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헤더배너
상품평점 help

분류

이름:박형숙

최근작
2023년 1월 <선량하고 무해한 휴일 저녁의 그들>

부치지 않은 편지

1980년대는 내 안에 뿌리내린 독이었다. 삼킬 수도 없고 뱉을 수도 없는 독. 어설피 삼키기에는 내가 동조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았고, 섣불리 내뱉기에는 이미 내 안에 넓게 퍼져 있었다.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삼키거나 뱉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그러나 나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았다. 단지 오랫동안 물고 있었을 뿐이다. 창작집을 묶어내는 이제 나는 선택할 필요가 없어졌다. 오랫동안 물고 있는 사이 이미 그것은 내 안에서 녹아버렸기 때문이다. ... 책을 묶어내면서 문학 앞에서 새롭게 옷깃을 여민다. 여미는 옷깃 속에는 오래된 우을증과 환멸과 애끓는 열정, 그 모든 것에 대한 긍정이 깃들어 있다. 이제 골방에서 나와 세상을 만나고 싶다. 오랫동안 내게 타자였던 그들의 눈빛을 읽어내고 그들의 말을 받아 적어보고 싶다. 그리고 점차로 '나'를 지워내고 싶다.

선량하고 무해한 휴일 저녁의 그들

정화된 밤 “이 소설은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을 모티브로 썼다. 본문에서 인용된 시는 리하르트 데멜의 「두 사람」의 일부이다. 쇤베르크의 곡은 어렵지만 새로운 자극을 준다. 공연장에서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의 연주를 들은 날도 그랬다. 기존의 음악과는 다른, 뭐라 말할 수 없는, 불편하지만 싫지는 않은, 언젠가 있었던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덮쳐왔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의 모티프가 되었다는 리하르트 데멜의 시를 접했다. 남자는 자신의 유전자가 섞이지 않은 아이를, 그러니까 다른 남자의 아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 대해 리하르트 데멜은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한다. 같은 물음을 소설 속의 M씨에게 던져보았다. M씨는 속 시원히 답해주지 않았다. 하여 나는 M씨의 일상과 내면을, 과거와 현재를 따라가볼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를 다른 남자들과 다르다고 생각해왔던 M씨에게도 이 문제는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M씨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자신을 반추하는 가운데 힘겹게 자신의 실제 모습에 가닿는다. 이를 지켜보는 나는 여성 작가로서 그의 인간적인 고뇌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따름이었다. M씨는 보편적인 남자(men)일까? 아니면 단지 자신의 상처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 남자(a man)일까? 1899년 25세였던 쇤베르크는 3주 만에 이 곡을 작곡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청중들의 반발을 샀지만 지금은 19세기 쇤베르크의 대표곡으로 손꼽힌다고 하니 그 내용과 형식 모두 급진적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 곡에는 쇤베르크가 결혼하기 전의 감정이 투영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훗날 그의 아내는 다른 예술가를 따라 떠나고, 쇤베르크는 그 후 일체의 감정을 탈각시킨 것 같은 무조주의로 돌아섰다고 하니, 믿거나 말거나이다. 핏줄은, 혈연은 늘 옹호되어야 할까? 핏줄에 대한 집착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인간에게는 종종 이런 본능을 넘어서는 감정이나 행위가 있다. 물론 핏줄에 대한 부정 또한 쉽게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정화된 밤이란 누구나 맞이할 수 있는 밤은 아닌 것 같다. 마치 쇤베르크의 까다로운 음악처럼.”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국내문학상수상자
국내어린이문학상수상자
해외문학상수상자
해외어린이문학상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