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별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동물과 대화하는 사람, 꽃과 대화하는 사람, 벌레와 대화하는 사람... 그리고 시오노 나나미처럼 역사와 대화하는 아주 특별한 재능을 갖춘 사람.
로마와 르네상스의 영웅들, 비겁자들, 보통사람들이 그의 대화 상대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지금 여기의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제시한다. 역사의 문제는 실존의 문제로 전화한다. 이것이 그의 글이 가지는 위력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1963년 가쿠슈인대학을 졸업했다. 고교 시절 <일리아드>를 읽고 이탈리아에 심취하기 시작했으며, 도쿄대학 시험에 떨어진 후 가쿠슈인대학을 선택한 것도 '그 곳에 그리스 로마 시대를 가르치는 교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에서는 서양철학을 전공했고, 당시 일본 대학가를 열풍처럼 휩쓸었던 학생운동에 가담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를 알게 된 후 학생운동에 회의를 느끼고, 졸업 후 1964년 <일리아드>의 고향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이탈리아에서 30년이 넘게 독학으로 로마사를 연구한 시오노 나나미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모델로 알려진 체사레 보르자의 일대기를 그린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으로 1970년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받았다.
'역사는 흥미로운 이야기이자 최대의 오락'이라고 주장해 온 시오노는 1980년대 들어 신의 대리인이라기보다 르네상스적 인간으로서 교황의 모습을 그린 <신의 대리인>,마키아벨리의 삶을 현미경을 들이대듯이 밀착하여 재현해낸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등을 잇달아 펴내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올랐다. 그가 펴낸 대부분의 책들은 출간 당일 1만여 부 이상 팔려나가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30여권에 이르는 저작은 크게 세 분야로 나뉜다. 초기작인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비롯, <바다의 도시 이야기>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등 20여권의 중세 르네상스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과 로마 제국 흥망성쇄의 원인과 로마인들의 이야기를 정리한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그리고 <남자들에게> <사일런트 마이너리티> 등 그 특유의 냄새가 묻어 나오는 감성적 에세이류다.
시오노 나나미는 1년에 한 권 씩 책을 써낸다. 6개월은 공부하고, 3개월은 쓰고, 1개월은 탈고한다. 공부는 우선 쓰고자 하는 시대의 원서 읽기부터 시작한다. 대개의 경우 라틴어다. 그 다음에는 후세 사람들이 그 시대에 관해 쓴 책을 읽는데, 영어로 쓰여진 책부터 해서 독일어로 된 책, 불어로 된 책, 이탈리아어로 된 책을 읽고, 마지막으로 라틴어 원서로 돌아간다.
이렇게 동일 테마를 여섯번 정도 반복해서 공부하고 나면 그 시대 상황이 눈에 선하게 잡힌다고 한다. 좀더 시간이 지나면 그 시대 사람들의 얘기가 귀에 들려오는 듯하고, 이 때부터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써내려 간다는 것이다.
픽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사실적 자료들이 풍부하고, 그렇다고 역사서라 하기에는 소설적 재미가 너무 탁월한 그의 책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 지는 것이다.
1970년 이탈리아 의사와 결혼하고 얼마 후 이혼한 시오노는 아들과 함께 로마에 거주하며 왕성한 집필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는 2006년까지 15권으로 완간할 계획이다. <로마인 이야기>가 출간된 이후인 96년 5월 우리나라를 방문하였을 때 각종 미디어들이 열광적으로 그의 이야기를 다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