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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학습서/수험서

이름: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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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Top Voca 1 : 핵심동사 콜로케이션>

교양영어 고급지문 1

머리말 책이라는 것, 혹은 문서나 글이라는 것은 도무지 끝이 없을 것 같은 양으로 세상에 존재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지혜나 성찰에 대한 기록은 한 사람이 태어나 죽을때까지 읽어도 도무지 그 만분의 일이라도 공감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남을 정도입니다. 우리의 모국어로 된 지식과 지혜의 기록들도 넘치고 넘칠 정도로 존재합니다. 재외동포까지 합쳐서 한글로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들은 약 8천 만 명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과거의 기록들과 함께 현재 한국어로 만들어지는 정보의 양도 어마어마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한국어가 국제적 지위를 크게 얻는다면, 그 위상이 달라질 날도 오지 않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 봅니다. 그러면, 영어는 과연 어떨까요. 북미 2개국, 유럽 2개국, 오세아니아 2개국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합니다. 그 밖에 아프리카, 아시아, 인도 등지에서도 영어를 준 모국어로 사용하는 국가들이 많습니다. 한 단계 더 내려와서 영어를 의사소통 언어로 취급하는 국가들을 망라하면, 우리나라를 포함하는 약 100 개 국가가 존재합니다. 사용자수의 관점에서 보면, 모국어 및 적극적 사용계층이 약 7억, 소극적 사용 인구까지 합치면 약 10억이 영어를 정보소통의 직, 간접적 수단으로 삼고 있습니다. 단순 사용자 수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어, 스페인어도 무시할 수 없지만 이들 국가의 언어는 국제공용어로 취급되지 않습니다. 세계사의 흐름에서 국제적 영향력을 얻을 기회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게다가 중국어는 실제로 지역별 변화편차가 굉장히 커서 하나의 중국어로 전체 중국 지역을 아우르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평가됩니다. 영어가 한국인의 소통수단에서 명실 공히 제 2 모국어의 수준까지 자리 잡기에는 아직도 의견의 통일 및 제도적 보완이라는 문제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작금에도 우리의 생활에서 영어, 영어교육, 영어시험, 생활영어, 입시영어, 공무원영어, 편입영어, 유학영어, 이민영어, 입국심사영어, 관광영어, 등등을 포함한 수많은 영어 관련 키워드 들이 검색대상에 오르고 있습니다. 간단한 의사소통용 영어는 사실, 공개된 소스를 통해서 얼마든지 습득이 가능하고 노력 여하에 따라서 그 수준을 꽤 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어에 대한 정밀한 지식이 필요한 수준 높은 지적 기록물들은, 매우 진지한 노력이 없이는 그저 외계어(?)일 뿐입니다. 여러분들이 영상매체에서 얻은 몇 마디 표현들을 쓰고 이해한다해도, 어쩌면, 만 개의 감정코드와 십 만 개의 지식코드가 필요한 기록들을 저작자와 같은 수준으로 이해하고 그 수확물을 같은 정도의 기쁨으로 공유하기 위해서는 결단코, 글 읽기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영어로 된 글을 읽을 때, 우리는 영어라는 언어 자체는 배제하고 일단 내용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늘 뒤의 해석판이나 번역본을 먼저 보고 내용을 요약한 후 영어자체는 이제 뒤로 미루어 놓기도 합니다. 이런 일반인들의 지적 나태나 한계를 이용해서 태어난 것이 번역활동입니다. 전문 번역가들이 한국어로 가장 알기 쉽게 영문을 옮겨 놓으면 여러분은 그저 숟가락 젓가락을 들고 그것을 음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세상은 바뀌고 있습니다. 번역이라는 간접적 과정을 기다려서 정보를 얻어야만 한다면, 여러분은 지적 경쟁에서 결국 뒤처지게 되고 스스로도 한계에 갇히고 말 것입니다. 또 하나, 존재하는 영문의 한국판 번역서들이 가진 맹점이 여러분을 오도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번역은 만인이 보아도 동일하게 이해되도록 의미를 객관화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필연적으로 의역을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Even Homer sometimes nods.” 라는 글을 한국어로 번역한다면 누군가는 “때때로 호머도 조느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한국어 사용자 만인이 동일한 이해의 정도와 속도를 갖게 되는 번역이 아닐 것입니다. 또 다른 번역자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도 있다.” 라고 의역을 한다면 아마 금방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후자가 이상적인 번역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문화권에 따른 배경지식을 깡그리 무시하고 최종적인 의도만을 전달하려 한다면 후자의 번역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의역으로만 글을 읽은 사람은 영어에서 Homer 와 관련된 정보를 하나도 얻지 못한 채 그저 남들이 떠먹여 주는 밥을 먹었을 뿐입니다. 호머(Homer)는 호메로스(Homeros)의 영어식 표기입니다. 이 사람은 서양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두 문학작품, 일리아스(Ilias)와 오딧세이아(Odysseia)의 저자로 추정되는 그리스 인물입니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을 다룬, 1만 6천 행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지적유산(intellectual legacy)입니다. 그것을 만약 구송시인 즉, 리라(lyre)라는 악기에 의존하여 노래의 형태로 시를 읊는 사람이 부른다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뛰어난 기억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가사를 완벽히 암기하고 있는 노래가 몇 곡 정도 되며 그 가사의 총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해 보면, 이 엄청난 업적을 이루어 낸 사람이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상상이 되실 것입니다. 여기서, ‘고개를 끄덕이다’ 에 해당하는 ‘nod’ 는 학자나 성실한 사람이 졸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보통 불성실한 사람들이 연구나 공부를 할 때 그 상징으로 사용되는 말이었습니다. 위의 영어 문장을 만약 ‘심지어 호머같은 위대한 학자시인도 때로 고개를 끄덕이며 존다’ 라고 번역하고 그 아래 호머에 대한 역주를 달았으면, 그것이 이상적인 번역문들 중 하나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한 번역서를 읽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책을 통해서, 영어의 각 문장들이 한국어의 어떤 내용과 구조로 이해되는 것이 가장 합당한가에 대한 비교분석을 하고 그 결과로서, 이 책에 담긴 내용이상의 소득을 얻기 바랍니다. 번역은 객관화의 과정이지만 해석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 경험입니다. 그 경계선인 의역과 직역의 접합점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늘 절묘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어휘와, 지식, 그리고 표현 능력을 모두 고도로 요구하는 과업입니다. 여러분 스스로의 번역서를 새로 만들고 고급지문의 표현방식을 내 것으로 소화하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의 노력이 그에 합당한 결과와 지적 경쟁력을 가져다주길, 바랍니다.

