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4일 : 70호
여름은 빗소리처럼
'눈이 좋지 않은 아버지에게 책을 선물할 수 있는 방법'으로 듣는 소설을 기획했다는 박정민 배우, 출판사 대표의 이야기가 이 책의 출간과 함께 소개되었습니다. 소리가 먼저, 문자가 나중인 이 소설의 기획 방향을 생각하며 눈과 소리에 관한 얘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늦봄에 다래끼가 나서 눈이 부어있었습니다. 책을 읽자니 영 껄끄럽기도 했고, 치료법으로 온열안대를 착용을 권유받아 안대로 눈을 덮고 15분간 유튜브 채널을 열어두고 소리를 들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은 역사, 괴담, 괴인 등에 대한 정보 채널입니다.) 생각보다 15분이 꽤 긴 시간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자꾸만 눈을 쓰고 싶었습니다. 사람은 눈을 감고서야 눈 감은 사람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구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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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좋지 않은 아버지에게 책을 선물할 수 있는 방법'으로 듣는 소설을 기획했다는 박정민 배우, 출판사 대표의 이야기가 이 책의 출간과 함께 소개되었습니다. 소리가 먼저, 문자가 나중인 이 소설의 기획 방향을 생각하며 눈과 소리에 관한 얘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늦봄에 다래끼가 나서 눈이 부어있었습니다. 책을 읽자니 영 껄끄럽기도 했고, 치료법으로 온열안대를 착용을 권유받아 안대로 눈을 덮고 15분간 유튜브 채널을 열어두고 소리를 들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은 역사, 괴담, 괴인 등에 대한 정보 채널입니다.) 생각보다 15분이 꽤 긴 시간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자꾸만 눈을 쓰고 싶었습니다. 사람은 눈을 감고서야 눈 감은 사람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구나 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손열매는 망가진 채 완주를 찾습니다. 성우로서 사용하던 목소리도 예전같지 않고, 돈을 떼어먹은 수미에게 신뢰를 빼앗겨 인간적인 마음도 무너져내렸습니다. 이렇게 무너진 마음이 되면 다른 사람의 무너진 마음이 내는 소리가 비로소 들린다는 건 참 신비로운 일입니다. 화려한 야경도 도시의 소음도 없는 밤, 열매는 비로소 '버섯이 피는 소리'를, '연못의 물결 소리'를 감각합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라는 책과도 겹쳐 읽고 싶은, 더 많은 이야기를 고대하게 되는 소설입니다.
저도 첫 여름 소리를 듣기 위해 길게 휴가를 떠납니다. 다음 소식은 6월 11일에 전하겠습니다. 귀 기울이는 초여름을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알라딘 한국소설/시/희곡 MD 김효선
- 접기
155쪽 :
부후된 통나무 껍질을 쪼개며 버섯이 피는 소리.
이불이 펼쳐지듯 밤안개가 너르게 이동하는 소리.
그러다 어저귀와 열매 위로 내려앉는 소리.
그렇게 밤이 존재하는 소리.
Q :
독일어로 ‘불안한, 걱정스러운, 무서운’을 뜻하는 ‘ANGST(앙스트)’ 시리즈의 첫 권으로 《호수와 암실》이 소개됩니다. 처음 이 시리즈의 기획에 대한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마음과 기대로 응하셨을지 궁금합니다.
A :
‘앙스트’라는 단어를 처음 듣고 전해주신 기획의 의미를 숙고했습니다. 공포의 개념이 문학에서 여전히 한정적이라는 생각을 해왔고, 여러 여성 작가들이 시도했던 여성의 공포와 불안은 보다 더 적극적으로 탐구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한 낯선 개념인 만큼 작품을 통해 폭넓게 해석될 수 있으리란 기대도 들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내 작품이 독자에게 어떤 불편함을 불러일으켰다면 바로 여전히 여성이 말하는 방식의 앙스트가 낯설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는 오랜 호러와 괴담 마니아입니다. 잠들기 전 괴담 하나씩 읽고 자는 게 취미입니다. 예전에 귀신이 많이 나온다고 정평 난 동네에 갔는데 친구들은 죄다 무섭다, 귀신이 보인다, 목덜미 붙잡힌다고 하는데 저는 으스스한 느낌조차 들지 않아서 내가 제법 기가 센 모양이다, 생각하기도 했어요. 이런 개인적인 성향과 체험이 앙스트에 강하게 사로잡힌 계기가 되었던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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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독일어로 ‘불안한, 걱정스러운, 무서운’을 뜻하는 ‘ANGST(앙스트)’ 시리즈의 첫 권으로 《호수와 암실》이 소개됩니다. 처음 이 시리즈의 기획에 대한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마음과 기대로 응하셨을지 궁금합니다.
