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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에세이

이름:김영하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8년, 대한민국 강원도 화천 (전갈자리)

직업:소설가

기타: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최근작
2020년 1월 <[세트] 안나 카레니나 + 위대한 개츠비 + 데미안 + 작은 것들의 신 + 롤리타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 전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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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영원히 쓰고 싶은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이 그랬다. 처음엔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씹는 것 같았는데 나중엔 허공을 걷는 기분이었다. 소설쓰기에도 러너스하이가 있는 모양이다. 소설의 어떤 지점을 지나자 내 몸의 호르몬 분비가 달라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미 소설 속에 있었다. 어서 일어나! 가서 소설을 쓰자구!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이 소설은 서울행 비행기에 올라탄 어느 이민사 연구자의 잡담에서 시작되었다. 그 흥미로운 잡담은 몇 다리를 건너 내게 전해졌다. 먼 곳으로 떠나 종적 없이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에 나는 언제나 매료되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1905년에 제물포를 떠나 지구 반대편의 마야 유적지, 밀림에서 증발해버린 일군의 사람들, 그들은 시종일관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그들이 떠난 1905년과 그들이 살아낸 1910년대는 작가로서는 정말 매력적인 연대였다. 한 소설을 끝낼 때마다 작가는 자신이 만든 세계의 명예 시민이 되는 영광을 (홀로) 누린다. 지금 이 순간 나는 1905년생이다.

검은 꽃

영원히 쓰고 싶은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이 그랬다. 처음엔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씹는 것 같았는데 나중엔 허공을 걷는 기분이었다. 소설쓰기에도 러너스하이가 있는 모양이다. 소설의 어떤 지점을 지나자 내 몸의 호르몬 분비가 달라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미 소설 속에 있었다. 어서 일어나! 가서 소설을 쓰자구!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이 소설은 서울행 비행기에 올라탄 어느 이민사 연구자의 잡담에서 시작되었다. 그 흥미로운 잡담은 몇 다리를 건너 내게 전해졌다. 먼 곳으로 떠나 종적 없이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에 나는 언제나 매료되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1905년에 제물포를 떠나 지구 반대편의 마야 유적지, 밀림에서 증발해버린 일군의 사람들, 그들은 시종일관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그들이 떠난 1905년과 그들이 살아낸 1910년대는 작가로서는 정말 매력적인 연대였다. 한 소설을 끝낼 때마다 작가는 자신이 만든 세계의 명예 시민이 되는 영광을 (홀로) 누린다. 지금 이 순간 나는 1905년생이다.

굴비낚시

그래서 나는 가끔은 자조적으로 이런 내 작업을 굴비 낚시라고 부른다. 누가 굴비를 낚겠는가. 생선이면서 생선도 아닌 것을 어디 가서 낚겠는가. 그저 낚싯대 하나 드리우고 낚이지도 않을 굴비를 상상하며 나름의 생각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 그게 내가 상정한 내 글쓰기의 모습이다.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

어쩌면 영화는 이제 너무 흔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흔해빠진 영화에 대한 어떤 글, 밀실의 감상을 광장으로 끌어내는 글은 여전히 귀하다. 이 책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자만은 하고 있지 않으나 그런 기대를 품고 있다는 것만은 굳이 감추지 않겠다. 아울러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영화와 그 영화를 만든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김영하의 여행자 하이델베르크

나는 도시를 사랑한다. 여행을 생각할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도시의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상점들,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호텔의 벨맨, 비둘기 떼, 하수도에서 올라오는 수증기, 사람들로 붐비는 대중교통수단, 한껏 멋을 부린 젊은 여자들과 양복을 빼입은 남자들,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와 포석을 깐 보행자 전용도로 그리고 수많은 것들. '김영하의 여행자' 시리즈는 내가 사랑한 전 세계의 도시들에 바치는 송가라고 할 수 있다. 그 도시에 머물며 찍은 사진들과 그들을 찍은 카메라, 그리고 그곳에서 쓴 소설로 책을 묶는다. 내가 도시를 사랑하는 만큼 도시도 나를 사랑하기를, 너그럽게 이 철없는 여행자를 품어주기를 기원한다.

랄랄라 하우스

영영 생각나지 않는 가사처럼, 아니 가사가 생각나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운 음악처럼, 삶의 어떤 부분은 그냥 '랄랄라'로 처리되어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좀더 쉽게 말하자면, 이 책에 실린 글과 사진, 이상한 그림들은 김영하라는 인간의 '랄랄라'들이란 말씀. 랄랄라들이 모여 있는 내 '랄랄라 하우스'에 여러분을 초대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이 책(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책)은 친구집에 놀러 가서 친구가 올때까지 남의 방에서 뒹굴며 이리 뒤적 저리 뒤적 하기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졸업앨범도 들춰보고, 재밌는 책이 있으면 한 권 슬쩍하기도 하고, 일기장도 훔쳐보는 그런 재미. 이 책에서 얻으셨으면 좋겠다.

