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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어린이/유아

이름:김성범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직업:동화작가

최근작
2024년 1월 <어린이 도서관>

도깨비살

집을 들고 날 때 꼭 보이는 '도깨비살' 팻말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도깨비를 생각하게 되었지요. 도깨비를 조각하다 보니 도깨비를 동화로 쓰고 싶어졌답니다. 이야기를 어떻게 쓸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던 어느 날, 도깨비살에 직접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있는 풀숲에서 우연히 물새 한 마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잔금이 무수히 간 붉은 도깨비 돌도 주웠어요. 그 돌을 가져 와서 책상에 오려놓자 막혔던 이야기가 단숨에 써졌답니다.

몽어

‘생명과 죽음의 이름, 몽어’ 이 머리말을 쓰기 위해 동화 <몽어>를 삼 년 만에 꺼내어 다시 읽었습니다. 이 작품이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 시간이 무려 삼 년이나 걸렸다는 뜻이지요. 기다리는 게 마냥 지루했는데, 왜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썼지만 다시 읽어 내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 동화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마음이 아프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화가가 한 장면, 한 장면을 그리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헤아려졌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건 언젠가 죽는다는 뜻과 같습니다. 꼭 헤어져야만 하는 일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헤어지든 슬프지 않은 헤어짐은 없습니다. 특히나 어린이와의 헤어짐은 ‘슬프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일이지요. 마음이 미어지고 미어지다 못해 새까맣게 타 버려서 숯덩이가 된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일상에서는 이러한 헤어짐이 숱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린이라고 비켜설 수 없는 일이지요. 어른들한테 일어난 꼭 그만큼, 어린이들한테도 일어나는 게 세상일입니다. 숨겨야 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고, 숨겨지지도 않을 일입니다. 그런데도 어린이라고 짐짓 모른 척, 아닌 척, 슬쩍 넘어가는 일이 있습니다. ‘몽어’로 죽음을 드러내어 보았습니다. 특히 어린이의 가장 아픈 마음을 드러 내놓기 위해서 동생과 엄마의 죽음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이가 혼자서 감당해 낼 이야기는 아닐 성싶기도 합니다. 이 글을 어린이들과 함께 읽고 여럿이 진솔한 마음으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섬진강에서 기다립니다. 어린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몽어를 기다립니다.

어린이 도서관

많은 어린이들이, 많은 어른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가 되었으면 합니다. 어린이들이 동요보다 대중가요를 더 즐겨 부르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거든요. 올해는 우리나라에 창작동요 <반달>이 생겨난 지 100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동요가 다시 한 번 온 세상 사람들 마음에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틈새에 <김옥애 & 김성범 동요집>도 한자리를 잡았으면 좋겠고요.

콧구멍으로 웃었다가 콧구멍이 기억한다

월평이와 신기가 도깨비 마을로 이사를 온 날 조용한 산골에 염소 목소리가 음매에에 울려 퍼지고 난 염소 앞에 쪼그려 앉자마자 맘먹었습니다. 요 녀석들을 주인공으로 동화를 한 편 써 봐야지, 했는데 시가 되었네요. 염소들이 나한테는 이야기보단 시였던가 봅니다. 그럼에도 일기처럼 시를 쓴 까닭에 정리해 놓고 보니 동화처럼 읽혀집니다. 월평이는 나에게 특별했습니다. 내가 짝사랑을 했다고 해야겠네요.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월평이 생각이 났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에는 영원이란 건 있을 수 없는 까닭에 이별을 했습니다. 그래서 월평이와 이야기가 끝났고, 동시집으로 엮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월평이와 마지막 글이 되려나? 생각을 하니 울컥, 눈물이 나오려고 하네요. 밖으로 나섭니다. 월평이와 신기와 범실이가 살았던 집에 가 봐야겠습니다. 그래, 그동안 너희들 때문에 얼마나 행복했는지, 고맙다. - 시인의 말 중에서

품안의 숲, 따숲네

덩어리 시간 속으로 들어가다 이 글은 산으로 들어와 살게 되면서 쓰기 시작한 글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산에서 살겠다고 되뇌었지만 참말로 산속에 거처를 옮기려고 계획을 세우자, 걱정을 넘어 두려움까지 엄습했습니다. 눈 딱 감고 저질렀지요. 품격 있게 말하면 용기를 냈습니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생활하는 것이 거추장스럽거나 능숙하지 못한 까닭이었겠지요. 승용차도 들어올 수 없는 깊은 곳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기로 했습니다. 글 쓰고, 조각하고, 동요를 지으면서요. 그러다가 언젠가 내가 세상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장소가 되어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이 점점 가상공간화 되어가는 게 못마땅했으니까요. 어린이들에게 자연과 친해져 볼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었지요. 이곳에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일기를 썼습니다. bumstar란 닉네임으로 홈페이지를 개설해 놓고 ‘섬진강 일기’란 방에다 하루의 일과를 두서없이 썼습니다. 그러다가 굳이 홈페이지를 유지할 의미가 없었던 까닭에 폐쇄해버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시절이 그리워졌습니다. 자연과 처음으로 접하면서 느낀 새롭거나 신비로움을 기록해놓은 것이었으니까요. 다시는 그때의 그 마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대단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아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나! 20년이 지난 지금, 그 파일을 받아놓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찬찬히 읽어봅니다. 이제 이곳은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들랑거리는 ‘섬진강 도깨비마을’이란 문화예술기업 겸 숲체험원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돌이켜보니 내가 처음 이곳으로 들어오면서 했던 생각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서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순간에 이 글이 나에게 왔을까 생각해봅니다. 코로나19 시대가 왔습니다. 메르스·사스뿐만 아니라 집중호우로 인한 섬진강의 범람이 나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사람들의 무분별한 환경착취에 대한 지구의 보복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입니다. 대비하기엔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닐까, 조바심이 들기도 합니다. 이렇듯 거창한 생각도 해보지만 소소하게 바라보면 나에게 산골생활이란 결코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꽤 감동적이었고 내 삶에서 이보다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은 없었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았는데… 덩어리 시간이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세상 살면서 늘 촘촘하게 짜인 시간표 안에서 어긋나지 않도록 스스로 나를 다그쳤는데, 이곳에서는 덩어리 시간이 주어진 것입니다. 난 산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덩어리 시간으로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덩어리 시간은 나에게 수많은 선물보따리를 풀어 놓았습니다. 온전한 시간을 갖게 되자 자연스레 주위를 살펴보면서 관찰하게 되었고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는 틈이 생겨났습니다. 풀과 나무, 곤충과 산짐승들! 수많은 생명들의 일어서고 스러짐은 신비롭지 않을 수 없었지요. 자연에 대한 기쁨과 즐거움, 경외가 늘 함께 있을 수밖에요. 이러한 생활 속의 감동들이 나를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로 만들어놓았습니다. 혹시, 세상 사는 일이 무료하거나, 힘들거나, 산골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글이 응원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섬진강 도깨비마을에서 - 펴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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