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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종교/역학

이름:박영선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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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욥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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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란 무엇인가

이 책은 일병목회연구소 2023년 특별 강좌에서 강의한 내용입니다. 강의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룬 것은, 신앙이란 믿고 안 믿고 또는 잘 믿고 잘 안 믿고 하는 식의 이분법적 이해를 뛰어넘어, 현실이라는 과정과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자라나는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자라난다는 것은 나이를 비롯해 각각의 특별한 경험과 실수와 후회가 누적되어 성숙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진실한 신앙이라면 자책과 절망이 없어야 된다는 생각은 기대와 소원일 뿐, 현실에서는 모두가 자책과 막막함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심사 위원처럼 우리와 거리를 두고 우리에게 잘잘못에 따라 보상과 처벌을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시고 인도하시고 깨우치셔서 완성과 영광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서 완성과 영광은 기능을 연마하거나 성공을 이루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명예와 그로 인한 만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는 현실 속에서 만들어지는데, 그것이 우리의 기대와 너무 달라서 막막하고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현실이란, 죄와 사망을 해결하는 승리를 누리거나 도덕적으로 옳은 것을 선택하는 자리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 우리가 하나님과 사랑과 믿음을 나누는 관계를 맺으며 그런 신분과 실력을 가지게 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심판관의 역할을 넘어, 당신의 의지와 목적을 가지고 우리에게 현실의 과정을 허락하신다는 것과 신앙의 완성이란 다만 잘잘못으로 이분화되는 것을 넘어 신자의 명예와 영광이라는 존재에 걸맞은 실력을 가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실력은 분별과 선행과 책임으로 쌓아 가는 것이며, 인격과 성품으로 결실합니다. 책임을 제대로 지려면 지혜가 필요하고 지혜는 경험 속에서 겪은 시행착오 끝에 생기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도덕과 치성이라는 명분적 추상 명사가 아니라 실제로 살아 내는 것이며, 실존적 책임으로서 실력을 갖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통찰을 갖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기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신비입니다. 2024년 2월 - 서문

내려온 떡

이 설교집은 30년 전에 남포교회를 막 개척할 때 했던 요한복음 설교입니다. 설익은 시절 단 하나의 진심만을 붙잡았던 그때는 성경을, 기독교 신앙을 무엇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성경 말씀을 들이댔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신앙인들 각자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신앙을 확인하는 여정이 동일하거나 획일적일 수는 없지만 그 모든 고백과 감동은 오직 예수로 귀결됨을 실감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것, 알아 가는 것, 이해하는 것이 신앙의 진수이며 위대한 인생이라고 증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열정과 순진한 증언으로 이 사실을 전한 설교가 일흔을 바라보는 지금의 눈에는 신기하기만 합니다. 우리의 설명과 도전에는, 경험이 쌓이며 어떤 기술적 진전이 있었는지 몰라도 우리가 증언하는 구세주 예수는 오늘이나 내일이나 언제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진리에 새삼스레 북받칩니다. 우리의 설명보다 우선하는 그의 성실과 자비와 사랑과 권능이 주권과 섭리로써 역사와 모든 인생에 함께하셨음을 봅니다. 그 거룩하심과 위대하심에 동참하라는 한결같은 성의와 사랑을 거듭 확인합니다. 기꺼이 모든 것을 바쳐 섬기며 기뻐하겠습니다.

다시 보는 로마서 (반양장)

