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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인문/사회과학

이름:신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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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주역단상 上>

교육철학잡기 6 (2023-1)

「교육철학잡기」 여섯 번째, 제6권이다. 2023년 2월까지는 거의 매일 글을 썼으나 3월부터는 일주일에 한두 번이 고작이다. 핑계를 대자면 간단하다. 안동 풍산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사를 하고 집안을 정돈하고, 농토를 정비하여 농사 일까지 하다 보니, 글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이른바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하는 안동의 망천 시우실 마을에서 ‘은둔(隱遁) 아닌 은둔’을 시작한 탓이다. 지난 3년여 동안 엄마, 아내, 장모까지, 모두 이 세상에서의 생을 마감했다. 내 삶의 대들보와 기둥이 허물어졌다. 슬픔은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다른 다짐이 필요했다. 그렇게 생각의 끄트머리에서, 재빨리 결정했다. 피안(彼岸)을 여행 중인 아내를 편하게 영접(迎接)할 수 있는 그리움의 집!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로 세상을 내려다보며, 다시 내 영혼(靈魂)의 대들보와 기둥이 될 수 있는, 그런 자연에 거처하고 싶었다. 그저, 무너진 내 마음의 집을 서둘러 지은 셈이다. 이 시우실 망천에 언제까지 은둔할지는 모르겠다. 내 생의 데미안이 남긴 메시지를 제대로 구현했을 때쯤이면, 이곳을 나설 수 있을까? 이번 「잡기」에는 연초에 다녀온 독일 기행 감상과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그리고 「주역」의 몇몇 구절을 독해했다. 중간중간에 그때그때 일정에 맞춰 느낀 심경을 토로한 글도 몇 개 있다. 4월부터는 화이트헤드의 「사고의 양태」를 심도 있게 검토하며 교육철학적 사색을 고양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형편상 제대로 읽지 못했다. 이 또한 너무나 미안하다. 2023. 8. 처서절(處暑節)에 안동 풍산의 망천 시우실에서