교양영어 고급지문 2

책이라는 것, 혹은 문서나 글이라는 것은 도무지 끝이 없을 것 같은 양으로 세상에 존재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지혜나 성찰에 대한 기록은 한 사람이 태어나 죽을때까지 읽어도 도무지 그 만분의 일이라도 공감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남을 정도입니다. 우리의 모국어로 된 지식과 지혜의 기록들도 넘치고 넘칠 정도로 존재합니다. 재외동포까지 합쳐서 한글로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들은 약 8천 만 명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과거의 기록들과 함께 현재 한국어로 만들어지는 정보의 양도 어마어마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한국어가 국제적 지위를 크게 얻는다면, 그 위상이 달라질 날도 오지 않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 봅니다. 그러면, 영어는 과연 어떨까요. 북미 2개국, 유럽 2개국, 오세아니아 2개국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합니다. 그 밖에 아프리카, 아시아, 인도 등지에서도 영어를 준 모국어로 사용하는 국가들이 많습니다. 한 단계 더 내려와서 영어를 의사소통 언어로 취급하는 국가들을 망라하면, 우리나라를 포함하는 약 100 개 국가가 존재합니다. 사용자수의 관점에서 보면, 모국어 및 적극적 사용계층이 약 7억, 소극적 사용 인구까지 합치면 약 10억이 영어를 정보소통의 직, 간접적 수단으로 삼고 있습니다. 단순 사용자 수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어, 스페인어도 무시할 수 없지만 이들 국가의 언어는 국제공용어로 취급되지 않습니다. 세계사의 흐름에서 국제적 영향력을 얻을 기회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게다가 중국어는 실제로 지역별 변화편차가 굉장히 커서 하나의 중국어로 전체 중국 지역을 아우르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평가됩니다. 영어가 한국인의 소통수단에서 명실 공히 제 2 모국어의 수준까지 자리 잡기에는 아직도 의견의 통일 및 제도적 보완이라는 문제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작금에도 우리의 생활에서 영어, 영어교육, 영어시험, 생활영어, 입시영어, 공무원영어, 편입영어, 유학영어, 이민영어, 입국심사영어, 관광영어, 등등을 포함한 수많은 영어 관련 키워드 들이 검색대상에 오르고 있습니다. 간단한 의사소통용 영어는 사실, 공개된 소스를 통해서 얼마든지 습득이 가능하고 노력 여하에 따라서 그 수준을 꽤 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어에 대한 정밀한 지식이 필요한 수준 높은 지적 기록물들은, 매우 진지한 노력이 없이는 그저 외계어(?)일 뿐입니다. 여러분들이 영상매체에서 얻은 몇 마디 표현들을 쓰고 이해한다해도, 어쩌면, 만 개의 감정코드와 십 만 개의 지식코드가 필요한 기록들을 저작자와 같은 수준으로 이해하고 그 수확물을 같은 정도의 기쁨으로 공유하기 위해서는 결단코, 글 읽기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영어로 된 글을 읽을 때, 우리는 영어라는 언어 자체는 배제하고 일단 내용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늘 뒤의 해석판이나 번역본을 먼저 보고 내용을 요약한 후 영어자체는 이제 뒤로 미루어 놓기도 합니다. 이런 일반인들의 지적 나태나 한계를 이용해서 태어난 것이 번역활동입니다. 전문 번역가들이 한국어로 가장 알기 쉽게 영문을 옮겨 놓으면 여러분은 그저 숟가락 젓가락을 들고 그것을 음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세상은 바뀌고 있습니다. 번역이라는 간접적 과정을 기다려서 정보를 얻어야만 한다면, 여러분은 지적 경쟁에서 결국 뒤처지게 되고 스스로도 한계에 갇히고 말 것입니다. 또 하나, 존재하는 영문의 한국판 번역서들이 가진 맹점이 여러분을 오도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번역은 만인이 보아도 동일하게 이해되도록 의미를 객관화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필연적으로 의역을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Even Homer sometimes nods.” 라는 글을 한국어로 번역한다면 누군가는 “때때로 호머도 조느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한국어 사용자 만인이 동일한 이해의 정도와 속도를 갖게 되는 번역이 아닐 것입니다. 또 다른 번역자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도 있다.” 라고 의역을 한다면 아마 금방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후자가 이상적인 번역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문화권에 따른 배경지식을 깡그리 무시하고 최종적인 의도만을 전달하려 한다면 후자의 번역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의역으로만 글을 읽은 사람은 영어에서 Homer 와 관련된 정보를 하나도 얻지 못한 채 그저 남들이 떠먹여 주는 밥을 먹었을 뿐입니다. 호머(Homer)는 호메로스(Homeros)의 영어식 표기입니다. 이 사람은 서양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두 문학작품, 일리아스(Ilias)와 오딧세이아(Odysseia)의 저자로 추정되는 그리스 인물입니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을 다룬, 1만 6천 행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지적유산(intellectual legacy)입니다. 그것을 만약 구송시인 즉, 리라(lyre)라는 악기에 의존하여 노래의 형태로 시를 읊는 사람이 부른다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뛰어난 기억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가사를 완벽히 암기하고 있는 노래가 몇 곡 정도 되며 그 가사의 총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해 보면, 이 엄청난 업적을 이루어 낸 사람이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상상이 되실 것입니다. 