저는 보수적인 장로교회에서 성장했습니다. 나중에 돌아보니 제가 자라난 품은 개혁주의 신앙으로, 성경 계시에 뿌리박고 역사적으로 검증된 위대한 신앙 유산을 담은 곳이었습니다. 제 신학적 기초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죄로 인한 인간의 재난이라는 주제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 주제의 중요성을 깨닫는 데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으로부터 받은 도움이 큽니다. 인간의 관점으로 계시에 접근하면 성경이 얼마나 협소하게 되고 우리가 혼란에 빠지는지도 그분에게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저는 전통적 기독교 유산의 후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배워 온 신앙은 제 존재와 정체를 형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어떤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에 대해 현실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제 고민은 신앙의 유산들에 동의할 수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잘 배워 마음에 담았으나, 배운 신앙을 실제로 실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를테면, 옳은 것을 아는 것과 옳게 사는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로마서를 읽을 때도, 복음을 이해는 하지만 복음이 현실과 어떻게 연결되는가가 언제나 문제였습니다. 이제 돌아보면, 그 고민은 신앙 여정에서 시간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아직 분명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삶은 전후가 있는 과정입니다. 그러니 옳은 것을 안다고 해도 옳게 되는 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런 시간차를 고려하지 못하면 신앙은 삶을 포괄하지 못한 채 명분이나 윤리적 덕목으로 왜소화됩니다. 저는 폴 악트마이어의 로마서 주석을 만나면서, 신앙은 시간이라는 컨텍스트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임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은 외우고 주장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삶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 보고 살아 내는 구체적 진실이지요. 우리가 받은 신앙 유산들도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현실 속에서 경험은 누적되어 전통으로 쌓이고 외면할 수 없는 역사가 형성됩니다. 로마서는 구원을 설명하고 신앙적 삶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별개의 두 주제가 아니라 일관성을 갖고 이어지는 한 흐름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윤리는 어떤 명분이나 덕목같이 삶의 한 부분만 차지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인생으로 살아 보는 명예를 누리는 것입니다. 신자의 삶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외적 증거나 유능하게 해 내야 할 임무가 아닙니다. 인생이라는 계속되는 현실 속에서 누리는, 성도에게 허락된 위대함입니다. 예수께서 이루신 것이 무엇인지 우리도 경험해 보라는 복된 초대이기도 합니다. 삶이 고통스런 것은 삶의 정황이 늘 텍스트인 예수를 거스르고 그를 믿는 일을 위협하는 탓입니다. 그러나 어떤 고통스러운 삶의 현실도 오히려 텍스트를 더욱 찬란하게 만듭니다. 어떤 컨텍스트에도 예수는 찾아가 깊은 은혜를 펼쳐 내십니다. 이것을 안다면 신자의 인생은 분노와 원망 그리고 자랑을 넘어설 수 있고 드디어 감사와 찬송이 됩니다. 그것이 믿어지십니까. 이제 함께 확인해 보시지요. 2015년 1월 - 머리말

다시 보는 히브리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창조와 구속의 목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단번에 얻은 구원은 영광된 완성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입니다. 어린아이는 온전한 존재로 태어났으나 자라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악된 세상 속에서 원망과 혼란까지 느끼며 지나는 성숙의 과정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렇게 성숙해 갑니다. 많은 성도가 천국에 들어갈 것을 확신하면서도 골치 아프고 대책 없는 오늘의 인생에 대해서는 불만입니다. 반복되는 오늘이라는 현실에 반발하고 체념하면서, 성숙으로 나아갈 기회와 책임을 변명으로 얼버무립니다. 이 오늘이라는 시간을 사는 일에 대해 히브리서가 가르칩니다. 예수의 대제사장직은 오늘을 사는 성도를 위한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잘잘못이라는 간단한 이분법으로 판정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평안이 쉽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키워 영광에 이르게 하려고 나날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구속 역사를 이루시려 합니다. 당신의 동역자로 우리를 불러 가장 기뻐하시는 존재로 만들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존심이나 우월감, 능력이나 쓸모 같은 것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과 믿음의 상대, 기쁨이 넘치는 영광의 가족으로 대접하십니다. 2020 가을 박영선

로마서

본 교재는 박영선 목사의 강해 설교집인 《박영선의 다시 보는 로마서》를 저본으로 하여 교회 소모임 공부 교재로 준비되었습니다. 로마서를 더 깊이 공부하길 원하는 분은 위의 설교집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공부를 통해 신앙의 핵심을 되새기고 보다 풍성한 신자의 삶 누리기를 빕니다.

로마서 3

본 교재는 남포교회 구역 모임을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박영선 목사의 로마서 강해 설교집인 《박영선의 다시 보는 로마서》를 저본으로, 신앙생활에서 잊지 말아야 할 신앙의 요점과 교회 생활을 하며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점들을 염두에 두고 열한 장을 가려 뽑았습니다. 로마서를 더 깊이 공부하길 원하는 분은 위의 설교집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공부를 통해 신앙의 핵심을 되새기고 더욱 풍성한 교회 생활을 누리기를 빕니다.

