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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해외저자 > 인문/사회과학

이름:슬라보예 지젝 (Slavoj Zizek)

국적:유럽 > 동유럽 > 슬로베니아

출생:1949년, 류블랴나

최근작
2023년 8월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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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주체

비록 이 책이 기본적 취지에서 철학적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의 정치적 개입이며, 범역적 자본주의와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보충물인 자유민주주의적 다문화주의 시대에 어떻게 좌파적, 반자본주의적 정치적 기획을 재정식화할 것인가라는 화급한 물음을 던진다.

나눌 수 없는 잔여

“이 책은 유물론을 발생시킨 작품 중의 하나인 셸링의 <세계의 시대들> 초고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공헌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씌어졌다.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셸링은 유물론자인가? 오히려 그는 의인적이고 전-과학적인 신지학의 최후의 위대한 대표자가 아닌가? 셸링의 <인간 자유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 탐구>를 처음으로 불어로 번역한 앙리 르페브르는 번역의 서문에 이 논문은 “확실히 진리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위해서는 매우 중요하다”라고 썼다. 이 진술의 역설을 놓치지 않는 조건에서 우리는 이 진술을 우리의 안내자로써 이용할 수 있다. 즉 진리의 핵심을 얻기 위해서 셸링에게서 진리가 아닌 것, 그의 체계의 잘못된 외관을 거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동시대적 관점에서는, 진리는 노골적으로 ‘진리가 아닌’ 것으로 나타나는 것과 뒤얽혀 있어서 ‘진리가 아닌’ 것으로 간주되는 부분이나 측면을 폐기하려는 모든 시도는 불가피하게 진리 그 자체의 상실을 가져온다. 아기를 잃지 않고 욕조의 더러운 물을 버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서론에서>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라캉은 후근대적인 새로운 소피스트들 가운데 한 명인가?”라고 묻는 것은 전문적인 학술적 논의의 따분함과는 거리가 먼 어떤 물음을 제기하는 것이다. 과장법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이렇게 주장하고 싶다. 어떤 의미에서, (이른바 “서구문명”의 운명에서 시작해서 생태위기 속에서의 인류의 생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다음과 같은 연관된 물음에 대한 답에 달려 있다. “오늘날 새로운 소피스트들의 후근대적 시대와 관련하여, 필요한 변경을 가하여 칸트적 제스처를 반복하는 것은 가능한가?”

신체 없는 기관

최근 10년간 들뢰즈는 현대 철학의 중심적 준거점으로 출현했다. "저항하는 다중", "유목적 주체성", 정신분석에 대한 "반-오이디푸스적" 비판 등의 개념들은 오늘날의 학계에서 공통 통화이다. 들뢰즈가 오늘날의 반-세계주의 좌파 및 자본주의에 대한 이들의 저항을 위한 이론적 근거로 점점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이 말이다. 이와 관련해 <신체 없는 기관>은 "시류에 역행한다". 이 책의 출발 전제는 이러한 들뢰즈(펠릭스 가타리와 함께 저술한 책들의 독서에 기초한 유행하는 들뢰즈 이미지) 이면에 또 다른 들뢰즈가 있다는 것이다. 이 또 다른 들뢰즈는 정신분석과 헤겔에 훨씬 가까운 들뢰즈이며, 이 들뢰즈의 결과들은 훨씬 더 파열적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안티-오이티푸스>와 <의미와 논리> 사이에서―즉 존재의 물화된 질서에 맞서 생성의 생산적 다수성을 찬미한 들뢰즈와 의미-사건의 비물체적 생성의 불모성과 관련된 들뢰즈 사이에서―들뢰즈 사유의 내적 긴장을 식별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이러한 긴장의 결과들은 과학, 예술(영화), 정치라는 세 가지 주요 영역들과 관련하여 전개된다.

전체주의가 어쨌다구?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모든 시도들은 윤리적으로 위험스럽고 수용할 수 없는 것으로, '전체주의'라는 악령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으로 매도되어 기각된다. 비열한 순응주의적 자유주의자들은 바로 이런 식으로 기성 질서를 방어하면서 위선적인 자기만족까지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혁명의 기술에 관하여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1917년에 기록한 레닌의 텍스트들이 직접 읽을 만하다는 것이다. 긴 주석을 달아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상하게 들리는 이름들을 모르더라도 무엇이 핵심적 인 문제인지 금방 눈에 들어온다. 오늘날의 시점에서 거리를 두고 보면 이 텍스트들은 자신들이 참여하는 투쟁의 윤곽을 그려내는 데 거의 고전적인 명료함을 보여준다. […] 우리가 이 글들에서 인식하게 되는 것은 ‘생성 중인 레닌’이다. 아직 ‘소비에트 제도 레닌’이 되기 전, 열린 상황에 내던져진 레닌이라는 것이다. “역사의 종말”이라고 일컬어지는 후기 자본주의적 봉쇄 속에서 우리가 지금도 그런 진정한 역사적 열림의 엄청난 충격을 경험할 수 있을까? […] ‘레닌’은 낡은 교조적 확실성을 가리키는, 노스탤지어에 젖은 이름이 아니다. 정반대다. 우리가 건져내야 할 레닌은 낡은 좌표가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된 상황, 재앙에 가까운 그런 새로운 상황에 내던져지는 근본적인 경험을 했던 레닌이며, 그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마르크스주의를 다시 만들어내야 했던 레닌이다. […] 레닌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노스탤지어에 젖어 ‘좋았던 옛 혁명기’를 재상연하자는 것도 아니고, 낡은 강령을 ‘새로운 조건’에 맞게 기회주의적·실용주의적으로 조정하자는 것도 아니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라는 조건에서,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1914년의 재앙으로 오랜 진보주의 시대가 정치·이데올로기적으로 붕괴한 뒤에 혁명적 기획을 다시 만들어낸 레닌의 행동을 현재의 세계적인 조건에서 반복하자는 것이다.

HOW TO READ 라캉

라캉은 탐욕스러운 독자이자 해석자였다. 그에게 정신분석은 구술, 혹은 기술 텍스트를 독해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라캉을 읽는 좋은 방법은 그의 독법을 실천하여 라캉으로 다른 텍스트를 읽는 것이다. 이 책의 각 장이 라캉에서 다른 분야의 텍스트로 이행하면서 일어난 만남으로 이루어진 이유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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