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총신대 신대원 98회 졸업(M.div)
논문 : 리더십계승의 원리와 방법에 관한 연구: https://www.riss.kr/link?id=T9988955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성경 주해(Th.m)
그는 교회를 개척하여 큰 성과를 이룬 대형 교회 담임목사도 아니다. 또한 유학과 오랜 학업으로 학위를 가진 교수도 아니다. 그래서 원고를 작성하는 것보다 출판 과정이 더 힘들었다고 말한다. 원고를 의뢰한 모든 출판사에서 거절 받았기 때문이다. 출판을 포기하려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목회의 큰 성과와 학문적 성과는 없지만, 그는 전처의 뇌종양 투병과, 사별, 무임목사, 재혼으로 많은 고난을 겪었다. 그는 부목사로 성경신학을 공부하던, 2011년 4월 뇌종양 투병으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아내의 병간호와 어린 두 아들의 양육을 위해 목회와 학업을 내려놓는다. 이후 사별을 하고, 재혼과 교회 개척을 위해 수고하였다. 이 과정에서 되는 일은 없고, 많은 어려움만 겪었다. 고난 중에 소외와 시기와 자기연민 같은 ’감정고난’이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말한다. 상처투성이인 자신과 어린 두 아들의 영혼을 보면서 자기연민에 갇혀 많이 울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고난 속에서 두려움과 수치, 정죄, 자기의(自己義)와 교만을 직면하며, 누구보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깊은 고백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연구에 관해 온몸으로 고난을 겪으며 자신의 고난과 삶을 성경으로 이해하고 깨닫고자 몸부림친 것이라 말한다. 그 몸부림을 통해서 그는 맡겨진 고난이 구속을 위한 특별한 상급이요, 달란트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달란트는 고난이다. 상급으로 고난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
나는 한 달란트 받은 종인가?
나는 사별과 재혼, 무임목사의 고난을 겪으며 아내와 목회를 빼앗기고 쫓겨난 것 같았다. 빼앗기고, 쫓겨난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억울함과 원망의 감정에 갇혀, 지옥을 살았다. 나도 누구만큼 목회에 열심이었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아내를 간병하며, 남편의 자리를 지켰는데, 나의 현실은 빼앗기고 쫓겨난 한 달란트 받은 종과 다를 것이 없다.
무엇보다 마음 아픈 것은 나의 두 아들이 고난과 수치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아버지로 지켜보는 것이다. 목회와 성경을 연구하는 아버지이지만 두 아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수치로 그늘지고 굳어진 두 아들의 얼굴을 보며, 나는 한 달란트 받은 종인가 하는 괴로움과 답답한 질문에서 이 책이 시작되었다. 답답한 마음에 달란트 비유 말씀과 씨름을 하며,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하나하나 찾아보았다. 그렇게 시작된 씨름이 원고로 이어졌다.
사별 후, 긴 투병으로 지친 나의 마음과 육신, 두 아들의 어두운 얼굴에 다시 회복의 은혜를 주시기를 간절히 구하며, 부르심의 사명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힘겨운 것은 ‘감정고난’이었다. 나는 목회를 위해 청빙과 교회 개척을 위해 수고하기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나의 감정과 현실은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것마저 빼앗긴 채, 밖으로 쫓겨난 한 달란트 받은 종과 같았다. 나는 사별한 아내와 나에게 주시는 특별한 고난이라 여기고 잘 감당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지만, 나의 믿음이 견고하지 못한 것을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마 25:28-30)
나는 한 달란트마저 빼앗기고 쫓겨나 슬피 우는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느껴졌다. 빼앗기고 쫓겨난 피해의식과 종의 감정을 겪어야 하는 고난의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감정 속에서 다섯 달란트를 받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앓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현실은 정말 힘들었다. 정죄와 시기, 교만의 감정으로 고통스러웠다. 때때로 이런 감정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게 남아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자 몸부림쳤다.
그렇게 7년이란 세월을 지나면서 나는 내가 배우고 양육 받은 마태복음 25장 달란트 비유에 대해서 의문이 생겼다. ‘나는 빼앗기고 쫓겨난 존재인가 이것이 과연 말씀인가? 나는 왜 슬피 우는 수치스러운 존재로 살아야 하는가?’ 하는 분이 있었다. 나는 ‘사람들은 마 25장의 달란트 비유를 읽을 때, 어떤 생각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마도 대부분 ‘나는 몇 달란트를 받은 사람일까?’ 하는 질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다섯 달란트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스스로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서 ‘나에게는 왜 다섯 달란트를 주시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과 섭섭함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나에게 다섯 달란트를 주시지 않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기 위해 힘겨운 감정싸움을 싸우기도 할 것이다. 마태복음 25장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은 상대적 빈곤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의 좌절을 잘 보여준다. 이 프레임에 갇힌 사람들에게 달란트 비유는 금수저와 흙수저의 이야기로 들린다. 금수저가 남긴 성공적인 삶을 격려하는 것이 성경의 교훈처럼 보인다. 흙수저들에게 이런 메시지는 거의 폭력이다.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 맡겨진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종에게 주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우리나라의 번영을 이끌어 온 전후 세대는 절대 빈곤의 세대였다. 그들은 많은 고생도 했지만, 성취도(달란트 비유의 말씀과 함께) 누렸다. 반면 현세대는 상대적인 빈곤을 감당해야 하고 성취보다는 좌절을(달란트 비유의 말씀으로 한 번 더) 겪어야 한다. 절대적 빈곤도 고난이지만 소외감과 좌절, 절망에 가두는 상대적 빈곤도 만만치 않은 고난이다.
나는 한 달란트 받은 종의 ‘감정고난’을 겪고 있다. 목사로서 열심을 내었지만, 목회에서 쫓겨난 것 같은 무임 목사의 수치를 감당하고 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빼앗기고 쫓겨난 것처럼, 전처와 나는 건강과 목회를 빼앗기고 쫓겨난 것처럼 보인다. 과연, 마태복음 25장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전처와 나, 나의 두 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달란트 비유는 무엇을 교훈하는 말씀인가? 나는 달란트 비유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달란트는 무엇인가? 에 대한 나의 질문과 답변은 절박했다.
좌절과 절망, 소외감의 고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과 건강과 생명,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빼앗기고, 쫓겨난 ’감정고난‘으로 수고하는 인생들, 특히 가정 고난으로 수고하는 많은 부부와 그의 자녀들과 이 글을 통해 공감과 위로를 전하며 함께 하고 싶다. 상급으로 고난을 받은 충성된 종들에게 공감과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잘하고 있습니다.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2023, 7,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