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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미키 루크 (Mickey Rourke)

본명:Philip Andre Rourke Jr.

성별:남성

국적:아메리카 > 북아메리카 > 미국

출생:1952년, 뉴욕 세넥터디 (처녀자리)

직업:배우

취미/특기:모터사이클

기타:마이애미비치시니어고등학교

데뷔작
1981년 <보디 히트>

최근작
2023년 11월 <[블루레이] 엔젤하트 : 렌티큘러 풀슬립 한정판 B타입>

1956년 9월 16일 뉴욕시 출생. 미키 루크의 나이 일곱살 때, 어머니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능력없는 아마추어 보디빌더인 남편을 떠나는 바람에 어머니와 할머니를 따라 마이애미로 옮겨 가게 되었다. 그는 생부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의 어머니는 경찰과 재혼해서 미키 루크는 의부의 다섯 아들과 함께 슬럼가와 마이애미 비치에서 유년 시절을 보냇다. 새아버지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인간쓰레기”였다. 자신보다 강한 남자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그의 남동생 조이는 야구 배트로 아무나 때려눕히는 법을 배웠고 필립 안드레(아버지 이름을 딴, 미키 루크의 본명)는 주먹 쓰는 법을 배웠다.

그는 마이애미에서 학업을 마치고 열 아홉 살에 단신으로 뉴욕으로 돌아와 샌드라 시 캐트에서 연기를 배우다 '액터즈 스튜디오'의 시연회에서 <리차드 3세>를 연기해 주목을 받았다. 뉴욕의 <액터스 스튜디오>를 졸업한 그는 이론과 실력을 겸비한 몇 안 되는 배우로 평가받은 그는 1980년대의 거장들과 내내 작업했다. 그는 로스엔젤레스로 옮겨가 <끝없는 사랑> 등 여러 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그리고 81년 <보디 히트>에서 자신의 변호사(윌리엄 허트)에게 방화 기술을 가르치는 단역이지만 여자들을 사로잡을만한 매력을 뿜으며 주연급 배우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마이클 치미노의 <천국의 문>, 로렌스 캐스단의 <보디 히트>, 배리 레빈슨의 <청춘의 양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럼블 피시> 등으로 화려하다.

본격적인 주연급 데뷔는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형사 영화 <이어 오브 드라곤>으로, 월남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형사로 나와 차이나 타운을 배경으로 특유의 권태스런 표정과 광적인 폭발력을 보여주었다. 그 후 애드리안 라인의 <나인 하프 위크>와 잘만 킹의 <와일드 오키드>에 출연하면서 와일드한 섹시가이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충동적 기질과 남성미가 넘치는 미모를 지닌 그는 몽고메리 클리프트-제임스 딘-말론 브랜도로 이어지는 할리우드 반항아 계보의 유력한 후계자였다.

하지만 인기와 성공, 그리고 뉴욕 액터스 스쿨 출신으로서 자신은 예술을 하고 있다는 자의식에 도취된 미키 루크는 자기 삶에 대한 절제력을 잃어간다. 그는 자신의 예술적인 마인드를 무시하는 스튜디오에 화를 품었다. 정작 작품을 성의껏 고르지도 않았다. 감독을 눈앞에 두고 “당신이 싫어서 출연 못하겠어”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배리 레빈슨이 직접 청해온 <레인맨>의 더스틴 호프먼 역할은 상대 배우인 톰 크루즈가 맘에 들지 않아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걷어찼다.

이후에는 복싱과 마약과 오토바이, 그리고 스캔들에 빠져들어 별 다른 활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복서를 꿈꿨던 미키 루크는 70년대 아마복서로 활동했는데 20승 4패 17KO의 전적을 기록했다. <광란의 시간> <와일드 오키드> <할리와 말보로맨> 같은 어설픈 액션영화와 소프트코어의 출연을 끝으로 1991년 헐리우드를 떠난 그는 세계 챔피언을 바라고 프로에 입문하여 마리엘리토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91년 5월 23일 프로 권투 라이트헤비급으로 스티브 파웰과 가진 데뷔전에서 판정승으로 승리했다. 마리엘리토로서의 미키 루크는 한 번도 지지 않았다. 11번의 대전 가운데 10번을 KO승으로 이겼고 1번을 판정승으로 이긴 것이다.

미키 루크는 언제나 문란한 여성 편력과 잦은 스케쥴 펑크, 음주벽 등에서 항상 가십의 대상이었다. 88년에 여배우 데브라 포이어와 결혼하지만 <와일드 오키드>에서 공연한 캐리 오티스와 촬영 때부터 스캔들을 일으키다가 결국 92년 6월에 재혼했다. 하지만 방탕한 삶을 살며 미키 루크는 알콜 중독, 아내 캐리 오티스는 헤로인 중독에 빠지고 결혼 생활은 파탄이 났다. 남편의 여성편력을 견디지 못한 오티스가 영화 촬영장에서 실탄이 장전된 총을 쏘기도 했고, 미키 루크는 그녀에 대한 주먹질로 세간에 물의를 일으키며 1994년 7월 배우자 폭행죄로 LA경찰에 체포돼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체육관을 운영하는 등 복싱에 돈을 쏟아부어 재산은 바닥났다. 가끔씩 LA로 날아가 <미키 루크의 FTW> <미키 루크의 추적자> 같은 영화를 찍고 와도 유흥비를 충당하기에는 빠듯했다. 헐리우드에서는 (그가 싫어하는) 톰 크루즈가 외모와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로 한창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복싱으로 다친 상처로 인한 얼굴 성형으로 몸도 망가져갔다. 하지만 여전히 교만과 술과 폭력에 찌든 망나니 미키 루크는 자기 애완견을 영화 속에 넣어달라는 등의 고집을 부리다 중도 퇴출당하고, 길거리에서 마약밀매상을 두들겨팬 것이 신문에 나서 계약 파기를 당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1995년 프로 복서로서 은퇴를 했으며, 1998년 캐리 오티스와도 이혼을 했다.

2년 뒤인 2000년 그에게 "구원자"가 나타난다. 헐리우드의 메이저 에이전시 소속인 에이전트 데이비드 웅거가 그의 재기를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겟 카터>에 출연하고 젊은 감독들과의 작업을 거치며 미키 루크는 자신이 새로운 태도로 새로운 캐릭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농도 짙고 노련한 연기로 다시 어필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버팔로 '66>(1998) <목요일>(1998) <플레지>(2001) <스펀>(2002) 등 인디영화에 출연하며 차근차근 재기의 발판을 다져 간다.

그리고 프랭크 밀러의 전폭적인 지지로 <씬 시티>(2005)에 마브 역으로 출연하며 재기의 봄을 맞게 된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에서 갱단의 보스 밑에서 실권을 쥐지 못해 불만이 쌓인 2인자로 미키 루크를 채용했던 로드리게즈가 프랭크 밀러에게 그를 마브 역으로 거론했고 그를 직접 만난 밀러는 "상처받은 인간을 연기할 배우"를 발견했다.

2008년 <더 레슬러>에서 그는 퇴물 레슬러 연기로 영화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고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되며 완전히 부활한 그는 진정한 연기자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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