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이 사는 사람이 없어서 품게 되는 청빈하고 알량한 긍지까지 주워가려는 사람을 볼 때 박완서를 읽는 독자는 그의 단편 <도둑맞은 가난>(1975)을 떠올린다. 박완서는 여전히 변주되고 인용되는 작가다. 작가의 타계 15주기를 맞아 박완서의 대표 단편 10편을 엮은 소설집이 출간됐다. 구병모, 김연수, 박상영, 성해나, 최은영, 한강 등 31명의 소설가에게 작품 선정을 청해 가려 실었다. 지금도 널리 읽히는 단편 <도둑맞은 가난> (1975), 동인문학상 수상작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1993)에 더 알려져도 좋을 <쥬디 할머니>(1981), <애 보기가 쉽다고?>(1985)도 고루 실려 2026년에 박완서를 읽는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박완서의 소설엔 셈이 빠른 중산층 장년 여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곤 한다. 새로이 읽는 동안 이 인물들의 구체성에 그들의 곁에서 이 콩트의 일부가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너무 젊어보이는 '쥬디 할머니'를 '무럭무럭 질투하는 마음을 어쩌지'(<쥬디 할머니> 13쪽) 못하는 이웃 여자. 전직 국회의원 남편에게 손자 애보기를 맡겨두고 '난 옛날식보담 신식이 더 좋아요.'(<애 보기가 쉽다고?>35쪽)하고 새시대를 향해 돌진하는 마나님 같은 사람들. 인물들은 샘을 부리고 잔머리를 굴리고 큰 살림을 해내는 일상을 살면서도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만나면 젊어졌다 좋아졌다(...)남의 신체를 가지고 들먹이는 인사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252쪽) 같은 지나가는 말로 자신들이 아는 게 스스로의 살림살이만은 아님을 슬쩍 드러내기도 한다. 인간은 이토록 모질기도, 질기기도 한 존재라는 걸 누구보다 잘 적어온 작가. 박완서는 역시 박완서다. 20세기 한국사회의 풍속도 혹은 클래식, 다시 읽으면 다른 것이 보인다. 영원히 고쳐 읽고 싶은 소설이다.
- 소설 MD 김효선
이 책의 한 문장
말이란 건 좋은 거였다. 말을 하니까 한결 기운이 났다.
그래. 난 다시 울타리를 칠 수 있을 거야. 새로운 울타리를.
깊은 숲속 오두막에 작은 식당이 문을 열었다. 완벽한 코스 요리를 선보이겠다는 꿈으로 셰프 르네가 차린 곳이지만, 손님이 없어 먼지만 날리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문 앞에 거대한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나무보다도 큰 몸집에 뾰족한 엄니가 튀어나온 그 손님은 무시무시한 오거였다. "오늘의 특선 요리는 허브로 맛을 낸 절인 연어 그리고 향긋한 샤프란과 함께 볶은 가시고기 튀김입니다." 몹시 긴장한 르네는 용기를 내어 첫 손님을 맞이한다.
"그냥 박쥐나 푸짐하게 줘요! 썩은 냄새 풀풀 나는 걸로!" 전혀 예상치 못한 오거의 대답에 르네는 충격에 휩싸이고, 조용하던 식당은 시끌벅적한 소동에 휘말린다. 이 유쾌하고도 엉뚱한 그림책은 영국을 대표하는 서점 '워터스톤스'에서 2025년 ‘올해의 어린이책’으로 선정한 작품으로, 영국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마이키 플리즈의 생생한 그림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생동감을 준다. 영국 판타지 특유의 고즈넉하면서도 신비롭고 기묘한 분위기도 매력을 더한다. 칼데콧상 수상 작가 존 클라센이 “정말, 정말 재밌다!”라고 추천했듯, 즐거운 상상과 웃음이 가득한 그림책.
- 유아 MD 권벼리
추천의 글
“상상력 만점! 끝내주게 매력적인 그림책!” - 가디언 “미식가도, 식도락가도, 편식가도 함께 즐길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한 접시.” - 커커스 “정말, 정말 재밌다.” - 존 클라센 (칼데콧 상 수상 작가)
메인 주 크로스비 타운에는 밥 버지스, 올리브 키터리지, 루시 바턴,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이 살고 있다. 예순다섯 살의 밥 버지스는 키가 크고 체격이 좋고, 뉴욕에서 오랜 세월 변호사로 활동했다. 아흔 살 올리브 키터리지는 노인 주거 단지인 메이플트리 아파트에 살고 있고, 친구 이저벨을 찾아가 날마다 신문 1면부터 끝까지 읽어준다. 팬데믹 때 뉴욕을 떠나 크로스비 곶의 끝 대서양을 내려다보는 절벽 높은 곳에 정착한 루시 바턴은 작가이며, 전남편 윌리엄과 함께 살고 있다. 10월의 어느 날, 한 가지 생각이 올리브 키터리지를 사로잡았고, 올리브는 일주일 동안 고민하다가 밥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가라는 루시 바턴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밥의 소개로 올리브의 집을 방문한 루시는 올리브에게 말한다. “부디―그 이야기를 해주세요.”
올리브 키터리지, 루시 바턴, 밥 버지스와 그들의 가족, 친구, 이웃 등 오랜 시간 사랑 받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주인공들이 한 자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스트라우트 월드의 결정판과도 같은 소설.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서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책은 그 이야기의 모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루시는 아이를 낳은 딸이 더는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느끼며 괴로워하고, 밥은 형수인 헬렌의 죽음과 조카 래리의 사고, 그리고 정신적으로 무너져버린 형의 일로 슬픔에 빠져있다. 이렇게 삶에는 지난한 일들이 계속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거라 믿었던 내밀한 감정을 서로에게 고백하고 잠시나마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때, 깊은 우정과 애틋함의 실마리가 된다. 작가로서 스트라우트가 수십 년 동안 우리에게 건넨 이야기 또한 그러하였다. 그러기에 우리는 작가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 소설 MD 박동명
이 책의 한 문장
“계속 이야기해줘요.” 루시가 말했다. “그게 그 이야기의 일부인지 아닌지 아직은 몰라요.”
'듣기 싫은 소리가 들리면 귀가 자동으로 접히는' 아이 옆집에, '누구의 말이든 다 들어주는' 수상한 마녀가 이사 온다. 성난 코뿔소처럼 화난 아주머니도, 늘 투덜거리던 아저씨도 마녀의 집에 다녀온 뒤에는 순한 양이 되어 돌아온다. 그 모습을 지켜본 아이는 옆집 마녀가 점점 궁금해지고, 마침내 어떤 계기로 마녀의 집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날 이후부터 아이의 일상에는 조금씩 변화가 깃든다.
허은미 작가와 소복이 작가가 조화롭게 빚어낸 이 사랑스러운 그림책은, 친구가 한 명도 없는 아이와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마녀의 만남을 통해 '경청'의 중요성과 방법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말 잘하는 사람에게는 귀를 열지만, 잘 듣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연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일이 얼마나 깊은 위로가 되는지, 곁에 머물며 들어주는 태도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이 작은 책은 분명하게 전한다.
- 어린이 MD 송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