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 그것은 단순한 기술의 등장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정의가 흔들리는 경험이었다. 누구나 스마트폰 화면 속에 질문을 던지고, 기계가 사람처럼 문장을 만들어 내는 장면을 마주하면서, 인간만의 언어가 더 이상 고유하지 않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된 것이다. 놀라움과 불안이 교차하는 그 순간, 기계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사유의 동반자처럼 다가왔다. 김대식 교수는 이 낯선 경험을 충격으로만 남기지 않고, '기계와의 협업'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해석한다. 사랑과 죽음, 정의와 행복, 신의 존재와 같은 인간의 근원적 물음이 이제는 기계와 함께 던져지고 응답되는 시대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전환점에서 인류가 맞닥뜨린 본질적 물음을 파고든다. AGI의 도래는 무한한 풍요와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약속하는 동시에, 인간다움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힘을 품고 있다. 저자는 기술의 낙관과 비관 사이를 오가며, 인간의 모든 능력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음을 전제로 삼는다.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선택이다. 기술은 멈출 수 없는 운명이지만, 그 방향은 인간의 성찰과 결단에 달려 있다. 이 사유의 여정은 단순한 기술 담론을 넘어, 존엄을 지키며 AGI 시대를 통과하기 위한 나침반이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시점은, 인류에게 주어진 극히 짧은 '골든 아워'일지 모른다.
- 경제경영 MD 김진해
여름방학이 끝난 2학기 첫날 교실, 초등학생 오컬트 마니아 기지마 유스케는 여름 방학 동안 다녀온 ‘담력 테스트’ 때 찍어온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여준다. 몇몇 친구들이 사진에 관심을 보이자 신이 나서 경험담을 풀어놓는 유스케. 어느새 친구들에 둘러싸여 주목을 받으며 우쭐해졌던 것도 잠시, 학급 회장이자 모범생 하타노 사쓰키에 의해 친구들의 주목은 금세 다른 곳으로 쏠리고 만다. 허탈한 마음도 잠시, 유스케는 한 달에 한 번 발행하는 학급 벽신문 담당자에 지원하여 도시 전설이나 심령 현상을 주제로 한 오컬트 코너를 만들려고 하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모범생 하타노도 벽신문 담당자에 지원하고, 전학생 하타 미나 역시 함께하게 된다. 이리하여 오컬트 애호가 유스케와 현실주의자인 사쓰키, 신비한 전학생 미나는 마을의 ‘7대 불가사의’를 추적하기 시작하고, 오컬트와 현실이라는 두 가지 가설을 나란히 세우고 논박을 주고받으며 어느새 미제로 남은 1년 전 살인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는데…
<시인장의 살인>의 작가 이마무라 마사히로가 괴이를 추적하는 초등학생들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오컬트와 논리가 치열하게 맞붙고, 이해할 수 없다고 쉽게 믿어버리지 않으며, 무서워도 멈추지 않는다. 정확히 같은 속도로 달려가는 공포와 추리. 그 끝에서 기다리는 진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작가는 “현실 세계와 같은 룰로 오컬트를 어떻게 납득시킬 것인가”를 이번 책의 과제로 삼았다고 고백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맞닥뜨린 아이들이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특수설정을 덧씌우지 않고, 본격 미스터리가 전제하는 ‘독자와 작가의 암묵적 합의’를 정면에서 활용하겠다는 작가적 야심이 돋보인다.
- 소설 MD 박동명
이 책의 첫 문장
치사해.
이 책의 한 문장
"난 살살 봐주면서 하지는 못할 것 같은데."
으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허세를 부렸다.
"바라던 바야. 답이 없는 걸 찾고 있는 건 서로 마찬가지니까."
무채색 일상. 밤새워 일한 후 부스스 일어나 인스턴트 라면을 먹는다. 집은 쓰레기가 쌓여간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어지던 어느 날, 벤치에 앉아 삼각김밥을 먹던 청년은 공원에 모여든 사람들이 망원경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걸 구경한다. 저들은 무얼 보고 있는 걸까? 헤드셋을 벗어 가만히 귀 기울이니 새 소리가 들린다. 공원의 행인이 빌려준 망원경을 들여다보니 파란 새가 한 마리 보인다. 파랗고 파란 새.
독립 출판물 <낮게 흐르는>에서 독보적인 이미지 연출과 수채 그림 스타일을 선보이며 그래픽 노블 애호가들의 남다른 주목을 받은 변영근 작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던 2020년 무렵, 코로나 팬데믹을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고립된 청년이 새를 관찰하며 변화하는 내면 이야기를 아름다운 책으로 만들었다. 한 사람의 삶이 변화하는 결정적 계기는 어떤 사건이 아니라 작은 것을 발견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새소리와 햇빛을 아스라이 부수는 나무들의 흔들림, 하늘을 수놓는 큰 구름. 대사 한마디 없는 이 책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책을 펼쳐본 독자라면 반드시 알게 될 테다.
- 만화 MD 임이지
작가 노트 중
그림을 그릴 때마다 탐조를 하면서 처음 만났던, 새를 보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예쁘게 날아오르는 순수한 마음을.
신경생물학자 수전 배리는 48세에 입체시를 얻게 되었다. 평생 세상을 평면으로만 보다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입체로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학계에도 보고된 바 없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놀라운 변화에 대해 쓴 편지를 올리버 색스 박사에게 보내보기로 한다. 큰 용기와 적당한 긴장감, 작은 기대를 가지고. 그리고 고작 며칠 뒤, 그는 색스의 정성 가득한 답장을 받는다. 우정의 시작이었다.
인연의 재밌는 지점은 관계의 온도와 지속 시간이 딱히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뜨거운 우정이 빠르게 끊어질 수도 있고 미지근한 관계가 영원히 이어지기도 한다. 배리와 색스는 입체시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쭉 편지와 왕래를 이어갔다. 그들의 관계는 따뜻하고 활발하게 오래오래 이어졌다. 색스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는 150통이 넘었다.
이 편지들엔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왕성한 지적 호기심, 기분 좋은 위트와 포근한 다정함이 담겨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아름다움들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꼭꼭 짚어 흠뻑 느끼는 자세는 이들이 지닌 공통점이었다. 이 순수함의 토대 위에서 두 사람이 주고받은 밝은 에너지는 이미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읽는 이들을 자극하고 감화시킨다. 그리웠던 올리버 색스의 따뜻함을 다시 느낄 수 있는 책.
- 과학 MD 김경영
이 책의 한 문장
지난달에 저의 안구 흑색종이 간으로 전이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전이된 암은 치료가 쉽지 않은데, 몇몇 처치로 속도를 지연시킬 수는 있습니다. 그렇게 늘린 몇 달이 좋은 시간이라면, 그 동안에 글을 쓰고, 친구를 만나고, 여행을 다니고, 인생을 즐길 수 있다면, 저는 그걸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