네오 에듀케이션

네오에듀케이션 1판이 나온 지 4년이 조금 지났다. 2019년 8월에 초판이 나왔으니, 2020년 초반부터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이 거의 겹치는 시기에 학생들과 함께 했다. 힘겨운 시간이었다. 교육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양상들이 등장했다. ‘대면’ 수업이냐? ‘비대면’ 수업이냐? ‘동영상 녹화’ 강의냐? ‘실시간 화상’ 강의냐? 등등, 첨단과학기술문명과 더불어 역동성을 더하는 거대한 전환이 교육으로 파고들었다. 그것은 인간 사회 전체를 새로운 카오스(Chaos)의 시공으로 삼키는, 삶의 대전환이었다. 텍스트와 이미지, 오디오와 영상, 검색 엔진과 데이터, 광고와 마케팅, 콘텐츠와 미디어, 금융과 회계, 법률, 디자인 등 사회를 이끌어가는 수많은 영역에서 다양한 분석이 진행되고 있고, 이들은 교육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게 뭐지? 단순하게 변화(變化: change)라는 말로 해소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물결이다. 인간의 ‘수명(壽命)’과 첨단과학(尖端科學)의 두 영역에 관한 현재의 분석을 언급하면서 고심(苦心: 高深)해 본다. 이런 변화 앞에서 ‘교육’은 무엇이어야 할까? 어떤 물결을 타고 가야 할까? 인간의 수명? 젊고 오래 사는 시대가 온다. 인류는 머지않아 30대의 몸으로 150세 이상 살게 된다. 인간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렇게 된다. 노화(老化)와 장수(長壽)에 관한 인식이 전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상당수의 전문가들이 인간의 수명이 파격적으로 연장되고 거의 모든 인류가 장수하는 시대가 온다고 입을 모은다. 인류가 단순히 죽지 않고 오래 사는 상황이 아니라, 노화 자체를 예방하고, 멈추게 만들고, 역전시켜, 젊음을 유지한 채 오래 사는 상태가 온다는 의미다. 150세나 200세까지 살게 된다면, 인생은 어떠해야 하는가? 전통적으로 교육을 인생의 원형적 현상으로 정돈하곤 했는데, 이런 시대의 교육은 무엇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거기에 더해지는 첨단우주과학 기술문명? 인공지능(AI), 그것도 생성형 인공 지능의 문제가 교육에서 뜨거운 논쟁거리다. 특히, 챗 지피티(Chat GPT: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가 문제다. 챗 지피티로 만든 교육의 양상은 스스로 학습하고 사고하여 펼쳐낸 결과물이 아니다. 타인이 대신 만들어준 것과 다름없다. 물론 생성형 인공지능을 교육혁신의 도구로 활용할 수는 있다. 교육의 방식 자체를 전환시킬 수도 있다. 이미 이런 기술을 활용한 교육콘텐츠가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이런 첨단기술 문명의 진보가 인류의 교육을 담보하는가? 이런 상황을 앞에 두고, 교육학 원론에 해당하는 전통 방식의 교재를 다시 출간한다는 것이 매우 엄중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학생들에게 교육(학)에 관한 관점과 교육을 마주하는 자세를 소통해야 하는 것이 교육자의 임무 아니던가! 균형 잡힌 시각과 비판적 태도,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진보적 자세를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하며, 초판에 없던 내용을 상당 부분 보완했다. 기본적으로 초판의 체제를 유지하되, 초판에 없던 동양의 전통 교육, 평생교육(성인교육), 교사에 관한 내용 등을 집중적으로 추가하였다. 또한 매 강의마다 논의를 보다 활성화하기 위해 논쟁의 양식을 바꾸었다. 초판에서 제시했던 ‘강(講)-습(習)-토(討)-론(論)’의 양식은 학생들에게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전통 수업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새롭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서 고등교육의 참 맛을 보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이를 단순화하고 명확한 형식으로 전환하여, 매주 수업에서 활성화를 기하도록 고민했다. 교육을 이해하고 응용하는 학생들의 성장과 진보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개정판을 제안해준 박영스토리 노현 대표와 편집을 맡아 고생해 준 배근하 선생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바이러스를 품은 명상