여기서, ‘고개를 끄덕이다’ 에 해당하는 ‘nod’ 는 학자나 성실한 사람이 졸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보통 불성실한 사람들이 연구나 공부를 할 때 그 상징으로 사용되는 말이었습니다. 위의 영어 문장을 만약 ‘심지어 호머같은 위대한 학자시인도 때로 고개를 끄덕이며 존다’ 라고 번역하고 그 아래 호머에 대한 역주를 달았으면, 그것이 이상적인 번역문들 중 하나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한 번역서를 읽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책을 통해서, 영어의 각 문장들이 한국어의 어떤 내용과 구조로 이해되는 것이 가장 합당한가에 대한 비교분석을 하고 그 결과로서, 이 책에 담긴 내용이상의 소득을 얻기 바랍니다. 번역은 객관화의 과정이지만 해석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 경험입니다. 그 경계선인 의역과 직역의 접합점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늘 절묘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어휘와, 지식, 그리고 표현 능력을 모두 고도로 요구하는 과업입니다. 여러분 스스로의 번역서를 새로 만들고 고급지문의 표현방식을 내 것으로 소화하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의 노력이 그에 합당한 결과와 지적 경쟁력을 가져다주길, 바랍니다. - 머리말

마지막 기초영문법

머리말 ▣ 부조리 난무(亂舞)... 어지럽게 춤추다. 갈릴레이를 아십니까? 아이작 뉴우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인간이 지금까지 볼 수 있었던 가장 먼 지평선을 보았다. 하지만 나는 갈릴레오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앉아 그 세상을 보았던 것이다.” 그 갈릴레오가 지구와 그 외의 행성들, 그리고 우리의 항성인 태양을 관측하고 그 당시까지 유럽세계의 천체관을 지배하고 있었던 프톨레마이오스 (Ptolemaios) 의 천동설에 근거한 거짓된 세계의 원형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을 때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그에게 가해지던 사회적 형벌과 독설의 수준은 가늠하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그는 1616년 그의 첫 번째 종교재판이후 1633년 다시 굴욕적인 맹세, 즉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에 입각한 세계관이 사악한 이단의 행위이며 다시는 이를 연구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강요당한 후, 평생 가택연금을 당했고 장례식과 묘비 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근대물리학의 기초를 닦은 이 위대한 천재가 짊어져야 했던 멍에를 헤아려보십시오. 이런 일은 불행히도 인간사의 흔한 부조리 중 하나일 뿐입니다. 부조리 말입니다. ▣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영어교육논란 흔히들 한국인은 민족적 자질이 우수하고 근면하며 창의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됩니다. 특정 영역에서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한국인들이 장인이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남들이 오랜 세월 걸려서 이룩하는 업적들을, 한국인들은 그 십 분지 일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이루어 내곤 했습니다. 모든 면에서 그렇다면 참으로 기운 나는 말입니다. 하지만 특정 영역에서 한국인들이 연속된 좌절과 패배를 맛보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어디일까요? 그것이 혹시 영어교육이라는 분야는 아닐까요? 오랜 세월 동안, 다수의 한국인들이 이 국제어의 습득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면, 그것을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는 소위 ‘먹고 살만 한데’ 말입니다. 아니면 이 패배를 민족 언어에 대한 자긍심, 반사대주의 혹은 정치적 냄새가 진동하는 다른 ‘덕목’ 들로 가린 채 한시적 무통주사의 평화 속에 누워 있는 것은 아닐까요? 환부는 썩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연전, 한 문필가가 모 신문에 [영어를제 2국어로 하는 2개 국어 병용교육] 에 관한 진지하고 용감한 소고를 올렸다가 비판론자들의 포화를맞던 사건이 기억납니다. 그 분은 소설가이자 국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 영어 울렁증 저는 한국인들의 창의성과 우수성을 우리의 초, 중, 고교의 교과과목에 투영시켜 보았습니다. 많은 교과량을 배당받고도 처참한 이 영어교육의 결과에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이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대한민국대표선수(?)들의 현란한 문구와 구호의 난무도, 결국은 상업주의로 심하게 경도된 [자칭]이자 [자처]가 아니었던가요? 한국인들은 여전히 이 국제어에 관해서는 심하게 말해 지리멸렬상태에 있습니다. 가족해체를 초래했던 조기유학이라는 극약처방까지 쓰게 되었으니까요. 각종 시험에서 어떻게든 정답이라는 것을 낚아가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 시험점수일 뿐 우리는 여전히 영어를 말하고 듣고 쓰고 읽는데 애를 먹고 있습니다. 영어울렁증(English Anxiety)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된 사회 병리적 신드롬입니다. 저는 특별히 이를 잘 알겠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바로 이런 지리멸렬의 한가운데 서 있기 때문입니다. 부상당한 여러 영어 학도들과 함께 말입니다. ▣ 영어 공부 절대로 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소위 ‘영어를 공부로 하지 말고 즐겨라’ 하는 식의 다소 비 전문적이고 단편적인 문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지식을 쌓고 그것을 기술적으로 활용할 목적이 있다면 그 지식이 습득되는 배경환경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합니다. 