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없이 ‘욕망’을 이야기하는 이즈음, 흔히들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마음 가는 대로 살라’고 말을 합니다. 말이야 좋은 말이지요. 다만, 그 마음이란 것이 생각처럼 투명하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부모나 애인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착각하고, 세상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여기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고도 불만과 원망이 남는 이유는 그래서입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나라는 사람이 도대체 누군지 모르는 채 한 세상을 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나는 책을 읽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 욕망은 무엇인지, 왜 그런 욕망을 갖게 되었는지,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이고 모르는 것은 무엇인지 제대로 알기 위해서 책을 읽습니다. 물론 책이 그 모든 걸 가르쳐주는 것은 아니며, 책보다 더 나은 스승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는 길 위에서 배우고, 누구는 사람에게서 배우며, 또 누구는 아득한 침묵에서 배우겠지요.
내가 책을 택한 이유는 책이 유일한 스승이어서가 아니라 책이 언제나 내 옆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몰라 힘들고 막막할 때 내 손을 잡아준 것이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책에서 구한 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위로였는지도 모릅니다. 책에서 세상의 이치나 인생의 진리를 발견했다고 믿은 적도 있습니다만, 또 다른 책이 번번이 그걸 무너뜨린 걸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 ‘독서처방’을 쓰게 된 것은 다른 이들도 비슷하리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사소한 일상의 필요부터 깊은 마음의 상처까지, 책에서 해결책을 찾고 책에서 위로를 받아온 내 경험을 나누고 싶었지요. 그리고 나처럼, 분하고 서럽고 답답한데 사람은 멀고 책만 가까이 있는 외롭고 쓸쓸한 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습니다.
처음엔 아주 짧은, 동화 같은 상상이었다. 3년 동안 상상은 가지를 치고 꼬리를 물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책이 시대와 공간, 성별과 세대를 넘나들듯, 내 상상도 모든 경계를 가로질러 존재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한 편 한 편이 모두 저마다의 문체와 목소리를 갖기를 바랐다. 그 바람에 너무 달라서 혼란스럽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독자들이 어지럼증을 느낀다면 내 상상은 성공이다. 책을 읽는 건 굳은 나를 깨우고 흔들리기 위함이 아니던가.
침략을 당했으되 목숨을 걸고 제 말과, 글과 삶의 터전을 지켜 낸 강한 사람들이 제 조상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남을 괴롭혀 빼앗기보다 내 몸을 수고롭게 해서 얻은 결실을 남과 더불어 나눌 줄 아는 사람, 힘써 일한 뒤에 찾아온 여유를 춤과 노래로 즐길 줄 알았던 사람들이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