고 다음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압도적이다. 그러니 각자는 사람답게 살지 못하거나 사람으로 살지 않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그 길을 택하는 사람들, 매년 10만 명이 넘는 '증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개인의 책임은 최대로 사회의 책임은 최소로, 그리하여 사회가 증발해버린 곳, 그곳에서는 사람도 증발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 남을 수 있겠는가.

이 책의 한 문장

찌는 듯 무더운 저녁, 젊어 보이는 남자 세 명이 술집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 남자는 희망을 위해 건배한다. 한 남자가 이들에게 다가와 일자리를 제안했다. 적어도 두 달 동안 숙식이 제공되는 일이다. 쓸고 닦고 쓰레기를 자루에 담는 작업이다. 쓰레기의 정체는 원전 폐기물, 핵먼지. 내일 이 세 명은 후쿠시마에서 원전 폐기물을 처리하는 일을 할 것이다. 어차피 가출한 사람들이라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누구도 찾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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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요괴 요감

고성배 지음 / 비에이블
이 책의 매력

귀신, 싫다. 살면서 절대 마주할 일 없길 바란다. 존재도, 특성도 궁금하지 않다. 좀비, 좀비물에서 흔히 나오는 극단적 상황 속의 인간 본성이나 인류애 같은 것은 흥미롭지만 개별적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딱히 알아야 할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한국 패치를 장착해 빠르게 달리는 좀비에게 쫓기는 상상을 해보면 나는 끝까지 극단적 공포를 느끼며 살아남기보단 빠르게 패배 선언을 하고 먹히는 편을 택할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뜯어 먹히는 것보단 좀비가 실재하지 않는 게 더 좋겠다.

그렇지만 요괴는 좀 다르다. 이 요괴 도감에 따르면 많은 수의 요괴들이 인간들에겐 해를 끼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그저 자신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요괴는 요괴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살면 되는 거다.(물론 인간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조차 생김새나 특성은 흰 소복 입고 머리 푼 천편일률적인 귀신보다 훨씬 창의적이다.) 이 많은 요괴들이 제각각의 개성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납작했던 세상이 조금 재미있게 느껴진다. 가장 마음 갔던 요괴는 가타와구루마. 사람이 쳐다보면 아이를 납치한다. 하지만 "죄는 나에게 있으니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는 숨기지 말아줘"라고 써놓으면 다음 날 아이를 다시 돌려준단다. 뭐랄까... 조금 하찮고 귀엽다.

이 책의 한 문장

"당신의 믿음으로 요괴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길 바란다. 우리가 요괴의 존재를 믿으면 그들은 생생하게 걷고 날던 미지의 생물로 남지만, 믿지 않으면 단순한 신화나 우스갯소리로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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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경

전발평,예태일 편저, 김영지, 서경호 옮김 / 안티쿠스
이 책의 매력

고전을 읽기 쉽지 않은 이유는 이해와 분석을 강요받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산해경>은 완전히 자유롭게 풀려난 고전이라 하겠다. <산경>은 그나마 가깝고 알려진 지역의 문물을 다루지만 더 먼 곳을 다루는 <해경>에 이르면 알지 못하는 세계를 알고 있는 방식으로 풀어내려 온갖 방법이 등장하는데, 읽다 보면 어디까지가 이해와 분석이 가능한 영역인지 기준이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재미가 시작된다.
가보지도 않은 곳을 태연한 태도로 진심을 담아, 게다가 구체적으로 펼쳐보이는 모습에서 세계 전체를 그려보고자 했던 호방함을, 그 와중에도 현실 세계와 어긋나지 않도록 연결 고리를 이어가는 모습에서는 치밀함을, 무엇보다 더 넓은 세계를 만나보고자 했던 호기심에서 시대를 뛰어넘은 인류의 공통 감각을 만날 수 있다. 답이 보이지 않을 때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보면, 지금 다다른 답이 안될 리가 없다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을 평하는 글

"장자가 이르기를 '사람이 아는 것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헤아릴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이것을 <산해경>에서 볼 수 있다. 사물은 스스로 괴상한 것이 아니라 나를 기다린 후에 괴상해진다. 괴상한 것은 과연 자신에게 있는 것이요, 사물이 괴상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북방의 오랑캐는 옷 짓는 배를 보고 삼씨인가 의심하고 월나라 사람들은 담요를 보고 솜털이라고 놀란다. 대개 익히 보아온 것을 믿고 드물게 듣는 것은 기이하게 여기기 때문이다.(곽박, 郭璞)"

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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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들려주는 인종차별 이야기

타르 벤 젤룬 지음 / 롤러코스터
이 책이 새로운 이유

어떤 현상에 대해 공통의 토대를 가지지 않은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어렵다. 논리를 내면화한 이후부터는 그것을 당위로 말하게 되고, 처음에 스스로 설득된 논리를 잊기 때문이다. 인종주의에 대해 차근차근 짚으며 설명해주는 책이다. 입이 트일 기회다.

