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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베르트랑 타베르니에 (Bertrand Tavernier)

성별:남성

국적:유럽 > 중유럽 > 프랑스

출생:1941년, 프랑스 리용 (황소자리)

직업:영화감독

가족:딸이 소설가 티파니 타베르니에

데뷔작
1973년 <생 폴가의 시계 수리공>

최근작
2023년 4월 <캡틴 코낭>

1941년 4월 프랑스 리용에서 시인인 르네 타베르니에의 아들로 태어난 타베르니에는 13세 때부터 감독이 되기를 꿈꾸었다고 한다. 소르본느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도중, 장-피에르 멜빌의 조감독으로 영화산업에 뛰어들게 되었지만, 조감독 일을 별로 잘 해내지 못했고, 그래서 할 수 없이 비평가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타베르니에는 ‘포지티프', ‘까이에 뒤 시네마’같은 유명 영화잡지에 글을 기고하면서, 한편으로 누벨 바그 영화를 주로 제작했던 조르주 드 보르가르를 도와 홍보 담당자로 일했다. <유다의 키스>(1963)라는 단편영화를 연출한 후로 타베르니에는 '미국영화 30년'을 비롯한 몇 권의 비평서를 출간했으며 틈틈이 시나리오를 썼다.

몇몇 신예감독들에게 영화예산을 지원해주는 기획의 일환으로 단편 영화 몇 편을 연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타베르니에는 1974년 첫 장편영화 <생폴의 시계공>을 연출한다. 이 작품은 조르주 시므농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으로, 공장의 못된 작업반장을 살해한 아들이 수감되는 과정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정치적으로 조금씩 의식화돼가는 줄거리로 심리 드라마와 사회비판 드라마를 교묘하게 섞은 구성력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이 작품으로 타베르니에 감독은 세계적인 갈채를 받았으며, 베를린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타베르니에는 이 영화의 각본을 4,50년대에 르네 클레망, 장 들라노이 등의 감독과 자주 작업했던 노련한 시나리오 작가들인 장 오랑슈, 피에르 보스트와 같이 썼는데 이들은 누벨바그 영화인들에게 문학적이라는 이유로 격렬한 비난을 받으면서 한동안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던 작가들이었다. 타베르니에는 오랑슈와 보스트와 함께 일하면서 기승전결이 분명한 이야기의 매력을 프랑스 영화에 되돌려줬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역을 맡았던 필립 누아레는 이후 타베르니에와 자주 영화를 함께 만들게 된다.

타베르니에의 두 번째 장편영화인 <축제는 시작한다 Que La Fete Commence>(1974)는 .

1년 후, 타베르니에는 두 편의 영화로 다시 갈채를 받게 되는데, 첫 번째 영화, <축제를 시작하라>는 약 60여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대작역사영화였다. 제목의 '축제'는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을 가리키는데 오를레앙 공이 통치하던 18세기 말의 프랑스에서 어떻게 왜 혁명이 일어났는지를 꼼꼼하게 짚어본 작품이다. 이 영화로 그는 세자르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비롯한 네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에 개봉된 타베르니에의 두 번째 영화, <판사와 살인자> 역시 과거의 이야기로 19세기를 배경으로 살인을 저지른 정신병자를 심문하는 판사가 주인공이다. '계몽된 부르주아'라고 스스로 믿는 판사는 도덕적으로나 철학적으로 우월한 계급의 심판자란 자부심을 걸고 정신병환자인 살인자를 정신병원으로 보내지 않고 이성으로 심판하려 든다. 어린아이를 살해하고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남자와 그의 운명을 결정해야하는 판사 사이의 관계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타베르니에의 주요 테마 가운데 하나, 즉 완전히 반대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무너지지 않는 사회적 장벽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이 영화 역시 시나리오 상을 비롯해 여러 개의 세자르 상을 수상했다.

타베르니에는 '영화감독은 일생에 단 한편의 영화만 만든다'고 하는 예술관을 지닌 '작가'가 아니었다. 소재의 탐식증에 걸린 환자처럼 타베르니에는 온갖 소재에 부지런히 달려들어 주위에서 겪는 일상 현실을 시나리오로 쓰고자 하는 작가가 주인공인 <불량 소년들 Des Enfants Gates>(1977)은 가족관계와 사회에 대한 그의 관심을 담은 작품이었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관음증과 인간 정신의 어두운 측면에 대한 고찰을 그린 <죽음의 중계 La Mort en Direct>(1979)는 일종의 SF같은 작품이었다. 어떤 소재를 다루든지 타베르니에는 윤리의 문제를 사회의 역사적인 현실에 놓고 다층적으로 접근한다는 원칙을 버리지 않았다. <죽음의 중계>는 한 남자가 죽어가는 여인을 따라다니며 소형 카메라로 촬영해 텔레비젼으로 생중계하는 과정을 담으며 개인의 비극을 구경거리로 떨어트리는 미디어의 속성을 충격요법으로 비판한 작품이다.

80년대에도 타베르니에는 사회, 역사, 관습에 대한 반성의 강력한 도구로 영화를 생각하는 감독임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일주일간의 휴가 Une Semaine de Vacances>(1980)는 교육문제를 둘러싼 사회현실, 자기 내부의 외로움, 병약한 부모를 통해 느끼는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의 감정과 싸우는 학교 여선생인 로랑스의 내면과 행동을 섬세하게 따라가면서 타베르니에식 리얼리즘의 진수를 보여줬다. <대청소 Coup de Torchon>(1981)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동아프리카를 무대로 난폭한 제국주의의 이면을 우화적으로 풀어낸 작품이었다.

그리고 1984년, 그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시골에서의 어느 일요일>을 내놓는다. 이 영화는 장 르느와르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으로, 1905년 파리 근교의 어느 집에서 휴일을 맞아 소풍을 즐기는 한 가족의 일화를 바탕으로 낭만적인 열정으로 삶을 탐색했던 시대는 가고 뼛속까지 물질화된 속물들이 판을 치는 시대가 오는 시간을 잡아낸다. 그는 나이든 화가와 그의 자식들, 손자들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4년 전 <한 주간의 바캉스>에서 다루었던 주제들을 심화, 확대시키고 있다.

2년 후, 타베르니에는 재즈와 재즈맨들에 대한 존경심의 표시라고 할 수 있는, <라운드 미드나잇>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덱스터 고든(Dexter Gordon)이 파리에 스스로 유배되어 사는 자기 파괴적인 미국인 색소폰 연주자로 출연한 이 영화는 색소폰 연주자와 나중에 그의 관리인이 되는 한 프랑스 팬 사이의 우정을 우울한 톤으로 그려 보이고 있다.

<베아트리스의 열정>(1987), <오로지 삶뿐>, <대디 노스탈지>(1990) 등의 작품을 통해 꾸준히 가족 구성원간의 관계를 탐구하던 타베르니에는 90년대로 들어서면서 동시대 프랑스가 직면하고 있었던 사회적인 이슈와 문제들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다. <이름 없는 전쟁>(1992)은 알제리 전쟁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 반전(反戰) 의식이 더욱 더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캡틴 코난>(1996)은 1차 세계대전동안 살인광으로 전과를 올리지만 전쟁이 끝나자 평화로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한 캡틴에 관한 드라마로 인간 천성의 어두운 그늘과 전쟁의 흉포함에 대한 놀랍고 예리한 논평을 담은 걸작이다. 이밖에도 그의 아들과 함께 만든 <도시순환도로 너머>(1998), <모든 것이 오늘 시작한다> (1999) 등의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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