1. 이 글은 2018년 8월 15일부터 2020년 4월 5일까지 약 20개월 600여 일 간의 바이러스 시대에, 연구하고 교육하고 봉사한 내용을, 페이스북을 시작하며 올린, 순수한 나 개인의 학문 수상록이다. 2. 이 명상록은 아주 짧은 기간의 상황을 정돈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드러난 사유와 실천의 흔적은 50여 년을 살아온, 내 삶의 축소판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아마, 죽는 날까지도, 내 인생의 범주는 큰 변화 없이 이런 삶의 반복일 확률이 대단히 높다. 확률이 아니라, 그럴 것이다. 현재 상황으로 볼 때, 다른 일은 할 줄 아는 게 없다! 정말이다! 3. 명상록의 내용은 페이스북에 올린 사항을 가능한 한 그대로 옮겼다. 필요에 따라 다른 기록을 보며, 약간 보완하였다. 그만큼 나 개인의 감정과 이성이 점철(點綴)되어 있고, 연구 노트와 독서 기록 중심으로 정돈되었다. 관심 없는 분들에게는,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상당히 있으리라. 책으로 펴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페이스북에서 나누지 못한 인생을, 세상의 다른 친구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논리적인 글이 아니라 명상록이므로, 아무 곳이나 펼쳐, 읽고 싶은대로 읽고 공감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4. 나는 평생 학인(學人)으로 살았다. 학문이나 교육 이외에 세상 사람들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남들은 능수능란하게 수행하는 사업을 잘하지도 못하고, 기술과 기능을 제대로 익힌 것도 거의 없다. 직립보행(直立步行) 이외에는 취미도 아예 없다.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만큼 잘 속아 넘어 간다. 요즘처럼 가짜뉴스가 판치는 시대에는, ‘사실-현실-진실’을 도무지 파악하지 못하는, 지적 저능아로 전락하기 쉽다! 5. 학문에 종사하지 않는 분 가운데, 이 명상록을 끝까지 읽고 싶은 분은, 쉽게 생각하고 읽으시라! 별것 없다! 에세이에서 언급한 ‘학문’, ‘연구’, ‘교육’과 같은 용어를, 자신이 종사하는 일로 전환하여 이해하면 그만이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어떤 ‘거래’를 할 때, 그 ‘거래’를 그냥 ‘학문’이나 ‘연구’와 맞바꾸어 읽으면 된다. 6. 명상에서 인용한 고전(古典)의 문장은 원문을 줄이기도 하고, 번역 과정에서 현대적 의미로 의역하기도 했다. 필요에 따라 이해하기 쉽게 끊어 읽었다. 명상의 깊이와 폭을 고려하여, 일부러 한자나 영어 등을 많이 썼다. 지나치게 쉼표(,), 느낌표(!), 물음표(?) 등도 넣어, 끊어 쓰기를 심하게 만들었다. 한 숨 돌리면서 생각해 보려고. 현재의 문법이나 맞춤법에 의거한 글쓰기로 보면, 빵(0)점에 가까운 글이 될 수도 있다. 깔끔하게 글 쓰는 사람들은 비난하겠지? 관계없다! 나만의 감수성과 논리성을 담은 글이므로. 너무 명료해 보이면, 명상록이나 수상록으로서 맛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이런 착각도 해 봤다. 7. 세상은 늘 어지러웠다. 인간이 세상을 응시하는 한, 난세(亂世)가 아닌 적이 없다! 공존공생(共存共生)을 추구한 이상적 사회 질서를 의식하며,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태평(太平)시대라고 내세우는, 중국 고대의 요·순(堯·舜) 때도 평온한 시대는 아니었다고 판단한다. 인류의 이상을 평안(平安)하게 담으려고 ‘요·순’이라는 기준을 설정했을 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완전한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 현실은 늘 갈등과 투쟁의 강물이 흐른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완만하냐? 급물살이냐? 8. 인간은 늙어갈수록 이상을 꿈꿔서는 곤란하다. 현실을 열심히 살자! 지난 4년간 내가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어 깨달은 진실은 그것뿐이다! 9. 다시, 나는 바이러스로 인해 삶을 새롭게 깨달았다. 최소한 4년째 그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에 관한 내용은 이 명상록을 엮어나가면서 수시로 언급할 것이다. 10. 바이러스가 창궐(猖獗)하는 시대에, 보잘 것 없는 한 학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세상을 위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 2020. 4. 곡우절(穀雨節) 왕숙천이 내려다 보이는 청옹정사(淸瓮精舍)에서