A :
‘앙스트’라는 단어를 처음 듣고 전해주신 기획의 의미를 숙고했습니다. 공포의 개념이 문학에서 여전히 한정적이라는 생각을 해왔고, 여러 여성 작가들이 시도했던 여성의 공포와 불안은 보다 더 적극적으로 탐구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한 낯선 개념인 만큼 작품을 통해 폭넓게 해석될 수 있으리란 기대도 들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내 작품이 독자에게 어떤 불편함을 불러일으켰다면 바로 여전히 여성이 말하는 방식의 앙스트가 낯설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는 오랜 호러와 괴담 마니아입니다. 잠들기 전 괴담 하나씩 읽고 자는 게 취미입니다. 예전에 귀신이 많이 나온다고 정평 난 동네에 갔는데 친구들은 죄다 무섭다, 귀신이 보인다, 목덜미 붙잡힌다고 하는데 저는 으스스한 느낌조차 들지 않아서 내가 제법 기가 센 모양이다, 생각하기도 했어요. 이런 개인적인 성향과 체험이 앙스트에 강하게 사로잡힌 계기가 되었던 것도 같습니다.
Q :
암실이라는 갇힌 공간, 호수라는 열린 공간이 대비적으로 등장합니다. 집 등 박민정 작가의 소설에서 공간은 특히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언젠가 작품으로 소개하고 싶은 박민정의 소설적 ‘공간’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A :
저는 유독 머무른 장소에 대한 애착이 강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예전에 살던 동네, 여행했던 곳을 떠올리곤 해요. 시간이 나면 가장 오랫동안(태어나서 20년 동안) 살았던 동네에 찾아가 종일 걷기도 합니다. 그래서 도통 잊지 못하고 소설에 꼭 그려내는 것 같아요.
이번 소설에서도 운동장, 호수, 대학, 암실, 인상적이었던 회전교차로까지 많은 장소를 적어봤습니다. 이젠 예전처럼 이사를 자주 다니지도 않고 외출도 잘 하지 않지만 여전히 그려내고 싶은 공간이 많습니다. 꼭 한 번 쓰고 싶은 공간이 있다면 이방인으로 존재하는 타국의 장소입니다. 여행자로 그려본 적은 있지만 ‘살아내는 공간’으로서의 외국은 써본 적이 없어서요. 경험을 더해 써보고 싶습니다.
Q :
이 소설의 화자 서연화는 ‘신뢰할 수 없는 화자’입니다. 세상의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이와 같은 인물, 마냥 신뢰할 수만은 없는 피해자를 두고 그의 ‘믿음이 가지 않는 지점’을 핀셋으로 집어내는 갈등의 양상도 자주 보입니다. 이 인물에게 한마디를 전한다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요.
A :
모순 덩어리인 서연화지만 지나온 길도 처참하고 나아갈 길도 보이지 않는 이 인물이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서 암중모색하려고 애쓰는 것, 자기모순의 심연까지도 인정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한다는 것에 감사를 보내고 싶어요. 그건 작가인 제가 인물을 만들면서 거듭나고 싶었던 부분인 것 같기도 합니다. 내가 다 옳지 않다, 어쩌면 내가 가장 틀려먹었을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 도리어 자유로워지는 모습을 선사하고 싶었어요. 그런 자유, 그런 해방을 이토록 밉상인 인물이 보여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았습니다.
- 접기
소설집 <혼모노>의 압도적인 기세에 홀려 성해나 작가의 작품목륵을 전작주의로 '뽀개기' 하는 선생님들이 여럿 계신 듯합니다. (서점 담당자는 주문이 늘어나는 것으로 작품의 흥행을 알아차립니다.) 저도 최근 작품집 전체를 다 읽지는 않았다는 걸 깨닫고 <빛을 걷으면 빛>(2022)을 새로이 완독했습니다. 작가가 작품을 발표한 순서를 거슬러 올라가 읽으며, 최근 작과 이전 작을 연결해 읽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혼모노>에서 제가 특히 재미있게 읽은 작품은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인데요, 이 작품의 팩션스러운 요소, 속물성과 윤리를 묻는 첨예한 지점에 관심있는 선생님들은 성해나 첫 소설집의 수록작 <소돔의 친밀한 혈육들>을 겹쳐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동시대적인 질문을 이어나가는 작가의 행보를 따라 걷고자 하는 독자라면 틀림없이 만족스러운 독서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은 뭐든 두 번씩 말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같이 가요 가요. 정말 좋아요 좋아요. 그래도 그래도 할래요. 왠지 두 번 연이어 말하면 진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 『내 마음을 쏟지요 쏟지요』 작업에 몰두해 있는 탓이겠지요. 제목에 서술어를 반복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건 시인 박소란과 핀드의 두 마음이기도 할 거예요. 그만큼 진심이고, 그만큼 간절합니다.