이 책의 한 문장

"이 인간은 아무도 없는 섬에서조차 혐오하고 경멸하고 모욕할 사람을 기어코 찾아내고 말 거야. 자신이 존재하기 위해, 살아 있다고 느끼기 위해 혐오하는 것이지. 사랑할 수도 있으련만, 사랑은 쉬운 일이 아니야. 사랑받을 만해야 해. 사랑을 유혹해야 하고, 미소 뒤에 숨은 어둠과 그늘로부터 사랑을 되찾아야 해."

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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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욤비

욤비 토나, 박진숙 지음 / 이후
이 책이 여전한 이유

난민이 직접 전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집단이 아닌 구체적 개인으로 전달되는 목소리는 더더욱.

이 책의 한 문장

"구사일생으로 도착한 한국에서 내가 가장 먼저 맞닥뜨린 것은 외면과 의심, 그리고 거부였다. 그것이 믿음과 격려, 그리고 기회로 바뀌기까지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불법 체류자로, 외국인 노동자로, 때로는 그냥 '새끼야'로 불리면서 고군분투한 그 시간을 버틴 뒤에야 비로소 나는 콩고에서 온 대한민국 난민이 됐다."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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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도서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뉴욕공공도서관 지음 / 정은문고
이 책이 새로운 이유

구글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궁금한 것이 생기면 어떻게 해결했을까? 뉴요커들은 도서관을 찾았다. 뉴욕도서관의 사서들이 받은 재미있고 요상한 질문들과 이에 대한 현명하고 재치있는 답변들을 모은 사랑스런 책이다.

이 책의 한 문장

"맨발로 일할 수 있는 직업이 있을까요?
몇 가지만 읊어보겠습니다. 와인농장의 포도 밟기, 숯불 걷기, 인명구조대... 손 모델도 굳이 신발을 신을 일은 없겠네요."

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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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자를 왕처럼 모시진 않겠습니다

박영숙 지음 / 알마
이 책이 여전한 이유

시장에서의 거래뿐 아니라 시민과 공동체의 관계까지도 서비스로 여겨지는 요즘, 공공의 장을 숙고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가 바로 도서관 아닐까.

이 책의 한 문장

"왕처럼 모시지 않겠다는 것은 결국 자발성에 대한 바람과 ‘가르치려고 들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힌 선언이다. 책을 ‘읽는’ 것은 지극히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행위가 아닌가. 훌륭한 시설과 장서를 갖추고 있다 해도, 책을 만나고 그 만남의 진동이 삶 속에 스며들도록 ‘만들’ 수는 없다. 도서관은 말을 걸 뿐, 상대방의 머리와 가슴에 가닿는 것은 그들 자신의 몫이다."

4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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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장 이야기

조정진 지음 / 후마니타스
이 책이 새로운 이유

38년간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다 60세에 은퇴한 저자는, 생계를 위해 4년째 시급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의 이야기다.

이 책의 한 문장

"나이 들면 온화한 눈빛으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백발이 되어서도 핏발 선 눈으로 거친 생계를 이어 가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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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기획 / 후마니타스
이 책이 여전한 이유

20대부터 70대까지, 59명, 30여 종의 일들. 비정규직에 얽히지 않은 연령과 직종은 없다.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이며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다.

이 책의 한 문장

"예전에 새벽에 순찰하다가 낯선 사람을 만났어요. 도둑놈 같은데 물어볼 수는 없어서 "당신 어디 갔다 오느냐" 이랬더니 "당신이 뭔데 나한테 그러느냐"라면서 "여기서 일하고 싶으면 입 딱 다물고 있어"라고 말하더라고요. 도둑놈이었어요."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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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을 권리

황두영 지음 / 시사IN북
이 책의 매력

1인 가구가 는다. 제도 밖의 사람들이 는다.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이 는다. 보호받으려면 기존의 제도를 따르라는 강요는 폭력이다. 원하는 방식의 삶과 법의 보호, 둘 다를 꿈꾸는 것이 당연한 사회를 바란다. 생활동반자법이 무엇을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는지 여러모로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생활동반자법 논의의 핵심은 '고독'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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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통치

조은주 지음 / 창비
이 책의 매력

가족 제도의 기원을 추적하고 따져묻는 시도는 꾸준하다. 이 책은 한국에서 가족과 임신/출산이 제도와 정치의 장에서 어떻게 다뤄졌는지를 파헤치며, 새로운 가족 그리고 가족 너머의 개인과 공동체를 상상할 기반을 전한다는 점에서 관련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기에 맞춤하다.