박영선의 욥기 설교

욥기는 흥미로운 책입니다. 욥기의 시대 배경을 사사 시대일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사사 시대라면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시대상이 난무하던 때입니다. 이 난맥상 속에서, 그 학자들의 추정 이 옳다면, 하나님은 욥을 들어 자신의 성실하심과 은혜의 능력을 증거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욥기는 사사기나 룻기와 달리 창조의 능력을 들어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윤리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과응보가 가지는 보응의 원리, 권선징악으로 대표되는 윤리적 가치,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샤머니즘이 그것들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이라면서도 이런 것들을 벗지 못한 채 하나님과 그분의 권위나 의지나 계획을 도외시할 때가 많습니다. 스스로 세운 이상과 윤리를 신앙의 핵심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이해했거나 소원한 것에 몰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여 성경과 다른 종교를 만들어 내고 거기에 매달림으로써 참으로 헛된 고생을 합니다. 욥기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창조 세계의 모든 존재와 그 질서와 내용과 목적이 하나님에게로 말미암는다고 말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욥이 어떻게 알게 되느 냐 하는 것이 욥기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종교의 부족함을 알게 되는 데서 출발합니다. 윤리와 도덕, 종교와 헌신을 기울여도 행복과 평화라는 답은 얻어지지 않습니다. 욥은 뜬금없이 극심한 고난 속으로 들어갑니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요? 그의 친구들은 욥이 잘못하여 벌을 받는 것이라고 거듭 주장합니다. 그러나 욥은 그것을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벌을 불러올 잘못된 원인이 자신에게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반박은 했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다른 설명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납득할 수 없는 현실에서 그는 자연주의자들처럼 체념한 채 살아가거나 아니면 죽어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막다른 현실에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줄곧 자신이 만든 피조물들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들의 존재와 가치와 의미가 하나님에게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것들을 존재하게 하셨듯이 그분이, 피조물의 존재 의미와 목적과 결과의 주인이라고 하십니다. 창조 세계는 필요와 원리의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른 실재입니다. 창조 세계는 물질의 존재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하나님의 기쁘신 영광을 담아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곧 피조물의 영광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 지점에서 욥이 마침내 고백하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즉 그는 창조의 능력과 신비와 영광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체적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안고서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눅 2:30)라고 고백하듯이 말입니다.

박영선의 욥기 설교

욥기는 흥미로운 책입니다. 그 시대 배경을 사사 시대일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사사 시대라면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시대상이 난무하던 때입니다. 이 난맥상 속에서, 그 학자들의 추정 이 옳다면, 하나님은 욥을 들어 자신의 성실하심과 은혜의 능력을 증거하신 셈입니다. 그런데 욥기는 사사기나 룻기와 달리 창조의 능력을 들어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윤리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과응보가 가지는 보응의 원리, 권선징악으로 대표되는 윤리적 가치,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샤머니즘이 그것들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이라면서도 이런 것들을 벗지 못한 채 하나님과 그분의 권위나 의지나 계획을 도외시할 때가 많습니다. 스스로 세운 이상과 윤리를 신앙의 핵심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이해했거나 소원한 것에 몰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여 성경과 다른 종교를 만들어 내고 거기에 매달림으로써 참으로 헛된 고생을 합니다. 욥기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창조 세계의 모든 존재와 그 질서와 내용과 목적이 하나님에게로 말미암는다고 말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욥이 어떻게 알게 되느 냐 하는 것이 욥기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종교의 부족함을 알게 되는 데서 출발합니다. 윤리와 도덕, 열심과 헌신을 기울여도 행복과 평화라는 답은 얻어지지 않습니다. 욥은 뜬금없이 극심한 고난 속으로 들어갑니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요? 그의 친구들은 욥이 잘못하여 벌을 받는 것이라고 거듭 주장합니다. 그러나 욥은 그것을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벌을 불러올 잘못된 원인이 자신에게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반박은 했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다른 설명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납득할 수 없는 현실에서 그는 자연주의자들처럼 체념한 채 살아가거나 아니면 죽어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막다른 현실에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줄곧 자신이 만든 피조물들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들의 존재와 가치와 의미가 하나님에게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것들을 존재하게 하셨듯이 그분이 피조물의 존재 의미와 목적과 결과의 주인이라고 하십니다. 창조 세계는 필요와 원리의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른 실재입니다. 창조 세계는 물질의 존재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하나님의 기쁘신 영광을 담아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곧 피조물의 영광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 지점에서 욥이 마침내 고백하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즉 그는 창조의 능력과 신비와 영광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체적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안고서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눅 2:30)라고 고백하듯이 말입니다. 욥기는 모든 기독교 신앙인들에게 한번은 풀고 가야 할 숙제였습니다. 이제 그 길을 하나 뚫은 기분입니다. 후배들이 그 길을 포장하고 번지수를 달고 개선하고 더 쓸모 있는 길이 되게 해 주기를 빌어 봅니다.

