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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시체 부검으로 죽음을 규명하고,
시인은 시체(詩體) 부검으로 삶을 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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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는 어둠 속의 콩나물 같은 가로등 켜지는 밤이 있고, 의식에 시동을 거는 물음표가 있다. 제주 풀 뜯는 사람들과 서울 물 먹는 말들이 있고, 결코 알리바이가 성립될 수 없는 내 죄가 있고, 무쇠를 녹인다는 말로 갚아야 할 천 냥 빚도 있고, 눈물을 녹여 만든 종소리도 들린다. 시 한 편에는, 낭패도 패로 돌이켜 심기일전할 수 있는 묘미가 있다. 아! 시도 때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