이 책의 한 문장

"가족은 이 시대 최대의 격전지이자 각축장이 되었다."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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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왕 야누시 코르차크

베티 진 리프턴 지음 / 양철북
이 책의 매력

타협 없는 신념으로 인간의 존엄을 지켜낸 이의 삶이 세밀하게 복원되었다. 야누시 코르차크에 깊이 몰입하여 그의 눈으로 세상을 본 저자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선생님은 평생 도덕적 결정을 하며 산 분이에요. 소아과 의사가 되기로 한 결정도 그렇고. 의사와 작가 일을 접고 가난한 고아를 보살피기로 한 결정도 그렇고. 유대인 고아들과 함께 게토에 들어가기로 한 결정도 그렇고. 트레블링카에 아이들과 같이 가기로 한 그 마지막 결정은, 그분이 원래 그럴 사람이었어요. 그분 자체가 그런 사람이었어요."

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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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조은주 지음 / 창비
이 책의 매력

역사가 어린이를 마주했을 때 곤란한 점은 당사자의 목소리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 한계를 바탕으로 세계사 속에서 어린이의 지위 변화를 추적하며, 동료 시민으로서 어린이를 대하는 태도를 요청한다. 여전히 그리고 확실히 가야만 하는 길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어린이에 대한 생각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놀랍도록 다를 수 있다. 어떤 사회에서는 어린아이가 일하는 것을 정상이라 생각한다. 그 일이 상당히 고된 경우에도 그렇다. 또 어떤 사회에서는 어린이가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회에서는 어린이가 불행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생각이 무척 낯설 수도 있다."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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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숨지 않는다

박희정, 유해정, 이호연 지음 / 한겨레출판
이 책의 매력

세상이 없애버리려던 삶을 기어코 드러내어 전시하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어떤 의지를 준다. 구술기록 방식으로 서술된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이들이 내 옆에서 가만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이 책의 한 문장

"사람에겐 고난이 예기치 않게 찾아오잖아? 그걸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한 거야. 그걸 극복 못 하는 사람도 있고, 극복해서 조금 나아지는 사람도 있고, 아예 다른 삶을 사는 사람도 있는데, 모두 다르니까 고비를 나랑 똑같이 넘기지는 않을 거야. 종종 나는 그 고난을 어떻게 넘겼을까 생각해보곤 하는데, ‘아 저렇게 넘긴 사람도 있구나’ 생각해보게 하는 그런 삶이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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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공 1970, 그녀들의 反역사

김원 지음 / 이매진
이 책의 매력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는데 막상 다가서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그 앞에서 어떤 태도와 방법으로 방향을 찾아야 할지. 해답이 아닌 실천을 전하는 책.

이 책의 한 문장

"이제 나는 한때의 도시빈민이 25년이 지난 뒤 빈곤의 회로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질문에 확답할 수 없는가에 대해서 글쓰기를 시작한다."

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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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김영옥, 메이, 이지은, 전희경 지음 / 봄날의책
이 책의 매력

우연한 행운으로 나는 아직 건강하고, 젊다.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질병과 언젠가 필연적으로 올 늙음을 생각할 때 가장 무서운 것은 사회가 만든 '정상적인 몸'의 기준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몸의 '정상성'에 집착하는 사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이같은 책들이 더 널리 읽히길 바란다.

이 책의 한 문장

"인간의 몸은 무수히 다르고, 유동적이며, 예측 불가능하다. 또한 사고, 재난, 재해 앞에서 더없이 취약하다. 사람이 인생의 어떤 순간에 아프게 되는 것은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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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 더 아픈 차별

김민아 지음 / 뜨인돌
이 책의 매력

"아프면 내/네 탓"에서 벗어나 '병'만이 아닌 '병과 사람'을 함께 구할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 지금, 시급하게 확인해야 할 커다란 방향과 틀이 담긴 책.

이 책의 한 문장

"국민이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을 향유하게 하는 주체는 당연히 국가입니다. 국가는 국민의 건강을 보호할 책무가 있습니다. 책무는 상시적인 임무로서 일시적인 관용이나 자선 행위일 수 없습니다."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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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와 함께

로빈 월 키머러 지음 / 눌와
이 책의 매력

인문ON에서 로빈 월 키머러의 저작인 <향모를 땋으며>를 소개한 바 있다. 같은 저자의 책을 또다시 소개하는 것을 피하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이 원주민 출신 여성 식물학자의 시각은 놀랍고 특별하다. 그의 눈으로 본 아름다운 대지와 식물들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싶다.

