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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에세이

이름:최일남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32년, 대한민국 전라북도 전주 (염소자리)

사망:2023년

최근작
2024년 4월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

국화 밑에서

내놓고 실토하기 무엇하지만 요즈음의 노년소설은 형식이 예전보다 많이 다른 듯하다. 객관적 서사(敍事)와 상상력의 단순한 비교를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나같이 문단 데뷔 초장을 납[鉛] 냄새, 즉 신문사에서 보낸 사람은 더구나 처신이 힘들었다. 이 책은 퍽 오랜만이다. 창작집 『석류』(2004년 6월) 이후에 쓴 작품들을 모은 것으로 모두 합치면 열네번째 소설집이다. 이번에 더 좀 유념한 것은 일본이다. 일본어 교육을 받은 마지막 세대의 한 사람으로 비망록(備忘錄)을 적듯이 썼다. - 2017년 여름

석류

거시적 담론보다는 소소한 일상에 집착하는 쪽으로 인심이 기운 지 오래다. 기존의 가치관에 물린 때문일까. 역사를 쓰되, 과년한 딸의 혼사를 걱정하는 서민의 술자리 잡담까지도 분석하라는 어떤 독일 학자의 말이 예사롭지 않다. 인류가 곤충에 의해 정복될 가능성을 점친 버트런드 러셀의 우려도 아직 섬뜩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사 년만에 또 소설집을 내게 되었다. 염치가 없어서도 진양조 육신에 휘모리장단의 정신 따위 말을 입 끝에 올리지 못하겠다. 인사말을 쓸 때마다 한 번도 편안한 적이 없었던 마음을 이번에도 재확인할 따름이다.

어느 날 문득 손을 바라본다

기억은 또 수수께끼 같은 자기만의 법칙을 따른다고 했다. 경찰이 수첩에 기록된 범죄자를 가려내듯, 하필이면 괴롭고 수치스러운 일을 반복해서 떠올리게 하는 수가 많다. 노년의 어린 시절을 마흔 살 때보다 더 선명히 기억하게 만드는 역순의 요술을 부리기도 한다. 거꾸로 오늘의 이 순간을 꼭 기억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몇 달이 못 가, 아니 겨우 이틀만 지나도 그 순간의 색깔, 냄새, 향기를 자신이 원했던 만큼 생생히 기억하기 어렵다. 기억이 쏘삭거리는 이런저런 심술이 싫어 아예 망각을 작정한들 소용없다. 그럴수록 잠 안 오는 밤의 머리맡에 나타나 엉뚱한 수작을 부리려든다. 하필 괴롭고 수치스러운 일을 반복해서 떠올리게 하는 것이 기억이라는 말은 맞다. 하지만 세월의 당의정이 그걸 부분적으로 미화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움 따위와 얼토당토않은 역설의 감정이다. 이런 느낌은 아마도 나 같은 자의 경우가 마지막일지 모르겠다. 아니 그럴 것이다.

풍경의 깊이 사람의 깊이

젊으나 젊은 나이에 은퇴를 선언하는 운동선수를 보면서 현역으로 뛴 것보다 몇 곱절 많은 세월을 어떻게 견딜까, 공연한 걱정을 하는 수가 있다. 아니 어떨 때는 부러웠다. 죽을 둥 살 둥 대결의 순간순간을 누빈 끝에 획득한 성과에 깃대를 세우고 넉넉하게 여생을 감당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뒷모습이 조금 슬프고 많이 아름다웠다. 다 아는 대로 예전에는 인생 오십이 보통이었다. 그쯤 해서 생로병사의 마지막 단계를 거치기 쉬웠거늘 요새는 인생 팔십으로 평균 수명이 늘었다. 얼싸절싸 지화자를 놀 판인데 어쩔 거나. 이를테면 ‘사오정’의 퇴출 기류에 등 떠밀려 장수의 기쁨을 맛보기 어렵다. 지금은 젊은 다섯이 노년 하나를 먹여 살리는 꼴이되 이십여 년 후에는 일대일이 된다는 말에 간담이 미리 서늘하다. 함에도 불구하고 형형색색의 알약을 조석으로 입에 털어 넣는 위선을 떨며 열심히 산 덕에 또 책을 내게 되었다. 《어느 날 문득 손을 바라본다》는 산문집을 쓴 지 4년 만이다. 거저먹은 나이를 쿠션인 양 깔고 앉아 이 노릇이 모두 정년이 따로 없는 문학 덕분이라고 응석 부리기 무안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애초에 작심한 건 아닌데 이번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역사가 공공의 재산이라면 개개인의 삶은 필경 사람에 대한 기억과 사연으로 점철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따라서 잠 안 오는 밤이 적적하지 않다. 시척지근한 회상에 갈수록 느는 능청을 입힌 까닭이다. 머릿속에 가득 저장해 둔 인물을 무작위로 골라 수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너하고는 안 논다고 내뺀들 소용없다. 일방적 선택권이 내게만 있는 터라서 상대방은 싫어도 시간을 내줄밖에 없다. 바느질의 달인이셨던 저 세상의 우리 어머니와도 그런 식으로 가끔 만난다. 본을 따라 혼 두 짝의 무명천을 박음질하다가 순식간에 버선목을 확 뒤집는 솜씨가 기막혔다. 오뚝하게 드러난 버선코가 도도하게 예뻤다. 어머니의 매운 손끝을 본받아서도 내 글쓰기가 좀 칼칼하고 야무졌으면 싶은 헛된 소망을 웃으며 세월은 아 잘 간다. 이 앓는 소릴랑 그만 거두고 어기적어기적 가는 데까지 가보자꾸나.

흐르는 북

수상소감 - 콩 한 줌 먹고 들뜬 상태에서 들어선 문도 아니었으며, 어떤 억울함으로 툇마루를 올라선 것도 아니었다. 다만 문학이 거기 있어 멋 모르고 덤벼든 꼴에 다름아니었다. 수상은 반갑다. 남데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전제를 달아 놓고. 노상 자기 학대와도 이어지는 위선을 떨던 자의 느닷없는 경망스러움이 아니다. 젊지도 아주 늙지도 않은 주제에, 형편없이 비실대기만 하던 조랑말에게, 상은 한 줌의 적절한 효과를 가져다주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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