세계 종교의 교육적 독해

일반인들에게 '종교(宗敎)'에 대해 물으면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어떤 사람은 '종교란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 믿으면서 삶에 위안을 얻는 것'이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마음을 닦고 정신을 수양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또한 조금이나마 지적 수준을 가미하여 말할 때는 '현세에서 위로와 격려를 받고 내세에 평화를 구축하는 일', '불합리하거나 불안정한 사회 현실을 바로잡으려는 이상', 나아가 '지상 낙원(樂園)이나 지상 천국(天國)을 건설하려는 의도'로 이해하기도 한다. 어쨌건 종교는 참으로 정의하기 곤란한, 난제(難題)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가 종교라고 명명할 때, 분명한 사실은, 그 종교를 창시한 '교주(敎主)'가 있고, 그 종교의 기본 경전을 통해 형성된 '교리(敎理)'가 있으며, 그 종교를 신봉하는 '신도(信徒)'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종교는 우주를 창조한 신을 공경하고 그가 지시하는 법도와 계명을 지키며 영원한 행복을 추구할 내세가 있다. 이런 종교적 삶의 과정에 '교육(敎育)'은 필수 요소로 개입한다. 어떤 종교가 그 종교 속에 '교육'이라는 개념을 함축하고 있건 없건 관계없이, 그 종교는 나름대로 지향하는 삶을 형성해야 하므로 종교는 '교육'이라는 실천 행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종교'와 '교육'은 최소한 유사하거나 동일한 양상을 띤다. 물론 근대 학교교육의 차원으로 교육을 이해한다면, 종교와 교육은 엄연히 다르다. 이 책은 세계의 주요 종교인, 유교·불교·힌두교·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등 전체 6개 종교에 대해, 각각의 종교가 지닌 특성과 그에 근거한 교육을 개략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2018년 2학기 고려대학교 대학원의 <종교교육철학> 강좌에서 논의한 내용을 정돈하였다. 이 가운데 불교·힌두교·유대교는 학술지에 발표한 후 그 내용을 수정 보완하였고, 유교·기독교·이슬람교는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교육적 의의가 있는 부분을 정리하여 실었다. <중략> 탐구의 과정에서 종교와 교육에 관한 여러 사안을 많이 느끼고 또 배웠다. 그 배움의 원천은 <참고문헌>에 인용한 자료에서 밝혀놓았듯이 선학들의 연구에 힘입은 바 크다. 근거 자료에 대해서는 최대한 출처를 명기했으나 본의 아니게 빠트린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은 모두 저자들의 책임이다. 내용상 오류가 있다면 애정 어린 질정을 부탁한다. 세계의 종교 가운데 '도교(道敎)'를 비롯하여 의미 있는 종교들이 많이 있지만, 여러 가지 제약 상 여기에서 다루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여유가 되면 다음 기회에 보완하려고 한다. 어쨌건 현재 한국의 종교계나 교육계에서 한 두 종교를 제외하고는 세계의 주요 종교를 교육적으로 독해한 연구 자료가 많지 않다. 이런 시점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이 책을 통해 세계의 여러 종교를 교육적으로, 또는 교육학의 영역에서 조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숙빈 최씨, 영조를 가르치다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학부모들은 그런 속담을 의미 없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개천'이라는 형편없는 교육여건에서 어찌 성공을 상징하는 '용'을 길러낼 수 있을까? 어림없는 소리! 시대가 바뀌었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판단됩니다.그래도 저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 자체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개천이니까요. 어떤 차원에서 보면 우리 모두는 아주 척박한 환경, 개천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람 냄새가 사라지고 기계와 정보의 썩은 내음, 물질은, 그 자체가 정말 하나의 개천입니다. 이런 개천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나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시대에 '용'은 누구일까요? 대통령이나 고시에 합격한 사람들, 혹은 기업체 사장들일까요? 그들도 '용상'에 앉은 사람일 수 있지만, 다양한 직업의 세계에서 열정을 보이며,자기 세계를 구축하여 타자와 더불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이른바, 교육받은 지성인들. 우리 시대는 정말 무엇이 중심이고, 핵심이고, 성공의 잣대인지, 획일적으로 얘기하기 힘듭니다. 