박영선의 이사야 읽기

이 책은 이사야서를 읽어 나갈 수 있는 안목을 제시합니다. 몇 해 전 설교한 《다시 보는 로마서》에서는 시간의 역순을 설명했고, 《욥기 설교》에서는 인과응보의 법칙을 극복하는 창조 질서를 제시하여 그 성경들을 읽어 갈 안목으로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 책 《박영선의 이사야 읽기》는 제3차 세계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제3차 세계관을 소개하여, 신자는 율법과 은혜의 차원을 넘어 자유와 책임의 자리 곧 명예로운 신앙의 경지로 초대되었음을 알려 줍니다. 신앙에서 책임이나 자유를 말하면 도전이 되기도 하지만, 대개 체념으로 끝나기 쉽습니다. 그러나 결단코 체념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는 신자의 운명을 3차 세계관은 보여 줍니다. 기독교 신앙은 궁극적 승리를 약속해 줍니다. 하지만 넘치는 감격과 소원으로 시작한 신앙 인생이 왜 어려움을 겪는 현실로 귀결되는지에 대해서는 한국 교회가 여전히 외면하고 있습니다. 신앙이 오늘을 사는 신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다만 내세로 미루어진 운명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우리가 구원이 현실에서 무엇을 약속하고 의도했는가에 대해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이라는 현실이 책임과 명예로 결실할 수 있는 얼마나 놀랍고 귀한 기회인지를 여기 소개하였습니다. 읽고 힘을 얻어 각자의 오늘을 영광되게 살아 내십시오.

안목

?저자 서문 신앙 인생을 잘 살아 내려면 안목이 필요하고 또 중요합니다. 몇 해 전, 출간한 《인생》(무근검, 2017)을 통해 ‘기독교, 그 영광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자리를 보았다면, 이번 책 《안목》을 통해서는 영광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통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안목이 중요한 주제로 떠오른 것은 이사야서 강해를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방대한 이사야서를 헤매지 않고 성경이 말하는 대로 읽어 내기 위해서는 바른 안목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이사야서를 잘 읽어 내기 위한 안목에서 시작하였으나, 결국 신자의 인생과 하나님의 일하심을 어떤 안목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하는 주제로 확장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사야 읽기에만 한정된 주제로 이해될 수 있는 기존 제목 《박영선의 이사야 읽기》 대신, 《안목》이라는 제목으로 다듬었습니다. 몇 해 전에 설교한 <다시 보는 로마서>에서 시간의 역순을, <욥기 설교>에서 인과응보의 법칙을 극복하는 창조 질서를 발견했다면, <다시 보는 이사야>를 통해 저는 안목의 중요성을 발견했고, 이를 강조하고자 전면에 드러낸 셈입니다. 이 책 《안목》에서는 제3차 세계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제3차 세계관을 소개하여, 신자는 율법과 은혜의 차원을 넘어 자유와 책임의 자리 곧 명예로운 신앙의 경지로 초대되었음을 알려 줍니다. 신앙에서 책임이나 자유를 말하면 도전이 되기도 하지만, 대개 체념으로 끝나기 쉽습니다. 그러나 결단코 체념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는 신자의 운명을 3차 세계관은 보여 줍니다. 기독교 신앙은 궁극적 승리를 약속해 줍니다. 하지만 넘치는 감격과 소원으로 시작한 신앙 인생이 왜 어려움을 겪는 현실로 귀결되는지에 대해서는 한국 교회가 여전히 외면하고 있습니다. 신앙이 오늘을 사는 신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다만 내세로 미루어진 운명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우리가 구원이 현실에서 무엇을 약속하고 의도했는가에 대해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이라는 현실이 책임과 명예로 결실할 수 있는 얼마나 놀랍고 귀한 기회인지를 여기 소개하였습니다. 읽고 힘을 얻어 각자의 오늘을 영광되게 살아 내십시오. 2020년 8월

