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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출판인이 말하는 나의 이 책
한국문학의 최전선에서 2021년을 함께한
출판 편집인, 마케터에게 물었습니다.
설재인 『붉은 마스크』
기록적인 한파를 기록했던 해도, 역대급 태풍이 몰아쳤던 해도,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웠다던 해도 몇 해 지나고 나니 언제 일이었나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2021년은 그 처음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단 하루도 빠짐 없이, 집 밖에 나설 때는 마스크를 쓴 해였다고(내년엔 또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얼굴에 마스크 문신을 새기듯 기억하게 될지 모르겠다. 여러 색의 마스크가 거리에 넘실거리지만 대체로 하얀 마스크 물결 속에서, “붉은 마스크”로 지금 여기의 현실을 이토록 적나라하고 아프게 은유할 수 있는 작가를 만나서 우리는 불행하면서 행복하다. 어슐러 르 귄이 오래전 말한 대로, 소설의 미래는 은유이니까. SF는 은유이니까.
추천인 : 최재천
아작 편집장

황정은,안윤,박서련,김멜라,서수진,김초엽 『팔꿈치를 주세요』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소개하는 마음으로 큐큐퀴어단편선을 만들고 있다. 그렇게 올해로 네 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팔꿈치를 주세요>는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다정한 마음이 되는 친구 같은 여섯 편의 퀴어 소설이 담겨 있다. 만들면서 이 이야기가 나를 조금은 다정한 사람이게 했던 것처럼, 오늘을 견뎌낼 용기를 얻었던 것처럼 독자들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랐다. 올해는 유독 어려운 해였다, 차별금지법은 미뤄졌고 많은 퀴어 친구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진부하지만 온기와 사랑이 필요한 때이고 이 계절이 지나는 동안 이 이야기들이 우리 곁을 지켜줄 수 있기를, 힘든 하루의 위로이기를 바란다.

추천인 : 최성경
큐큐 대표
이현석 『다른 세계에서도』
이현석 소설가는 가장 동시대적인 윤리와 사회문제를 소설로 풀어내며 정교하고 치밀한 질문을 던지는 리얼리스트다. 그의 첫 소설집인 『다른 세계에서도』는 다양한 인물들의 다채롭고 이질적인 목소리와 시선을 교차하며 서사를 구축하면서 골똘히 고민해봐야 하는 현실 사안의 세부와 인간 본연의 모순적인 지점까지도 감각하게 한다. 그리하여 이현석의 소설은 현재의 세계에 대해 비판적으로 치열하게 기억하고 기록하며, 그럼으로써 망각을 저지하며 더 나은 이후의 세계를 맞이하려는 삶의 문학이 된다.
추천인 : 최금순
자음과모음 마케팅본부
서이제 『0%를 향하여』
문학편집자가 나의 직업이라 매일의 일상이 예술로 가득 차 있다. 낭만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매일매일이 이렇다면 별수 없이 종종 지루하고 때론 지긋지긋하기도 한 것이다. 『0%를 향하여』는 예술을 원하고 갈망하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이 예술을 사랑하고, 때론 모른 척하고 그러다 다시 찾게 되는 과정을 따라 읽으면서, 재밌게도 나는 내가 왜 예술을 사랑했는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책으로 인해 다시 예술을 기쁜 마음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예술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서이제 작가의 도서를 예술을 잊은 모든 분께 권하고 싶다.
추천인 : 조은혜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팀
오한기 『인간만세』
광기 어린 표정의 곰돌이를 따라 책을 펼쳐보면 160페이지 분량의 글을 한 호흡에 읽어 내려갈 수 있다. 책을 덮고 나면 질문이 남는다. 이게 대체 뭐지? 제정신인 캐릭터는 단 한 명도 없고 머리에 제일 크게 남은 잔상은 ‘똥’이라니. 모두가 미쳐 있고 모두가 미친 짓을 하지만 묘하게 수긍이 가는 이 이야기는 뭐랄까, 뙤약볕 내리쬐는 한여름 그늘진 평상에 누워 끔뻑 졸았는데 한바탕 똥 꿈을 꾼 것 같달까. 똥 꿈을 꾸다가 깨어 침을 닦고 똥 꿈을 꾸다 침을 닦고……의 연속 같은 소설이다. 지금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면 『인간만세』를 펼쳐보자. 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오한기식 리얼리즘의 세계에 흠씬 빠져 어느새 희번득한 눈으로 깔깔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추천인 : 조윤선
작가정신 홍보 마케터
김중미 『곁에 있다는 것』
올해는 갑자기 힘들어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치솟는 집값과 팬데믹, 묵은 어려움과 새로운 불안들. 처음 이 원고를 받았을 때는 “가난의 시간”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어요. 소설 속에 그려진 가난에는 나이테처럼 선명한 무늬가 보였습니다. 그 속에서 연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에도 역사가 있어서, 할머니에서 엄마로, 딸로 죽 이어지고 있었고요. 저는 이 소설을 그 긴 시간 동안 서로의 ‘곁에 있어 주는’ 따뜻한 이야기로 읽었고, 그렇게 보여드리고자 했습니다.
