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가 만발한 산을 오르고 있었다. 배낭에 돼지고기 두 근과 마늘을 넣고. 노동하던 세상으로부터 한 발만 벗어나도 좋아서 저렇게 지랄들이다. 이름 없는 산을 오르고 있었다. 이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붙여 줄 만한 여유가 우리에게 없엇던 것이겠지. 내 인생에 붙여진 이름 석 자를 껌 종이에 싸서 버릴 때 나는 보았다. 산모퉁이 저쪽, 각목을 든 사내들과 온몸으로 버팅기며 끌려가는 누런 개를. 그 눈빛.
시가 유용한 것은 시의 무용성 때문이라는 사실이 각목을 들고 나를 질질 끌며 이곳까지 왔나 보다.
1989년 5월
도시에 몰려든 사람들
자본의 물결에 휩쓸리고 내몰리며 살아가는 사람들
거리에 버려져 날리는 비닐봉지 같다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크다
아니 작다
도시가 자연보다 작아 보이기도 하고 커 보이기도 하듯이
사람이 도시보다 작아 보이기도 하고
커 보이기도 하듯이
내가 나보다 커 보이기도 하고
작아 보이기도 하듯이
내가 쓴 시는 나보다 커 보이기도 하고
작가 보이기도 할 것이다
시는 존재와 존재 사이의 벽을 넘나드는
일종의 '숨통 트기'가 아닐까
도시가 자연과 다르지 않듯이
과거와 미래가 다르지 않듯이
(과연 그럴까)
내가 당신과 다르지 않듯이
다르지 않기를 바라듯이
불현듯 뭔가 달라지기 위해 북한산을 오르고 있는 내가
문득 낯설어 보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