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헤더배너
상품평점 help

이름:로렌스 올리비에 (Laurence Olivier)

본명:Laurence Kerr Olivier

성별:남성

국적:유럽 > 중유럽 > 영국

출생:1907년, 잉글랜드 서리 도어킹 (쌍둥이자리)

사망:1989년

직업:배우

최근작
2021년 7월 <발자국>

20세기 영국 최고의 연극 배우이며, 셰익스피어 해석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로렌스 올리비에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22년 셰익스피어의 고향이며, 연극 연구 및 활동의 본고장인 스트래트퍼드 온 에이번의 셰익스피어 연극제에서 첫 무대를 밟은 후 1926에서 28년까지 버밍엄 레퍼토리(Birmingham Repertory) 극장에 소속되었다.
1929년 로열티 극장(Royalty theatre)에서 만난 여배우 질 에스몬드와 약혼, 1년 후에는 결혼에 이른다.

1935년 뉴 시어터(New Theatre)에서 존 길거드와 더블 캐스팅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와 머큐시오 2개 역에 출연하여 주목을 끌었다.

1937년에는 그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그 하나는 셰익스피어 희곡을 중점적으로 상연하는 런던의 올드빅(Old Vic)극단에 발탁되어 장중한 비극의 주역 배우로서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알렉 기네스, 마이클 레드그레이브 등과 함께 공연한 《햄릿》에서의 햄릿 역으로 격찬을 받았으며 연이어 출연한 《헨리 5세》를 비롯, 《맥베스》, 《오셀로》등에서 셰익스피어 극의 명배우로서 입지를 확고히 다진다.

또한 이 해에 그는 23세의 촉망받는 여배우 비비안 리와 영화 출연을 계기로 만난다. 두 사람은 곧 연인 관계로 발전했으나 양쪽 다 결혼한 상태여서 그들의 관계는 난관에 봉착한다. 파란많은 연애 끝에 1940년, 결국 그는 첫 아내와 이혼하고 비비안 리와 결혼한다.

무대에 올리기 어렵기로 이름났던 《리차드 3세》의 대성공 이후, 1944년부터 49년에 이르기까지는 랄프 리차드슨과 함께 올드 빅의 공동 감독으로도 활동하였다. 그 중 1946년 《리어 왕》에서 연출과 주연을 겸하여 39세의 나이로 70대의 노왕 역을 훌륭히 연기, 관객과 비평가들을 놀라게 하였다.

1955년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에서 《타이타스 안드로니쿠스》의 부활 상연을 한 점이 주목할 만하며, 그밖에도 소포클레스의 비극《오이디푸스왕》(1945)과 같은 고전극이나 R.B.셰리든의 《스캔들학교:The School for Scandal》(1948), C.프라이의 《관찰된 비너스》(1950) 등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였고, 또 현대극에서도 다채로운 재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그간 무대에서의 빛나는 활약과 달리, 그의 개인적 삶은 순탄하지 못했다. 아내 비비안 리의 육체적, 정신적 질병으로 인해 부부 사이는 거의 파국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1960년 비비안 리와의 20년에 걸친 결혼을 정리하고, 22세 연하의 여배우 조안 플로라이트와 재혼한다. 이들의 결혼생활은 1989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계속된다.

영화계에서도 활약하여 《폭풍의 언덕》(1939), 《레베카》(1940) 등에서 호평을 받았으며 《헨리 5세》(1945), 《리처드 3세》(1955)를 감독 ·주연하였고, 특히 스스로 감독 ·제작 ·주연한 《햄릿》은 1948년도 아카데미 4개 부문과 베니스 영화제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1947년 나이트 칭호를 받았고, 1970년에는 남작의 칭호를 받게 된다. 1963년에서 10년 동안 영국 국립 극장의 초대 연출가로 임명되기도 했다.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국내문학상수상자
국내어린이문학상수상자
해외문학상수상자
해외어린이문학상수상자