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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권행백

본명:권용주

최근작
2023년 1월 <타인의 삶>

빗창

소설에 입문할 때 들은 말이 있다. 이야기란 제 스스로 앞장서 이끄는 힘이 있으므로 쓰다보면 글이 저절로 풀려 나오게 되어 있다고. 나 역시 작품이 거듭될수록 그런 기분으로 동력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장편 『빗창』을 쓰기 시작할 즈음, 종잡을 수 없는 힘이 수시로 나를 붙잡고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탈고 뒤 곰곰 생각해 보니 그건 역사의 무거움 때문이었다. 소설가란 본시 그럴 듯한 거짓을 꾸며 독자를 진실의 문으로 인도하는 업고를 진 자가 아니던가. 동시대인들이 바로 세우지 못한 현대사에 묻혀 있던 상처들을 들추어내 반추하는 작업에 나는 진땀을 흘렸다. 취재 과정에서 표토를 걷어내자 눈앞에 마주한 진실은 저마다 다른 빛깔이었고 잘만 다듬으면 훌륭한 의미로 거듭날 원석과 들여다볼수록 구역질나는 오물이 마구 뒤섞여 있었다. 발굴한 고대 유물에서 옥석을 가리듯 나는 그렇게 정리한 재료에 의미와 방향성을 부여했다. 잠시는 아플지라도 길게 보아 그것이 옳다는 믿음에 한 점 의심이 없을 때까지 나 자신을 거울에 비추어 보아야 했다. 빗창을 퇴고하면서 유난히 작품 속 김 순경에게 애정을 느꼈다. 그는 여순과 제주를 넘나들며 역사의 현장을 증언하고 연결시키는 통로이다. 여순의 한(恨)과 제주의 그것은 데칼코마니임에도 그동안 마치 별개의 사건인 양 그 연결성을 주목받지 못했다. 긴 세월 국가 폭력 세력이 만들어 놓은 이념의 부정적 이미지에 서로가 엮이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것은 비교적 표현이 자유로운 문학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항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세력이 한쪽은 인민들이었고 한쪽은 군인들이었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겠으나 둘 다 해방된 세상을 제대로 세워 보려는 인간애의 발로였음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더구나 여순항쟁은 이 나라 정규군이 외세 의존적 신생 정부의 반민족 반헌법적 명령에 분연히 저항하여 민중과 연대한 세계사적으로도 드믄 사건이었다는 확신으로 나는 빗창을 완성할 수 있었다. 제주 해녀들의 생계 수단이자 저항의 상징인 빗창은 소설 속에서 해녀 사대를 거치며 그 상징성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다. 나는 소설 속 오석준에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당시 민초들의 애환을 드러내는 역할을 부여했다. 종장에서 그가 골리앗에게 도전하는 나름의 저항 방식을 찾아낸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써놓고 보니 소설 한 권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욱여넣은 듯싶다. 할 말이 많았나 보다. 작품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소설 『빗창』이 현대사를 재조명하는 데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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