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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문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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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유령해마 (리커버 에디션)>

유령해마

소설과 일기를 쓰는 데에는 이유가 필요 없지만, 다른 글들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소설 본문 외의 저자 사진도 서문도 작가의 말도 원치 않는 다소 괴팍한 취향의 독자인지라 나 자신도 작가의 말을 쓰길 피하지만, 써야 할 이유가 있을 때는 예외다. 이 거친 글을 쓰는 이유는 김보영 작가께서 이 책의 서점 리뷰를 쓰실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사랑하는 한국 작가 중 한 명에게 리뷰를 받는 게 과연 행복하기만 한 일일까? 나는 편집장님께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면 안 되겠냐고 말하고 싶은 걸 참느라 무진 애를 썼다. 이 책의 리뷰 때문에, 김보영이 소설을 쓸지도 모를 시간을 낭비한다고? 어림도 없지! 그러나 거절하는 것이야말로 내겐 더 어림없는 일이니, 차라리 다음과 같은 사실을 미리 밝혀두는 편이 나을 것이다. 김보영 작가님, 당신은 내게 깊은 영향을 주다 못해 거의 번민에 시달리게 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는 당신의 소설 때문에 얼마나 행복에 겨워 감동하고 좌절하고 질투하고 즐거워하며 혼자서 야단법석을 떨었는지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리뷰를 쓸 상황이라면, 당신의 그 흘러넘치는 재능 때문에 이 책의 저자가 한때 출판계약서에 서명하길 망설인 적이 있었다는 걸 알아야 하지 않을까? 당신의 중단편 작품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SF소설에 눈길을 주는 일이 늦어졌으리라는 것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내 이야기를 이보다 길게 쓸 필요는 없으니 책 이야기를 하자. 비록 김보영의 작품 중 가장 사랑하는 건 초기 단편집 두 권이지만, 이 책을 준비하며 자주 들춰본 건 비교적 최근작인 《얼마나 닮았는가》이다. 앤 레키의 말도 안 되게 감동적인 라드츠 시리즈(《사소한 정의》, 《사소한 칼》, 《사소한 자비》)에서도 영향받았음을 밝힌다. 영향을 받았다고 믿고 있으며, 영향을 받았길 원한다. 물론 우리는 각자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었다. 앤 레키는 압도적 규모의 제국주의에 맞서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 관해 썼고, 김보영은 특정 유전자를 지닌 인류가 다른 특정 유전자를 지닌 인류를 사물로 취급하는 현상을 은유적으로 빗대어 썼다. 내가 이 책에서 쓴 것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사소한 정의》를 읽지 않았다면 나는 다양한 구조의 자아에 대해 오래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얼마나 닮았는가》와 AI 개발 현장의 과학자들이 남긴 여러 글이 없었다면 기계의 인지능력에 생기는 맹점에 대해 오래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캐런 메싱의 《보이지 않는 고통》과 김희경의 《이상한 정상가족》도 일부 설정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쳤음을 밝힌다. 하나의 책은 예외 없이 그 책의 저자가 읽은 수백 수천 권의 책들에 빚지고 있다. 서점 리뷰를 핑계 삼아 이를 고백할 기회를 얻어서 다행스럽게 여긴다. 이 글이 어디서 어떻게 사용될지 지금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김보영 작가께는 전달되리라는 확신이 든다. 나는 이 글을 평온한 마음으로 끝맺을 수 있을까? 어림도 없지!

유령해마 (리커버 에디션)

소설과 일기를 쓰는 데에는 이유가 필요 없지만, 다른 글들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소설 본문 외의 저자 사진도 서문도 작가의 말도 원치 않는 다소 괴팍한 취향의 독자인지라 나 자신도 작가의 말을 쓰길 피하지만, 써야 할 이유가 있을 때는 예외다. 이 거친 글을 쓰는 이유는 김보영 작가께서 이 책의 서점 리뷰를 쓰실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사랑하는 한국 작가 중 한 명에게 리뷰를 받는 게 과연 행복하기만 한 일일까? 나는 편집장님께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면 안 되겠냐고 말하고 싶은 걸 참느라 무진 애를 썼다. 이 책의 리뷰 때문에, 김보영이 소설을 쓸지도 모를 시간을 낭비한다고? 어림도 없지! 그러나 거절하는 것이야말로 내겐 더 어림없는 일이니, 차라리 다음과 같은 사실을 미리 밝혀두는 편이 나을 것이다. 김보영 작가님, 당신은 내게 깊은 영향을 주다 못해 거의 번민에 시달리게 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는 당신의 소설 때문에 얼마나 행복에 겨워 감동하고 좌절하고 질투하고 즐거워하며 혼자서 야단법석을 떨었는지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리뷰를 쓸 상황이라면, 당신의 그 흘러넘치는 재능 때문에 이 책의 저자가 한때 출판계약서에 서명하길 망설인 적이 있었다는 걸 알아야 하지 않을까? 당신의 중단편 작품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SF소설에 눈길을 주는 일이 늦어졌으리라는 것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내 이야기를 이보다 길게 쓸 필요는 없으니 책 이야기를 하자. 비록 김보영의 작품 중 가장 사랑하는 건 초기 단편집 두 권이지만, 이 책을 준비하며 자주 들춰본 건 비교적 최근작인 《얼마나 닮았는가》이다. 앤 레키의 말도 안 되게 감동적인 라드츠 시리즈(《사소한 정의》, 《사소한 칼》, 《사소한 자비》)에서도 영향받았음을 밝힌다. 영향을 받았다고 믿고 있으며, 영향을 받았길 원한다. 물론 우리는 각자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었다. 앤 레키는 압도적 규모의 제국주의에 맞서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 관해 썼고, 김보영은 특정 유전자를 지닌 인류가 다른 특정 유전자를 지닌 인류를 사물로 취급하는 현상을 은유적으로 빗대어 썼다. 내가 이 책에서 쓴 것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사소한 정의》를 읽지 않았다면 나는 다양한 구조의 자아에 대해 오래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얼마나 닮았는가》와 AI 개발 현장의 과학자들이 남긴 여러 글이 없었다면 기계의 인지능력에 생기는 맹점에 대해 오래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캐런 메싱의 《보이지 않는 고통》과 김희경의 《이상한 정상가족》도 일부 설정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쳤음을 밝힌다. 하나의 책은 예외 없이 그 책의 저자가 읽은 수백 수천 권의 책들에 빚지고 있다. 서점 리뷰를 핑계 삼아 이를 고백할 기회를 얻어서 다행스럽게 여긴다. 이 글이 어디서 어떻게 사용될지 지금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김보영 작가께는 전달되리라는 확신이 든다. 나는 이 글을 평온한 마음으로 끝맺을 수 있을까? 어림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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