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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세계 파워 The Power 진리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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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정이 다시 쓰는 세계의 색"
다시, 쓰는, 세계
손희정 지음 /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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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행했던 게임이 있다. 앞뒤로 색이 다른 원판을 바닥에 깔아놓고, 플레이어 두 명이 대결하여 모든 원판을 자신의 색으로 먼저 뒤집으면 이기는 경기다. 룰은 간단한데 승부는 좀체 나지 않았다. 한 명이 아무리 뒤집어도 다른 한 명이 다시 원상태로 뒤집기에 결국은 원점인 상태. 무언가 답답하고 지리멸렬한 게임이었다.

현 세계와 페미니즘이 이 원판 뒤집기를 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기존의 색을 뒤집어 다른 색의 세계로 바꾸어 놓는 것이 페미니즘의 언어니까. 손희정은 그 언어를 이끌어가는 이들 중 하나다. 주요 플레이어로서 손희정은 이 세계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다시' 써왔다. 지배자의 언어로 된 세계를 '다시', 어느새 원점으로 돌아간 세계에서 '다시',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세계에 대고 '다시', 이 책은 그 '다시'들을 모은 기록이다.

그가 지치지 않고 '다시' 쓴 말들에 기대어 수많은 이들이 버틴다. 끈질기게 반복하며 늘 새로운 방식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덕분에 수많은 이들이 조금씩 나아간다. 서문에 그가 썼듯 진부한 이야기는 잘 팔린다. 돈이 된다. 그러나 진부하지 않은 이야기는 구원이 된다. 그가 쓴 글이 뒤집어 만드는 세계는 누구도 억압하지 않는 색깔이다. - 사회과학 MD 김경영
첫문장
지난 12월 말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은 '위험한 초대 남-소라넷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편을 방송했다.

책 속에서
익숙한 이야기의 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내 그 이면에 놓여 있는 욕망을 분석하고, 그렇게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다른 상상력은 가능하다고 말하고자 했다. '다시, 쓴다'는 건 지치지 않고 반복해서 쓴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새롭게 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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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해 있던 자신의 '힘'을 발견한 여성들"
파워 The Power
나오미 앨더만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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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가 아닌 '가모장제'가 수천 년간 뿌리내린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파워>는 '문단 권력' 나오미에게 남성 작가 닐이 집필을 끝낸 원고를 읽어봐 달라고 부탁하는 편지로 시작한다. 그의 소설은 각종 역사적 사료를 통해 현재 여성이 갖는 절대 권력이 존재하지 않았던 먼 과거를 그리며 '현 사회의 젠더 고정관념'을 뒤집는 내용이다. 이에 나오미는 "유니폼을 입은 남자들이 얼마나 여성의 욕망을 자극하는지 모른다"라며 '어쨌든 남자가 지배하는 세상은 섹시할 것'이라는 농담만 늘어놓는다.

그리고 우리는 소설 속 닐의 소설을 함께 읽게 된다. 수천 년 전 '여성 중심 사회'의 시발점이 된 ‘소녀들의 날’, 잔혹한 폭력에 시달리던 몇몇 소녀들은 갑자기 자신의 몸에서 고압 전류가 뿜어져 나와 상대를 공격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 신기한 현상은 소셜 미디어로 빠르게 전파되고, 곧 모든 여성들은 잠재되어 있던 자신의 강력한 힘을 깨닫게 된다. 순식간에 여성들은 남성을 제압해 권력을 갖고, 대상만 역전되어 똑같이 가해지는 혐오와 폭력에 남성들은 만성적인 공포와 불안에 시달린다.

