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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여상 투쟁은 학생회나 특정한 조직이 아닌 평학생들의 분투로 만들어진 투쟁이었고, 우리가 자율적으로 학교를 운영할 때 스스로 1부와 2부의 차별과 불평등을 극복하려 했다는 점 등은 이후 내가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데 하나의 원형적 원칙을 심어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_김소연
난 이미 5월부터 연합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광고협 의장과 함께 수배가 내려져 집은 물론이고 갈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주로 전남대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시위를 기획하고 다른 학교들을 방문해 시위를 독려했다. 학교 당국은 연합집회에 참석하고 학교 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을 찾아 퇴학과 자퇴로 위협했다. 실제로 학교와 부모님에 의해 강제 전학을 당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정부 당국은 어린아이들의 철없는 행위로 우리의 모든 행위를 폄하하고 부모님을 동원해 학교 출입을 막았다. _김대현
한국의 교육 체계에 공동체적 연대 정신이 깃들었던 아주 잠깐의 시공간을 우리 말고는 누구도 기억하지 못한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은 고통을 나누고 저항을 함께 하는 연대에서 비롯할 것이다. 우리의 운동은 딱 그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조용히 잊히고 있다. 아마도 거기에, 대구 고등학생운동이 나에게 부여한 마지막 과업이 있을 것이다. 님 웨일즈가 되어 수많은 김산의 이야기를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적어 알리는 과업이다. 꼭 완수하겠다고 뜨락의 친구들에게 사과하며 약속한다. _안수찬
내가 가입한 비밀 소모임은 한 운동 조직의 고등학생 조직이었는데 보안이 철저한 점조직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대학생, 노동자의 연대 투쟁으로 세상을 바꾸고 고등학생 정치세력화를 통해 교육제도를 개혁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곳이었다. 비밀 소모임의 학습 방식은 체계적이었고 목포에서는 구하기 힘들었던 책들도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선배가 정해준 책을 읽고 학습모임을 진행했다.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결심을 굳힌 뒤로 나는 신촌의 알서림이나 성균관대 근처에 있던 풀무질 등 사회과학 서점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노동조합에 관련한 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고, 꼭 필요한 책은 용돈을 아껴서 구입했다. _김성윤
나는 전교조 교사들을 응원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지지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당시 단식 투쟁 중인 선생님들을 따라 제자인 우리도 도시락을 먹지 말자고 반 친구들에게 제안했다. 반에서 열 명 정도의 친구들이 도시락을 먹지 않았다. 우리가 도시락을 먹지 않고 반납한다는 소문은 금세 퍼졌다. 우리는 도시락을 그대로 교장실 앞에 두었다. 우리들의 도시락 반납 투쟁은 생각한 것보다 효과가 컸다. _양민주
KSCM과 흥고아 같은 공개단체의 중요한 역할은 중고생들이 모이는 ‘기회’와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고등학교운동의 중점적 방향에 대한 의제를 제안하고, 구체화하며, 사회적으로 이슈화하는 스피커 역할을 했다. 단위학교 활동가들의 학교현장에서의 활동을 지원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공개단체는 실무적 역할도 많이 맡게 되었는데, 내가 KSCM 서울연맹 회장을 하던 1990년에만 대외행사를 11번 개최했다. _이형신
많은 고민과 갈등의 흔적이 일기에 쓰여 있지만, 투쟁하는 생산직 노동자로 살겠다는 진로를 선택한 후 내 얼굴에는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말이 적혀 있는 듯했다. 내 삶을 내가 결정하고 선택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가슴 벅찼다. 다른 친구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몰려가는 대학시험을 나 스스로 거부했고, 《꽃들에게 희망을》에 나오는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가 된 애벌레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주체적인 인간이 되었다는 자부심 덕분이었다. _정경화
인간은 서로 연대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 속에서 우리는 잠시 열린 1980년대의 하늘을 함께 엿보았지만, 그 대가치곤 너무 오랫동안 아팠고, 외로웠다. 앞서 이야기했던 열사들의 죽음도 잊히고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창진의 죽음은 그들보다 더 무명의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창진이가 꿈꾸었던 세상을 알고, 그와 같은 꿈을 꾼다. 누군가 내게 왜 그토록 오랫동안 하나의 잡지를 만드는 일에 자신을 불태우고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지금 그 일마저 멈춘다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고 싶다.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고 시시한 후회 따위는 하지 않는 것, 어차피 사람은 그 정도 일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_전성원
징계 수위를 낮추겠다는 학생주임의 방송이 나왔지만 학생들은 퇴학 처분이 철회되지 않는 한 해산하지 않겠다며 팽팽히 맞섰다. 그리고 다시 얼마 뒤 퇴학 처분은 철회하고 근신과 정학으로 수위를 낮추겠다는 방송이 나왔다. 이 정도로 단결된 학생들의 저항은 예상하지 못했다. 스탠드에서 전교생이 울 때 우리도 울었다. 징계를 완전히 철회시키지는 못했지만, 찬란하게 승리한 투쟁이었다.
당연히 이는 학생자치권 투쟁의 승리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날 불의 앞에 물러서지 않고 싸워봤던 경험은 평범한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드물게는 졸업 후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시작했다는 이야기, 더 많게는 소시민으로 살더라도 불의한 일이 있을 때마다 광장에 나가 짧게라도 구호를 외치고 오는 삶을 살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 단결된 힘으로 부당함에 맞서봤던 그 하루가, 자신의 세계관을 바꿨다는 이야기를 30년이 지난 지금도 한번씩 듣는다. _조한진희
들어가는 글_조한진희
생을 건 언행일치를 배우다_김소연(#정화여상 투쟁)
사랑하라! 희망도 없이, 말도 없이……_전성원(#서고련)
어떤 ‘희생’의 기록_김대현(#광고협#광고련#참선대)
어떤 행운_정경화(#흥고아#푸른나무이야기모임)
‘91년세대’의 꿈_김성윤(#흥고아#비합조직)
나의 불온한 사춘기_이형신(#KSCM)
우리의 뜨락_안수찬(#대구민주고등학생모임#전위조직)
1989년 전교조 1세대가 26년 차 전교조 조합원에게_양민주(#전교조)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_김영희(#부고협)
언제나 시작은 눈물로_권정기(#KSCM)
위반한 존재들, 고운 활동가_조한진희(#KSCM#전위조직)
참교육을 넘어 고등학생운동을 기억하기: 고등학생운동 열사와 기억의 정치_전누리
1980~1990년대 고등학생운동의 의미와 현재_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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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전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 비정규직노동자의집 꿀잠 운영위원장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길 위의 독서》 《하루 교양 공부》 등의 저자
김대현: 위민연구원 원장,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실장
정경화: 전 나우정밀 노동조합 부위원장, 전 민주노총 서울본부 총무부장, 노동권익센터 사업안전팀장
김성윤: 전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경기금속지역지회 지회장, 마을공동체운동 활동가
이형신: 전 민주노동당 및 정의당 당직자, 유통업 종사
안수찬: 전 《한겨레》 기자, 전 《한겨레21》 편집장,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양민주: 전 전북 전교조 여성위원장, 전교조 활동가
김영희: 연세대 국문과 교수
권정기: 프로젝트 엔지니어
조한진희: 다른몸들 대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돌봄이 돌보는 세계》(공저), 《질병과 함께 춤을》(공저) 등의 저자
전누리: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객원연구위원, 《우리는 현재다》(공저), 논문 〈고등학생운동 참여자의 사회진출에 관한 연구〉 등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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