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1984년 여름 뉴욕 주립대학교에서 6년째 유학생활을 하고 학위논문의 심사만을 남겨 놓고 있을 때였다.
2년간의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최종 심사 논문을 도난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게 된다. 자동차 트렁크에 놓아둔 자신의 짐을 도둑이 모두 털어갔는데 그 안에 논문이 있었던 것이다. 논문 초고는 이미 버렸고 당시만 해도 전동타자기 시대라 다시 논문을 복구할 방법은 전혀 없었다!
선생님은 '그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목발을 짚고 눈비를 맞으며 힘겹게 도서관에 다니던 일 엉덩이에 종기가 날 정도로 꼼짝 않고 책을 읽으며 지새웠던 밤들이 너무나 허무해 죽고 싶었'단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외롭고 힘들어도 논문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만을 희망으로 삼고 살았는데, 이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셈이었다.' 선생님은 '꼬박 사흘 밤낮을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넋이 나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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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닷새째 되는 날 아침,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기껏해야 논문인데 뭐. 그래, 살아 있잖아....... 논문 따위쯤이야.'라고 속삭여주는 희망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것은 '조용하고 평화롭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일어서는 순명의 느낌, 아니, 예고 없는 순간에 절망이 왔듯이 예고 없이 찾아 와서 다시 속삭여 주는 희망의 목소리였다.'고 한다.
선생님은 다시 용기를 냈고, 그로부터 1년 후 논문을 끝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논문 헌사에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내게 생명을 주신 사랑하는 부모님께 이 논문을 바칩니다. 그리고 내 논문 원고를 훔쳐 가서 내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다시 시작하는 법을 가르쳐 준 도둑에게 감사합니다'라고
'오래 전 나는 정말 뼈아프게 '다시 시작하기'의 교훈을 배웠고, 그 경험은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기억 중 하나이다. 나는 그 경험을 통해서 절망과 희망은 늘 가까이 있다는 것. 넘어져서 주저앉기보다는 차라리 다시 일어나 걷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장영희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에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게 되었는데,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으셨던 선생님이 쓰셨던 '나쁜 운명을 깨울까봐 살금살금 걷는다면
좋은 운명도 깨우지 못할 것 아닌가.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살 것이다' 라는 부분을 읽다가
이미 돌아가신 선생님이 생각 나 진짜 슬프게 울었던 기억이 난다.
장영희 선생님처럼 절망과 고통을 마주한 많은 사람들이
'다시 시작하기'를 배우고 자신의 삶을 희망의 빛으로 물들여 나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