강한 힘을 가진 여성이 지배하는 사회는 아름다울까. <파워>는 현실을 미러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힘의 불균형'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주체와 객체만 뒤바뀐 채 여전히 존재하는 폭력과 차별은 아무것도 바뀌는 것이 없음을 보여주며, 궁극적으로 평등하지 않은 힘의 존재가 왜 위험한지를 생각해보자고 촉구한다. <시녀 이야기>의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가 "전율할 수밖에 없다. 충격적이다. 이제까지 당연해 보이던 것이 더 이상 당연하게 보이지 않으리라!"라는 말과 함께 추천했다. - 소설 MD 권벼리
첫문장
남자들은 록시를 찬장에 가둔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책 속에서
“나는 여자들을 구하고 싶어.”
“전부 다?”
“그래, 할 수 있다면. 여자들에게 다가가 이제 새로운 삶의 방식이 있다고 말해 주고 싶어. 남자들은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살게 두고, 여자들이 다 함께 힘을 모아서 기존 질서를 지킬 필요 없이 새로운 길을 만들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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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워내고 사랑하는 평범한 우리들의 용기"
타워
배명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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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의 시대가 드디어 왔다고 선언할 수도 있을 것 같은 2020년, 과학 소설계 안에서 근면하게 작품을 생산하며 ''연결'과 '확장'의 핵심적인 역할'(정세랑)을 담당한 배명훈의 첫 소설집 <타워>가 개정 복간되어 11년 만에 다시 독자를 찾았다. '잭과 콩나무(Jack and the beanstalk)'가 연상되는 지상 최대 타워형 도시국가 빈스토크. 674층, 인구 50만 명. 대부분의 이동을 유료 엘리베이터로 하는 공간. 바벨탑을 닮았지만 바벨탑이라는 소리는 듣기 싫어하는 도시민들이 살고 있는 국가. 뇌물로 줄 법한 비싼 술이 오가는 관계도를 그리면 권력장 분석을 할 수 있는데, 그 권력장의 한가운데에는 어쩐지 '개' (타워 개념어 사전 기준 '개'는 일부 개체는 빈스토크 내 권력 핵심부에 서식하며 '국민'이라고 짖기도 하여 언어 구사 가능성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고 정의되어 있다.)가 존재하는 도시. (<동원 박사 세 사람>) 'SF' 답게 이 소설은 한번 설정한 세계관, 용어를 바탕으로 이야기에 살을 붙여 한 도시의 형상을 건설해나간다. 우리가 아는 세계의 어떤 면을 아주 낯선 도시를 통해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신랄하게 묘사해 우리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2000년대 초반의 갈등과 혼란을 배경으로 탄생한 2009년 작 <타워>를 2020년에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를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라는 소설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조금의 자비도 찾기 어려운 도시 시스템에도 엘리베이터 옆에 우편함을 놓고 가면 사회의 신뢰를 바탕으로 편지 문건을 알아서 배달해주는 '파란 우편함' 시스템이 있다. 자신의 실수로 우편물 전달을 놓쳐 조은수와 김민소 사이의 편지가 전해지지 않아 두 사람이 어긋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병수는 온 힘을 다해 민소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위성 사진의 픽셀을 확인해 위험에 처한 민소를 구하려는 '익명의', '숫자로' 된 사람들. 위험을 무릅쓰고 어려움에 처한 도시로 가 다른 시민을 도우려 하는 의료진의 이야기를 기억해야 할 2020년 다시 이 이야기를 읽는다. "빈스토크는 개인을 신뢰하니까요."라는 문장의 힘, 무용하고 바보같다는 걸 알면서도 (타워 용어사전에서 '바보'는 현대 도시인들 사이에 합의된 최소한의 사악함을 습득하지 못하여 타인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인간의 도리를 행함으로써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는 사람으로 정의되어 있다.) 기꺼이 해내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이 싸워내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들에 관한 이야기가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하다. 실존 인물, SF 작가인 배명훈의 이야기를 다룬 첫 에세이 <SF 작가입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34054370 )도 함께 출간되어 기꺼이 배명훈의 세계를 여행하고 싶은 히치하이커에게 두 배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 소설 MD 김효선
첫문장
어떤 술은 화폐로 통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대가를 돌려받을 것이 확실치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뭔가를 줘야 할 때가 있다.

책 속에서
그런데 지금 그 사람, 사막에 혼자 있어요. 빈스토크 해군에 고용된 용병 조종사래요. 시민권 얻으려고 연장 복무에 해외 파견까지 지원했대요. 저 때문에 그런 건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그 사람 워낙 바보여서 확신은 없어요.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미사일에 맞았는데 빈스토크 해군은 손을 놓고 있어요. 자신들이 한 일이 아니라고 시치미를 떼면서요.
사랑하는 동료 경희씨, 사랑하는 빈스토크 시민 여러분, 여러분의 국가가 손을 뗐어요. 그 사람은 빈스토크 시민이 아니라면서요. 하지만 여러분은 그러지 않을 거라 믿어요. 빈스토크 22층에는 네모난 국경면이 펼쳐져 있지만 여러분의 마음은 직육면체 상자에 갇혀 있지 않으니까요.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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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들로 만든 입체화"
진리의 발견
마리아 포포바 지음, 지여울 옮김 /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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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된 문장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책들이 있다. 대개 공통점은 기존의 문법을 따르지 않고 고유한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이 책도 그렇다. 어떤 책인지 설명하려 하면 여러 가지 말들이 뒤섞여 나온다.

불가리아 출신의 문화 비평가인 저자 마리아 포포바는 우선 우리가 기억할 만한 여러 인물들의 삶을 구석구석 살폈다. 에밀리 디킨슨, 레이철 카슨, 마거릿 풀러 등 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인생을 완전하게 소화시킨 후 그는 각각의 삶을 펼쳐놓고 서로의 연결고리들을 찾아 턱턱 걸어버린다. 허먼 멜빌이 쓴 사랑의 감상이 훗날 에밀리 디킨슨이 쓸 싯구의 씨앗이 된 것은 아닐지 추측하고 아인슈타인이 옥상에서 떨어지는 인부를 목격한 때와 레이철 카슨이 태어난 해를 연결하는 식이다.

그러니 그가 그리는 인물들의 삶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뻗어가는 입체도다. 단순히 기계적인 연결은 아니다. "아름다움 같은 어떤 진실은 상상과 의미 부여라는 빛을 슬쩍 비출 때 가장 명확하게 보인다"는 저자의 말처럼 그는 연결들에 납득 가능한 의미를 부여해 이 입체 조형물을 예술작품으로 만든다. 아름다운 삶들로 만든 작품이다.
- 인문 MD 김경영
첫문장
나는 이렇게 상상한다. 격앙된 심정에 가라앉은 마음, 그리고 언짢은 기분의 호리호리한 중년 수학자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독일의 1월 추위 속에서 마차에 몸을 싣고 있다.

책 속에서
수평과 수직으로 뻗어나가는 삶은 비선형적인 방식으로만 파악되며 "전기biography"라는 직선의 그래프가 아닌 여러 측면과 여러 빛을 그린 그림으로 나타난다. 삶이란 다른 삶과 얽힐 수밖에 없으며, 그 삶의 직물을 바깥에서 바라보아야만 인생의 핵심을 파고드는 질문에 어렴풋이나마 답을 구할 수 있다.(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