보다

한동안 나는 망명정부의 라디오 채널 같은 존재로 살았다. 소설가가 원래 그런 직업이라고 믿었다. 국경 밖에서 가끔 전파를 송출해 나의 메시지를 전하면 그것으로 내 할 일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2012년 가을에 이르러 내 생각은 미묘하게 변했다. 제대로 메시지를 송출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사는 사회 안으로 탐침을 깊숙이 찔러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보는 것, 듣는 것, 경험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보물선

한 마리의 여치 혹은 개구리로서, 그동안 시끄럽게 목청껏 잘도 울어왔다는 이유로 주어지는 이 큰 상을, 넙죽 받는다. 이것만은 약속할 수 있다. 사회적 무임승차와 외로운 고성방가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동안 참아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살인자의 기억법

이것은 내 소설이다. 내가 써야 한다. 나밖에 쓸 수 없다.

아랑은 왜

이야기의 주인은 이야기다. 세월이 지나면 아랑 전설을 새롭게 쓰는 이 기획을 이어갈 누군가가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그도 결코 이 이야기를 '완성'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 옛날 아랑 전설을 만들어 퍼뜨리던 이야기꾼들처럼 나도 그리고 그도 하나의 징검다리에 불과하니까. 그게 이야기를 만드는 자들의 운명이다. 우리는 가끔 우리가 이야기의 주인이라고 착각하지만 이야기의 주인은 이야기다. 그들이 우리의 몸을 빌려 자신들의 유전자를 실어나르고 있는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담배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 유독하고 매캐한, 조금은 중독성이 있는, 읽는 자들의 기관지로 빨려들어가 그들의 기도와 폐와 뇌에 들러붙어 기억력을 감퇴시키고 호흡을 곤란하게 하며 다소는 몽롱하게 만든 후, 탈색된 채로 뱉어져 주위에 피해를 끼치는 그런 소설을 쓸 수 있기를, 나는 바랐다. 두번째 소설집을 묶는 지금, 좀더 독해지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작가 후기'에서)