건축물을 예로 들어 본다면, 그 건축물이 사막에서 만들어져, 그곳에 세워지는 것인지, 강변에서인지, 숲에서인지, 암벽 산에서인지에 따라 사용하는 건축 재료와 건축기법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이집트의 기자사막위에서 목재 건축물을 상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재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은 별도로 하고라도 그 강력한 모래바람과 강렬한 태양광에서 오래 버티기 위해서는 석재가 적합했겠지요. 석재를 사용함으로써 건축기법도 석재에 맞게 이루어져야 했을 것입니다. 비록 그 건축술은 아직도 미스테리지만 말입니다. 영어 학습이라는 건축물로 돌아와 보면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곳이 학습에 적합한 곳인지, 실전에 적합한 곳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비영어권 국가와 영어모국어권 국가, 이 둘 중 어디서 영어를 배우느냐에 따라 학습법은 당연히 달라집니다. 우리에게 생존영어의 환경이란 것은 엄밀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영어모국어권 안에서 영어를 배운다면 우리는 이미 영어를 ‘배우는 것’ 이 아니라 체득하고 있는 중일 것입니다. 이런 조건 하에서라면 말과 소리가 먼저 체득되고 문자로 소통하는 법칙은 자연스레 이해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우리의 모국어인 한국어를 배우던 과정처럼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영어를 모국어 내지 제 2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지 않은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기 때문에 엄격히 본다면 단 순간도 생존을 위해 영어를 듣고 말하고 읽고 쓰지는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므로 영어는 서바이벌 랭귓지(language for survival)가 아니라 저스터나더 초이스(just another but important option)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선택적 학습의 결과는, 다소 혹독하게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습니다. 진학, 직장에서의 승진, 사업, 여행, 교제, 심지어 취미생활에 대한 추구까지 이 영어능력은 혜택이 되기도 하고 걸림돌 작용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영어를 제대로 공부해서 좋은 결과를 얻어야 된다는 결심은 매우 타당하게 보입니다. 분명히 영어를 즐기면서 체득하기는 어려운 비몰입 학습환경에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그에 따른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예전에 비해 영어를 적극적으로 체험할 기회가 매우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글을 제대로 읽고 쓰는분야에서는 나아진 것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 micro to macro [저는 높게 날았습니다. 그리고 숲을 보았습니다. 숲이니 당연히 나무와 물과 열매가 있을 것이라고생각하고 착륙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내린 곳은 숲이 아니었습니다.] 왜 이런 실수가 있을 것이라고 상정하십니까? 그것은 그 사람이 나무라는 것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즉, 나무에 대한 정보가 없는 비행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숲’ 이라는 단어는 ‘나무’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 다음 단계의 거시안목입니다. 이 사람은 미시안목조차 훈련되지 않은 상태로 현학의 허세를 부렸기 때문입니다. 잎사귀, 줄기, 뿌리 등, 나무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도 모른 채 숲을 안다고 나서지 말기로 합시다. 그것은 본말의 전도입니다. 글에서 그리고 말에서, 행위의 주체인 주어를 어떻게 만들고 구별하는지, 그 후 술어 동사 부분을 어떻게 구성하고 전개하는지, 행위의 대상인 목적어가 무엇인지, 이파리들을 가지에 붙들어 매는 접속사와 수식어들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우선 알아야 나무의 종류들도 구별하고 그것들이군집을 이루는 숲의 모양과 특성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컨대, 자연계를 이루는 작은 것들에 대한 우선적 이해가, 다음 단계의 지식을 선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몰입환경에서 영어를 배우는 한은 top down 방식이 아닌 micro to macro 방식을 채택해야 합니다. ▣ 한국어와 영어, 그 둘만의 상관성 영어를 배우는 민족마다 그 민족어의 체계가 영어에 대해 상대적으로 갖는 특별한 성질이 있습니다. 즉, 중국어와 영어, 일본어와 영어, 스페인어와 영어 등등에 적용되는 학습법은 서로 매우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어와 영어에서의 가장 큰 차이점을 이해하고 이를 극복하는 데에 우선 주안점을 두어야 합니다. 섣불리 원서를 들고 허세를 부리거나, 막무가내로 영어를 듣고 따라하거나, 무조건 영어 드라마나 영화에 도전하다보면 쉽게 한계에 부딪히고 흥미를 잃게 됩니다. 알파벳과 한글문자의 차이, 발음체계의 차이, 위치어인 영어와, 정황어인 한국어의 차이, 각 언어의 수식위치에서의 차이, 이런 차이점들이 우선적으로 학습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서서히 자신감이 생깁니다. ▣ 올바른 영어 학습법 섣부른 ‘직독직해’ 훈련은 오히려 영어를 더욱 어려워 보이도록 만들고 영어생성체계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학습자들은 한국어에서 그러하듯이, 희미하게 알고 있는 영단어의 의미들로 그 글이 주는 정보를 엉망으로 추측하게 될 것 입니다. 직독직해란 영어원어민들의 독해훈련용으로 고안된 접근법입니다. 이를 한국인들에게 바로 적용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따릅니다. 듣기는 소리에 의한 정보 전달이므로, 소리를 공간에 붙들어 매어둘 수 없기 때문에 발음에 대한 기초 훈련과 더불어 직청직해와 속청(intensive listening)이라는 훈련을 병행해서 해야 하지만 작문과 독해는 완전히 다른 훈련 영역입니다. 