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작가가 현실에서 비현실의 이야기를 찾는 게 아니라 비현실이 슬그머니 찾아와 그의 어깨를 두드린다. ...... 나는 그럴듯한 소설을 쓸 생각이 없다. 대신 그럴듯함과 그럴듯하지 않음 사이에서 꿈틀대는 어떤 자리들을 발견하고 또 찾아보려 애쓰겠다. ......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는 이런 발견들에 대한 소설가 박생강의 첫 번째 보고서이다.
《나의 아메리카 생존기》는 이처럼 익숙한 공간을 떠나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10대의 이야기다. 지금 같은 시대에도 쉽지 않은 10대의 삶인 것이다. 그곳의 고등학교는 한국과는 많이 다른 시스템이지만 아이들은 역시나 또래의 비슷한 고민과 외로움을 안고 산다. 물론 극강의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한국 고교생들의 학창 시절과 똑같을 수는 없다. 또한 이미 10년 전의 이야기라 지금과는 다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소설을 통해 지금의 10대가 2천 년대 중반, 미국에서의 10대 유학생의 삶을 들여다보며 느끼는 독특한 재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메타버스의 우주를 통해 지금은 유튜브로만 볼 수 있는 싸이월드와 원더걸스, 빅뱅이 인기 있던 그 시절을 여행하는 기분이랄까?
더구나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이건 미국이건, 10대의 삶은 혼란스러우면서도 풋풋하고 그러면서도 고독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고, 소설 속의 태조도 그랬고, 지금의 10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면서 태조처럼 아메리카 생존기는 아니더라도 각자 나름의 인생 생존기를 배워 나가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부모와 가족에게서 조금씩 떨어져 나가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만들어가는 그런 시기니까 말이다. 나는 소설 《나의 아메리카 생존기》에 10대들이 겪고 있는 인생 생존기의 고민을 담아 보고 싶었다. 자신의 인생에서 최초로 너무도 심각하고, 진지하고, 어쩌면 비장한, 그리고 늘 우정에 진심인 그런 시절은 모두에게 있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10대와 학부모,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각각 공감하는 지점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10대의 주인공을 통해 청소년과 모든 세대가 함께 공감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세계를 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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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나는 옛이야기를 좋아했다. 까치와 구렁이가 싸우거나 호랑이가 사람들을 잡아먹는 대신 사람과 의형제를 맺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혹은 처녀귀신이 우물가를 배회하거나 빗자루가 도깨비로 변하는 이야기들이 내 문학적 무의식의 세계일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의 호랑이는 동물원에 있고 까치와 구렁이는 쉽게 보기 힘들다. 빗자루가 사라진 자리에 진공청소기가 들어섰으니 도깨비 역시 설 자리를 상당부분 잃은 셈이다. 옛이야기에서 새벽에 닭이 울면 무서운 요괴들이 사라졌지만, 이제 도시에서 닭 울음소리를 듣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렇다면 앞으로 백 년 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옛이야기는 어떤 것들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그 궁금증 때문에 『치킨으로 귀신 잡는 법』의 짧은 소설들을 쓰기 시작했다. 나름 소설가의 손으로 2190년에 옛이야기로 구전될 법한 2019년의 이야기를 배양해 보려는 프로젝트였다. 우선 그래서 소도구로 닭 대신 치킨을 사용했다.
이렇게 쓰니 뭔가 대단한 스케일의 짧은 소설 같지만, 그냥 지금 이 시대의 기호들을 민담의 방식과 다양한 장르문학의 비트(beat)로 자유롭게 리믹스한 짤막한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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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란 원래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 이야기의 살이 붙고, 결말이 달라지거나, 아예 외전을 낳는다. 이 책에 실린 짧은 소설들 역시 그런 식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두었다. 끝은 끝이 아니고, 끝에서 독자의 손길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의 문이 열리기를 나는 바란다. 인터랙티브한 짧은 문학의 방식이랄까? 나와 당신이 언젠가 이 세상의 먼지로 변해도, 소설가의 짧은 소설을 읽고 독자가 상상한 이야기들은 영혼의 인공위성처럼 반짝반짝 빛나며 이 세계를 떠돌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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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의 쓰디쓴 현실이나 우울한 삶, 반짝이던 찰나의 하루가 과연 백 년 후에는 어떤 옛이야기로 사람들 사이에 전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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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증후군」에 등장하는 ‘야민’이란 낯선 단어는 철학자 발터 벤야민에서 따왔다. 20대 중반 그의 글을 처음 접하고 흠모한 나머지 삼촌처럼 ‘야민이’ 아저씨라고 혼자 부르던 때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