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그는 얼굴 앞에 숨겨 두었던 칼을 지닌 그림자였고, 칼을 지닌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고, 때로는 검고 때로는 어두운 단 하나의 그림자였으며, 잉걸불이 움직일 때마다 그의 얼굴이 음험하게 번뜩일 때면, 그는 목구멍에서 소리를 쥐어짜고 주변에 그의 신봉자들이 있다고 상상했으며, 가늘디가는 칼날에 남은 용기를 집결시켜,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거만한 낮은 음역으로, 풍부하지만 믿기 어려운 음역으로 한숨을 요란하게 울리며, 육중한 파동으로 최후의 저주를 내뱉으며, 꺼져 버린 별들보다 더 미약한 음들을 혀끝으로 웅얼대며, 또한 자신의 흩어진 딸들을 생각하며, 그를 저버린 딸들을 생각하며, 영원히 그에게서 멀어지고 사라진 잃어버린 고귀한 딸들을 생각하며, 복수하는 새로운 속삭임의 방식들을 되는대로 만들어 내며, 살해하는 단어와 살해하는 문장들로 이루어진 속삭임들을 고안해 내며, 자신의 짧은 생과 짧은 웃음들과 죽은 자들과 딸들의 추억으로 스스로를 감싸며, 딸들이 그에게 겪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던 미래들을 생각하며, 남아 있는 헛된 거짓말을 칼날에 응축시켜,
찬란한 종착역. 앙투안 볼로딘 지음, 김희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