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권, 나무들의 생명을 앗은 대가로 내 이름자를 새긴 네 번째 소설집을 발간한다.
이미 출간한 두 권의 장편소설까지 포함하면 몇 그루의 나무가 목숨을 잃었는지 알 수 없다. 고맙고 감사하다는 인사부터 드려야 할지,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사죄부터 올려야 할지 문득 망연해진다.
내가 나무의 숨결을 빌려 붙들어놓은 많은 이야기들.
물처럼 흘려보낸들 어땠으리? 바람처럼 날려 보낸들 또 어땠으리?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도 섭섭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아니, 그런 물이나 그런 바람에 대해 알게 뭐람? 출발한 적이 없는데 다다를 곳이 있을 게 뭐람? 발신자가 없는데 수신자가 생겨날 까닭이 뭐람?
늘 이렇게 회의하면서도 난 멈추지 못해왔다.
전생의 업보인 게지, 혹은 타고난 운명인 게지, 하는 따위 검증 불가능한 변명으로 내 소설 쓰기를 정당화하면서.
그러고 보면 누가 뭐래도 그냥 좋은 게지. 이런저런 회의감으로 미안하니 부끄럽니 뇌까리면서도 소설 쓰는 일이 즐거운 게지. 그 도달 지점이 어디든 일단 띄워 보내는 것으로 신나는 게지.
문득 한 생각이 날 사로잡는다.
그렇다면, 그리 좋고 즐겁고 신나는 일이라면 그건 놀이가 아닐 것인가? 놀이에 동무가 없어서야 무슨 맛인가? 함께 하는 것만으로 좋아 죽고 즐거워 죽고 신나 죽을 그런 동무들이 있을까? 옛날옛날 아주 먼 옛날에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에……, 이렇게 훌쩍 현실 세계를 뛰어넘어 머나먼 시공간 어디로든 손잡고 갈 수 있는 그런 동무들이 있을까?
참으로 운 좋게도 이미 찾아낸 듯하다.
글로 엮인 이야기에 가슴이 뛰는 당신, 여전히 책 읽기를 멈출 수 없는 당신, 지금 이 구절을 읽으며 입가에 설핏 미소를 올려보는 당신……, 오래오래 함께 가는 그런 동무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