부동산 책, 주식 책들 사이에서 『곁에 있다는 것』이 반갑게 읽히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합니다. 2021년의 우리 곁에 이 소설이 있어 주어서 고맙고요. 김중미라는 작가가 있다고 한껏 자랑하고 싶어지네요.
추천인 : 정소영
창비 청소년출판부
박상영 『1차원이 되고 싶어』
『1차원이 되고 싶어』를 읽고 변한 것이 있다면 주위 사람들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들 여기까지 힘들었겠지, 얼마나 견뎌온 거야. 소설 속의 ‘나’, 무늬, 윤도, 태리를 거울삼아 나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비춰본 덕분이다. 이들은 과거에도 너무 우리였고 지금도 너무 우리이다. 이들이 고통의 한 시절을 가로질러 새로운 곳으로 나아갔듯, 우리 또한 알 수 없는 먼 곳으로 향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올해의 선물인 이 소설을 안고 내일을, 미래를 축원하는 마음을 품어본다.
추천인 : 정민교
문학동네 편집부
류연웅 『근본 없는 월드 클래스』
세상에 MZ세대를 다룬 이야기는 많지만 류연웅 표 MZ세대 이야기는 스케일부터 다릅니다. 축구가 5대 사회악으로 지정된 세상, 낯선 느낌인가요? 여전히 조별과제에 고통받는 대학생의 이야기, 이건 익숙하시겠죠? 이 동떨어진 듯한 두 요소가 기막힌 전개로 조화를 이루는 이야기, 류연웅 작가님의 소설 <근본 없는 월드 클래스>(안전가옥)를 추천합니다. 다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맴도실 거예요. "이 근본 없는 세상, 근절 당하지 않기 위해 뇌절하며 살자!"
추천인 : 임미나(쏘냐)
안전가옥 스토리 PD
박솔뫼 『미래 산책 연습』
『미래 산책 연습』은 지금 여기에 없는 존재들에게 삶을 불어넣는다. 그들의 삶을 가정하고, 가정하려는 태도를 소설로 쓰고, 그들을 생각하는 지금 여기의 ‘나’의 삶을 잘 살아가면서. 박솔뫼는 잊힌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을 어떻게 소설로 그려낼 수 있을지 묻고 쓴다. 질문을 품어안고 어렵게 숨쉬는 이야기이자 가능성의 전부를 펼쳐내어 살아가는 이야기. 그 이야기는 읽는 내가 생각을 그만두지 않게 하고 책을 덮고 나서도 일어나 열심히 걷게 한다. 지금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끌어안은 채 과거의 그들과 현재의 우리가 함께 좋아질 수 있는 길을 찾아.
추천인 : 이재현
문학동네 편집부
이선영 『지문』
이 책에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등장한다. 아동학대부터 가정폭력, 대학 내 성폭력까지. 그 끝이 피해자의 극복과 화해로 끝나지 않는, 섬뜩한 스릴러로 전개되는 이런 책을 만나고 싶었고 꼭 내고 싶었다.
추천인 : 이승희
비채 편집부
이유리 『브로콜리 펀치』
표제작이 많이 거론되지만 사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은 「둥둥」이다. 이 소설은 한 아이돌 팬이 대마초 머핀으로 가득 찬 리모와 슈프림 에디션 캐리어에 의지해 서해에 둥둥 떠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티끌 한 점 없는 이타적 사랑인 그의 ‘덕심’은 외계 생물체의 전 우주적 연구 대상이 된다. 한때 누군가의 팬이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지금 그런 이타적 사랑을 하고 있을 모든 분들이 한 번쯤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이 우주 어딘가에서, 당신의 사랑이 어떤 죽음들을 막아냈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알아주길 바라요.”
추천인 : 이민희
문학과지성사 편집1부
윤성희 『날마다 만우절』
술 마시는 장면을 한국에서 가장 맛있게 쓰는 소설가. 혼자 국밥집이며 호프집 혹은 남국의 노천 바에 주저앉아 윤성희의 소설을 펼쳐놓고 낮술을 마신 날이 몇 날 며칠일까. <날마다 만우절>이 출간되자마자 헐레벌떡 사 읽은 날에는 두부에 갓김치를 곁들여 혼자 집에서 술을 마셨다. 절대 다른 김치일 수 없었다.