여행의 이유

요즘은 함께 사는 개나 고양이를 ‘반려동물’이라고 부른다. 예전엔 ‘애완동물’이라고 했다. 사전은 ‘애완愛玩’을 ‘동물이나 물품 따위를 좋아하여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김’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반려伴侶’는 동반자를 의미한다. 반伴자는 짝을 뜻하고 려侶는 벗을 뜻한다. 지금은 반려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관계는 사람마다 좀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길 것이고, 누군가는 생의 동반자로 여길 것이다. 나는 두 단어 다 쓰지 않는 편이다. 애완은 조금 경박하게 느껴지고, 반려는 너무 무겁게 다가온다. 우리 가족이 처음 기른 개는 셰퍼드로 이름은 꾀돌이였다. 아버지가 전방 대대장 시절 애지중지하던 꾀돌이는 대대장 지프가 관사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위병소에 접근하기만 해도 그 소리를 알아듣고 마중을 나갈 정도로 영리했다. 그러던 꾀돌이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부대는 비상이 걸렸고 며칠에 걸친 대대적인 수색에도 종적이 묘연했다. 아버지는 크게 상심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제대를 하고 서울의 한 은행에 취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부대에서 사병으로 복무했다는 이가 우리집을 찾아왔다.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아버지는 조금 긴장한 것 같았다. 뭘 팔러 왔겠지.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장교도 아닌 사병 출신이 아버지를 찾아오는 일은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왕년의 대대장과 사병은 양주를 나누어 마셨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손님이 드디어 용건을 꺼냈다. “대대장님, 죄송합니다. 꾀돌이는 11중대에서 잡아먹었습니다.” 오랜 미스터리가 풀리고 있었다.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말렸지만 그때는 다들 배가 너무 고팠습니다. 언젠가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애타게 찾으실 줄 몰랐습니다.” 서울로 올라와서부터는 내내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셰퍼드 같은 대형견은 다시 키우기 어려웠다. 대신 우리 가족은 새미라는 이름의 말티즈 암컷을 길렀다. 애초에 개를 키우자고 한 것은 동생이었지만 아버지가 제일 예뻐했다. 새미는 딱 한 번 새끼를 보았는데, 출산 때는 내가 탯줄을 잘랐다. 우리는 이슬이라는 암컷만 남기고 다른 강아지들은 주변에 분양해주었다. 몇 년 후, 암에 걸려 일어서지도 못하던 새미를 아버지와 내가 동물병원에 데려갔는데, 아버지는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난 못 들어가겠다.” 내가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오자 병원 밖에서 기다리던 아버지는 새미가 잘 갔느냐고 물었다. “참 못할 짓이다. 이제 이런 일, 더는 못할 것 같다.” 새미가 죽은 후 이슬이는 꽤 오래 살았다. 이슬이까지 떠난 후, 아버지는 집이 너무 휑하다며 누군가 동물병원에 버리고 간 강아지를 입양했다. 이번에도 말티즈였다. 녀석을 들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등졌다. 결혼한 뒤에 나도 길냥이 두 마리를 집에 들였다. 방울이는 아홉 살에 죽었다. 깐돌이는 아직 건강하지만 열다섯 살을 넘겼으니 오래지 않아 방울이 뒤를 따를 것이다. 인간보다 수명이 훨씬 짧은 개와 고양이를 반려라고 생각하면 너무 애닲다. 무슨 반려들이 이토록 자주, 먼저 떠나는가. 나에게 녀석들은 반려가 아니라 여행자에 가깝다. 새미와 이슬이도, 방울이와 깐돌이도 잠시 우리집에 왔다가 떠났거나 떠날 것이다. 긴 여행을 하다보면 짧은 구간들을 함께 하는 동행이 생긴다. 며칠 동안 함께 움직이다가 어떤 이는 먼저 떠나고, 어떤 이는 방향이 달라 다른 길로 간다. 때로는 내가 먼저 귀국하기도 한다. 그렇게 헤어져 영영 안 만나게 되는 이도 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렇게 모두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덜 괴롭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환대했다면, 그리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꽤 오래전부터 여행에 대해 쓰고 싶었다. 여행은 나에게 무엇이었나, 무엇이었기에 그렇게 꾸준히 다녔던 것인가, 인간들은 왜 여행을 하는가,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구하고 싶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그러니까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을 기준으로 보면, 나는 그 무엇보다 우선 작가였고, 그다음으로는 역시 여행자였다. 글쓰기와 여행을 가장 많이, 열심히 해왔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쓸 기회가 많았지만 여행은 그렇지를 못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정말 많은 것들이 기억 깊은 곳에서 딸려 올라왔다. ‘여행의 이유’를 캐다보니 삶과 글쓰기, 타자에 대한 생각들로 이어졌다.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에서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다. 이 책에 도움을 준 고마운 이름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여행에서 내가 만난 모든 이들, 돈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간에, 재워주고 먹여주고 태워준 무수한 타인들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특별히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이들은 있다. 바로 긴 여행길에서 나를 참아준 동행들이다. 가끔은 별것 아닌 일로 다투기도 하고, 날선 말로 감정을 다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함께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느낌을 공유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었던 이들, 이들이 없었더라면 여행은 그저 지루한 고역에 불과했을 것이다. 눈을 감으면 그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지구에서의 남은 여정이 모두 의미 있고 복되기를 기원해본다.

여행의 이유 (바캉스 에디션)