김명순의 에세이집 『사랑은 무한대이외다』를 묶으면서 이미 김명순 소설집 준비는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 권만으로 끝내기엔 김명순이라는 작가의 내면이 너무 넓고 깊었습니다. 시, 소설, 에세이, 희곡의 세계가 서로를 넘나들며 확장되고 확고해지는 것을 보면서 김명순의 매력에 단단히 빠져들고 만 것입니다. 이 작업을 이어갈 사람은 단연 박소란 시인뿐이었습니다. 김명순의 문장을, 그 문장을 쓴 ‘명순 언니’의 마음을 박소란 시인만큼 세심하게 들여다본 사람도 없을 거예요. 왜 이 단어를 선택했는지, 이 자리에 구두점은 왜 넣었는지, 백 년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 김명순의 손끝이 되어 문장을 짚어나갔습니다. 그렇게 고심해 고르고 다듬은 14편의 작품이 『내 마음을 쏟지요 쏟지요』에 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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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뭐든 두 번씩 말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같이 가요 가요. 정말 좋아요 좋아요. 그래도 그래도 할래요. 왠지 두 번 연이어 말하면 진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 『내 마음을 쏟지요 쏟지요』 작업에 몰두해 있는 탓이겠지요. 제목에 서술어를 반복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건 시인 박소란과 핀드의 두 마음이기도 할 거예요. 그만큼 진심이고, 그만큼 간절합니다.
김명순의 에세이집 『사랑은 무한대이외다』를 묶으면서 이미 김명순 소설집 준비는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 권만으로 끝내기엔 김명순이라는 작가의 내면이 너무 넓고 깊었습니다. 시, 소설, 에세이, 희곡의 세계가 서로를 넘나들며 확장되고 확고해지는 것을 보면서 김명순의 매력에 단단히 빠져들고 만 것입니다. 이 작업을 이어갈 사람은 단연 박소란 시인뿐이었습니다. 김명순의 문장을, 그 문장을 쓴 ‘명순 언니’의 마음을 박소란 시인만큼 세심하게 들여다본 사람도 없을 거예요. 왜 이 단어를 선택했는지, 이 자리에 구두점은 왜 넣었는지, 백 년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 김명순의 손끝이 되어 문장을 짚어나갔습니다. 그렇게 고심해 고르고 다듬은 14편의 작품이 『내 마음을 쏟지요 쏟지요』에 담겼습니다.
이 제목은 수록된 소설 「돌아다볼 때」의 한 구절에서 따왔습니다. 소설 안에 시 두 편이 등장하는데, 그중 「만일에」라는 짧은 시가 잊히질 않았습니다. “만일에 봄이 나를 녹이면/돌 틈에서 파초 열매를 맺지요 맺지요/만일에 만일에.//만일에 좋은 때를 얻으면/바위를 열어 내 마음을 쏟지요 쏟지요/만일에 만일에.” 수많은 최초의 타이틀을 쥐고 있었음에도 여자라는 이유로, 자유를 꿈꿨다는 이유로 뜻을 펼치지 못한 명순 언니에게 “좋은 때”를 보여주고 싶어졌습니다. 그 시간이 백 년이나 걸릴 줄을 언니는 알았을까요. 올해는 김명순이 ‘한국 여성 작가 최초의 작품집’ 『생명의 과실』을 출간한 지 꼬박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더 마음을 쏟고 있어요. 101년은 아무래도 너무 늦는 것 같아서요.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아요.
김명순이 펼치고자 했던 무한대한 사랑을 함께 꿈꿉니다. 그 심오한 마음을 이어가고 싶어요. 백 년이 지나도 공명하는 마음은 흐른다는 걸 명순 언니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불확실하고 불가능해 보이지만 희망할 수는 있잖아요. 그래서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만일에 만일에” 그럴 수 있기를, 진심이 닿기를 바라요 바라요.
- 핀드 대표 김선영
- 접기
제목의 구조가 비슷한 두 시집을 나란히 놓아봤습니다. 202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활동을 시작한 여한솔의 첫 시집, 202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보나의 첫 시집입니다. 활달하게 삐져나가는 제목이 첫 시집의 감각과 잘 어우러지는 듯합니다.
나는 보여주고 싶다
독서기록장에는 쓰지 못한 문장 혹은
어린 토끼에게 건초를 부어 주며 쏟아낸 마음
<나의 모험 만화> 부분
어떤 정원이나 인터넷을 길을 잃기 쉽지만
배롱나무 이파리처럼 내려앉는 사랑이란 단어는
셀 수 있어요
거기에 누군가 있습니다
나는 그냥 믿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인터넷 친구> 부분
얼마 전 소라 네오 감독의 영화 <해피엔드>를 보았는데요, 지진이 임박한 도시에서 우정이 흔들리는 중인 두 친구는 전자음악 친구입니다. 같은 것을 함께 좋아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말랑해지는지를 떠올려봅니다. 만화 친구 겸 인터넷 친구인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작품들을 함께 놓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