어찌하여

이 책은 30년 전에 남포교회를 막 개척할 때 했던 요한복음 설교입니다. 설익은 시절 단 하나의 진심만을 붙잡았던 그때는 성경을, 기독교 신앙을 무엇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성경 말씀을 들이댔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신앙인들 각자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신앙을 확인하는 여정이 동일하거나 획일적일 수는 없지만 그 모든 고백과 감동은 오직 예수로 귀결됨을 실감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것, 알아 가는 것, 이해하는 것이 신앙의 진수이며 위대한 인생이라고 증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열정과 순진한 증언으로 이 사실을 전한 설교가 일흔을 바라보는 지금의 눈에는 신기하기만 합니다. 우리의 설명과 도전에는, 경험이 쌓이며 어떤 기술적 진전이 있었는지 몰라도 우리가 증언하는 구세주 예수는 오늘이나 내일이나 언제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진리에 새삼스레 북받칩니다. 우리의 설명보다 우선하는 그의 성실과 자비와 사랑과 권능이 주권과 섭리로써 역사와 모든 인생에 함께하셨음을 봅니다. 그 거룩하심과 위대하심에 동참하라는 한결같은 성의와 사랑을 거듭 확인합니다. 기꺼이 모든 것을 바쳐 섬기며 기뻐하겠습니다.

위로부터

이 설교집은 30년 전에 남포교회를 막 개척할 때 했던 요한복음 설교입니다. 설익은 시절 단 하나의 진심만을 붙잡았던 그때는 성경을, 기독교 신앙을 무엇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성경 말씀을 들이댔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신앙인들 각자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신앙을 확인하는 여정이 동일하거나 획일적일 수는 없지만 그 모든 고백과 감동은 오직 예수로 귀결됨을 실감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것, 알아 가는 것, 이해하는 것이 신앙의 진수이며 위대한 인생이라고 증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열정과 순진한 증언으로 이 사실을 전한 설교가 일흔을 바라보는 지금의 눈에는 신기하기만 합니다. 우리의 설명과 도전에는, 경험이 쌓이며 어떤 기술적 진전이 있었는지 몰라도 우리가 증언하는 구세주 예수는 오늘이나 내일이나 언제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진리에 새삼스레 북받칩니다. 우리의 설명보다 우선하는 그의 성실과 자비와 사랑과 권능이 주권과 섭리로써 역사와 모든 인생에 함께하셨음을 봅니다. 그 거룩하심과 위대하심에 동참하라는 한결같은 성의와 사랑을 거듭 확인합니다. 기꺼이 모든 것을 바쳐 섬기며 기뻐하겠습니다.

인생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극진한 사랑으로 신앙 인생의 목적과 동기를 공감합니다. 그러나 신앙 현실은 매우 모호하고 당황스럽습니다. 처음 확인한 거룩과 사랑을 담아내기에는 우리의 현실이 기대한 것과 사뭇 달라 의심과 불안이 우리를 압도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고난에 관한 것입니다. 고난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신앙에서 진심과 유용성을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속한 정황과 나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과 사랑을 우리 안에 담아 완성하려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수단이나 소모품이 되라고 하시지 않고 우리를 목적과 내용으로 삼으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분의 거룩에,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에 응답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꺼운 항복을 받아 내시기 위해 우리와 씨름하십니다.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로 완성의 자리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서 신적 지혜와 진정성이 담긴 그분의 구체적 개입입니다. 형통, 위엄, 진심, 각오 같은 것들은 그것들을 사용할 만한 구체적 인격과 실제적 내용을 가진 다음에야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인생과 현실이 다만 논리나 상상이 아니고 창조요 구원이요 시험이요 후회요 한탄이며 실체요 쌓아서 완성되는 충만인 것을, 그 길을 가는 것이 신앙인 것을 다시 일깨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직설