요즘은 함께 사는 개나 고양이를 ‘반려동물’이라고 부른다. 예전엔 ‘애완동물’이라고 했다. 사전은 ‘애완愛玩’을 ‘동물이나 물품 따위를 좋아하여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김’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반려伴侶’는 동반자를 의미한다. 반伴자는 짝을 뜻하고 려侶는 벗을 뜻한다. 지금은 반려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관계는 사람마다 좀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길 것이고, 누군가는 생의 동반자로 여길 것이다. 나는 두 단어 다 쓰지 않는 편이다. 애완은 조금 경박하게 느껴지고, 반려는 너무 무겁게 다가온다. 우리 가족이 처음 기른 개는 셰퍼드로 이름은 꾀돌이였다. 아버지가 전방 대대장 시절 애지중지하던 꾀돌이는 대대장 지프가 관사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위병소에 접근하기만 해도 그 소리를 알아듣고 마중을 나갈 정도로 영리했다. 그러던 꾀돌이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부대는 비상이 걸렸고 며칠에 걸친 대대적인 수색에도 종적이 묘연했다. 아버지는 크게 상심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제대를 하고 서울의 한 은행에 취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부대에서 사병으로 복무했다는 이가 우리집을 찾아왔다.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아버지는 조금 긴장한 것 같았다. 뭘 팔러 왔겠지.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장교도 아닌 사병 출신이 아버지를 찾아오는 일은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왕년의 대대장과 사병은 양주를 나누어 마셨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손님이 드디어 용건을 꺼냈다. “대대장님, 죄송합니다. 꾀돌이는 11중대에서 잡아먹었습니다.” 오랜 미스터리가 풀리고 있었다.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말렸지만 그때는 다들 배가 너무 고팠습니다. 언젠가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애타게 찾으실 줄 몰랐습니다.” 서울로 올라와서부터는 내내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셰퍼드 같은 대형견은 다시 키우기 어려웠다. 대신 우리 가족은 새미라는 이름의 말티즈 암컷을 길렀다. 애초에 개를 키우자고 한 것은 동생이었지만 아버지가 제일 예뻐했다. 새미는 딱 한 번 새끼를 보았는데, 출산 때는 내가 탯줄을 잘랐다. 우리는 이슬이라는 암컷만 남기고 다른 강아지들은 주변에 분양해주었다. 몇 년 후, 암에 걸려 일어서지도 못하던 새미를 아버지와 내가 동물병원에 데려갔는데, 아버지는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난 못 들어가겠다.” 내가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오자 병원 밖에서 기다리던 아버지는 새미가 잘 갔느냐고 물었다. “참 못할 짓이다. 이제 이런 일, 더는 못할 것 같다.” 새미가 죽은 후 이슬이는 꽤 오래 살았다. 이슬이까지 떠난 후, 아버지는 집이 너무 휑하다며 누군가 동물병원에 버리고 간 강아지를 입양했다. 이번에도 말티즈였다. 녀석을 들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등졌다. 결혼한 뒤에 나도 길냥이 두 마리를 집에 들였다. 방울이는 아홉 살에 죽었다. 깐돌이는 아직 건강하지만 열다섯 살을 넘겼으니 오래지 않아 방울이 뒤를 따를 것이다. 인간보다 수명이 훨씬 짧은 개와 고양이를 반려라고 생각하면 너무 애닲다. 무슨 반려들이 이토록 자주, 먼저 떠나는가. 나에게 녀석들은 반려가 아니라 여행자에 가깝다. 새미와 이슬이도, 방울이와 깐돌이도 잠시 우리집에 왔다가 떠났거나 떠날 것이다. 긴 여행을 하다보면 짧은 구간들을 함께 하는 동행이 생긴다. 며칠 동안 함께 움직이다가 어떤 이는 먼저 떠나고, 어떤 이는 방향이 달라 다른 길로 간다. 때로는 내가 먼저 귀국하기도 한다. 그렇게 헤어져 영영 안 만나게 되는 이도 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렇게 모두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덜 괴롭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환대했다면, 그리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꽤 오래전부터 여행에 대해 쓰고 싶었다. 여행은 나에게 무엇이었나, 무엇이었기에 그렇게 꾸준히 다녔던 것인가, 인간들은 왜 여행을 하는가,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구하고 싶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그러니까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을 기준으로 보면, 나는 그 무엇보다 우선 작가였고, 그다음으로는 역시 여행자였다. 글쓰기와 여행을 가장 많이, 열심히 해왔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쓸 기회가 많았지만 여행은 그렇지를 못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정말 많은 것들이 기억 깊은 곳에서 딸려 올라왔다. ‘여행의 이유’를 캐다보니 삶과 글쓰기, 타자에 대한 생각들로 이어졌다.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에서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다. 이 책에 도움을 준 고마운 이름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여행에서 내가 만난 모든 이들, 돈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간에, 재워주고 먹여주고 태워준 무수한 타인들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특별히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이들은 있다. 바로 긴 여행길에서 나를 참아준 동행들이다. 가끔은 별것 아닌 일로 다투기도 하고, 날선 말로 감정을 다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함께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느낌을 공유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었던 이들, 이들이 없었더라면 여행은 그저 지루한 고역에 불과했을 것이다. 눈을 감으면 그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지구에서의 남은 여정이 모두 의미 있고 복되기를 기원해본다.