본문에서 다루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수많은 아웃사이더outsiders와 아웃라이어outliers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삶을 엮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실, 21세기 판 개천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개천에서 용이 나야 합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우리 아이들은 지금 엄청나게 진흙탕으로 요동치는 교육의 개천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부모로서 자녀에게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러시아의 세계적인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아이들 앞에서 하는 말과 행동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의미심장하게 보여줍니다. 날마다 시간마다 당신의 모습이 올바른지 살펴보시오. 당신은 더럽고 추한 말을 하며 악의에 찬 마음으로 어린 아이 곁을 지나갑니다. 당신은 그 아이를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그 아이는 당신을 보았고 당신의 고상하지 못하고 비천한 이미지가 무방비상태인 그 아이의 마음에 남았을 것입니다. 당신은 알지 못하겠지만 당신은 그 아이에게 악한 씨를 뿌린 것이며 그 씨는 자라고 있을 것입니다. 이 모두가 당신이 적극적이며 따뜻한 사랑을 마음에 키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아이들, 당신들의 자녀는 이 땅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잘 자라고 있다고 믿어야겠지요? 많은 아이들이 최고를 지향하고, 개성을 발휘하려고 하며, 경쟁력을 화두로 잡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며, 스케줄 관리에 들어갑니다. 이보다 더 큰 자식사랑은 없겠지요! 혹 이런 자식사랑이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한 "악의 씨"는 아닌가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가두는. 제가 이 책에서 말하려는 내용은 조선 역사에서 찾아본 하나의 교육 사례입니다. 조선 후기의 숙종, 장희빈, 최숙빈, 경종과 영조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최고지도자, 어머니=하층민, 혹은 평민, 자식=세자와 세제. 이들이 주인공입니다. 내용의 핵심은 하층민 어머니의 겸손과 인내, 관용과 용기가 자식을 최고지도자로 만들었을 것이라는 일종의 추측입니다. 그 반대의 사례도 함께 찾아보았습니다. 그들의 삶은 아주 서글프고 애처롭고, 분노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흔히 말하듯이, 참 드라마틱 합니다. 그러다 보니, 역사적 사실과 시대 배경, 교육적 가치 추구와 지향, 당쟁과 인물 비평, 교육적 성공과 실패 등이 문득 문득 제시됩니다.그렇다고 소설도 아니고, 심각한 학술전문서도 아닙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학술적 내용이 담긴 전문 교양서가 되었습니다. 본서는 조선 후기 숙종 때부터 영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적 사건들, 그 속에서 추정해본 교육적 가치들을 담았습니다. 조선의 3대 성군聖君으로 존경 받는 영조. 어머니로부터 비롯되는 그의 삶 자체가 아웃라이어였습니다. 정통 왕위 계승자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개천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조선 최고의 임금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 저력이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도 있었겠지만,어머니의 교육이 뒷받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영조의 어머니가 구체적으로 어떤 교육을 했는지 파악할 수 없지만, 교육적 가치를 개입하면서 다양하게 추측해 보았습니다. 본서를 꾸미면서 많은 자료가 인용되었습니다. 참고문헌에 밝혀 놓았습니다만, 학술서적처럼 일일이 주석을 달거나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좀더 쉽게 읽기 위한 방편으로 그렇게 했습니다만, 선학들의 연구나 저작이 없었다면 애당초 불가능한 작업이었습니다. 선행 자료를 만드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모쪼록 본서를 통해, 역사 속에서 교육을 어떻게 추출할 수 있는지, 여전히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유효하다면, 개천에서 용상으로 진입할 수 있는 덕목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기를 소망합니다.

요즘 생각으로 풀어 쓴 옛날 공부책

단순하고 명쾌한 옛날 공부법을 익히면 어느새 ‘공부의 왕도’에 눈 뜨게 될 것이다! 아마, 유교의 전통 공부법 전반에 관해 한글로 소개하는 국내 최초의 책일지도 모르겠다. 독자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서기 위해, 제목을 ‘옛날 공부책’으로 붙였다. 여기에서 독자 여러분들은 전통 공부 양식을 현대화하고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옛날 유학의 지성들은 어떻게 공부했을까? 그들이 성현으로 존경받고 투철한 선비정신을 지닐 수 있었던 교육적 기저에 무엇이 있었을까? 정말 공부는 어떻게 하는 걸까? 이 책은 그런 부분에 대한 진지한 안내서이자 실천적 지침이다. 일생을 가로지르는 ‘배움’이라는 우리 삶의 물음표에 답하기 위한 유교 전통 지성들의 진정 어린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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