저의 이 졸서에서 우리는 이런 원리들을 터득해 나갈 것입니다. 물론 이 책은, 첨가하고 싶은많은 세부적 지식들을 최대한 억제하고 기초서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따라서 학습자들이, 다음단계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면 이 책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입니다. 학습자들이 만약 영어 학습에‘대박’이라는 천박한 심리만을 들이대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영어학습은 분명 ‘소소한 재미’를 담보할수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언제나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부단히 해당분야와 그 학습법에 대해 연구하고 노력할 것입니다. 진실로 알아가는 학습, 영작문을 가능하게 하는 학습 천 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지혜의 격언과 함께 언제나 가시밭길 끝에 영광의 면류관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기억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영문법 사전

머리말 1. 영문법무용론과 원어민들의 영문법학습의 실체 시대가 어려우면 살아남기 위하여 교언과 잡설들이 난무하는 법입니다. 공격적 어조는 유감이지만, 영문법무용론은 거두절미하고 미신에 불과합니다. 세계의 어족을 크게 구분하거나 작게 나누거나 간에 상관없이, ‘영어’와 ‘한국어’는 북극과 남극만큼이나 차이가 있는 언어들입니다. ‘영어’는 한국어에 비해서 ‘저정황적언어(low contextual language)’입니다. 다시 말해, 언어의 표현방식과 그 결과로 얻어지는 의미가, 그것이 표현되는 상황에 덜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말에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만큼 ‘눈치’나 ‘정황’이 의미의 결정에 개입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한국인들의 언어지능지수가 높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한국어가 그 의미의 파악에 정황을 좀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이에 비해 영어는 법칙위주의 언어입니다. 차라리 수학적 언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는데, 영어는 한국어에 비해 ‘단수·복수의 일치’나 ‘3인칭 단수의 구별’ 등을 통해 정황의존성을 줄이려고 매우 애쓴 언어입니다. 한국에서는 정규교육의 첫 시기에 국어를 배울 때, 국어책을 ‘문법의 각 장(章)’으로 구성하지 않습니다. 대신, 다양한 장르의 작품으로 교과서를 구성하는 편입니다. 즉, 어휘의 수준을 적절히 맞춘 ‘동요, 동시, 수필, 산문’ 등으로 교과서를 채우고, 각 학년 별로 ‘어휘의 수준, 문장의 길이, 장르의 수준’ 등을 높여가는 방식을 택하며, 문법과 맞춤법은 거의 상위 학년이나 대학입시 때 본격적으로 하게 됩니다. 하지만, 본토의 ‘영어교과서’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본 사람들, 혹은 영·미권에서 초등학교를 실제로 다녀본 사람들은 그들의 국어교과서, 즉 ‘영어교재’가 ‘한국어 국어교과서’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물론, 그들도 장르별 작품이 등장하는 읽기교재(reading)를 따로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6년 내내 주로 영문법을 배운다는 점에서 ‘한국에서의 국어 교육’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는데, 미국의 가장 대표적 교과서들 중 하나인 Houghton Mifflin 사의 English(국어) 진도표를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위의 예시에서 나타난 것처럼,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시기에 원어민들이 학습하는 영어교재는, 이러한 기본적 문법영역의 난이도별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한국에서 중·고교시절에 배우는 영문법용어들의 원어가 그대로 기본목차에 반영되어 있고, 그것을 통해서 ‘단원 간’ 혹은 ‘단원 후’에 응용학습으로 꾸준히 영작연습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실제 본토(영·미권) 공교육 영어교육과정의 커리큘럼입니다. 물론, 한국의 영문법서들이 반드시 이와 같은 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영·미권 본토의 학습법에서 강조하는 문법영역을 무시한다는 것은 곤란합니다. 이 책(English Grammar Dictionary)은 초등학교 6년 부터 중등교육 과정 까지의 영문법 학습내용을 한꺼번에 반영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제시된 예문들의 수준은, 어휘별로 내용별로 들쭉날쭉 할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그들의 나이에 맞게 해당 영역을 학습하지만, 우리는 성인되어서야 주로 이런 책을 공부하게 되므로, 어찌되었든 예문 수준은 어느 정도의 조정은 불가피합니다. 세월이 지나서 더욱 정교한 ‘한국어-영어’의 ‘비교언어적 영문법서’가 개정판으로 나올 때까지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할 것 입니다. 요컨대, 영어의 ‘말’은 현지에서 배우거나 몰입환경을 조성해서 배우는 것이 옳으며, 영어로 된 ‘글’은 문법을 바탕으로 하여 모든 영문을 구조적으로 밝히고 그에 맞는 정보를 습득하고, 다시 영작을 통해 재창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학습자는 비로소 확장성과 경쟁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좋은 말’과 ‘좋은 글’은 그냥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명문의 구조’를 익히고 이를 ‘창의적으로 모방’하여야 하는 것 이며, 이때 재창조의 기제가 되는 것이 바로 체계화된 영문법일 것 입니다. 2. 한글로 설명된 영문법서의 궁극적 발전방향은? 무엇이든 배운다는 것은, 그 노력과 시간에 대비한 효과가 좋으면 흥미가 배가 되고, 이를 동력삼아 더 매진한다면 해당분야의 전문가가 될 가능성이 더 커질 것입니다.