이 책은 꽤 많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저 이야기로만 보면 일관성을 찾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 주제들에서 무엇을 공통 분모로 했는지, 무엇을 목적으로 했는지를 찾으셔야 합니다. 다루어진 다양한 주제들은 재미있는 주제이지만, 그 주제들이 하나로 나오기까지 공통된 전제가 있었습니다. 삶, 믿음, 일, 배움과 가르침, 가정과 사회와 교회, 리더와 은혜에 대한 질문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에서 내세운 주제들은 그 개념을 철학적으로 탐구하려는 시도가 아니고, 이러한 단어들이 가지는 공통된 현실과 경험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신자들만의 독특한 안목과 관점을 드러내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신자들은 일반 세상 사람들과 다른 세계관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존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도전과 위협, 그리고 의심과 갈등 속에서 구별되고 세워지고 자라나고 채워지는 진리와 생명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인, 즉 성경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성경과 기독교 신앙의 기본을 설명하는 단계를 지나와 있습니다. 그분들은 그 단계를 넘어서, 신앙생활의 더 깊고 무거운 현실을 직면하고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분들을 위한 안내서로 읽으시면 좋겠습니다.(중략)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 책에서 다뤄진 주제들은 구원을 얻은 이후의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뽑은 것입니다. 그것이 주제들의 공통점입니다. 이 모든 문제들에서 예수를 믿고 나면 믿지 않는 사람들과 어떻게 다르게 이해되고 논의되고 씨름하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믿지 않았을 때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던 것들이 믿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믿기 전에 가졌던 승리와 믿고 나서의 승리가 달라집니다. 예수 믿고 헌신하는 일반 성도, 특히 그 일반 성도 됨의 다음 단계를 살아가는 제자 됨의 과정에 있는 신앙인들이 생각해 보아야 할 주제들입니다.(중략) “한국 교회 신앙이 어리다. 부족하다”라고 지적하는 것은 결코 비난이 아닙니다. 그 지점을 넘어 예수님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하신 그 대목까지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제시를 해야 합니다. 이 작업은 그 선상에 있었고, 그런 점에서 저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새로운 이해를 가지는 것 이상으로 자기 안에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일하심과 충만하심이 확인되고 격려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의 열심》은, 신자이면서도 신자로서 만족함이 없는 제 자신의 불만과 분노를 어쩌지 못해 성경을 읽고 또 읽고 고민하고 질문하고 비명 지르던 제 젊은 시절의 설교를 엮어 놓은 책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에게 요구하시는 삶이 정답만 맞추면 되는 간단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평생이 걸렸습니다. 신앙을 명분이나 해결책 정도로 만족해 버리려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생각하게 하시고 고민하게 하셔서 당신이 원하시는 수준까지 이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신 역사가 우리를 버겁고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그분의 목적이 우리 기대와 상상을 넘어서는 탓입니다. 여기 소개된 성경 속 인물들은 각자의 훌륭한 면모를 나타내 주는 영웅이 아니라 하나님은 누구시며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드러내 주는 역사 속 증인들입니다. 어느덧 삼십여 년이 지나 책을 가다듬으면서 긴 시간을 지나며 얻게 된 깨달음을 인물의 말미마다 짧게 덧붙였습니다. 바울은 새롭게 들어간 인물입니다. 그를 향한 하나님의 일하심은 위대한 반전(反轉)의 역사를 이루시는 열심으로 드러납니다. 그 시절 제가 지른 비명에 동감하던 청중의 호흡이 이 책을 쓰게 된 전제였습니다. 당시 아우성쳤던 저의 외침은 지금도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전제는 아닐 것입니다. 성경 속 인물들을 더 이상 위인으로 여기지 않으며, 그들처럼 살아보겠다는 열정도 희미해진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전제는 쉽게 변하고 바뀌고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 어떤 전제로 출발하여 따져 물어도 하나님의 열심은 오늘도 한결같이 모두에게 충만히 다가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불변하고 여일한 이 열심 앞에 기꺼이 항복하는 복된 신자가 되기 바랍니다. 2017년 겨울

흔들어 보기도 하고 거꾸로 쏟아 보기도 하고

저자 서문 어떤 문제나 생각에서 핵심을 간파해 내는 실력은 중요합니다. 이러한 실력을 안목이라고 합니다. 안목이 필요한 이유는 인생에서 위기와 도전에 부딪혔을 때 적절하고 책임 있게 반응할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안목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요. 축적된 선대의 교훈에 자신의 경험이 어우러질 때 생깁니다. 현실에서 교훈을 체감하고 몸소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어느덧 성숙한 인생으로 익어 가게 됩니다. 넉넉한 인격과 온유한 성품으로 깊은 인간관계를 맺어 가는 멋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성숙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밟아야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이 과정은, 한참 이 길을 걷고 있는 중에는 왜 걸어야 하는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흔들어 보기도 하고 거꾸로 쏟아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흐르고 나면, 왜 하나님이 그 과정을 허락하셨는지 깨닫게 됩니다. 청년으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렵다고 외면하거나 도망가는 것으로 자기 인생을 변명해서는 안 됩니다. 후회하고 분노하더라도 그 시간들을 몸소 겪어 나가십시오. 그 과정을 지날 때 맺히는 열매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여 진지하게 이 시간을 살아 내기 바랍니다. 2018년 봄 박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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