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은 특별한 인간들이다. 한없이 천진난만하다가도 독선과 아집으로 똘똘 뭉쳐 있고, 무(無)와 유(有), 욕망과 버림의 사이에서 늘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면서도, 누구보다 자기 세계가 확고하다. 하지만 안주하는 법은 없다. 남들이 가지 않았던 또 다른 세계를 넘보려 기를 쓰는 족속들이다. 질서보다 혼돈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고요한 침묵을 즐길 줄 안다. 자본 문명의 시대에 가장 이율배반적인 인간형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흠모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대담이란 핑계로 시인들과 나눈 말과 시간들. 내 문학적 청춘의 가장 잊지 못할 추억거리로 남았다. 대담을 진행하면서 아주 즐거웠다. 내가 만난 시인들은 문청 시절 내 문학 공부의 텍스트가 되었던 장본인들이었다. 그들의 시를 읽고 평하면서 문학 수련의 담금질을 했던 내가 그들과 직접 만나 육성을 듣는다는 것은 대단히 흥분되는 일이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시원(始原)의 원대한 물음이 있다. 가령 밤하늘의 별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다소 낭만적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꽤 고통스러운 일이다. 좀 치기로 들리겠지만, 문학하는 이유가 자기 구원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문학이 구원 자체는 될 수 없겠지만 구원을 욕망하게 하는 에너지는 되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폐부를 기억하고 있다. 그 자리를 기억하기 위해 선잠을 자고 때론 오는 잠을 쫓기도 했다. 온몸이 잠으로 잠기는 순간 내가 기억하고자 하는 그 모든 순간들이 함께 잠긴다. 그것은 마치 이별의 순간에 모든 기억들이 잠기고 그 잠행의 순간을 벗어나고픈 욕구와도 같다. 이제 그 폐부의 한 골짜기를 기억해야 할 시점이 왔다. 딱히 이유를 말하자면 일종의 자존심 같은 것이다. 자존심은 불편한 몸을 가지고 있다. 구원의 문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기 망설여지게 할 만큼. 말하자면 시는 내게 그런 기억이다.
개정판 시인의 말
한 시절 전부가 갑자기 내게로 안기는
이상한 기분에 며칠을 앓았다.
바람이 불면 막막했고 가끔씩 행복했다.
십수 년 시간만 흐른 셈이다.
최초의 말을 찾아 떠도는 형형한 눈빛이
시집 사이사이를 떠돌 때
마치 인연을 만난 듯 달떴다.
감사한 마음을 바람에게 전한다.
2022년 4월
이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