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지구상의 다른 많은 문화와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 학습자의 삶에 더 큰 풍요로움을 가져다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학습의 효율성을 확실히 담보하는 방법입니다. ‘어학’ 즉, 말(語)로 하는 소통의 학습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효율적인 학습방법은 바로 몰입환경의 확보입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 자신을 최대한 자주 노출하고, 동시에 최대한 많은 의사소통을 강요당하면, 말은 저절로 배워집니다. 간접적 몰입 상황 또한 차선책이 될 수 있는 바, 드라마나 영화의 대사를 통으로 암기하고 따라 하면서 말을 배우는 것은 큰 경제적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학습법입니다. 글(文)을 익히는 분야는 어떨까요? 글은 말의 소통에서 흔히 수반되는 다른 보조적 신호들, 예컨대 ‘몸짓, 표정, 분위기, 정황’ 등이 배제된 단일적 소통수단입니다. 따라서 글은 말에 비해, 엄격한 법칙을 적용받게 되는데, 우리는 이것을 문법이라고 부릅니다. 문법은 분위기나 정황에 의해 제멋대로 달라질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소통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 입니다. 우리는 ‘영어로 된 글’을 제대로 읽고, 쓰기 위해 영문법을 공부합니다. 하지만 ‘한국어와 영어의 상관성’을 이상적으로 반영한 영문법서의 발견은 쉽지 않은 일이며, 이러한 이유로 이 졸서를 포함하여 ‘한국어-영어 문법서’는 그 궁극적 효율성을 위하여 끊임없이 개정되고 보수되어야 합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에서 대표적 영문법서로 자리매김했던 몇몇 책들을 이제는 베스트셀러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최근의 눈부신 편집 기술과 감성적 디자인이 반영된 신간서적들에 비해, 형식과 예문 내용이 보수적으로 비춰졌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예문의 최신화’라는 것은, 그 예문들이 더 이상 쓰지 않는 중세영어가 아닌 한, 그다지 중요한 성취는 아닙니다. 우리는 현대문만을 읽는 것이 아니라, 멀게는 쉐익스피어부터, 가깝다 해도 최근 백여 년간에 발간된 작품들을 읽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문법서의 예문들이 반드시 디지털시대의 트렌드에 맞춰져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존의 문법서나 상대적으로 신간인 문법서가 외면되어지는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독학용 목적에 만족스럽게 부합하지 못한 ‘서술방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문법 용어에 대한 간략한 설명’ 내지 ‘암기사항과 참조 예문의 나열’로만 구성된 문법서의 효용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지만, 학습자가 문법사항에 대한 궁금증을 스스로 해결하고, 단순암기를 넘어 이해를 통한 체득까지 이뤄내기에는 부족했을 것 입니다. 필자도 그러한 과거의 문법서를 가지고 영어공부를 시작했으며, 늘 같은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어려움의 실체를 깨닫고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고심할 수 있었던 계기는, 어느 정도 영어에 대한 이해력이 확보된 후 본토에서 사용되는 영문법서를 공부하게 되면서였습니다. 원어민들이 공부하는 영문법서는 한국어로 제작된 대부분의 영문법서보다 훨씬 체계적이며, 그 응용부분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도록 기획되어 있었습니다. 영문법원서는 문법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부분과 응용연습영작부분이 적당한 비율로 배분되어 있으며, 동시에 응용연습(worksheet)을 수행하도록 제작되었기 때문에 ‘설명-응용-체득’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한국어-영어 문법서’는 이를 실현하기에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있습니다. 본토에서는 문법공부가 매일 영어라는 언어의 몰입환경 속에서 이루어지므로, 자율과 타율의 복습시너지가 최대한 도출될 수밖에 없지만, 한국에서는 영문법을 공부하는 시간 외에는, 이를 바로 응용하고 확인할 모국어적 환경이 불허된다는 한계점이 존재하기 때문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어-영어 문법서’는 이런 핑계의 관성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긍정적으로 보자면, 지금보다 훨씬 더 적합한 영문법서 내지 영문법공부방법이 드러날 여지가 많다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개량된 영문법서가 가져야 할 변화는, 우선적으로 영문법 영역의 세분화입니다. 학습자들에게 특정 문법분야에 대한 빠른 검색과 정확한 내용확인이 주어진다면, 이는 궁금증의 해결에 편의와 도움을 제공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문법에 대한 자세한 서술과 함께, 개선된 목차(contents)나 인덱스(index)작업이 선결되어야 하며, 이번 졸서는 이 부분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문법서의 예문들이 반드시 최신화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법에 대한 친절한 설명과 서술방식입니다. 요컨대, 한국인을 위한 독학용 영문법서는, 지금보다 훨씬 ‘서술지향’적 이어야 할 것 입니다. 3. 한국인을 위한 최적의 영어학습법 의사전달이라는 ‘언어적 공통점’과, 영어와 한국어 두 언어 간의 ‘기능적 차이점’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 한국인이 영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최적화된 설명법을 제시하고, 서술하려고 애썼습니다. 특히 다음에서 설명하는 ‘후치수식’, ‘짝개념’, ‘품사공용’ 이라는 비교언어학적 세 가지 특성은 이 책의 모든 부분을 관통하는 원리입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3가지 원칙을 각 학습 파트에서 늘 적용하다보면, 좀 더 올바르게 영어를 이해할 수 있을 것 입니다. 1) 한국어는 토씨어, 영어는 위치어 한국어는 한 낱말의 역할을 그 낱말 뒤에 붙는 ‘토씨’로 정합니다. ‘이순신은 조선을 구했다.’ 