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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번역

이름:윤병언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최근작
2023년 10월 <내가 보고 듣고 깨달은 것들>

내가 보고 듣고 깨달은 것들

아감벤의 『내가 보고 듣고 깨달은 것들』은 그가 지금까지 사용해온 모든 서술 양식과 형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문헌학적 분석이나 패러다임의 경계를 추적하는 계보학적·고고학적 탐색은 사라지고 그가 항상 은밀하게 추구해온 철학의 시적 세계만이 전면에 부각된다. 그가 철학과 시의 조합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가운데 도달한 어떤 경지를 자각하면서, 어떻게 보면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철학, 자신이 탐구한 세계 모두에 대한 통찰과 이 모든 것에서 비롯되는 감동이 한데 어우러지는 지경에 도달하면서 이 책을 썼으리라는 점은 어느 정도 분명해 보인다. 섬광처럼 번뜩이는가하면 폐부를 찌르기도 하는 그의 단상들은 그가 추구해온 시적 산문 양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글쓰기를 완성된 형태로 선보이는 것이 저자의 우선적인 목적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황혼에 접어든 저자가 자신의 생애와 철학을 되돌아보며 마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듯 빠르고 간략하게 써 내려간 일종의 철학적 유언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단상들은 시나 일기의 한 구절처럼 쉽게 읽히면 서도 나름대로 의미심장한 교훈이나 가르침을 전해준다. 하지만 이 글들은 철학과 앎에 대한 저자의 기본적인 자세와 입장이 무엇인지 헤아리는 데 유용한 단서로도 읽을 수 있고, 저자가 주요 저서에 체계화한 철학 이론의 가장 본질적인 측면들을 파악하는 데 실마리를 제공하는 일종의 키워드나 비유로도 읽을 수 있다.

참여의 건축

이 책의 핵심 주제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참여의 미학’이다. 거주자의 입장에서 훌륭한 집을 지으려면 건축가가 일방적으로 제안하는 집이 아니라 거주자 자신의 적극적인 ‘참여’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관점이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참여’ 개념은 단순히 전문화, 산업화, 상품화의 기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축 문화를 거부하고 개선하기 위한 대안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근본적인 차원의 성찰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건축 사용자’들을 건축 과정에 참여하도록 하는 문화적 접근 방식 자체가 건축 미학의 핵심 문제와 직결되는 복합적이고 역사적인 현상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데 카를로가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로 정의하면서 건축 사용자의 관점과 참여를 중시하고 기존의 건축 정책이나 양식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태도는 곧 서양 건축사에 내재하는 본질적인 이원론, 즉 생활양식과 생활 공간, 사는 방식과 짓는 방식의 분리 현상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성향과 일치한다. 이러한 분리 현상은 역사적으로 자연스러운 단계에서 이질적인 단계를 거쳐 괴리 현상으로까지 발전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근대를 기점으로 인간이 정치적 동물에서 스스로의 삶 자체를 정치화하는 존재로 발전했다는 미셸 푸코의 진단과 일맥상통하는 과정이 서구의 건축 문화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생활 공간을 만드는 일이 본질적인 차원에서 거주자가 아닌 건축가의 전유물로 변화하는 과정은 삶의 공간이 공공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시장에 편입됨에 따라 건축 문화가 자본 축적과 이윤 창출을 위한 경제 정치의 대상으로 정착되면서 보다 구체적인 현실로 드러났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삶의 기반을 마련해야 할 건축 문화가 삶의 터전과는 거리가 먼 경제 도구로 전락하고 인간의 삶과 주거 환경의 관계 자체가 온갖 종류의 상품 가치 외에는 아무런 연관성도 찾아볼 수 없는 무의미한 관계로 변질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경제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변해 정치를 대체하고 삶의 터전을 경제 정치의 제물로 삼는 곳에서 건축은 창조적으로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가는 행위와 살아가는 공간의 단절을 조장하고 단절 그 상태를 유지하는 기술로 남는다. (중략) 그의 강연 기록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도 바로 건축적 아이디어의 전시나 외형적 실현이 아니라 그 아이디어를 내면화하고 유지하기 위한 공간적 맥락을 창조하는 데 쏟아붓는 그의 헌신적인 노력과 투쟁 정신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그가 모든 유형의 양식적 체제를 거부하면서도 아나키즘을 슬로건이나 방법론으로 내세우기보다 오히려 아나키즘에 내재하는 거부의 힘을 스스로에게 적용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아나키스트로서 그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그를 실천적 사회주의자로 정의할 수 있다면, 같은 맥락에서, 그의 사회주의적 관점이 정치적 견해로 쉽게 번지지 않고 오히려 건축이라는 한 전문 분야의 특성을 좌우하며 그의 건축적 표현과 참여의 구도 안에 고스란히 녹아든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데 카를로가 건축 사용자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때 부각되는 인본주의 사상 역시 유사한 색채와 결을 지닌다. 인본주의 역시, 사회주의적인 형태로든 민주주의적인 형태로든, 추상적 체제나 경제적 효과나 시스템이 아니라 개인의 실천과 노력에 의한 열매를 통해서만 설득력을 얻고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점이 데 카를로가 이끌었던 참여의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바로 그런 차원에서 데 카를로는 우리에게 구도자이자 시인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그를 기꺼이 건축의 시인으로 부를 수 있는 이유는 그가 공간의 이상적인 구도를 발견하기 위해 시도한 집요한 탐구와 투쟁, 대화와 ‘참여’의 흔적을 몇 마디 말과 여백, 긴 호흡과 강렬한 인상 그리고 의미의 뒤틀림이 있는 한 편의 시로 쌓아 올리는 건축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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