오빠가 돌아왔다

투망을 던지듯 소설을 쓰던 때가 있었다. 요새는 뭐랄까. 낚싯대를 던져놓고 물끄러미 찌를 바라보고 있을 때가 더 많다. 고기야 물려라. 안 물리면 할 수 없고. 그런 마음으로 살아서일까. 5년 만에 소설집을 묶게 되었다. 낄낄거리며 즐겁게 쓴 소설도 있고, 인간이란 왜 이 정도밖에 안되도록 생겨먹은 것일까, 갈피마다 호흡을 고르며 울적하게 써내려간 소설도 있다. 여러 색채의 소설들이 한 두리에 모여 있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나도 모르는 새 이미 어딘가 멀리 흘러왔더라는 것이다. 요즘은 냉소보다는 아이러니, 반전보다는 딴전에 더 마음을 뺏긴다. 딴전. 이 얼마나 귀여운 말인가. 제임스 조이스는 언젠가 소설을 손톱깎이에 비유한 적이 있다. 손톱을 깎으며 이러쿵저러쿵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듯, 너무 집중하지도, 괜히 심각해지지도 말며 에둘러가라는 뜻이었겠지. '너를 사랑하고도'의 마지막에 화자의 입을 빌려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뭔가 나아지겠지. 나는 애써 낙관적으로 생각하며 한단어 한단어에 집중하며 앞으로 전진했다. 어휘와 문장의 숲에서 벌이는 이 전투가 과연 언제 끝날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교정을 보다 문득 지금의 심사에 어울린다 싶어 끼워넣는다. 추운 날에 아내가 가자미를 굽고 있다. 온 집안에 고소한 냄새가 퍼진다. 아, 또 한 고비 넘었다.

옥수수와 나

저는 한 편의 소설을 시작했고, 계속했고, 완성했습니다. 그것으로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쓰지 못해 괴로웠고 쓰는 동안 두려웠고 쓰고 나서는 잠시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상을 받았습니다. 문학상은 작가라는 신분, 문학이라는 예술의 본질의 바깥 어딘가, 그러나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는 않은 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달은 지구를 중심으로 돌지만 지구는 아닙니다. 그러나 달이 없는 지구를 상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작가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그렇습니다. 지금껏 잘 살아왔다는 동료 문인들의 격려로 여기고 ‘해야만 한다고 믿는’ 그 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 2012년 제36회 이상문학상 수상소감 중에서

퀴즈쇼

이 소설을 쓰는 내내 이십대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가장 아름다운 자들이 가장 불행하다는 역설. 그들은 비극을 살면서도 희극인 줄 알고 희극을 연기하면서 비극이라고 믿는다. 이십대 혹은 이십대적 삶에 대한 내 연민이 이 소설을 시작하게 된 최초의 동기라면 동기였다. 지금 이십대 젊은이들에게 ‘너희들은 외롭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포스트 잇

나는 평범한 인간들의 내면에 괴물이 한두 마리쯤은 숨어 있다고 늘 생각한다. 수효가 문제일 뿐, 없는 사람은 없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구불구불하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 깊고 깊은 지하실로 내려가면 좁고 더러운 감방 안에 추악한 괴물 하나가 웅크리고 앉아 내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를 만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나는 괴물을 데리러 그 어둑한 통로를 더듬더듬 두려움에 떨며 조심스레 내려가는 것이다. 이봐, 잘 있었나? 복도의 끝에 이르면 육중한 철문이 막아선다.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가면 괴물이 내게 손을 내밀고 있다. 다는 그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선다. 우리는 뚜벅뚜벅 지상으로 향한다. 마침내 땅 위로 올라오면 그는 새로운 존재가 된다. 사람들은 이제 그를 소설이라 부른다. 다른 작가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소설을 쓰는 과정은 그렇다. 내 사랑하는 괴물들. 그들이 바로 내 소설이다. 나는 변덕스런 연인처럼 그들을 사랑했다가 미워하고 미워했다가 사랑한다. 그것을 반복한다. 그런데 한 번 지상으로 올라온 그 괴물들은 다시 내려가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부드러워지고 멀쩡해진다. 신문과 TV뉴스를 보고 찾아온 이웃사람과 대화를 나눈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팝콘을 씹어 삼킨다. 양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며 시정의 잡사에 참견하는 것을 즐긴다. 사람들은 그들을, 잡문 혹은 산문이라 부른다. 등단 7년 만에 그것들을 묶는다. 논평하고 감동하고 이죽거리고 농담한 흔적들이다. 개중에는 괴물로서의 특성을 완전히 망각한 말랑말랑한 글도 있지만 아직 털갈이가 채 끝나지 않은 괴물의 축축한 글도 있다. 일간지나 주간지, 월간지에는 대체로 멀쩡한 자들이 써보냈으나 문예지 등에는 아직 괴물로서의 특성을 채 버리지 못한 놈들이 썼다. 특히 마지막 장에 실린 글들이 그러하다. 그래서 Etc. 라는 이름으로 따로 묶었다. 그 앞장인 <post it> 부분은 1999년 문학동네 가을호 '젊은 작가 특집'에 자전소설로 발표했던 것인데 다시 실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사뭇 다르지만 돌아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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