라는 문장에서 ‘이순신’ 이 주어인 것을 암시하는 말은 주격조사인 ‘은, 는, 이, 가’ 중 ‘이’ 가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이 동사의 대상 즉, 목적어인 것은 목적격조사인 ‘을, 를, 에게, 랑, 와’ 중 ‘을’ 이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구했다’ 가 술어동사인 이유는 ‘구’라는 내용어(內容語)에 ‘하다’라는 동사 토씨가 붙어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 ‘이순신을 조선이 구했다’라고 하면 어순(語順)은 그대로이지만, 역할을 의미하는 토씨가 바뀌었기 때문에 내용이 달라집니다. (이순신은 조선을 구했다 ≠ 이순신을 조선이 구했다) 한국어는 ‘주어, 술어, 목적어, 보어’가 위치에 크게 지배받지 않는 언어이므로, 주어진 예문에서 낱말들의 위치를 바꾸어도 토씨가 바뀌지 않는 한 전달하는 의미는 같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점으로 흔히 거론하는 주어와 술어의 위치에 의한 비교는 기실, 온당한 차이점이 아닙니다. 한국어에서는 각 단어의 위치가 말의 의미를 제대로 구현해 내는 결정적 요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순신은 조선을 구했다. = 조선을 이순신은 구했다. = 구했다 이순신은 조선을. = 구했다 조선을 이순신은.’의 예문은, 한국어에서 토씨가 바뀌지 않은 채, 각 단어의 위치만 바꾸었을 때도, 그 의미는 여전히 같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에 비하여, 영어는 토씨에 의해서가 아니라 ‘위치’에 의해서, 각 낱말의 역할이 결정되는 언어입니다. ‘Admiral Soon Shin Lee saved The Josun Dynasty.’의 예문에서, 어순은 술어동사 saved 를 가운데 두고 앞의 것이 주어, 뒤의 것이 목적어가 됩니다. 위의 문장을 ‘Saved Lee Soon Shin Josun’ 혹은 ‘Saved Josun Soon Shin Lee’ 이라고 적을 수는 없습니다(문학적 도치에서는 가능하기도 합니다만...). 만약 ‘Josun saved Soon Shin Lee.’라고 한다면 ‘조선이 이순신을 구했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이처럼, 영어는 특별한 도치가 적용되지 않는 한 술어동사 앞의 것이 주어이고, 술어동사 뒤의 것은 행위의 대상인 목적어 또는 주어에 대한 보충정보어인 보어가 됩니다. 따라서 항상 술어동사를 기준으로 그 앞과 뒤에서 행위의 주체인 주어와, 행위의 대상인 목적어를 찾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하고 또 많은 문장을 실제로 만들어 보아야 합니다. 2) 한국어는 품사 개별어, 영어는 품사 공용어 한국어에서는 모든 낱말의 품사가 낱말의 뒤에 붙이는 품사토씨에 의해 결정됩니다.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단어는 명사로만 사용되며 ‘사랑하다’가 동사, ‘사랑하는, 사랑스러운’ 등은 형용사, ‘사랑스럽게’는 부사입니다. 영어에서도 품사를 결정하는 토씨가 있지만, 상당수의 낱말들은 문장 내에서의 위치에 의해 그 품사를 스스로 결정하여 기능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는 ‘love’라는 단어가, 위치에 따라 명사와 동사로 둘 다 기능합니다. ‘She is my love. (그녀는 나의 사랑이다)’, ‘Love makes everything possible.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한 상태로 만든다)’ 같은 문장에서는 ‘love’ 가 각각 주격보어와 주어의 역할 을 하는 명사입니다. 그런데 ‘I love her.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She loves me. (그녀는 나를 사랑한다)’라는 문장에서 ‘love, loves’는 각각 술어동사로 사용되었습니다. 다른 예로, ‘The right to vote was not allowed to women. (투표할 권리는 여성들에 게 허용되지 않았다)’라는 문장에서 ‘right’는 ‘권리’라는 명사입니다. 그런데 ‘Raise your right hand. (오른손을 들어라)’라는 문장과 ‘You can right the wrong course of your life. (당신은 당신 삶의 빗나간 여정을 바로잡을 수 있다)’라는 문장에서 ‘right’라는 단어는 각각 ‘오른쪽의’라는 형용사와 ‘바로 잡다’라는 타동사로 사용 되었습니다. 한국어에서도 물론 다의어는 존재하지만 적어도 품사를 여러 개로 나누어 쓰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입니다. ‘이런 차이를 처음부터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영어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3) 한국어는 전치수식어 Vs 영어는 전·후치수식어 한국어에서 명사를 꾸미는 말은 늘 명사의 앞에 놓이지만, 영어는 그 종류에 따라 명사의 앞과 뒤에 놓이는 언어입니다. 이것에 대한 이해와 응용은 실제로 영어를 쓰거나 읽는데 있어서 매우 결정적 요소이므로, 비록 머리말에서는 가볍게 다루지만 본문에서는 수학에서의 미분·적분만큼이나 중요한 영역이므로 제대로 반복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그가 읽고 있는 그 책의 제목’이라는 한국말에서 ‘그가 읽고 있는’이 ‘그 책’을 앞에서 꾸미고, ‘그가 읽고 있는 그 책의’가 다시 앞에서 ‘제목’을 꾸밉니다. 하지만 이것을 영어 로 옮겨 보면 ‘the title of the book (which) he is reading’이 되는데 ‘the title of the book’ 에서는 ‘of the book’ 이 뒤에서 ‘the title’ 을 꾸미고, ‘(which) he is reading’ 이 다시 뒤에서 앞의 ‘the book’ 을 꾸미는 순서를 보게 됩니다. 이런 수식의 순서 규칙은 앞으로도 많이 공부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조금 더 많은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어에서 ‘당신이 찾고 있는 빨간 색 그 구두’라는 글에서 ‘구두’라는 명사 앞에 있는 모든 말들은 ‘구두’를 꾸미는 말입니다. 즉, 형용사의 역할을 하는 부분입니다. 그것을 다시 세분화해보면 ‘당신이 찾고 있는’과 ‘빨간 색’과 ‘그’ 라는 세 부분이 수식어입니다. 