또한 나는 윤성희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아주 지질하게 우는데, 이번엔 은혜롭게도 단편이 11편이나 실려 있었기에 최소 11번 훌쩍거렸다. 얼마나 많은 비극이 평범해지도록 넘치는가. 그러나 다들 어찌 이렇게 꾸역꾸역, 가끔 웃기까지 하며 살아가는가. 킥보드를 타고 고요한 타인들이 가득 숨은 단지를 도는 누군가처럼.
추천인 : 설재인
아작 편집자
케이시 『네 번의 노크』
보통 월요일 아침에 출근해서 메일함을 열면, 투고 메일이 잔뜩 쌓여 있다. 작년 11월의 어느 월요일 아침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주말 내내 고민하다가 마침내 새벽이 되어 긴장하면서 보냈을 투고 원고들 속에서 케이시 작가의 메일을 클릭하고 원고 파일을 열었다. 그리고 출근길에 내리는 역을 놓쳤을 정도로 이 독특한 원고에 빠져들었다. 보고서와 진술서 형식,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은 여섯 명의 용의자들, 그리고 이 여성들의 진술에서 새어 나오는 현실적인 욕망과 진실을 앞세운 교묘한 거짓말들……. 미스터리로 시작해 스릴러로 끝나는 이 소설 《네 번의 노크》는 기존의 장르 문법에서는 변칙적이었지만, 캐릭터의 생생함과 거듭되는 반전으로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 매력적인 소설은 혼자만 읽으면 안 된다!’라고 생각했고, 10개월 만에 독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 다음 작품에서는 또 어떤 스토리로 독자들을 사로잡을지, 케이시 작가의 새로운 작품을 기대해본다.
추천인 : 박은영
인플루엔셜 편집4팀
설재인 『너와 막걸리를 마신다면』
때로는 이런 소설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무턱대고 들이받고 정면돌파를 선택하는 작품말이다. <너와 막걸리를 마신다면> 속 여자들은 막걸리의 탄산 같다. 부글부글 끓다가 어느 순간 뚜껑을 뚫고 튀어오른다. 그들을 보며 진부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로 용기를 얻었다. "나를 개 취급한다면 한 마리의 들개가 되겠다"는 문장에 웃음이 팍 터졌다가도 소설을 덮은 후에도 내내 마음에 남았다. 마치 막걸리의 취기처럼. 설재인 작가의 명랑하고 발랄한 또 다른 작품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소중한 작품이다.
추천인 : 나예은
밝은세상 편집부
백은선 『도움받는 기분』
백은선의 시는 그 안에 담긴 의미보다 글자들이 가진 표면적인 모양새들을 더 들여다보고 싶게 만든다. 이를테면 ‘뾰족한 끝으로 누르면 터질 것 얇은 막으로 뒤덮여 부풀어 오르는 물집 같은 창’ 같은 문장을 보고 있으면 구태여 의미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한 번 더 곱씹는 것만으로 소화가 되는 느낌. 문장을 숨기기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두는 것’이라면 문장을 이해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두고 보는 것’이 아닐까. 전시에 걸려있는 그림처럼 백은선의 시들은 그저 ‘눈으로만’ 봐도 더할 나위 없다.
추천인 : 김진겸
은행나무 마케팅부
김성일,문녹주,송경아,오승현,이경희,이지연,전혜진,천선란 『책에 갇히다』
처음 만들어보는 앤솔러지인데 작가님이 여덟 분이나 되었다. 신인 작가님을 비롯하여 현재 SF 분야를 주름잡는 작가님들까지. 이런저런 개인적 난관이 있었지만 단순히 ‘책과 서점에 관련한 단편소설’이라고 상상했던 기획 의도보다 훨씬 고차원적이고 기상천외한, 빼어난 원고들이 들어왔다. 책의 물성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고, 문자가 사라지고, 사람이 책이 되고, 때로는 인공지능만이 책을 지키고, 사람은 이야기 속으로, 이야기 속 존재들은 현실로 나와 떠돈다. 책, 아니 이야기에 관한 거의 모든 상상력을 맛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 반한 나머지, 새로운 앤솔러지도 만든다.
추천인 : 김지아
구픽 대표
이희영 『나나』
영어덜트 소설은 내 안의 어린 나를 만날 수 있는 통로라고 생각합니다.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깊은 곳에 남아 있던 여린 내 모습과 감정 들이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주인공들에게서 살아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수리와 류의 이야기를 듣고 살피는 과정은 잊고 있던 저를 발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완벽해지고자 했던 나, 문제없는 아이가 되고자 했던 나, 그렇게 애쓰던 나. 수리와 류처럼 어렸던 그 시절의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오늘의 제 모습과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영혼이 가득한 이 이야기에서 저는 목소리를 원했던 수많은 ‘나’를 만났습니다. 많은 분들이 『나나』를 통해 마음속에 숨어 있던 ‘나’를 발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추천인 : 김도연
창비 청소년출판부
하승민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편집자 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신인 작가의 원고를 보다가 '어?'하고 놀랄 때가 있다. '혹시 기성 작가인데 가명을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부터 할 만큼 단단한 글쓰기를 선보이는 경우다.