이 책의 한 문장

"의도적으로 두가지 앎의 방식을 모두 들려주는 이 책의 글에서 물질과 영혼은 다정하게 함께 걸을 것이다. 때로 춤도 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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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안단테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 지음 / 돌베개
이 책의 매력

작은 것에서 조심스럽고도 우렁찬 움직임을, 천천히 움직이는 것에서 섬세하고도 확실한 움직임을 찾아내는 이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이 책의 한 문장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문제들과 비교할 떄 아주 작고 심지어 하찮은 존재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우리 인간들보다 훨씬 더 잘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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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들

김동수 지음 / 삶창
이 책의 매력

한번 휘몰아치고 지나간 이슈는 해결되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문제는 여전하고 그곳엔 아직도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의 한 문장

"민주노조 파괴는 현재진행형이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잊지 않기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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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

김순천, 권성현, 진재연 엮음 / 후마니타스
이 책의 매력

노동자는 파업을 거치며 어떻게 변해갈까. 스스로 돌아보며 한 걸음 다시 내딛는 생생한 목소리.

이 책의 한 문장

"승리하기 위해 파업 투쟁한 게 아니라, 파업 투쟁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승리한 거예요."

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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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천자오루 지음 / 사계절
이 책의 매력

구체적인 현실의 차원에서 장애인의 기본권을 말하는 책이다. 추상적인 담론과 현실적인 언어는 각기 다른 영역에서 각자의 일을 하는데 이 책은 후자가 가질 수 있는 힘을 충실하게 발휘한다.

이 책의 한 문장

"저는 자라는 내내 내가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한테 구애하고 싶은지를 분명하게 알았어요. 나한테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그런 게 없어지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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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왜 아픈가

에바 일루즈 지음 / 돌베개
이 책의 매력

굳이 사랑을 사회학으로 분석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그렇게라도 알고 싶다고 답할 수밖에요.

이 책의 한 문장

"사랑을 잘한다는 건 자기이해에 맞게 사랑한다는 걸 뜻했다. 사랑의 감정을 체험하는 것은 이제 오로지 자아의 실용적 프로젝트에만 매달렸다."

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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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악마

줄리아 쇼 지음 / 현암사
이 책의 매력

누구의 마음에나 악은 있다. 다만 우리는 악해지지 않기를 선택할 수 있다. 잘 선택하기 위해서는 우선 악이 어떤 놈인지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우리 사회는 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얘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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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스티브 테일러 지음 / 다른세상
이 책의 매력

인류의 희망을 찾기 위해 다소 멀리 가는 책이라 중간중간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벌어진 오늘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가봄직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한 문장

"이 책은 우리가 잃어버린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으려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도 이야기한다."

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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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모를 땋으며

로빈 월 키머러 지음 / 에이도스
이 책의 매력

원주민이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인 평행우주를 상상해본다. 그 곳에선 사람들이 식물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고 분석에 앞서 아름다움을 느낄 것이며 사람과 만물의 관계가 풍성할 것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서구적 사유에서는 사유지를 '권리'로 이해하지만 선물 경제에서는 재산에 '책임'이 결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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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 그린비
이 책의 매력

자신까지도 상품으로 여겨 모든 것을 사고팔아야만 하는 지금, 가치가 실현되는 공간과 시간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이 책의 한 문장

"만일 우리가 가능한 최대한의 물질적 부와 쾌락, 권력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아니라면,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들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인가?"

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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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사이드

로빈 월 키머러 지음 / 에이도스
이 책의 매력

우리가 모르는 새 우리를 죽이는 것과 그에 대항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건 우리도 모르는 새 우리가 빚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의 한 문장

>"지구의 안전과 생존을 위한 조건을 지키는 것은 모두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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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2월 12일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이 책의 매력

거대한 폭력은 거대하게 이야기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폭력도 그렇다. 이 책은 폭력을 이야기하는 최소한의 출발점을 전한다.

이 책의 한 문장

>"그 날 퐁니·퐁넛 사람들의 하루를 이해한다면 세상을 모두 알 수 있을까?"

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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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진지하게

로즈 조지 지음 / 카라칼
이 책의 매력

이 책을 읽은 우리는 이제 '똥'이라는 단어에서 구린내, 변비, 급똥의 당황스러움 같은 것 이외에 세계의 화장실과 수도관, 그리고 똥을 나르는 여자들 또한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신체 기능과 그 기능을 다루는 방식은 모든 곳에 흔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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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살리기 땅 살리기

조셉 젠킨스 지음 / 녹색평론사
이 책의 매력

숱한 문명 붕괴 시나리오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한 가지가 바로 이것이다. 문명의 존속이 이것에 달렸다는 말이다. 이제라도 해답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책의 한 문장

"자연계에는 폐기물이란 없다. 그것은 다만 사람들의 이해 부족으로 만들어낸 잘못된 개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