이 3가지 꾸미는 말들을, 성질로 분류해보면, 맨 앞의 것은 ‘절(주어+술어)형식의 수식어’이고, 두 번 째 것은 ‘일반형용사’이며 세 번째 것은 ‘지시형용사’입니다. 그러나 이 3종류의 수식어가 모두 명사 ‘구두’의 앞에 옵니다. 그런데 이것이 영어에서는 ‘those(the) red shoes (that) you're looking for’ 입니다. 즉, ‘shoes’ 를 가운데 두고, 앞에서 ‘those(the) red’가, 뒤에서는 ‘you're looking for’가 꾸밉니다. 이것을 다른 순서로 하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렇게, 명사의 앞에서 꾸미는 말과 뒤에서 꾸미는 말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에 대한 명쾌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전치(전위)수식과, 후치(후위)수식이라고 나누어서 다루게 될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공부가 끝나고 나면, 영어에 엄청난 자신감이 생기게 됩니다. 짧은 토막말과 토막글을 만들던 단계를 벗어나서 제대로 꾸밈말을 만들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수준 높은 원서를 이해할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마치며 졸서의 이번 개정판이 학습자 여러분의 영어여정에 조금이라도 더 나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라며 머리말을 마무리합니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

최우선 영단어 : 심화 동사 1

머리말 한국에서 영어라는 언어를 안다는, 가르친다는, 공부한다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소위 가르친다는 사람들입니다. 경계해야하는 이유는? 나를 포함한 그들은 그것으로 먹고 살기 때문이며, 더욱 심각한 것은 그것으로 부귀영화를 꿈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슬픈 것은 공부한다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현란한 말솜씨에 주눅이 들고 현혹당하며 결국 그들의 귀중한 시간과 정열을 바치고 궁극적으로는 흡혈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의 지식은 오늘날 상식으로 뒷걸음질 쳤고 이제 무엇인가를 안다고 자처하는 학생, 학부모들이 넘쳐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육소비자들은 결국은 대다수가 기만당하기 일쑤입니다. 정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교육 받는데 스스로 협조했기 때문입니다. 이 언어를 공부할수록 숙연해지는 것은 왜일까요... 저의 무식에 대한 지각이 엄하게 매를 때리는 느낌을 저는 연구시절 내내 겪었습니다. 지금도 겪고 있습니다. 아주 심각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최소한 본질의 일부만이라도 생각해 보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영어를 배우는 한국인들이 반드시 기억해야할 중요한 요소들은 많습니다. 그 중 딱 하나만 거론하겠습니다. 영어는 품사공용어입니다. 그리고 그 품사의 중심에는 동사가 있습니다. 한국어처럼 [-은,는,이,가, -에게, -을,를, -로서, -하게, -한 상태로, -하다 ] 등의 토씨를 붙이지 않고 의미를 빈틈없이 전달하려고 하는 영어의 본질은 바로 동사의 운용법입니다. 긴 이야기는 없습니다. 영어는 결국 동사와 전치사가 부리는 마술이니까요...... 동사를 공부하면 이 마술의 이치를 깨닫게 됩니다. 이 시리즈는 알파벳의 마지막에서 종결될 것입니다. 제대로 한 번 공부해 보세요. 여러분의 영어미래가, 영어능력이, 본질적으로 얼마나 달라지는지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어는 하루, 하루 달라질 것입니다.

Top Voca 1 : 핵심동사 콜로케이션

글을 예측한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내용의 예측과 구조의 예측이다. 내용의 예측은 세계 모든 언어들의 공통적 논리전개 방식 중 가장 유효하고 널리 통용되는 몇 가지를 이해하면 된다. 즉, 일반론의 예시 + 반박 + 예증…. 두 가지 대조적 내용의 순차적 전개…. 연역과 귀납, 기타의 방법들은 비단 영어 뿐만이 아니라 한국어나 다른 언어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이것이 영어인양 착각해서는 아니됨은 물론이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한국적 영어 학습 현실에 대한 서글픈 우려와 함께…. 다음은 구조의 예측이다. 구조를 예측하는 것이야 말로 그 언어를 진정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이며 그 언어가 전달하려는 정보를 오해 없이 습득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독해 의 속도 또한 연루되어 있다. 구조를 예측하는 관건은 동사의 운용법에 대한 확고하고 폭 넓은 지식이다. 그래서 사전이 필요한 것이다. 다만 사전은 우선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 것 들은 선별해 주지 못한다. 그래서 그 선별작업을 하고 싶었다. 의사소통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주요 동사들의 구조적 전개방식을 정확히 인지한다면 동사의 모양만으로도 뒤에 나올 구조를 예측할 수 있게 되며 이 구조에 대한 예측이야 말로 진정으로 그 언어의 구사능력 및 해독 능력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것이 동사운용의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것으로 심화편이 제작될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언제가 되어야 이 나태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다시 연구에 깊게 연루될 수 있을까.. 수험생들과 영어학습자들의 매서운 채찍과 격려를 바란다. 부디, 문제를 풀지 말고 이곳에서 소개된 모든 동사의 구조를 여러분 소장의 책자와 원문들에 적용시켜 부단히 연습하기 바란다. 그래서 동사를 보는 순간 글쓴이의 전달의도까지 빤히 보일 수 있는 경지에 올라서기 바란다. 문제 유형이라…. 이미 그곳은 하계중에서도 천박한 상술이 판치는 최하계임을…. -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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