그런데 막상 연락해 보면 책을 낸 적도 없고, 그렇다고 전공을 한 것도 아닌 경우가 있어 놀라게 한다. 최근엔 하승민 작가가 내게 이런 경우였다. 첫 작품인 <콘크리트>를 보았을 때 작가에게 다짜고짜 과거에 출판 경험이 있지 않느냐고 물어봤더랬다. 오랜 습작과 다독의 결과였다. 그리고 보통은 이런 작가들은 글을 쓸수록 더 단단해진다. 두 번째 작품인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완성도를 선보인 것을 보라. 평소 책을 많이 읽던 영화 제작자분과 내용을 공유했는데, 바로 연락와서는 '글을 너무 잘쓴다!'라는 경탄을 보내왔다. 물론 출간 이후 영상화 계약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매년 장편소설을 하나씩 완성하겠다는 저자의 다짐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다."
추천인 : 김준혁
황금가지 편집주간
천선란 『나인』
나이가 들며 사회에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이웃의 일을 쉽게 외면하는 법을 익히게 된다.
실종된 사람을 찾는 전단지, 교통사고의 목격자를 찾는 현수막 등 그저 배경처럼 지나갈 뿐이다.
열일곱 평범한 고등학생인 '나인'은 어느 날 갑자기 들리는 정체불명의 목소리를 통해 2년 전 같은 학교 선배가 실종된 사건에 대해 알게 된다.
경찰과 학교 측에서는 가출이나 자살이라 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그리고 또 하나, 자신은 식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외계인이었다는 사실까지 깨닫게 된다.
'나인'은 외계인이라는 정체를 들키지 않으면서도 이 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려 고군분투하는데, 온힘을 다해 애쓰는 '나인'의 모습을 함께 숨죽이며 읽게 된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실종된 그 선배 말이야, 사실 너랑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인데, 왜 그렇게 열심이야?'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진실을 추구하는 나인과 친구들의 선한 마음과 믿음의 연대는 나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자에게 특히 마음에 오래 남을 것이다.
참신한 상상력으로 시작해 속도감 넘치는 스릴과 서스펜스를 자랑했던 『나인』은 결국 이야기 안에 녹아 있는 진실한 마음이 책을 읽고 난 후 가장 오래 남는다.
외면할 수 있는 일을 외면하지 않는 이 아이들의 이야기가 이 시대의 많은 이들에게 닿기를 바란다.


추천인 : 한수정
창비 마케팅부
편혜영 『어쩌면 스무 번』
삶에 닥치는 불행들을 잘 이겨내는 일이 가능할까? 가끔 어쩌지 못할 정도로 힘든 시기에는 내가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불행이 나를 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불행들이 나를 지나갈까. 편혜영의 소설에는 불행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어쩌면 스무 번」에서 아내가 장인을 때릴 때, 주인공 '나'는 옥수수밭으로 향한다. 키가 큰 옥수수들 사이에 앉아, 사위가 어두워질 때부터 환한 달이 떠오를 때까지 머문다. 살면서 둥근 달이 뜨는 풍경을 어쩌면 스무 번 정도 더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이 장면은 이상하게 한해에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위안이 되었다. 거듭 맞닥뜨릴 불행도 어쩌면 스무 번 정도라고 생각하면 괜찮아졌다.
추천인 : 김화진
민음사 한국문학팀 편집자
강보원 『완벽한 개업 축하 시』
『완벽한 개업 축하 시』를 처음 읽었을 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시는 「저택 관리인」이다. 이 시에는 ‘나’가 ‘마루야’ 하고 강아지의 이름을 부르자 백한 마리의 푸들들이 우르르 달려오는 장면이 있다. ‘나’는 백한 마리나 되는 ‘마루’들을 모두 사랑하기로 하고 “산더미 같은 개밥 포대를 뒤적거리며” 살게 되는데 이따금 푸들들이 너무 많아서 울고 싶어질 때가 있다고 고백한다. 구분되지 않는 것들을 사랑해 보기로 했다는 푸릇푸릇한 각오와, 당찬 각오가 무색하게 엉엉 울어 버리기도 하는 솔직함. 그 사이 수많은,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법을 모르겠어 망연해지는 얼굴이 이 시집의 표정인 것 같다. 이런 얼굴의 책이 있다는 것이 든든하다.
추천인 : 정기현
민음사 한국문학팀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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