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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에 매뉴얼이 있다면 음식에는 레시피가 있다. 매뉴얼을 따르면 물건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고, 레시피를 따르면 음식을 제대로 조리할 수 있다. 그런데 유독 한식에는 손맛이라는 마법의 재료가 등장하여 만드는 이와 먹는 이 모두를 혼란에 빠뜨린다. 여기에 전통과 고유함이라는 만병통치약이 더해지면, 그야말로 주는 대로 먹고 되는 대로 만들 수밖에 없으니, 그저 한국인이 만들어 먹는 모든 음식을 한식이라 생각하며 만족할지, 오늘날 음식 또는 음식문화라고 불리는 체계 속에서 한식을 새롭게 정의하고 분석하여 손맛이 아니어도 만들 만하고 먹을 만한 음식을 즐길지, 더는 미룰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그렇다, 먹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음식 평론가 이용재는 한식에서 '우리'를 걷어내고, 전통의 자리에 과학을 밀어넣는다. 라면을 대량생산된 한국적인 맛으로 평하고, 평양냉면에서 한식의 현대화 가능성을 찾으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크게 맛과 조리 두 가지로 나눠 한식의 다양한 풍경을 날선 시선으로 분석한다. 읽다 보면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할 텐데, (앞서 말했든 먹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니)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저자의 일관된 태도다. 특히 맛으로만 음식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1인 가구의 증가 같은 사회의 변화에 음식문화가 제대로 조응하고 있는지까지 살펴야, 비로소 한식의 품격, 한식의 세계화를 논할 수 있다는 대목에 이르면, 손맛 대신 한식의 자리에 들어서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 선명해진다. 맛있는 한식을 즐기기 위해 레시피보다 먼저 살펴봐야 할 한식 비평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