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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인문/사회과학

이름:소영현

직업:평론가

최근작
2024년 3월 <하녀>

분열하는 감각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무작정 읽고 쓰는 것이 좋았던 시절을 지나, 내내 문학과 비평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던 시간의 기록들이다. 개별 글들은 포스트모던한 소비사회로, 자본의 글로벌화로, 문학의 생존을 말해야 하는 시대로, 권력이 폭력으로 이해되는 시절로 움직이고 있던, 이른바 변화하는 시대를 보여주는 기록들이기도 하다. 초조하고 심란하거나 조급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혼란스러운 변화의 국면들을 추적하고 가늠해본 기록들은, 하나의 글이 던진 해소될 수 없는 질문들이 다른 글들에서 반추되고 재질문되면서 문학과 비평에 대한 두꺼운 질문지의 형국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두꺼워지는 그 질문의 갈피에서, 장소에 깃들어 있는 시간의 층차들이나, 점유하거나 배제된 자들에 의해 다르게 이해되는 장소 자체의 속성과 조우하게 되었다. ‘다른 것the other,’ ‘다르게 하는 것difference’의 물질성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시작과 끝이 따로 없는 개별 글들에서 다른 사유와 상상을 요청한 근원지라고 할 수 있는 분열하는 감각들을 아로새기게 되었다. 분열하는 감각들 사이에는 예로부터 있어왔으나 많은 이들에게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으며 대개의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낯설게 느껴지는 것들도 있다. 여전히 그것들 사이에 그어진 실금보다는 그것들을 관통하는 공통의 몇 가지가 더 강조되는 세상이라서인지, 분열이 달팽이처럼 더디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실금을 지우거나 흐릿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것the others’을 볼 수 없게 하는 어떤 힘이다. 그러니 ‘다르게 하는 것’을 막는 그 힘은 어떤 종류든 개별적인 것이 아니다. 의식이든, 이념이든, 감각이든 이 모든 것이 단지 개별적인 것만은 아니다. 비평은 그것들을 개별화하는 이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하여, 이 책에서는 그 분열과 희미한 실금들이 만들어내는 파동의 정치학에 기대어 미래의 문학을 가늠해보고자 했다. 개별적인 것의 특이성sigularity은 좀더 오랫동안 소중하게 다루어져야 할 ‘도래할’ 문학의 얼굴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다른 것,’ ‘다르게 하는 것과 관계하는 문학과 비평을 어떻게 이해하고 판단할 것인가, 비평가의 눈을 믿지 않는 시대의 비평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해야 하는가, 문학과 비평의 미래는 어떻게 가늠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분열하는 감각들이 어디로 향하는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 허공을 떠돌던 언어들이 하나의 문장이 되어 나에게 온다. 떠도는 언어들은 내가 접하고 있는 세계 혹은 대상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것이자 과거의 사유/상상으로부터 온 것이다. 시공을 초월하여 피부로, 머리로, 문자로, 대화로 만난 모든 것이 실패의 기록일 뿐인 보잘 것 없는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들 혹은 그것들 모두에 감사한다.

올빼미의 숲

칠흑 같은 문학-숲에서 파국의 전조를 응시하고 있다고 믿었다. 어두운 숲 너머를 미리 봤다고도 생각했다. 비평의 물질성을 더듬거리며 본 것, 감지한 것,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좀더 소리 높여 말해야 한다고, 이제 날갯짓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믿었던 것 같다. 2015년 이후 문학장에 예기치 못한 사태가 연이어 일어났다. 지금 이곳의 문단 풍경을 둘러보자면 표절 사태에서 #문단_내_성폭력 고발 사태까지, 한국문학이 처한 난국 앞에서 위기라는 말조차 사치스러운 푸념이 되었다. 혼란스러운 풍경 속에서 비평은 문단 적폐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고 있기도 하다. 좀 냉정하게 돌아보자면 돌연 불어온 변화의 회오리 앞에서 차곡차곡 쌓아왔다고 여겼던 다른 비평을 위한 그간의 사유-상상이 그저 어두운 숲 한가운데 웅크린 눈먼 올빼미의 무용한 망상이었을 뿐임을 확인해야 했다. 삶 혹은 현실 쪽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비평의 착시가 아니라 시대 요청에 적절하게 개입하지 못한 비평의 경직성을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문제적으로 인지할 수밖에 없었다. 새삼 폭로된 비평의 무능과 대면한 시간이 아니다.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이제 누구도 비평에는 눈길을 주지 않으며 더 이상 어떤 기대도 걸지 않게 된 현실에 너무 늦게 눈뜨게 된 상황인 것이다. [……] 비평이 구석에 처박힌 철 지난 사과처럼 보인다 해도 문학-삶에 대한 비평의 필요성 자체가 그리 쉽게 폐기될 수는 없다. 비평은 몰락하는 것들의 질긴 미련을 마지막 한 자락까지 지켜보는 최후의 파수꾼이다. 허무주의적 종말론으로 치닫지 않고 스스로도 알지 못하거나 감지하지 못하는 미래를 열어줄 유일한 실마리인 것이다. 태도로서의 비판에 대한 환기와 함께 이 책에서 낮은 목소리로 제안하는 것은 사회비평으로의 전회(였)다. 사회비평 선언은 사회에 대한 비평의 요청이 아니다. 비평이 놓인/놓여야 할 콘텍스트인, 시공간적으로 전체적이고 거시적인 시야에 대한 환기이다. 문학과 사회, 예술과 삶 사이의 관계 재설정을 의식하여 감성을 키워드로 한 사유-상상에 사회비평의 이름을 붙여두었고, 거기에서 희미하나마 시대 정합적 비평의 얼굴을 스케치해보았다. 문학의 사회적 상상력에 대한 환기는 문학 혹은 비평의 본래적 기능 복원이 아니라 지금-이곳의 문학적, 정치사회적 환경이 요구하는 비평 기능의 재수립을 의미한다. 본래적으로 대상 의존적인 비평의 속성에 의해 비평의 존립은 텍스트화된 삶에 ‘감응하고/감응되는’ 과정 자체에서 입증되어야 한다. 삶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을 거대한 집체의 힘이 예기치 못한 순간에 이미 많은 것들을 과거의 시간으로 밀어 넣었다. 그 힘에 떠밀리듯 지금 우리는 거대한 변혁의 입구에 이미 성큼 들어와 있다. 흔들리고 흐르며 변해야 비평이며 흔들리는 비평만이 미래의 문학 혹은 다른 삶의 기미를 잡아챌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의 지속적 유효성 속에서도, 지금 이곳에서는 짙어지거나 옅어지는 어둠의 미묘한 흐름과 그 유동성의 예기치 못한 효과를 가장 나중까지 응시하는 일에 사유를 통한 세계 상상인 비평의 시대적 요청이 놓인 것은 아닌가 되새기게 되는 시절이다. 이 책은 문학, 아니 다른 삶의 흐릿한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 출구 없는 미로를 더듬었던 논의의 기록이다.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사유의 파편들이 스스로는 알지 못하거나 상상하지도 못할 삶을 열어줄 수 있기를 바랐다. 고백건대, 급작스럽게 열려버린 출구 앞에서 그간의 사유-상상이 시효 만료된 상황을 확인하게 되어 당혹스럽다. 하지만 어제와 다른 오늘과 내일이 그만큼 또 기대되기도 한다. 이 책이 새롭게 시작되고 있는 문학-삶의 미래를 두고 의미 있는 실패의 기록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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